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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graceds | 2018.06.10 17:22 | 조회 6252

2018610(주일) 은혜교회 주일 강단

12:1-9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서론 - 할렐루야! 감사를 드린다. 옆에 분과 우리 신앙고백하겠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입니다." 다시 한 번 인사한다. "은혜의 복음에 집중하는 제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지금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사건을 그 다음에 또 인물을 공부하는데 사건이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 그 사건을 통해서 복음 안으로 들어가고 그리스도를 만나라고 말씀한다. 창세기에는 네 사건이 나온다. 창조 사건, 하나님이 주인이다란 걸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그것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건설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창조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 있는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위임 받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는 왕적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확장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큰 복인 것이다. 그런데 타락 사건이 나온다. 그래서 창세기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래서 창조의 시작, 타락의 시작이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음의 시작, 3:15을 주신 것이다. 타락한 인생 절대 구원 받을 수가 없다. 구원 받을 길이 없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으로는 구원 받을 길이 없어 여자의 후손을 보내셨다. 복음의 시작이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세월이 지나가면서 6장 네피림 시대가 되어서 세상 문화, 물질, 문명에 전부 빠져 죽게 되는 것이다. 그때 은혜 받은 자에게 방주를 만들라, 그래서 방주 안에 들어가야 산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산다. 은혜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 그걸 말씀한다. 바벨탑 사건, 내가 성공해야 된다. 하나님 떠난 인생이 탑을 쌓는 것, 공 드리는 것, 성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이 인간의 완악함인데 하늘에 닿게 하자, 하나님 떠난 인생들은 꼭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너뜨리는데 왜 세상 사람들이 성공하고 무너지느냐? 바벨탑 사건이다. 오늘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함정에서 빠져 나온 줄 믿으시기 바란다.

 

인생에게는 영적 함정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 네가 주인이 돼라,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 네가 물질, 문화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 문화 속에 휩쓸려간다. 전부 함정이다. 그러면서 네가 성공하면 된다, 네 힘으로 성공하자, 전부 바벨탑, 함정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귀한 길을 열어주셨는데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걸 말한다. 아브라함이 무엇으로 승리했는가? 믿음으로 승리한 줄 믿는다. 그걸 말한다. 그래서 네 인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서 뭐를 말씀하느냐? 실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이 아브라함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 얻는 자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그래서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고 한다. 이삭은 뭔가?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그 말씀대로 이삭이 태어났다. 그 약속의 말씀 붙들고 순종하는 사람의 모델이 된 것이다. 야곱은 뭔가? 야곱은 이름 자체가 발목 잡는 자다. 이름 자체가 사기꾼이다. 우리의 죄성을 말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죄성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태어날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구원 받게 되어지고 그래서 그를 변화시켜 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의 상징이 누군가? 야곱이다. 야곱은 늘 사기꾼 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 속이고 형님 속이고 그런데 어느 날 정말로 사기꾼 라반을 만나서 하나님이 그를 하나씩 변화시키는데 기도의 무릎을 꿇게 되고 하나님이 복 주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변화되는가? 그걸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요셉 통해서는 우리에게는 뭘 알려주는가? 언약 잡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 가진 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노예로 팔려가고 어디에 가 있어도 그는 승리한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준다. 애굽에 갖다놔도 애굽 복음화가 된다. 우물에 집어넣으니 물이 없는 것이다. 감옥에 가니까 감옥이 변화되고 보디발의 집에 가니까 보디발 집이 축복 받고 바로 왕을 만나니까 애굽 전체를 복음화 할 만큼 증거를 주시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렘넌트와 모든 성도님들이 언약 잡고 어디에 둬도 그 지역에 변하고 그 집이 변하고 감옥, 애굽이 변화 되는 증인의 삶을 살아기시기 축원드린다. 이렇게 성경을 안 보면 성경이 틀린 것 같다. 복음으로 성경을 안 보니까 내하고 안 맞다고 한다. 성경이 나 하고 안 맞으니까 현장 나가니까 현장이 나하고 맞는가? 안 맞다. 여러분이 불신자 같으면 불신자처럼 살아가면 세상이 여러분과 맞을 것이다. 맞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준비한 축복이 있는데 그게 안 보여서 세상 나갔다? 안 맞는 게 당연하다. 고생한다?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진정 언약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나갔다? 안 맞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고 하나님의 축복이 보이고 하나님이 문 여시는 게 보이고, 그것이 영안이 열렸다는 걸 말한다. 오늘도 영적 함정에 속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눈으로 우리가 현장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보시는 나 자신을 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그래서 이게 안 되면 되게 착한 것과 엄청나게 방탕한 것과 통한다. 복음 없이 되게 착한 사람이 있다. 되게 규모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과 엄청 방탕한 사람하고 우리가 볼 때에는 저 사람 규모 있다고 하지만 그것과 그거나 똑같다. 복음 없으면 착하게 살아가는 것, 규모 있게 살아가는 것이나 그 다음에 엄청 방탕하게 살아가는 것, 똑같다. 증거대라. 그게 사도 바울, 교회사에 나타난 어거스틴이다.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로 굉장히 반듯한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니까 얼마나 착하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답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굉장하게 방탕하게 살았다. 사생자를 낳기도 하고 이방신 섬기기도 하고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했는데 자기 멋대로 살아갔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답이 없었기 때문에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되게 착한 사람이 술 먹으면 어찌 하는가? 그냥 그대로 방탕한 게 드러난다. 완전 뒤집는 것이다. 술 안 먹으면 굉장히 착하다. 누구에게 말 한 마디도 못한다. 그래서 신문 지상에 나는 사건들이 뭔가? , 저 사람이 착한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그게 착하게 사는 것 가지고 안 되어서 술 먹어서 뒤집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 굉장히 많이 배운 사람이다. 어거스틴, 굉장히 많이 배웠다. 그 많이 배운 것과 착한 것, 규칙적으로 살았는데 답이 없다. 그 두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하나님 앞에 정말로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 없이 착하게 살고 규칙적으로 사는 건 사람 잡는 것이다. 그 반대가 방탕이다.

 

또 한 면이 있다. 우상 심하게 섬기는 사람과 복음 없이 교회 열심히 다닌 사람의 공통점이 뭔가? 종교생활이다. 아까 두 사람은 답이 없는 사람, 그리고 정말로 종교생활 정말로 열심히 하면 되게 착하다. 얼굴을 봐라. 착하다. 그런데 어딘가에 누려 있는 게 표시가 난다. 그런데 교회 열심히 다닌 사람, 가만히 보면 종교생활과 .비슷하다. 그게 뭔가? 종교생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전1:1-11이다. 전도자의 말씀이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새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없다. 이것을 모르면 종교생활 또 하고 또 한다. 그게 뭔가? 종교생활이 노예생활이다. 그게 애굽의 노예생활이고 종교생활 하다가 포로로 잡혀 갔는데 그게 바벨론 포로 생활, 그러면서 복음 놓친 유대 종교가 어디에 붙들렸는가? 로마에 속국 되엉서 노예생활하는 것이다. 노예생활은 억지다. 기쁨이 없다. 그러다보니까 내가 기쁨이 없으니 후대가 죽어버린다. 그래서 후대들이 교회 안 나오게 되어지고 그래서 출애굽기 보면 후대들이 전부 죽는 일들이 일어난다. 오늘 종교생활은 노예생활이고 억지로 하는 것이고 고생하고 기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의 복음 생활은 즐겁다. 은혜의 복음 생활은 기쁘다. 은혜의 복음 생활은 마음에 감사가 넘치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 생활을 한다? 체질이 바뀌어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 붙드는 것, 복음의 능력의 삶이 된다. 은혜는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고 종교생활은 근본이 안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근본이 바뀐 기쁨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생활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다가 눈 떠도 감사가 나온다. ? 내가 구원 받은 것, 그건 절대 해결되지 않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비교 못하는 기쁨, 근본 기쁨이 우리에게 샘솟는다. 복음 생활은 말씀을 붙들고 살아간다. 복음의 능력을 확인하는 영적 체질 개선이다. 그리고 오늘의 기도 속으로 들어간다. 개개인의 능력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오늘 전도의 스케쥴 속에서 살아간다. 증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옛날에는 과거 지향적 사람, 그런데 어느 날 3오늘 시간표 속에 살아가면 과거가 생각 안 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만 보인다. 오늘도 그러면 생명 걸고 해야 될 일이 뭔가?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 거시기 축원드린다. 중요한 것이 아닌 것에 생명 거는 사람, 내가 이것에 생명 걸었다? 썩어질 것에 생명 건다. 나는 여기에 생명 걸었다? 거기에 생명 걸 것이 아닌데 육신적인 일에 생명 건다. 우리가 생명 걸어야 될 일은 말씀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기 때문에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거 붙들고 거기에 생을 거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생명 거는 일이 뭔가? 예배드리는 것이다. 예배드리는데 우리의 생을 거러야 된다. 그래서 주기철 목사라든지 손양원 목사라든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드리는데 생을 건 걸 보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에 창세 전에 미리 우리를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는데 오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셨다. 아브라함은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때가 되매 그를 불러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듯이 오늘 이 시대에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듯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본론 - 그래서 오늘 이 본문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 뭔가?

 

1.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

 

첫 번째,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다. 죄인을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부르셨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상황이 뭔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 숭배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원래 셈의 족속이다. 원래 언약이 흐르는 족속이다. 그런데 갈대아 우르란 우상 동네, 갈대아 우르 세상 문명이 발전 된 곳, 전부 빠져버리니까 셈의 후손인 데라가 우상 장사가 된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먹고 살기 위해서 신앙을 팔아버린 것이다. 육신적인 것 때문에 언약을 놓쳐버린 것이다. 거기서 아브라함이 태어났었다.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만들고 우상 숭배하는 그 도시에 그 문명, 이게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지금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은 고대 바벨론,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 했는데 주의할 것이 뭔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게 지금 영적 함정이다. 문명 발달 할수록 이상하게 교회는 힘 잃는다. 이성, 과학, 지식으로서 하나님을 자꾸 대적하는 것이다. 그게 헬라 철학이다. 오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고대 바벨론 문명은 하나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영적으로는 달신을 섬긴다. 이상하게 귀신 섬긴다. 아니, 귀신은 섬기면서 하나님은 없다고 한다. 그게 세상 문명이다. 그런데 하란이 죽었다. 데라의 아들 셋이 있는데 하란 나홀이 있고 아브라함이 있다. 하란이 죽었다, 그러면서 이 동네, 저 동네 이사하는 것이다. 3장에 빠져 있는 삶을 살 때에 노아시대의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 때에 바벨탑을 쌓고 있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 때에 한 마디로 불신앙에 빠져 있는 그들을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곳은 내 힘으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자리에 나오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마누라를 따라왔어도 그게 하나님 불러서 온 것이다. 절대 이 자리에 그냥 나올 수 없다. 어째 또 남편 따라 나왔다, 아버지 따라나왔다? 우리 아이들이 그냥 여기 와 있더라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 자리에 와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여러분에게 보이시는 게 아니고 옆에 부모, 부인, 남편 통해서 사건 사고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주의 천사를 동원해서 사람을 통해서 이 자리에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3장속에 아담을 부르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 구원하시기 위해서 부르시는 것이다. 3장에 아담이 이상하게 하나님이 음성이 두렵다. 이상하게 하나님이 가까이 오는 게 두렵다. 왜냐, 죄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이 두렵고 하나님이 멀리 느껴지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란다. 왜 하나님이 두려운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렵다. 왜 교회가 오기 싫은가? 그게 죄 때문에 은혜가 떨어져서 그렇다. 내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못해서 그렇다. 하나님이 동산을 거느리시면서 아담아, 부르니까 내가 하나님이 두려워서 숨었다.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 있는 줄 몰라서 물었는가? 네 우너래 위치를 지금 벗어났기 때문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될 그 자리에 없기 때문에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물은 것이다. 내가 벗엇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영적인 눈은 어두워지고 육신의 눈만 밝아져 있다. 하나님이 왜 아담을 부르셨느냐? 아담을 구원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부르신 것은 구원하시고 더 좋은 계획속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오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부르신 이유, 구원이다. 거기서 빠져나오라. 구원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더 좋은 사명을 주고 복을 주기 위해서다. 갈대아 우르, 죄악 세상을 말한다. 곧 멸망 받고 심판 받아야 된다. 애굽, 10가지 재앙에 멸망 받을 나라다. 앗수르 바벨론, 요나가 말했듯이 심판 받을 동네다. 거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부르셨다. 43:1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소속 바꾸기 위해서 부르셨다. 구원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 바꾸고 권세 주고 소속 바꾸기 위해서 불렀는데 언제요? 창세 전에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 우상 섬기는 생활을 끊기 위해서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 동네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당시에 굉장히 위험한 일들이다. 지금 이사와 다르다. 그때는 고향 친척 떠나는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특히 아브라함 부인 사라는 굉장히 예쁘기 때문에 언제 죽고 마누라 빼앗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이게 치안, 이런 것이 보장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떠나라. 굉장히 위험했는데 아브라함이 떠났다. 이것이 말하는 건 영적 배경과 체질을 끊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와 우리 신앙생활은 늘 세상과 떠나는 것이다. 세상과 구별 되는 삶이다. 성도란 말씀이 뭔가? 세상과 구별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와 신앙 가진 사람들은 늘 떠나는 삶이 되어야 된다. 나그네 삶이 되어야 된다. 오늘 이 땅에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보고 나그네 생활, 이렇게 말한다. 아브라함,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그리고 애굽에서 잘먹고 잘 살고 번성하는 하나님의 백성, 유월절 어린 양 피 바르고 애굽에서 떠났다. 바벨론에서 그냥 먹고 살던 사람들, 성전 짓기 위해서 바벨론을 떠났다. 그러면서 초대교회는 복음 없는 유대교에서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개혁한 개혁자들은 중세교회에서 떠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 되지 않아서 신앙생활 잘하기 위해서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에서 청교도는 거기서 떠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것 완전 끊어버리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우리 성도들은 구별 된 것이다. 세상속에 살지 않는단 말이 아니다. 방주는 물에 떠 있지, 물이 들어온 건 아니다. 성도와 교회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 된 삶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떠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4:19에 먹는 것 때문에 온갖 수고하는 베드로와 그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했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실제로는 성도는 세상과 구별 되었다. 15:19에 보면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래서 당연하게 이렇게 되어야 된다. 거룩, 구별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불렀느냐?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의 계획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그래서 버릴 것을 버려야 된다. 하나님의 계획속으로 들어가려면 버릴 건 버려야 된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아버지 집을 떠나란 말이 아니라 영적 배경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내버려라. 인본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벧전5:7이다. 염려, 끊어버려라고 말씀을 한다.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속으로 들어갈 것 같으면 끊을 건 끊고 새로운 계획을 우리가 붙잡는다. 그래서 성경은 이곳을 항상 약속의 땅이라고 한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것이 뭔가? 약속의 땅이다. 무슨 약속 했느냐? 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이다. 성경은 이곳을 항상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한다.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흐른다. 영적 갈급함이 없는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계획속으로 말씀 들으면서 영적 갈급함이 없기를 축원한다. 갈대아 우르요? 늘 영적 갈급함이 있다. 종교생활요? 늘 영적 갈급함이 있다. 내가 주인 되는 것? 늘 영적 갈급함이 있다. 하나님은 새로운 복 주기 위해서 한 민족을 이루겠다. 새로운 복 주기 위해서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해서 복을 받게 하겠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실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는 땅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가나안 땅, 신약에서는 세계복음화 할 방향이다. 오늘 우리가 왜 세계복음화 해야 되느냐? 나중에 말씀드리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에 맞추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1-3)

 

둘 째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다. 1-3절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는 하나님이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부르셨다. 부족한 계획 아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계획하신 완전한 복을 가지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했다. 네 자체가 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를 통해서 모든 한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고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해서 복을 받게 하겠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오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을 때에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증거대라, 여러분들이 증거다. 저도 처음 왔을 때에 저도 볼 품이 없었지만 여러분들 중에서도 볼 품 없는 사람들도 참 많으셨다. 정말이다. 저 아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저 가정이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정말 걱정 되었는데 하나님이 그 분들을 부르셨는데 지금 보면 천사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안 보인다? 그게 육신의 눈이 밝아서 그렇다. 영안이 열려지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지난 번에 핵심 갔더니 제 옆에 어떤 목사님이 앉았는데 우리 자녀 결혼할 때에 박 목사님 다락방 와서 진짜 복 받았네? 제가 아멘 했다. 그 사람 영적 눈이 밝은 사람이다. 저는 여러분들보고 우리 렘넌트를 볼 때에 아, 하나님이 완벽한 복을 가지고 부르셨구나? 저는 목회할 때에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부르신 줄 믿는다. 얼마나 완벽하느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만 완벽한 축복이 아니고 구원 자체가 완벽한 축복이다. 나를 구원 시켰다? 그 구원 자체가 완벽한 축복이다. 나를 통해서 우리 가정을 완벽한 축복속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이다. 우리 가정, 가문 그리고 이 민족, 저는 이 민족 생각하면 너무나도 감사하고 눈물이 난다. 130년 전에 선교사들을 가장 정통적인 신앙 가진 청교도의 선교사들을 보내서 130년 만에 우리가 이 축복 속에 있다는 것? 너무나도 하나님이 완전하고 정말로 섭리하시고 경륜하시는 속에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들 만약에 북한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이게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는 이 나라 놓고 기도해야 된다. 오늘도 장로님과 앉아서 정말로 나라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퍼준다고 좋을 게 아니다. 그것이 잘못 되었단 것도 아니다. 어쨌든 지금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 그래서 저녁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지금 기도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처럼 이 나라를 하시는 것, 전도, 선교할 수 있게 하신 나라, 앞으로도 이제 정말로 좋게 회담이 되어서 이 나라가 하나 되어서 세계복음화 하는데 쓰임 받기를 기도하시기 축원드린다. 얼마나 좋은가? 나가보면 대한민국 만큼 좋은 곳은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완전한 복이다. 개인 구원은 완전한 복이다. 가족, 가문 구원, 그거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부르신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축복이다. 민족 구원, 세계복음화, 증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겠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그건 인간이 저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저주한다는 건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이다.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여러분들이 진짜 복음 생활하고 하나님께 방향 맞췄는데 사람이 저주하는 것? 그건 통하지 않는다. 왜냐? 유월절 어린 양 피 발랐기 때문에 넘어가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5:24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심판이 넘어갔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런데 인간들이 저주했다? 우리와 안 통한다. 그런데 그 인간은 누가 저주하는가? 하나님이 저주한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다. 축복하는 자는 내가 그를 축복하겠다. 빼앗기는 축복, 뺏어가는 축복도 아니다. 방법이 뭔가? 방법이 창12:4이다. 말씀을 따라갔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기를 축원한다. 그게 빼앗길 수 없는 축복이다. 그게 언약적 축복이다. 말씀을 따라가니 임마누엘 축복, 완전한 축복, 말씀 따라감이 영원한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왜요?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육체는 변한다. 인간은 변한다. 그래서 이사야 보고 네 산 위에 올라가서 좀 외쳐라. 이사야가 뭐라고 외칠까요?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그 모든 영광은 들의 꽃과 같다. 인간이 인간들을 의지하는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아브라함이 말씀 붙들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왔더라. 오늘 우리 신앙이 말씀 붙들고 움직이시기 바란다. 말씀 붙들고 기도속에 들어가면 그 말씀이 내게 성취가 된다. 그것 말하는 것이 전도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축복, 생육해라, 번성해라, 땅에 충만해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라. 세계복음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이 다시 회복 된 줄 믿으시기 바란다. 문제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고 사람 보면서 누리지 못하는 게 문제다. 그 결과로 인본주의 쓰고 그 결과로 불신앙하고 그 결과로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내게 대한 완전한 계획과 축복 가지고 있는 줄 믿으실 때에 그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때에 내가 안 흔들린다. ,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완전한 축복을 가지고 부르셨고 완전한 계획 가지고 부르셨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세계복음화 하기 위해서 완벽한 구원속에 인도하셨구나, 그걸 믿을 때에 내게 증거가 오고 내가 평안이 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불안해지는 것이다. 왜냐?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을 안 믿었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확인할 때에 우리가 제대로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 신앙, 이 사실을 알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다.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린다. 오늘 이 예배가 모든 현장속에서 다시 한 번 회복되고 누려지기를 축원한다. 그게 5기초다. 아브라함은 세겜에 가서 예배드리고 아이와 사이에 가면 또 예배드린다. 이 본문에서도 벌써 제단을 쌓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 가는 곳마다 3오늘 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래서 불신자 볼 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본 것이다.

 

3. 버려야 할 아브라함의 불신앙(10-20)

 

셋 째, 버려야 될 아브라함의 불신앙이다. 우리 체질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들어가시는데 불신앙 계속 없앤다. 버리게 한다. 우리가 아브라함 보면 위대하다고 생각해야 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신앙에 실패 온다. 아브라함은 불신앙하고 안 떠나려고 한다. 가라고 했는데 하란에 가서 실컷 놀다가 아버지 죽고나니 그제서야 일어나서 가나안 땅에 갔다. 가나안 땅에 들어았는데 또 애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전체 없애버리고 22장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버려야 될 아브라함의 불신앙,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목적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 아브라함에게도 불신앙이 나온다.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목적, 환경 쳐다볼 때에 실패의 자리로 내려간다. 그게 10-20절까지다. 가나안 땅에 들어 왔는데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바라보면서 거기서 예배드리고 응답 받아야 되는데 세상 흉년이 들어왔다. 의식주에 문제 오니 안 그래도 남방이란 지역은 비도 잘 안 오고 거기에 광야 같은 땅이다. 그런데 거기에 흉년까지 들으니 어디로 내려가는가? 애굽이다. 그런데 거기서 엄청나게 어려움을 당한다. 가나안 땅, 상황 때문에 내려 갔기 때문이다. 상황 보고 내려가면 뭐가 보이는가? 답이 보이는 게 아니고 상황이 보인다. 상황에 눈을 가지고 본 사람은 거기에 내려가면 상황이 보인다. 어떤 상황이 보이느냐? , 내가 여기서 잘못하면 죽겠구나? 그래서 마누라 빼앗기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바로가 커보이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상황, 형편 쳐다보면 계속적으로 불신앙에 빠진다. 우리는 상황 보는 눈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눈을 가지시기 바란다. 우리는 상황 보는 눈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 말씀을 봐야 된다. 무엇 때문에 상황 보고 불신앙 하느냐?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한 걸 놓칠 때에 하나님이 그냥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니고 확실한 계획 가지고 은혜교회로 부르셨다. 복음운동 단체속으로 부르셨다. 그래서 지금 살아계신 역사를 매일 체험해야 된다. 이거 안 본 사람은 매일 돈 걱정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사람은 돈 걱정을 한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창조주다. 예수님에게 돈이 필요하냐? 아니다. 호산나, 호산나라고 하니 옆에서 누가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한다. 예수님, 제자들이 너무 시끄럽다, 그 얘기하지말도록 해라. 저들이 안 하면 돌들이 외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안 하면 하나님은 다른 것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도록 기도하고 말씀 붙들고 응답 받아야 된다. 이번에 핵심 때도 나오더라. RUTC 짓는데 부자가 그거 지었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 아시는 분들이 그걸 짓더라. 우리 은혜교회 일을 해가고 은혜교회 통해서 우리 전도와 선교, 세계복음화르 하는데 하나님이 삼성에 있는 사람들 불러서 이거 하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 잡은 자들 통해서 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번에 28억이 들었는데 10억 몽는데 1억을 하신 분이 누군가? 함안에 있는 농사 짓는 사람이다. 안 아깝냐? 하나도 안 아깝다고 하더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니까 하나도 안 아깝다. 그냥 드리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 버려야 할 아브라함의 불신앙,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성령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신다. 사망 권세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계신 하나님, 언약의 불변성이다. 언약을 이루신 하나님, 믿음을 더해가시는 하나님이다. 우리가 넘어졌다고 낙심하지마시고 아, 이걸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더 높게 하시겠다. 믿으시기 바란다. 옆에 사람 볼 때도 그래야 된다. 그래서 언약을 이뤄가신다.

 

결론 - 결론이다.

 

1)구원? 내 잘나서가 아니라 조금 상대적으로 뭐가 있어서가 아니다. 구원은 은혜다. 수단은 믿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불러냈다. 은혜이고 믿음이다. 늘 은혜 속으로 들어가시기 축원드린다. 어디에 새로운 시작이 있느냐? 아브라함이 지금 새롭게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이다. 8:56,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신약 시대는 오신 예수님을 봤는 사람은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못 본 사람은 시기하고 질투한다. 오늘 우리는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고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그 분이 성령을 보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얼마나 정말로 더 행복해야 되는가? 그리스도 밖에는 새로운 시작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만 새로운 시작이 있다.

 

2)신앙생활이 뭔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향해 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한 걸음,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삶이 신앙생활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신앙생활 다른 게 없다. 도덕적으로? 그건 그 다음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한 걸음, 한 걸음이다.

 

3)왜 실패하느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는데 완벽한 구원을 이루고 계획 가지고 복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 모를 때에 내가 실패하는 것이다.

 

4)그래서 우리가 받은 축복은 완전한 축복, 영원한 축복, 임마누엘 축복, 아브라함처럼 대표적인 복을 받으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앞으로 여러분 가문에 여러분이 대표적인 증인이 되실 줄 믿으시기 바란다. 왜냐? 4대 족장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이러한 분들이 많이 하나님이 증인으로 주신 걸 우리가 보게 된다.

 

5)그래서 한 주간 하실 일이 뭔가? 나는 하나님 언약속에 있는 제자다. 계속 그렇게 고백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언약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러면 나는 언약속에 있는 제자다. 나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제자다. 아브라함이 어디로 내려갔는가? 애굽에 내려갔는데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아브라함 후손들이 애굽의 종 되었는데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바벨론 포로로 갔을 때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오늘 상황에 속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기억하고 있는 제자다, 믿으셔야 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시간표 속에 있는 제자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전 생을 통해서 언약을 성취시켰다. 오늘도 우리는 언약 성취시키는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줄 믿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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