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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재각인 하시는 하나님!

graceds | 2018.07.08 17:27 | 조회 5838

2018718(주일) 은혜교회 주일 강단

15:1-21

언약을 재각인 하시는 하나님!

서론 - 할렐루야! 감사를 드린다. 우리 옆에 분과 신앙고백드린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모든 해결자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인사 나눈다. "은혜의 복음에 집중하는 제자입니다." 오늘도 말씀에 집중하는 예배시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많은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말하는 게 뭔가 하면 외롭다는 얘기 많이 한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살 집이 없는 것도 아니다. TV에 한 번 80년대에 굉장히 인기 있었고 아름다운 탤런트가 있었는데 지금 나이 들어서 얘기하는 중에 외롭다고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개를 키우는데 그 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이란 이름을 붙여서 개를 키운다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 외로워서 실제적으로 반려견을 키우는데 18년 되어서 이 개가 다 죽게 되어서 그 다음에 병원에 데리고 가서 얼마까지 살 것인가? 병원까지 데리고 다니다. 그런데 개 데리고 갈 때 보니까 유모차에 태워서 병원에 데리고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친구들이 와서 집에서 같이 즐겁고 얘기하고 떠들다가 아, 나는 가야 된다고 해서 한 사람 가고 다 가고 나면 혼자 있는데 굉장히 허전하고 외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를 한 마리 키우고 2마리 키운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가 군중(群衆) 속에 고독이라고 했는데 실제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속에서 사람들은 많은데 자기 자신은 홀로 굉장히 괴롭고 외롭다는 것이다. 불신자는 외로운 것이 정상이다. 그게 맞다. 불신자는 외롭고 허전하고 공허하고 그게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라고 하는데 외롭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자인데 외롭다는 것이다. 저는 목회자 중에서 그 얘기를 들어 본 게 있다. 주일 날 예배를 다 드리고 나서 오후 예배 드리고 나서 모든 성도님들이 가고 나니까 교회가 텅 비운 것 같으니 아, 성도들이 다 가고 나니 내가 굉장히 허전하고 외롭다고 그런다. 목회자가 그러는 것이다. 목회자가 그런가하면 신자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 신앙생활 하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외롭다고 하는데 뭐를 못 누리고 있는가? 임마누엘이다. 혼자 있을 때에 임마누엘을 잘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기를 축원한다. 우리는 구원 받은 자가 가장 최고로 누려야 될 것이 뭔가? 그건 임마누엘이다. 그런데 성도가 예배도 드리고 성도가 신앙생활 속에서 혼자 하는데 외롭다? 그건 구원 받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누릴 것은 못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구원 받았다면 내가 누릴 것은 임마누엘이다. 우리가 복음을 놓치면 반드시 그게 종교생활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혼자 있을 때 외롭다는 것이다. 많이 떠들 때에 괜찮다? 그게 사람 기준으로 살아가서 그렇다. 거꾸로 말하면 이제까지 신앙생활이 사람 기준으로 살아가고 사람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하나님의 관계를 전혀 못 누리는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 그게 내 정체성이다. 구원 받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임마누엘 누리는 사람이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뭔가? 재창조 된 내가 뭔가? 그걸 누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는 어떠한가? 복 있는 자다. 16:16, 고백하니까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랬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는 복 잇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사실을 알고 살전5:16-18에 보니까 항상 기뻐해라, 쉬지 말고 기도해라, 범사에 감사해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하고 외로워하고 혼자 있다고 허전하고, 그런 인간을 만드시지 아니했다. 하나님은 혼자 있어도 하나님과 함께 교제가 되고 기도로 소통이 되어지고 기도로 대화가 되어지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으로 행복한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를 놓친 것이다. 하나님 원하시는 나는 행복한 자다. 너는 복 있는 자라는 것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이 신앙고백 위에 그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다. 저는 이 본문을 굉장히 좋아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끝이다. 그런데 나를 통해서 뭐하신다고요?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 고백 가지고 있는 사람 통해서 그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걸 모르면 그 사람이 교회를 방해하고 헌신한다고 하는데 그 헌신이 뭐를 가로막고, 그 다음에 틈을 내고? 그런데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뭐하는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불신자는 거기에 매여서 방향 맞춰야 되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두려움을 느끼고 종살이를 하는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러분 대단한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러면서 천국 열쇠를 줬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다. 2:20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뭔가? 내가 사는 게 아니다. 나는 죽어버린 것이다.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다. 왜 싸우느냐? 내가 살아 있어서 싸우는 것이다.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삶이다. 주님이 주인 되시는 삶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러면서 뭔가? 3:1-21에 뭐라고 했는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알고 보니까 내가 전에 좋아했던 것, 그리스도 아는 지식을 방해한 것이다. 그래서 그건 이제 필요없다. 그리스도 알고 나니까 그건 오히려 배설물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자신이 발견 되어지기를 원하고 위에서 부르심의 상을 위해서 내가 쫓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불신자는 외로워야 된다. 외로워야 된다가 아니라 외로운 것이다. 허전한 것이다. 원래 인간은 돈으로 지위로 명예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신앙생활 하는 분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고 그러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나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임마누엘을 누려야 된다.

 

그러면서 또 신앙생활 하는데 사람들이 그런다. 힘들다고 말한다. 그건 불신자들이 힘들어야 된다. 성도는 힘든 게 아니다. 왜 힘드느냐?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그에게 주신 것으로 세계복음화를 하시기 원하신 것이다. 그 사람이 목사의 직분을 받았다든지 사업을 한다든지 그 사람이 세탁소를 하든지 그 사람이 학자든지 그 분이 운전을 하든지 간에 그 분에게 주신 것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이 뭔가? 분명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것이 있다. 그것이 발견 되어지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때에 전혀 힘들지 않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여름성경학교, 렘넌트를 보면서 이 아이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 뭔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재능을 주시고 달란트를 주셨다. 그런데 그걸 찾아내는 것이다. 다윗은 홀로 목동 있을 때에 외롭지 아니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찬송하고 시편을 썼었다. 그리고 다윗은 목동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 것을 찾았다. 그런데 그걸로 양 한 마리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걸로서 골리앗을 이긴 것이다. 다윗이 나간 현장이 힘들었는가? 아니다. 언약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잊어버릴 때에 키가 어깨 한 자 더 큰 사울도 힘들고 다윗보다 더 키 큰 형님 세 분도 힘들고 다 힘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발견한 다윗은 그 현장이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가 예배드리고 우리가 말씀 받는 것이 뭔가? 우리의 틀린 생각이 완전히 버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준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을 찾으면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비록 세탁소를 하더라도 BMW 타고 다니는 사람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가 비록 청소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비록 앞을 못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왜냐?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렘넌트 7,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을 발견한 사람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걸 발견한 사람이다. 특히 브리스가 부부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것을 발견했었다. 그들이 세상을 힘들게 살아갔는가? 아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하셨다. 많은 사람이 돈을 짊어지고 그것을 가지고 욕심을 내고 안 놓으려고 했는데 브리스가 부부는 동역자로 생을 건 자로, 야손은 식주인으로, 뵈뵈는 보호자로 살아간 걸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히11장에 볼 것 같으면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오늘도 시대를 보고 늘 불안해 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도 시대의 상황을 보며 늘 불안해 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를 보며 시대를 보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러느냐? 하나님이 주신 나의 현장을 놓쳐서 그렇다. 그 현장은 하나님이 주신 나의 현장이고 그 현장을 놓고 우리는 기도해야 되고 그 현장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황금어장이요, 사각지대요, 그러면서 재앙지대를 하나님이 내게 주셨는데 그거 놓고 기도해야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현장 놓고 기도했는데 롯을 구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위기가 아닌 시대가 있었느냐? 없다. 늘 위기의 시대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그 위기 시대에 늘 하나님이 주신 현장을 보았다. 선지자들은 위기 시대에 하나님이 택해서 불렀다. 그런데 그 선지자들의 그 위기 시대가 하나님이 주신 나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13장 역술인들이 일어나고 있다. 16장에 귀신 들린 여자가 온 동네를 다 잡고 있다. 19장에는 우상의 전각이 있는데 전 현장을 다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거 분명히 위기 시대다. 오늘 우상이 흥한다? 그것이 위기 시대다. 그게 나에게 주신 현장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돌 맞아 가면서도 그 현장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걸 보게 된다.

 

본론

 

1. 아브라함의 두 가지 불신앙 요소(중요한 언약 / 후손과 가나안 땅)

 

오늘 본문이 잘못하면 언약을 잡고 몇 가지 응답은 받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이뤄질 것인가? 정말로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내게 주실 것인가? 정말로 하나님이 나는 나이 많아지는데 내게 아들을 줄 것인가? 그게 바로 오늘의 본문이다. 오늘 신앙인들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못 붙들면 불신앙 하게 되고 시련에 빠지게 되고 실망하게 되고 예수 믿는데 내가 예배드리는데 내가 진짜 응답 받고 있는지, 이런 생각으로 시련에 빠지고 불신앙의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리고 모든 민족이 너를 위해서 복을 받게 하겠다. 그리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그러면서 이 복은 누구도 뺏어 갈 수 없도록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겠다. 딱 보장을 해주셨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 붙들고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 그런데 약속 이뤄져야 되는데 약속이 시간 갈수록 자꾸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롯이 안 되니까, 내 후사인가? 이 충실한 엘리에셀이 내 후사인가? 넘어가면 나중에는 이스마엘을 낳아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또 후사인가? 이렇게 생각한다. 롯도 막론하고 물질 앞에서도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불신자의 것, 내가 이거 받았다가 네 때문에 부자 되겠다? 소리내서 듣기 싫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적장 시련에 빠질 일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가 오래 신앙생활 하면서 특별히 믿는 집에서 자라났고 특별히 안수집사 되었고 장로가 되어서 혹시 이런 시련에 빠질 수 있다. 왜냐? 시간 지나가는데 하나님이 응답 하지 않는다고 생각 되는 것들이 있다. 이때 정작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그러한 불신 요인이 뭔가? 오늘 아브라함에게 시련을 빠지게 한 요인이 뭔가? 그건 하나님이 주신 중요한 약속이다. 그게 뭔가? 후손에 대한 약속이다. 어디에서 우리가 시련에 빠지느냐? 시간표에서 빠진다. 내 생각하는 시간표에 응답 오지 않으니까 거기에 빠지는 것이다. 오늘 내 시간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가시기 축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완벽한 시간을 갖고 있다. 완벽한 스케쥴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번을 얘기한 게 아니다. 하나님은 강단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한 번 얘기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다, 수없이 얘기한다. 그런데 왜 흔들리는가? 하나님은 우리 렘넌트를 통해서 왕들 상대하는 렘넌트를 길러낸다. 수없이 얘기한다. 하나님은 우리 후대들 통해서 237개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전도자로 만든다. 수없이 얘기한다. 후손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약속했다. 12장에도 말씀하셨고 창14:15-17에도 말씀했다. 아브라함은 응답이 안 보이자 여기에 대한 의심을 하는 것이다. 오늘 내 시간표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있다는 걸 확인하시기 바란다. 오늘 창15:1-6에 보면 오늘도 아브라함에 대해서 하나님은 또 말씀하신다. 뭐라고 그러느냐? 내 몸에서 날 자가 내 후사가 되리라. 하나님의 약속이다. 아브라함은 나는 상속자가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다. 시련에 빠지고 의심이 들어오고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을 한다. 그러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손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약속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불변하다. 네 몸에서 난 자라야 네 씨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당연히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도 흔들린다. 그게 뭔가? 후사가 없으니 가나안 땅 약속이 흔들린다. 아브라함이 산 그 당시에는 오늘도 읽었지만 10족속이 거기에 살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증거를 요구한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제물을 가져와서 예배를 드려라고 말씀을 한다. 언약을 붙잡고 예배를 드려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예배에 응답하시는데 아브라함이 확신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말씀하실 때에 이것을 믿으니 의로 여겼는데 아브라함은 더 체험하기 위해서 그러면 증거가 뭡니까? 네 예배를 드려라. 예물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라고 한다. 그때 하나님은 그 제물 사이로 하나님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데 횃불로 지나가는 걸 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면서 꼭 기억해야 될 게 있다. 하나님이 왜 오늘 여기에 보면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 된 암소와 암염소, 숫양과 집비둘기, 산비둘기... 이렇게 제물을 가지러 오라고 했느냐? 예배드릴 때에 항상 제물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 언약이 담긴 예물이다. 그것은 앞으로 오실 2천 년 이후에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언약이 되시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 제물을 요구하느냐? 왜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느냐? 그리고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데 아브라함과 같이 그 제물 사이로 안 가고 홀로 하나님이 그 제물 사이로 지나가느냐? 굉장한 의미가 있다. 3장에서 시조(始祖) 아담이 범죄 한 이래에 영적으로 전적 무능해진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계약을 맺으며 이를 이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 하나님이 우리와 행위 언약을 맺으셔서 이루지 못하고 시조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는 언약을 맺어서 그 언약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대상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구원에 대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반적인 자기 선언이다. 아브라함과 언약 맺는데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자기 선언을 한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언약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그 언약을 누가 이뤄가시는가? 하나님이 그 언약을 이뤄가는 것이다. 원래 당시에 계약 맺을 때에는 사회와 세상 계약은 짐승을 쪼개놓고 두 사람이 같이 걸어간다. AB가 똑같이 걸어간다. 그래서 네 계약 어기면 이 짐승처럼 죽어, 그게 계약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물을 쪼개서 아브라함과 같이 걸어가지 아니한다. ? 아브라함은 계약 당사자의 자격 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제물 사이에 홀로 하나님이 걸어가시고 하나님이 그 언약을 내가 이루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제물은 은혜 언약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파기해도 하나님이 아브라함 가정을 다시 봉해가지고 올리시고 아브라함이 그 계약을 파기해서 이스마엘을 낳아도 하나님은 다시 언약을 이삭을 통해서 하시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일방적으로 제물 사이를 통과했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이고 하나님이 이뤄가시는 것이다. 5:8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계약을 맺을 자격도 없는데 그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를 보내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 횃불은 뭔가? 하나님의 임재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은 불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주시고 응답하시는 것을 늘 성경에 나타난다.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타내는 것이 횃불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처럼 횃불로 나타났다. 미디안에서 양을 치고 영성훈련 받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떨기나무에 불로 임하셔서 모세에게 약속을 하시고 모세를 하나님이 쓰신 걸 보게 된다. 가장 어려운 시대에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하는 엘리사에게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살아계신 것을 나타내주신 것이다. 6장에 볼 것 같으면 그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이 기드온 나타나서 큰 용사여, 하니까 내가 무슨 용사인가? 우리 조상들을 구원해나가신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내가 어떻게 저들을 구원해내는가? 내가 너를 큰 용사로 쓰겠다. 증거가 뭡니까? 하나님이 예배를 요구하신다. 그때 제물 가지고 구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니 하나님이 불로 임하시고 그 제물을 받으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부분을 보면서 의심이 든다, 염려가 온다? 예배 회복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하나님은 예배 때마다 불로 임하시고 마가 다락방의 성령의 불, 임하시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냈다. 40년 동안 광야 길 가는데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세밀하게 함께 하시면서 인도해간 걸 보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흔들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다가 시련에 빠졌다? 예배 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기 바란다. 예배 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셔야 된다. 이 체험 되기 전까지는 사도들이 쓰임 받지 못했다. 그게 나의 오순절, 그게 하나님의 내주, 역사, 응답이란 걸 우리에게 말한다. 예배 때 은혜 못 받는다? 거기에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탄이 얼마나 역사하는지 모른다. 오늘도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정말로 기드온처럼 엘리야처럼 모세처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드리기 축원드린다.

 

2. 언약을 반복하시는 하나님

 

둘 째로는 언약을 반복하시는 하나님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늘 불신앙 가져다 주는 자가 있다. 그게 악한 사탄 마귀다. 환경 가져다주고 사람을 가져다주고 그 다음에 오랜 시간 응답 안 되어지는 것 때문에 불신앙 갖다 준다. 온갖 걸 가지고 그러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만 잡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잡으시기 축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반복으로 주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반복으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아담에게 주신 언약은 여자의 후손이다. 하나님은 이걸 시대시대마다 가르쳐준다. 이것을 아브라함에게는 창12장에 이것을 복의 근원으로 설명해주시고 오늘은 횃불 언약 가지고 설명해주신 것이다. 오늘 이 본문은 횃불 언약이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은 이런 것이다, 내가 이 언약 가지고 이룬다고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을 하신 것이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실적으로 삼하7:5-16에 볼 것 같으면 다윗 언약을 주셨다. 여자의 후손은 영원 할 왕위가 될 것이다. 이건 누가 뺏을 수 없는 왕이다. 1:1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영원한 왕위 가지고 오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다윗 언약과 횃불 언약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대시대마다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각양각색으로 다 주시는 것이다. 오늘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셨는데 이 떡을 받아 먹고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세운 나의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찬예식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새 언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 그래서 언약을 반복하시는 하나님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꼭 잡아야 된다. 마음으로 믿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반복하신다. 원래 우리 체질은 부패한 심령이다. 그래서 한 번 들어서 안 된다. 아브라함도 한 번 들어서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뭐라고 하느냐? 나는 너의 상급이라. 나는 너의 방패라고 말씀한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두려워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을 마음에 안 담는다. 오늘도 우리 중직자분들 우리 렘넌트들 아니면 오늘도 신앙생활 오래하신 분들이 오히려 마음에 안 담길 수 있는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우리에게 각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나는 너의 상급이요 너의 방패라는 것이다. 근러면서 언약을 다시 한 번 심는다. 믿어질 때까지다. 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믿으니 이것을 그의 의로 여겼다고 하셨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시간 되기를 축원한다. 교회 와서 사람의 말이 자꾸 믿어지고 교회 와서 다른 게 믿어지면 안 된다. 교회 와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져야 된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데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현장 나가보고 예전에는 사회, 세상 나가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안 맞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약속 가지고 안 봐서 그렇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 가지고 보면 너무너무 정확하게 맞다. 불신자 상태가 그대로 맞는 것이다. 오늘도 어떤 성도님이 제 목양실에 찾아와서 말씀하는데 주일 날 예배드리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에도 그렇게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무실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하고 너무 딱 맞다는 것이다. 전도해야 될 사람들이 그 사무실에 전부 다 있는데 주일 말씀 들은 걸 여기도 보내고 저기도 보내야 될 만큼 전부 다 맞다는 것이다. 그런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똑같은 예배드려고 하나님의 말씀이 맞고 현장 가면 현장이 너무나 맞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정말로 믿음이 더하여지는 예배가 되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언약을 가지고 계속 각인한다. 믿음이 들 때까지 각인한다. 하나님은 시청각 가지고 반복하신다. 15:1-5이다. 아브라함을 끌어내서 하늘의 별을 보라, 저 별을 셀 수 있느냐? 네 자손이 저렇게 셀 수 없을만큼 많게 하겠다. 여름성경학교 할 때에 시청각 가지고 하시기 바란다. 실제적 시청각으로 믿음을 더해줘야 된다. 구체적으로 비젼을 심는 걸 반복한다. 15:18-21이다. 가나안 땅 족속들 10족속이 있는데 그 이름 하나를 들어서 저들이 저기에 살지만 저 지경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구체적으로, 비젼을 가지고 주신다. 문제, 시험 앞에서 하나님은 뭘 하느냐? 여호와 이레의 고백이 나올 때까지 반복을 한다. 불신앙하고 흔들렸고 하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각인하는데 나중에 창22장에 가면 문제, 시험이 온다. 하나님이 어느 날 이삭을 바치라고 한다. 안 된다고 해야 될 상황인데 아브라함에게 각인 되었다. 그러면서 드리면서 무슨 고백이 나오는가? 하나님이 친히 준비했다. 여호와 이레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얼마나 각인 되어야 되느냐? 문제와 시험 올 때에 여호와가 이레가 튀어날 수 있을만큼 각인 되기를 축원한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16:16, 모든 문제 끝이다. 매일 이렇게 되셔야 된다. 우리 자녀 봐도 그렇게 되고 교회 와도 그렇게 되어야 된다. 저라고 안 흔들리는가? 저라고 시비가 없겠는가? 요즘 저에게도 그런 부분이 온다. 아이고, 우리 요새 교회 원리금 값는다고 여기저기가 모자라고? 올 아침에 재정국장님이 오셔서 만나자마자 목사님 얼마 가지고 가셔야 되는데 혹시 모자랄 수 있으면 카드 먼저 쓰고 나중에 처리하십시오. 오케이, 알았다 괜찮다. 말 떨어지자마자 하나님이 그 부분을 완전히 채워넣은 걸 확인하고 강단에 올라왔다. 이상하게 말씀 하자마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셨다고 보면 된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이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완벽하게 하나님이 다 준비하신 것이다. 그래서 문제 왔다? 하나님이 또 해결을 하시고 시험 왔다? 하나님이 또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시고 여호와 이레가 나오자마자 그게 아브라함의 영적 서밋의 자리다. 영적 서밋은 다른 게 아니다. 아들 바치라고 했는데 여러분 보고 1억 바치라고 하면 아이고, 시험 들어서 교회 안 나오겠죠? 그때 아브라함은 그것보다 더 하다. 아들을 바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치러 올라간다. 무슨 고백이 나오는가? 여호와 이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이레이시다.

 

3. 사실적인 깊은 기도를 회복(15:1-11)

 

마지막 세 번째다. 사실적인 깊은 기도를 회복해야 된다. 15:1-11이다. 아브라함, 불신앙 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을 주신다. 각인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사실적인 대화를 한다. 하나님, 지금 내 형편에서 엘리에셀의 후사 아닌가? 아니다. 하나님이 안 주셔서 안 그런가? 사실적인 기도를 한다. 오늘 교회 나와서 형식적이고 그 다음에 여러 가지 여부로 하나님 앞에 서지 마시고 내 심정 그대로 하나님 앞에 아뢰시기 축원한다. 하나님 내 형편이 이러하다. 그대로 아뢰라. 히스기야 왕은 사실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했다. 산헤립이 보낸 편지, 굉장히 모욕적인 편지를 받았다. 위기 시대에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 편지를 딱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기도했었다. 저는 그걸 한 번 체험했다. 실제적으로 어떤 편지를 하나님 앞에 놔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하지 마시고 우리 주님은 아빠 아버지라고 했다. 아빠, 우리로 말하면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보고 아빠라고 불렀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가 어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거칠 게 없다. 그래서 사실적인 기도다. 아브라함이 불신앙하는 가운데도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아브라함은 사실적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사실적으로 난 이런데 엘리에셀이 아닌가?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안 주셨지 않는가? 그런데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하시기 축원한다.

 

우리에게 있는 불신앙 요소가 뭡니까? 하나님의 수준과 능력을 안 보고 내 수준을 봐서 그렇다.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내 환경을 본다. 분명히 유월절 피 바르고 출애굽을 한 것은 근본 문제를 그냥 해결한 것이다. 그때 그걸 잊어버리고 뭐하는가? 가면서 육신적인 것, 환경을 보고 불신앙한다. 하나님의 무한한 역사가 아닌 내 경험, 지식을 보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시간표가 아닌 내 시간표를 보고 불신앙하게 되는 걸 보게 된다. 우리는 창15장에서 깨달을 사실이 뭔가? 우리의 모든 불신앙을 믿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보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오늘 제목대로 또 언약을 재각인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예배드려야 된다. 그래서 예배에 메시지에 집중해야 된다 14-15절에 보면 고난을 통해서 더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다. 오늘 후손들이 고난 당한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굉장한 더 큰 은혜가 있다. 가나안 땅 10조속이 있는 곳에는 한 민족 이루기가 힘이 든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약을 각인시키는 400년 동안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뤄가지고 들어오게 하는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이 왜 그런가? 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고난 속에 하나님은 더 큰 은혜의 역사를 우리에게 준비하신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이 인도한다? 여기에 모든 축복 다 가지고 있고 모든 불신앙을 다 버리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오늘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동일한 사람이다. 아브라함, 우리는 신앙의 사람들이 무엇을 잘하느냐? 교회 와서 나는 이런 것을 잘못 안 했고 나는 이런 부분에 실수를 안 했고 나는 이렇게 반듯하게 살아간다고 나타낸다, 그건 큰 실수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사람은 왜 안 하느냐? 그건 큰 실수하는 사람이다. 오히려 아브라함처럼 이렇게 실수를 했는데 하나님이 이처럼 나에게 찾아오셔서 또 나를 각인시키고 또 나를 세워가시고 그래서 여호와 이레라고 인도하시는데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러니까 내가 겸손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이 그게 진짜 신앙인이다. 실수하란 말이 아니다. 대부분 신앙생활은 나는 괜찮아, 나는 이렇게 충성했는데? 뭘 이렇게 준비 안 했느냐? 이것보다 준비 안 해서 우리가 다시 은혜 속에서 일어나서 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 부족한데 하나님이 이렇게 써주셨구나? 그 은혜 속에서 겸손하게 신앙생활 하는 게 진짜 신앙생활이다. 오늘 우리는 실수를 했지만 돌이켜 언약을 붙잡고 실수를 했지만 돌이켜 언약이 아니면 나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실수를 안 했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게 아니고 실수하란 말씀도 아니고 실수를 했다 할지라도 불신앙에 넘어졌다 할지라도 즉각 돌이키고 언약을 잡고 하나님 앞에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롬4:1-3에 보면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실수 안 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의는 불신앙과 실수에서 돌이켜 메시야 언약 붙잡고 하나님이 나를 세워가신다느 걸 알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는 걸 알고 결국은 영적 서밋에 서는데 여호와 이레를 고백하게 된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 내 시간표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스케쥴 속에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내 생애 전체는 하나님이 다 준비해놨다. 어디서? 그리스도 안에서다. 그래서 그 안에는 모든 보화가 다 감춰졌다고 했다. 아브라함,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못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마1:1부터 쭉 몇 명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못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다말, 밧세바, 라합, 아브라함 이름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피 흘려 제사 드리는 이유는 은혜 언약이 아니면 우리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은혜 입은 사람이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다.

 

결론 - 결론이다.

 

1)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언약을 성취하고 계시고 하나님은 지금도 빨리 불신앙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가시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그 약속 붙잡는 것이 믿음 좋은 것이다. 믿음 좋은 것은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이 믿음 좋은 것이다.

 

2)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지속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란 걸 성경에서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아브라함이 주어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제사를 드렸다, 주어가 아브라함이 아니다. 성경의 주어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에게 재각인시키시고 아브라함을 세워가는 것, 그게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 있는 것이다.

 

3)오늘도 말씀 흐름 속에 각인 될 하나님의 언약이 뭔가?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고 시대에 불안하지 않으려면 이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뭘 잡아야 되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 재창조 된 나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 재창조의 달란트다. 하나님이 주시는 재창조의 현장이다. 내게 주신 현장이다. 나를 통해서 그 현장을 다시 재창조 해 나갈 그 현장이다. 아브라함은 이 세 가지를 다 나중에 누리게 되는데 우리 모든 성도미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로 찾아오셔서 언약을 재각인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승리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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