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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조혜진 | 2016.08.28 13:34 | 조회 8245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는 삶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내용이 뭔가. 임마누엘이다. 그분의 삶을 봤을 때 ‘저 분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삶의 내용이구나.’라는 것이 보여져야한다. 불신자와 예수 믿는 사람의 차이가 뭔가. 기도를 많이 해서 불신자들이 원하는 축복을 받는 것인가 아니다. 차이는 임마누엘의 차이다. 그분이 주인 되어 있는가, 그분이 주인 되어 있지 않는가. 이거 하나 차이다. 성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라 했을 때 ‘성령이 내주하시고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기도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게 삶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성도의 기준은 뭔가. 성도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준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되기를 원한다.”말했다. 이 기준이 아니면 세상 기준이고 돈 버는 기준, 건강한 기준이다. 건강해서 무엇을 할 건가. 건강해서 불신자처럼 산다? 차라리 아픈 게 낫다. 돈을 많이 벌었다? 지난번처럼 돈 벌어서 기업인이 이상한 짓하고 전국에 소문이 다 나고 해서 뭐하는가. 우리의 기준은 건강과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데 전도자의 삶이다. ‘이분을 보니 우리하고 기준이 틀리네. 돈이 기준이 아니구나. 오래 사는 기준이 아니구나.’하는 것이다. 오래 살면서 온 갗 짓을 다하면 오래 안사는 게 더 낫다. 그렇다고 일찍 죽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죽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 초대교회에 ‘야고보’같은 선생은 일찍 돌아가셨다. 스데반 집사님도 일찍 돌아가셨다. 그들의 죽음이 전 교회를 살리고, 그분들의 죽음으로 전 세계에 복음이 전달된다. 그렇지 않고 건강하여 오래 사는 게 뭔 복인가. 기준자체가 세상하고 틀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했다. [고전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얘기한다. 기준이 틀리다는 것이다. 그러면 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알길 축원한다. 사건과 문제 보는 눈도 틀리다. 그 사람들이 누군가. 렘넌트 일곱 명이다. 요셉의 형들은 세상기준을 가지고 있다. 시기, 질투하고 요셉을 팔아버리면서 “저 꿈이 어떻게 되는가 보자.”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은 이뤄지는데 그게 요셉이다. 요셉에게 있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픔을 통해서 복음의 한을 가지게 하시고 ‘복음이 아니면 형제를 살릴 수가 없겠구나.’를 알게 하신다. 13년 이후에 형제들이 왔을 때 복음의 한을 말한다. 그게 뭔가. “당신들이 나를 여기에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내어 생명구원하기 위함입니다.”한다. 우리가 아픔과 사건을 보는 것도 복음 안에서 보여 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지혜롭고 얼마나 많은 것을 아시며 우리를 초월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사람이 능히 알지 못한다. 힘써 알고자 해도 알지 못한다. 어떻게 노예로 보내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애굽에서 200만 군대를 만들어 내시는 것을 알기 전에 그 아픔을 누가 알겠는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사람이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사내애들을 전부 죽이는데 강물에 띄우게 하시겠는가. 어머니가 강물에 띄우는 거, 그게 보통 아픔이겠는가. 거기 가서 애굽 공주의 아들이 되어서 40년 동안 애굽의 학문과 무술을 배우게 하고, 미디안에 가서 40년 생활을 하는데 나중에는 ‘왜 나를 미디안으로 보내셨는가.’ 많이 원망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왜 나를 나일 강에서 살려서 이처럼 고생하게 만드는가.’ 많이 원망할 수도 잇다. 거기서 영성이 자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출애굽해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를 움직이는데 자기가 다닌 모든 지역을 완벽하게 알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된다. 뭐 때문에 바울에게는 다른 사도들에게 없는 영적문제가 있어, 3번이나 깊은 기도 속으로 갔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뭔가. 아픔 속에 하시는 말씀이 뭔가. ‘네 약한데 내 능력이 머물고자 함이라.’ 하신다. 사건과 문제를 복음가진 자가 보는 눈은 다르다. 육신적으로 보는 사람은 원망한다. 사단이 틈타는 얘기를 하고 한다. 복음가진 자는 사건과 문제 속에서 뭐를 보는가.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보고 복음의 한을 가진다. ‘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미션을 주시는 구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예화에 이런 게 있다. 천국에 보니 천사들이 선물 포장을 하는데 고난의 포장지를 가지고 포장을 한다. 그래서 “그게 뭔가.” 하니 “이게 기도응답인데 고난의 포장지로 전부 싼다.” 말한다. “왜 그런가.”물으니 “사람들이 뭐든지 좋아하기 때문에 가져가긴 한다. 그런데 진짜 기도하는사람들은 고난의 포장지를 보고, 고난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받도록 한다. 그래서 원망하면 그 고난이 더 두껍게 되어 펴지 못하고 진짜 믿는 분들은 감사하니까 고난의 용지가 녹아서 그 속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선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다. 의미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렘넌트 7명이 그냥 놀다가 복을 받은 게 아니라, 복음의 한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다. 이 문제, 저 문제가 올 때 해석이 달라진다. 세상기준가지고 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가 아셔야 한다. 내 한 시대, 한 시점을 가지고 평가하시지 않는다. 한 시점을 가지고 평가하면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가 없다. 물고기 잡으러가고 하는데, 주님이 “나를 따라 오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는 시점부터 베드로에게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사도로 세우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충만을 받아서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는데 성령충만을 받고는 베드로가 달라졌다. 그래서 대 제사장 문중 앞에서 “내가 너희 말을 듣는 게 옳은지,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게 옳은지 판단해보라.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다. 성도에게 오는 아픔, 교회에 오는 아픔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계획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귀중한 축복누리는 성도님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호세아 선지자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출생했다. 남 왕국이 아니라 북 왕국에서 출생했다. 호세아 선지자 이름의 뜻이 뭔가. ‘여호와의 구원’이다. 호세아는 구원이라는 뜻이고 여호수아도 구원이라는 뜻이다. 예수도 구원이라는 뜻이다. 호세아, 여호수아, 예수는 똑같은 이름이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당시 역사적 배경가지고 봐야 그 말씀이 진정으로 이해가 된다. 호세아 선지자는 북 왕국에 여로보암 2세가 왕이 되었을 때부터 선지자 생활을 했다. 북 왕국은 정치를 잘해서 육신적으로 강국이 되어있었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부흥을 이루었으나 경제적 번영이 북 왕국으로 하여금 현세적이고 타락지향적인 삶을 살았는데, 하나님이 이것을 영적인 음란이라 하셨다. 물질은 부한데 영적으로 타락하니 그것을 하나님이 음란이라 하셨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음란하다 하셨을 때는 우상을 섬겼을 때이다. 육신적으로 축복을 받고 쾌락으로 빠지고 세상을 위해서 쓰고 하는 그것을 음란이라 한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아픔을 실제로 체험시키시며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보여주는 게 호세아 선지자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하게 나타내는 게 호세아서이다. 오늘도 보면 호세아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어떤 명령이 하시는가 하면, “호세아야. 저기 가서 고멜하고 결혼하라.”한다. 고멜은 음란한 여자이다. 고멜은 깨끗하지 못한 여자이다. 부정한 아내를 취해서 부정한 아내를 끝까지 용서하고, 부정한 아들들을 낳은 것을 가슴에 품어라 말씀하신다. 얼마나 힘들겠는가. 너무나 힘든 얘기를 하신다. 이유가 뭔가. ‘내 마음이 이처럼 너희를 사랑하는데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애굽에서 구원해냈고 너희를 이곳에 포도나무를 심듯이 심어놨는데 너희의 열매는 우상섬기는 것으로 나타나는구나. 내 마음이 너를 사랑하는데 선지자인 너는 내 마음을 알겠는가.’ 하시면서 주시는 메시지가 호세아서이다. 똑같은 시대에 또 한 선지자를 택하신다. ‘아모스’라는 선지자이다. 아모스 선지자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계속 심판으로 말하신다. 심판과 징계를 말하신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아모스 선지자에게는 심판을 계속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하시고 회복시키신다.

호세아서의 요점이 뭔가. 방탕한 아내와 신실한 남편이다. 타락한 북쪽 이스라엘과 신실한 하나님이다. 호세아서의 주제는 패역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끝임 없는 사랑을 말씀하신다.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호세아의 가정문제이다. 호세아의 가정문제는 호세아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문제이다. 호세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시대를 말씀하시기 위해서이다. ‘음란한 아내를 맞이해라.’는 이 시대의 문제이다. 호세아의 가정문제는 시대적 메시지이다. 호세아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시대적으로 발판을 삼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호세아의 가정문제는 시대적 문제인데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호세아의 가정문제는 시대적 메시지인데 호6:1-6, 오늘 말씀이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없다. 교회는 다니지만 진짜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없다. 그냥 교회를 다니지, 예수를 아시는 분들이 없다. 그리스도를 아시는 분들이 없다. 교회를 다닌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에게 “오라.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러면서 시대적 발판을 삼으라 하시는데 호세아의 호소와 하나님의 진노가 떠나간 것이 말한다. [호 14:4]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과거를 발판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신다. [호 14: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에브라임은 북쪽 여러 지파들 중에 대표적인 지파이다. 에브라임은 열 지파 중에 가장 번성한 지파이다. 에브라임이 북쪽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말하여 “내가 다시 우상에 대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한다.『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열매를 얻겠다 말씀하신다. [호 14: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오늘 호세아서를 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뭔가. ‘왜 우리가정입니까.’ 시대적 메시지이다. ‘왜 우리가정에 남편, 부인, 이 아이입니까.’ 시대적 메시지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 지금 한국에 일어나는 거 우리에게 시대적 메시지이다. 시대적 메시지가 뭔가. ‘오라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이다. 우리가정의 문제가 시대적 메시지이다. 시대적 발판으로 삼고 하나님이 증인으로 세우시고, 치유하셔서 발판으로 삼겠다고 하신다. 호세아가 체험한 게 뭔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하나님은 전 선지서를 통해서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데 끝까지 사랑하시면서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뜻을 이루게 하신다. 해결책이 뭔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것이 호세아서를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 율법주의로 들어간다. 그래서 예수님은 문제에 대해서 율법주의가 아닌 거기보다 더 높은, 렘넌트 7명 당하는 어려움보다 한 차원이 더 높은 영적 서밋으로 만들어 가신다. 그 시대에 대표하는 인물로 길러 가시는데, 우리에게 주시는 시대적 메시지로 붙드시길 바란다. 복음으로 나타내신다. 모세를 통해 주시는 율법은 정죄의 기능이지, 살리는 기능이 없다. 예수님이 오셔서 생명을 주시면서 살리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예수님은 그래서 생명의 말씀을 자꾸 하신다. 결국은 우리가 천국배경을 가지고 이 땅에서 승리하도록 말씀하신다. 또 문제가 오면 불건전 신비주의로 빠진다. 인본주의로 빠진다. 이것 저 것 다 안 되면 자포자기를 한다. 호세아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변함없는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게 하신다. 호세아 선지자 가정의 아픔이 시대적 메시지요, 시대적 답이다. 치유가 뭔가. 발판으로 삼아서 승리하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이다.

첫 째. 가정의 문제가 시대적 문제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이 이 시대의 기독교, 예수 믿는 사람의 문제다. 호세아 1:1-2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여기서 제대로 된 왕은 히스기야 하나 뿐 이다. 아하스는 히스기야의 아버지다. “네가 징표를 구해라.” 하니 “나는 구하지 않겠습니다.” 한 것이 아하스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다. 이것이 아하스 왕 시대의 메시지다. 북쪽에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된 시대이다. 이때의 여로보암은 여로보암 2세이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는 안정을 취했으나 그 물질 가지고 타락하고 향락하고 우상섬기는 그런 시대에 호세아를 불러,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슨 문제인가. 우상 숭배, 음란 문제다.” 그거 체험시키는 것이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자를 붙여 하나님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보라는 것이다. 호세아의 억울함이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말한다. 우리의 부족함, 허물 많은 것, 그러나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내 구원하시는 그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은 고멜이 호세아에게서 용서와 사랑을 받게 말씀하신다. 이 여자가 또 집을 나갔네. 그 나간 것을 다시 한 번, 은과 호멜로 사서 가정의 아내로 삼으라는 것을 말한다. [호 3:1-3]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메시지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 주기를 기뻐하시며 우리가 축복 받기를 원하신다. 문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고멜을 모르신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하박국이 이 불의한 모습을 보며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합니까? 그리고 왜 이방인들이 일어나 이 하나님의 백성을 어렵게 합니까?” 그 때 하나님은 “너는 돌 판에 새겨라. 달려가며 볼 수 있게 해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셨다. 이 문제 저 문제 있는데 오직 믿음 밖에 살 길이 없다. 믿음만 있으면 보는 것도 다르게 보이고 길도 다르게 난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승리하게 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한다. 우리가 예배드리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승리한다. 벌주시는 것 같아도 더 좋은 것을 주시고 징계를 통해 회복하게 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도 이유 없이 호세아 선지자 가정에 이처럼 아픔이 왔는데, ‘아 하나님은 이 백성을 그렇게 사랑하고 계시는구나.’ 알게 하신다. 거꾸로, 그거 없이 전부 벌주면 여기 살아남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은혜와 축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복음 받았다면 ‘아 은혜구나.’ 하나님의 축복이다. 용서를 깨닫고.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복음 안에서, 주의 교회와 우리 문제와 복음 안에서,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모두가 미션 잡기를 축원한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호세아서에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로 진지하게 묻어난다.

둘 째. 지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지금 필요한 것이 하나님 아는 지식이다. 왜 한국에 이단들이 그처럼 설치게 되는가? 교회를 다녀서 그렇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이 없고, ‘오직 믿음으로’, ‘신분 권세’가 무엇인지 모르고, 불신자 상태 모르니 그냥 가서 건드리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 되어야 하는데 조금 내게 답주는 말이 되면, 내게 신비적으로 체험되고 육신적 응답 몇 가지 주면 신통하다 하고 빨려간다. 우리의 신앙이 사도들의 고백의 신앙에 세워진,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모든 문제 끝이다. 그게 되어야 한다. 요19:30에 “다 이루었다.” 내 문제 십자가에서 완전 해결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는데 성령이 내 속에 와서 주인 되시고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만족하고 충분해야 한다. 복음으로 충분하고 복음이 완전하고 모든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을 몰라서 타락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몰라서 세상에 빠진다. 그래서 오늘도 왕국에 내분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 그냥이 아니다. 1차 2차 대전이 그냥 일어난 것 같은가? 아니다. 정말로 인문학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발달하고, “하나님 필요 없다.” 하고, 진화론이 발달되고, 공산주의가 덮어질 때,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그 때에야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존재를 찾는 그것이 또 시작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죄다. 오늘도 기도 하는 자 없는 시대, 그것이 문제다. 지금은 하나님을 아는 시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상 지식 말고 하나님 아는 지식 없어 망한다는 것이다. 우상 숭배를 절대 금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사단의 전략에 속는 길이기 때문이다. 큰 실패 속에 빠져 영적 문제의 결과에 빠지기 때문이다. 계속 속으면 후대까지 재앙 속에 빠지기 때문이다. 전도 선교에 생명 거시기 바란다.

셋 째. 복음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다.

복음 받는 데는 조건이 없다. 조건을 두면 누구도 구원 받을 자가 없다. 그래서 칼빈 목사님이 성경을 다 읽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 구원이 이루어짐을 알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구나.” 알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을 만큼. 밥 퍼주는 것을 못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구원 못 받을 만큼 부패했다. 두 번째는 조건 두면 구원 받을 사람이 없어 무조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택했다. 하나님 떠나 고통당하고 여러 가지 시달리고 방황하는 것이 불쌍해서 무조건 선택했다. 구원은 선택된 자가 받는다. 제한구속이다. 그런데 인간의 죄성 때문에, 하나님이 부르면 세상이 좋아서 안 오려고 한다. 돈 버는 것이 좋아서 안 오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신다. 오늘 여기와 계신분 내 노력으로 온 것도 아니고 내가 착해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 속에 이 자리에 오셨다. 그것은 늘 은혜의 복음을 설명한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다. 복음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다 무조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인간이 구원 얻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호 12:13]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 모세에게 “내가 너와 같은 한 선지자를 보낸다.”하셨다. 인간을 구할 다른 방법이 없어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그 그리스도가 참 선지자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죄 문제 해결할 길이 없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단이 인생을 잡고 있고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요일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창 3장 문제는 인간이 해결 못한다. 창 6장 네피림에 전부 휩쓸려 간다. 창11장, 성공하려고 탑 쌓는데 전부 무너진다. 신약에 오면 그것이 문화가 되어 역술인이 총독을 잡고 있다. 귀신들린 여종이 온 동네를 잡고 있다. 대학 옆에 웬 점집이 그렇게 많은가? 요새는 IT로도 점을 친다. 서울대와 연세대 옆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점이다. 행 19장에 나오는 큰 우상, 그것이 문화다. 그 배경이 흑암이다. 6가지 인생 문제 시간표 속에 전부 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조건 없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래서 호세아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사람은 신실하고 확실하다. 그래서 문제에 흔들리지 말고 렘넌트들처럼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 복음의 한을 가지시기 바란다. 특별히 부모님들이 안 되어서 우리 후대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모른다. 오늘 부모님들이 복음의 한을 가지고 렘넌트의 배경되기를 바란다.

호세아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것이다. 우리 은혜교회는 늘 훈련 속에서 말씀 가지고 깊이 아시기 바란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세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다. 호세아 선지자가 그 음란한 여자를 데리고 살라 하는데 그 여자를 통해 ‘하나님의 심정이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호세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오라 하나님이 우리를 싸매 주실 것이다. 치유해 주실 것이다.”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리스도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를 살리신다 하셨다. 이처럼 구약에 그리스도가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는 것을, 우리를 위해 하겠다고 하신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한다.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후대가 살아나기를 축원한다.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인지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우리의 과거가 발판되시기를 축원한다. 복음은 조건이 없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이유 없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받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정말로 체험되는 성도님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세상 것 의지하고 세상의 위로를 기다리지 말고, 해결책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치유다. 호세아 선지자가 자기 가정의 아픔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오늘 우리에게 아픔이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치유 받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다.

결 론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 은혜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너무 몰라서 한국교회가 이처럼 혼란스럽다. [호 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세상에서 너희를 건져냈다.” 하신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성경 완성 이전에도 말씀 하나만 잡고도 승리하는 분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모세는 성경 기록 이전에 피 언약 하나 잡고 본인과 나라를 살린 인물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비전 하나 잡고 애굽에서도 살아남고 형제들을 살린 사람이다. 호세아도 숨겨진 그리스도의 비밀 누리면, 말씀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치유되는 것을 발견한다. 아픔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받기 바란다. 복음으로 치유되고 ‘이 시대에 우리 집의 문제는 시대적인 문제구나. 거기에 하나님은 시대적 메시지를 주시는구나.’ 시대적인 발판으로 삼고 렘넌트들 일어나고 기도로 하나 되어서 정말로 파수꾼으로 서시고 왕들 상대하는 렘넌트 일어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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