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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graceds | 2018.03.25 19:35 | 조회 7392

2018325일 은혜교회 주일 강단

19:28-30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서론 - 할렐루야! 감사를 드린다. 우리 옆에 분과 신앙고백하겠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이십니다. 다시 한 번 인사한다. 은혜의 복음에 집중하는 제자입니다.

 

어떤 렘넌트가 신앙생활 잘하는데 제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목사님, 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는가? 하나님이 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가? 내가 웃으면서 자세히 보며 얘기했다. 네가 개값 밖에 안 되면 개로 오실 것인데 네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 지셨따. 네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네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네 존재 가치가 크다고 얘기하니까 이해가 되는 것 같더라. 여러분들이 참 귀한 존재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성도가 모르는 게 뭔가? 성도가 모르는 게 내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지금 모른다. 그게 오늘 교회 왔다 갔다 하시는 분들이다. 그게 몇 대 째 믿고 신앙생활 하는데 의식적인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성도가 받은 축복은 굉장하게 크다. 우리가 그것만 듣고 있어도 내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고 그것만 듣고 있어도 내가 충분하다고 할만큼 성도가 받은 축복이 굉장하다. 그러면 불신자는 뭘 모르고 있느냐? 오늘 성도들이 모르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인 반면에 불신자는 뭘 모르느냐? 왜 내게 이런 문제가 터지는지 그걸 지금 모른다. 내가 철저하게 준비하고 내가 철저하게 계획하고 그러면서 그 계획대로 내가 많이 가졌는데도 내가 불안하다. 내가 원하는 자리에 가 있는데도 어느 날 문제가 터진다. 내가 원하는대로 성공을 했다고 하는데 그게 성공이 아니고 어느 날 그 자리에서 떨어지는데 대통령도 운명이라고 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터진다. 내가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것 그게 무속, 점술가에게 일어나는 일인데 불신자는 거기 가서 묻는 것이다. 거기 가서 방향, , 사주팔자, 운명이 어찌 되느냐? 뭣 때문에 내가 거기에 매여 있는지, 뭣 때문에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내게 평안이 없고 그래서 어느 날 공황증이 오고 그 다음에 공허해지고 그러니까 사람 앞에 가서는 내가 괜찮은 척 웃고 밝은 척 하지만 집에 가서는 적장 들어 와서 두려워하고 조울증 걸리고 정신적인 문제가 온다. 불신자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반대로 성도는 어마어마한 축복 받았는데도 그걸 모른다.

 

우리가 날짜가 있으면 음력이 있다. 그리고 또 태양력이 있다. 그러나 성도는 교회력이란 것이 있다. 물론 꼭 그대로 지키는 게 아니다. 이걸 말씀드리자면 애굽에서 나온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광야에 오셔서는 똑같은 태양력을 지키는데 날짜를 바꿔버린다. 너희의 유월절 어린 양 피 바르는 날을 첫 날로 삼으라고 했다. 똑같이 이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의 시간은 어디에 시간이냐?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있는 시간표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아비월, 그 날, 그 해에 첫 달로 삼으라고 했다. 오늘 우리는 교회력이 있다. 우리가 주일 지키는 것, 교회력에 의해서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 날 되면 부활하신 주님이 그 날을 일요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뭔가? 지구, 태양, 그 다음에 달, 수성, 금성이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여기에 오행성에 태양과 달하고 불신자들이 전부 여기에 매여서 그러면서 날짜에 의해서 매이고 터에 매이고 방향에 매이고 궁합에 매인다. 그러면서 돼지 머리 놓고 절하고 벤츠차 사놓고 절하고? 이게 전부 매여서 종살이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셨는데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다. 그래서 그 날을 주일이라고 우리가 명하면서 예배드리는 날이다. 모든 걸 보면 태양을 섬긴다. 모든 사람들이 달 섬긴다. 바벨론은 달 섬기고 애굽은 태양 섬기고 우리나라는 오행이라고 해서 별? 전부 그런 것이다. 오늘 교회력이라고 할 때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오신 이후에 1년을 주님의 구속사에 따라서 구분해서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시기와 사건들을 복음의 내용을 재인식시키는 것이 교회력이다. 그래서 꼭 그렇게 해야 되느냐? 우리는 대체로 교회력에서 주일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면 왜 그렇게 교회력을 만들었느냐? 그것은 주님의 사역 중에서 사건과 주님이 하시는 일들에 의해서 우리가 1년 동안에 구속 사역과 맞춰서 그 복음의 내용을 우리에게 적용시키고 잊어버리지 말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제일 교회력에 첫 째가 바로 부활절이다. 그 다음에 성탄절도 생기고 오순절 이런 게 있다. 그런데 나중 가다보니까 복음이 희미해지니까 카톨릭 천주교에서는 어느 날 마리아 승천일이라는 걸 만든다. 어느 날 성어거스틴이라든지 성베드로라든지 교회력에다가 사람들 이름을 넣는다. 그래서 종교개혁 일어나면서 그런 걸 전부 없애고 이제는 성탄절과 부활절과 오순절 이렇게 우리에게 큼직하고 실제적인 걸 가지고 교회력을 적용시킨다. 그래서 성경을 교회력에 맞게 선별하고 더욱 정확하게 의미 있게 깊이 심어주는데 그 목적을 두고 만든 것이다. 그래서 때를 따라 말씀을 받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발견하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고난 주일이다. 이 주일이 무슨 주일이냐? 종려 주일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이제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그때는 부활하시기 전이기 때문에 안식일 다음에 이런 날일 수도 있고 주일이 일요일이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3년 동안 하신 일을 보고 아, 이 분 같으면 우리의 왕이라고 맞이한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마구 부르짖는다. 호산나란 뜻은 이제는 우리를 구원해주십시오, 그 분이 메시야이기 때문에 이제는 구원해달라. 찬송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 지도자 중에서 그게 듣기 싫었다. 그러니까 제자들 저렇게 떠들지 않기를 주님이 말려달라. 주님이 이렇게 했다. 저들이 떠들지 아니하면 돌들이 소리 지른다. 이 말씀은 뭔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는데 정말로 안 하면 돌을 갖고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우리가 찬양을 안 하면 하나님이 다른 것을 가지고도 찬양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안 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 시킨다. 복음을 분명히 받고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의 말씀 전해야 될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오해했다. 자기 민족의 구세주로만 알고 그러면서 정치적인 것에서 해방시키는 메시야로 육신적인 메시야로 알아버렸다. 그래서 복음 안 전하고 진짜 메시야 왔는데 메시야가 이처럼 마굿간에서 나겠느냐? 메시야가 천한 곳 갈릴리에서 나느냐? 그래서 예수님을 메시야인 줄 모르고 그냥 십자가에 내줘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복음을 안 받으니까 하나님은 이 복음을 이방인들로 돌려서 이방인 구원하는 그러한 일들을 하시면서 오히려 이방인을 통해서 이제는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지난 주에도 너희가 이 복음을 안 받아서 이방인에게로 갔고 그런데 이 복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이 주간을 맞이해서 실제적으로 복음의 내용을 우리가 깊이 묵상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란다. 그래서 나귀를 탔다, 우리 주님이 하신 일은 전부 구약을 이루신다. ? 그래야 눈이 밝은 사람은 그리스도인 줄 안다. 나귀를 탔다? 원래 왕은 말을 타야 된다. 그게 세상 법칙이다. 힘 있는 말을 타고 세상 정복하는 것이 세상의 임금이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는 말을 타지 않고 나귀를 탄다. 평화의 상징이다. 일하고 종으로서 섬기는 그러한 부분으로 오신다. 그게 슥9:9에 예언 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볼 것 같으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구약에 벌써 예언 되었다.

 

1)고난 주간 시작 되었는데 월요일이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성전을 청소하셨다. 성전은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그 기도하는 집에 장사들이 쳐들어와서 전부 돈벌이 하는 걸로 한다. 그래서 기도하는 집인데 기도 안 하니 마귀의 소굴이 되었다고 말한다. 교회는 예배드리는 곳이요, 교회는 기도하는 곳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런데 교회의 기도소리가 끊어졌다? 그래서 마귀의 소굴이 된다. 오늘 날 이런 부분을 보면서 예수님이 오셔서 성전을 청소하신다. 진짜 성전은 내가 성전이고 진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이제는 성전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성전을 청소한다. 월요일에 이렇게 하시고 성전 안에 고침을 못 받은 자들을 전부 고쳐주시는 것이다. 오늘도 예배드리면서 내 영적 문제가 치유 되시기 축원드린다. 내 육신의 문제가 치유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왜 성전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느냐? 성전에서 청소를 안 해서 그렇다. 그래서 예수님이 청소하시고 모든 치료 받지 못한 자들을 치료하셨다.

 

2)화요일이다. 여러 가지 비유로 깨우치신다. 21:28-32이다. 포도원 주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포도원을 종들에게 내주고 멀리 주인이 갔는데 이제 그 소출을 얼마 받을려고 종을 보내니까 종이 죽어버렸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느냐? 또 죽여버린다. 또 종을 보내니 죽였다. 그래서 내 아들을 보내면 그들이 그래도 대적을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세를 줄 것인데 아들을 죽였다. 그게 뭔가? 그게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선지자를 보냈는데 선지자 죽여버리고 예수님을 보냈는데 지금 너희들이 또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래서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가장 큰 계명이다. 십계명을 다시 한 번 해석해주는데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3)수요일에는 말세의 징조의 대비책이다. 말세가 되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서로 배반할 것이라고 한다. 지진과 기근이 일어날 것이다. 대비책이 뭔가? 환란을 이기는 길을 제시하는데 마25장이다. 기름을 준비해라. 똑같이 등을 들고 있는데 등에 기름이 없는 자가 있다. 똑같이 예배당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안에 생명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성령에 충만한 기름이 없는 등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양과 염소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달란트 얘기를 한다. 한 달란트가 문제가 아니고 실제 주인을 잘 몰라서 그걸 갖다가 땅에 묻어버린다.

 

4)목요일이다. 참 복음의 제자는 낮은 자세로 발을 씻기는 자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고 나서 목요일에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 제자들은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발을 씻기는 건 그 주인 집에서 가장 낮은 종이 손님 오면 대야에 물 가지고 수건 가지고 와서 씻어준다. 그런데 선생 되시는 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 여기는 큰 의미가 있다. 지난 주 수요일 날도 우리 준목님이 아주 상세하게 말씀을 드렸다. 그냥 봉사가 아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큰 복음을 가지고 적용시키면서 이 복음 전하는데 섬기면서 이렇게 마음의 문이 열리게 해야 된다. 이때 베드로가 안 된다고 강력히 부인한다. ? 그 시대에 문화에 안 맞다. 그 시대에 윤리, 도덕과 안 맞는 일들이 일어난다. 어떻게 선생님, 우리의 메시야가 우리의 발을 씻느냐? 그때에 베드로가 절대 안 된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깊은 의미를 가지고 한다. 이것이 안 된다면 이것은 네와 나는 상관이 없다. 그때 베드로는 또 얘기한다. 그러면 몸을 씻겨 달라.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다. 이미 목욕했단 말은 그리스도를 믿어서 원죄 문제 해결 됨을 말한다. 발 씻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더러워진 부분을 자범죄도 주님 앞에 나와서 깨끗하게 씻음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음 가진 자는 이렇게 섬기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섬기는 나라이고 그래서 이 복음을 너희도 이렇게 해라. 교회는 세상 방법과 다른 줄 믿으시기 바란다. 교회가 이러느냐? 아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곳이다. 그래서 발을 씻기시고 떡과 포도주로 유월절을 대신한다. 원래 양 잡아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마지막에 이제 새 언약을 주시는 것이다. 구약에 양 잡는 건 옛 언약이고 그리스도가 십자가 지시고 살 찢으시고 그것이 이제 새 언약으로, 구약의 그림자가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시는데 이것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하시면서 떡은 내 살이다. 너희에게 양식이다. 피는 우리의 죄를 씻는 보혈이라는 걸 말씀한다.

 

5)그리고 겟세마네 동산 가서 철야 기도한다. 목요일 저녁에 성찬 베푼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 가신다. 그리고 나서는 십자가 지신다. 오늘 우리가 깨달은 것은 뭔가? 우리가 일하기 전에 기도로서 그 일에 승리해야 된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기도에 끄집어온다. 내가 계획 세우고 하나님이 그 계획에 끄집어 온다. 왜 힘이 드느냐? 하나님의 계획과 상관 없는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하니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기도가 뭔가? 기도는 하나님의 게획이 뭡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면 그게 끝이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너무나도 십자가 지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기도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 할 때에 때로는 힘들고 내키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질 때도 있어야 된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 지셔야 되는데 대속의 길을 가셔야 되는데 너무나 힘드니까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그게 끝나자마자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 지시는 승리의 길로 나간 것이다. 십자가가 패배의 길이 아니다. 오늘도 기독교인의 승리는 내가 이 자리에 앉는 것이 승리가 아니다. 내가 저 사람 이기는 게 승리가 아니다. 기독교인의 승리는 우리의 거룩함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죄 문제에서 내가 그걸 이기는 것이 기독교인의 승리다. 거룩함이 우리의 승리다. 돈을 아무리 가지고 지위가 아무리 있어도 명예가 있어도 우리가 죄에 빠져 살아간다는 건 그건 승리가 아닌 걸 우리에게 말한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로 승리 뒤에 십자가를 지시게 된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일 할 때에 주님처럼 기도 속에서 이겨놓고 싸우시기 바란다. 영적 싸움하는 사람이 전혀 기도 안 하고 영적 싸움 한다? 거기서 혈기 나오고 주먹이 나온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나 교단에서 보면 늘 그게 불신자가 보기에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난다.

 

6)금요일이다. 새벽에 유다가 은 30에 예수님을 팔고 예수님은 이제 심판대 앞에 서서 재판장 앞에 선다. 대제사장 앞에 끌려가고 공회 앞에도 서고 빌라도 앞에, 헤롯 왕 앞에 다시 빌라도가 고민하게 되고 그래서 십자가에 내주게 되고 오늘 십자가에 달리셔서 7마디를 하시면서 그 중에 한 마디가 뭔가?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고 하신 것이다.

 

본론

 

1. 세상의 십자가

 

오늘 본론을 보면서 우리가 알아야 될 첫 번째다. 오늘 이 장면과 이 배경을 보며 우리가 첫 째로 생각할 것은 세상의 십자가다. 그건 뭘 말하는가? 세상의 방법으로는 세상이 바뀐 적이 없다. 십자가는 사형틀이다. 형벌틀이다.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인에게 덮어 씌우는 형벌이다. 그래서 가장 흉악범을 죽이는 형벌인데 거기에 달리면 하루만에 죽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다. 심지어 오래 간 사람은 5일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다. 그러면 피 흘리고 물 흘리고 몸이 늘어지는데 그 손에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그런데 까마귀나 독수리가 와서 눈을 쫀다. 그런데 완전 벌거 벗겨서 십자가에 달린다. 그러면 육신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인격적인 모독이라든지 가족들까지 보통 고통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은 로마 시민이다, 로만의 법이지만 로마 시민에게 절대 적용 안 한다. 반란죄에 적용시킨다. 로마에 대항하고 로마를 뒤집으려고 하고 독립하는 자들에게 씌우는 것이 십자가 형틀이다. 그래서 세상 방법으로는 그렇게 씌우는데 그것 가지고 세상 문제 해결 되는가? 안 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형죄를 폐지하자고 얘기한다. 사형죄는 안 된다. 세상 방법 가지고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오늘도 이 사실을 알면 한국에 일어나는 문제, 동서 갈등, 대통령들 또 들어가고 정권 바뀌면? 그걸로서 우리 문제 해결 되느냐?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이 부분 없애자? 사형죄 없애자고 해결 되는가?

 

2. 그리스도와 고난의 십자가(대속/공의/사랑의 십자가)

 

둘 째다. 그런데 그 세상의 십자가에 누가 달리셨느냐? 그리스도가 달리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거기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거기에 달리시니 거기에 대속의 자리가 형벌의 자리가 아니다. 율법의 형벌의 자리가 아니고 그것이 대속의 자리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거기에 공의의 자리가 되고 사랑의 십자가의 자리가 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게 예언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냥 된 게 아니라 그 그리스도가 예언 되었고 십자가 지신 것이 예언 되었고 3일 만에 부활한 것이 예언이 되었고 예수님 오시는 게 그대로 다 예언 되었다. 1:22에 보면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그래서 이 부분을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부인 할 수 없이 믿어야 된다. 그래서 성경 보면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났냐? 5:2이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면 누구 족속에서 나오는가? 11장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죽느냐? 53:4-6이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 우리가 알 것은 700년 전에 이사야서 통해서 다 예언 되었고 4-500년 전에 스가랴 통해서 다 예언 되었고 미가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놀라운 답을 내야 된다. 그게 뭔가? 진짜 믿어야 된다. 믿을 때에 어떤 내게 놀라운 축복이 나오는가? 서론에서 말씀한다. 그래서 창3:15에 보면 여자의 후손이 와서, 이 말이 뭔지를 알아야 된다. 죄 없는 그리스도다. 원죄 없는 그리스도가 오셔야 된다. 유월절 어린 양 피 발랐는데 왜 애굽에 임하는 모든 진노가 넘어가느냐? 5:24이다. 그리스도의 피 발랐는데 왜 애굽의 장자는 다 죽고 애굽의 오만 재앙들이 다 넘어가느냐? 5:24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설명해주는 걸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래서 사7:14이다. 처녀가 뭔가? 결혼해야 아들을 낳지? 그런데 결혼하지 않는 처녀가 잉태되었다, 성령으로 잉태 되신 그리스도다. 그가 오셔서 임마누엘 하리라. 우리와 함께 산다는 것이다. 그게 구원이다. 구원이 뭔가? 하나님 떠나서 살던 인생, 마귀의 종살이하던 인생, 거기서 복음 되신 그리스도를 믿고 빠져나와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주인이 바뀐 게 구원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난은 뭔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가? 우리를 벌해야 되지만 우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 죄를 미워하신 하나님, 그래서 그 죗값을 그리스도에게 덮어 씌워서 아들이지만 희생 제물로 삼으셨다. 그래서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버려야 되는 건 우리 죄를 거기에 담당시켜서 그렇다. 그게 공의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사랑의 하나님이란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다. 3:16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 보낸 건 심판의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을 보낸 것은 저희로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모르고 하나님을 잘 모르니 자꾸만 하나님을 멀리 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사랑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냈다. 요일4:9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다.

 

3. 두 종류의 인생(세상의 축소판)

 

셋 째다. 두 종류의 인생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해서 좌우편, 그게 세상의 축소판이다. 한 쪽에 둘 다 강도다. 둘 다 죄인이다. 오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다. 하나님 떠난 죄인, 하나님 모르는 죄인, 아담 아래에서 전부 죄인앋. 한 사람이 고통 문제, 자기의 문제, 옆에 계신 분 그리스도를 보면서 저 사람은 죄가 없는 분이다. 당신의 나라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 세상 나라 말고 분명하게 있다. 이 세상 나라 밖에 없다면 우리가 뭣 때문에 착하게 살아야 되는가? 이 세상 나라 밖에 없다면 뺏고 싶으면 뺏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왜냐? 내세가 없다. 오히려 그 사람이 더 현명하고 오히려 그 사람이 더 실리가 잇는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 사람이 당신의 나라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러니까 네가 나와 오늘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빨리 알아야 된다. 십자가 중심으로 좌우 세상의 축소판이다. 한 사람은 뭣 때문에 이 고통 당하는지 죽을 때까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왜 우리 인생에게 이런 문제가 오는지 모른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늘 원망한다. 예수님 욕하고, 불신자 중에도 계속 예수님 욕한다. 예수 믿는 사람을 욕한다. 계속 비난한다. 네가 그리스도냐? 나도 좀 살리고 네도 좀 살려봐라. 자기 죄는 하나도 안 보이고 늘 남의 것만 가지고 얘기한다. 비난하고 원망하고 이유를 모른다. 그런데 고통 중에 눈이 뜨인 자가 있다. 당신의 나라 임할 때에 이게 전부가 아니구나? 우리가 여기서 살아봐도 100년이고 그 위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아무 공로 없이 은혜 받는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조건 없는 구원을 허락하셨느냐? 우리에게 조건 두면 이 땅에 구원 받을 자가 한 사람도 없을만큼 우리는 원죄 가운데 빠진 것이다. 십자가에서 두 인생이다. 십자가 아래에서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비난하는 자들은 지나간다. 그 십자가 밑에 지나면서 네 성전 사흘만에 짓는다고 하더니 그 능력 가지고 너를 구원해라. 네 예수 믿는다고 하는데 꼬라지 왜 그러느냐? 네 사역하러 다닌다고 하면서 네 꼬라지는 왜 그러느냐? 자꾸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무리 신앙이다. 어느 날 호산나, 어느 날 예수님 아무 힘 없이 달리니 아무 힘이 없네? 세상 힘 기준 가지고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제사장, 저가 남은 구원 했고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 아니, 저 사람 보니까 소경 눈 뜨게 하고 그러면서 앉은뱅이 일으키고, 귀신 쫓아내고? 남은 구원은 해놓고 자기는 왜 구원 못하느냐? 구원의 은혜를 모르는 종교 지도자들이다. 군병들, 예수님 십자가 못 박아 놓고 예수님의 그 옷을 그 밑에서 누가 가져갈까? 서로 제비 뽑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령이 메마른 인간들이다.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가신 분이 있다. 여인들과 요한이다. 여인 몇 명과 그 다음에 사도 요한은 바로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갔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다. 다 이루었다. 그걸 오늘 기록했다. 그래서 마지막 두 종류 인생, 말세에 하나는 그리스도의 우편에 하나는 그리스도의 좌편에, 그런데 대부분 그렇다. 그런데 예수님이 좌측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는 나를 떠나라고 한다. 아니, 우리 예수님 주님 이름 얼마나 불렀는데요? 우리가 예수님 이름 부르고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도 했다고 한다. 한 쪽에는 내가 언제 예수님 대접했는가? 언제 영접했죠? 그러니까 이 소자 하나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 나의 신앙을 한 번 분별하고 점검하자.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약2: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이 예수님을 아는 믿음 가지고 있다. 귀신이 하나님이 뭔지를 안다. 기가 차게 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잘 안다. 그런데 그 믿음 가지고 구원 얻는 믿음은 못 된다.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 가지시기 축원드린다. 8:28이다.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누가 얘기했는가?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이 오니까 그 안에 귀신이 알려준다. 가장 높은 자다. 그런데 때가 되기 전에 왜 왔는가? 귀신이 예수가 그리스도인 줄 알고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안다. 그런데 귀신이 아는 믿음과 그 아는 것 가지고 구원 못 얻는다. 또 우리는 알아야 된다. 역사 일어나는 것과 믿는 건 다르다. 7:21-23에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이 불법을 행하는 자라, 나를 떠나라고 했다. 역사 일으킨 게 믿음이 아니다. 불교에도 역사 일어나고 예수 진짜 제대로 안 믿어도 귀신 역사로 얼마든지 미혹할 수 있는 게 기독교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을 여러분들이 소유한 줄 믿으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어떤 믿음을 원하느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시고 내 죄 문제 해결하는 그리스도시고 흑암 마귀 꺾으신 그리스도다. 주인이 바뀐 줄 믿으시기 바란다.

 

결론 - 결론이다.

 

1. 제자가 찾아야 할 십자가가 있다. 세상 십자가 가지고 해결 안 되고 주님의 십자가가 무슨 십자가인 줄 알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4:27이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면 내게 무슨 십자가가 있느냐? 지고 가야 될 십자가가 있다. 그건 축복의 십자가란 걸 말한다. 이걸 버리는 자는 육신적인 축복만 추구하는 자다. 우리 주님은 내가 준 네게 있는 십자가가 있는데 그걸 지고 나를 따라야 제자가 된다고 한다. 마태도 그렇게 말씀한다. 10:38이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찾아야 된다. 그 십자가가 소중한 줄 알고 그 십자가가 내게 축복이고 제자와의 관계가 있다. 8:33이다. 이 십자가는 영적으로 굉장한 의미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오는 어려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어려움과 여러 가지 힘든 부분이란 걸 우리에게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십자가 놔두고 눈에 보이는 축복만을 자꾸만 알다가 어느 날 바리새인처럼 어느 날 불법 행하는 자라고 그렇게 여김을 받는 걸 말한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알면 내가 얼마나 큰 축복 받은지 알고 때로는 복음으로 살아가야 되는데 오는 어려움이 오히려 나를 깨우치고 영성으로 끌어가고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걸 십자가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게 우리에게는 축복이다.

 

2. 억지로 져야 될 십자가도 있었다. 구레네 시몬이다. 예수님이 골고다 향해서 올라가는데 너무 무거워서 못 지니 억지로 군병들이 시몬을 끌고 와서 지게 했다. 구경하다가 십자가 지었다. 싫은데 그걸 졌다. 그런데 억지로 졌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그 집을 축복했는지 롬16:13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그런다. 루퍼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믿음의 가정이고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오늘 우리는 구원 받았다? 육신적인 것에만 매이면 안 된다. 육신적인 것이 많이 있다? 그게 잘못 되었다는 건 아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 믿는데 주님이 말하는 십자가는 뭔가?

 

3. 고난 주간 맞이해서 하루하루 한 번 주시는 말씀 가지고 구원의 축복을 묵상해보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 주간 그리스도 십자가의 7마디다.

 

1)23:34이다. 그 밑에서 예수님 옷을 누가 가져 가느냐? 이런 인간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또 기도한다. 무지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리스도다.

 

2)두 번째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23:43이다. 한 강도? 한 게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교회 갈 일도 없고 앞으로 헌금 할 일도 없고 착한 일 할 것도 없고 제대로 다른 사람 도울 수 있는 형편도 안 되고 곧 죽어야 될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게 뭔가? 아무 공로 없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는 것이다. 그게 왜 그러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 닮았기 때문에 영혼의 무게는 같다. 이 사람이 지위가 더 높으니? 이제 곧 죽을 나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혼이라서 그 영혼의 무게가 이 사람보다 가볍다? 아니다. 영혼의 무게는 같다. 하나님의 형상이다.

 

3)19:26-27이다. 제자에게 보라, 내 어머니라. 어머니 마리아에게는 제자를 보면서 아들이라고 말한다. 요한에게 마리아가 어머니를 맡기는 걸 볼 수 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새로운 가족 관계가 생긴다는 걸 말한다.

 

4)27:46이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하나님이 나를 왜 버리셨는가? 죄의 심각성을 말한다. 죄는 하나님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5)19:28이다. 내가 목마르다. 69:21의 예언을 지금 이루시는 것이다.

 

6)그러면서 요19:30에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십자가 지시면서 마지막 운명 전에 하신 말씀이다. 다 이루었다. 구약 창세기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의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걸 다 이루셨다. 3장의 인류의 죄부터 계20장의 역사의 마지막까지 인류의 모든 죄를 여기에 다 값았다는 뜻이다. 원어로는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다 갚았다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죗값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 앞에 다 갚았다는 것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죄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갚으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예수 믿었다, 내게 죄사함의 기쁨이 있어야 된다. 나는 이런 죄인이었는데? 이 죄는 내가 어쩔 수가 없다. 루터가 어떻게 했는가?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복도를 걸레로 닦으면서 이 복도는 내가 걸레로 닦아서 깨끗해지는데 나의 죄는 깨끗하게 되지지 않느냐? 그게 루터의 고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의 죄가 다 사해진 줄 믿으시기 비란다.

 

7)23:46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건 참된 평화와 안식이다. 죽음이 참된 평화와 안식으로 들어간다. 얼마 전에 221일에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이 99세에 소천하셨다. 그때 그 분은 이런 말씀하셨다. 이 땅의 육신 마지막 호흡은 천국의 첫 숨결이다. 오늘 죽음은 우리에게 참 안식이요 참 평강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끝이다. 진짜 예수 믿어야지, 그냥 보통 예수 믿으면 안 된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그래서 그리스도, 하나님 만나는 길이다. 다른 길이 없다. 그리스도, 이 땅의 죄 문제 해결 할 길이 없어서 십자가에서 죄 문제 해결하셨고 그리스도, 우리를 시달리게 하는 마귀, 귀신 이 부분을 이기신 왕 되신 그리스도다. 고난 주간에 월요일에 뭘 하셨고, 화요일에 뭘 하셨고 한 번 새벽기도에 나오시면 묵상해보시고 예전에 고난 주간 생각하지 마시고 다 이루신 그리스도, 교회의 절기는 우리의 구속 사역을 위해서 완벽하게 해놓으신 것이니까 전에 우리가 고난에 동참한다? 이런 생각하지 마시고 승리하신 성도님들이 다시 한 번 복음이 각인 되는 새벽기도를 하시면서 우리 주님은 월요일에 뭘 하셨고, 화요일에 뭘 하셨고, 성전 청소하셨고 그러면서 고치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다 이루신 그 은혜의 복음에 정말로 집중하는 우리 고난 주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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