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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선지자(요엘)

조혜진 | 2016.09.04 13:49 | 조회 7693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은혜로 살면 똑같은 사건과 문제를 당해도 보는 눈이 다른 것이 기독교인이다. 은혜로 보지 않으면 초대교회는 절대 살아날 수 없다. 은혜로 보지 않으면, 개혁교회는 로마 교황청과 싸워서 절대 이길 수 없다. 불신자와 성도의 차이는 삶의 내용이 다른 것이다. 성도의 삶의 내용은 여러 번 강조하지만, 임마누엘이다. 그 성도를 봤을 때에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교인이지 성도는 아니다. 교인은 교회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인과 성도는 분명히 다르다. 성도는 구별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 소속인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것이 구별이다. 주인이 예수님이 주인이다. 하나님이 주인이다. 하나님이 주인 되었으면, 하나님이 주인 된 자의 눈으로 그것을 봐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성도가 세상 살아가는데 힘이 든다. 세상 사람들이 아픔을 느끼는 것은 육신적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없어질 것을 붙들고 그래서 염려 근심 걱정이 끊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하나님이 일반 은총을 주셨다. 불신자는 그 주신 것으로 고생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움직이실 때에 일반 은총을 가지고 성도와 불신자에게 똑같이 주신다. 오늘 비오는 것을 불신자와 성도가 다 같이 맞는다. 그것은 일반 은총이다. 내일 햇빛이 난다. 일반은총이다. 그런데 성도는 일반 은총으로 감사할 수 있고 이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 생각한다. 그런데 불신자는 돈을 받으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 ‘이것을 어떻게 잘 간수할까?’ 근심 걱정이 된다. 주면 우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인생 무너졌다고 자살하게 된다. 성도는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게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없으면 ‘하나님이 무슨 이유가 있구나.’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한다. 요셉 같은 경우는 언약을 잡았는데 얼마나 힘든 여정을 걸어가는가? 형들이 팔았고, 억울한 누명써서 감옥 가고, 그런데 요셉을 봤을 때 “저 아이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저 아이 때문에 채소까지 복을 받고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간섭하는 것이 보이는구나.”하게 된다. 정말 그리스도로 답 나서 행복하기를 축원한다. 그리스도 말고 다른 것으로 행복하려 하면 모든 기독교인이 실패하는 출발점이 된다.

선지서의 내용, 하나님 만나라는 것이다. 너희를 하나님 백성으로 불렀는데 돌아오라는 것이다. 힘 써 여호와를 알자는 것이다. 선지서 보면 늘 ‘재앙이 임한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이런 재앙이 임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 내게 돌아오라.”한다. 성경은 다른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족보가 나오지만 예수 그릿도의 족보다. 성경은 철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철학이 헛된데, 하나님 아는 것이 제일 지식이다. 철학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말한다. 율법은 정죄의 기능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로 가라.’ 그것이 율법이다. 구약은 예수님의 3직인 선지자, 제사장, 왕 직을 말한다. 이 사실을 놓고 다른 것을 잡고 사는 것을 서론 인생이라 한다. 구약이나 신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데 그리스도로 답 낸 것이 우리 신앙의 본론이다. 그것을 놓고 다른 것을 붙든다. 그러니 서론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마라톤을 했다. 거기서 브라질 선수가 37 Km까지 일등으로 달렸다. 모든 사람들이 얼마 안가 분명히 그가 1등 하는 줄 알고 있는데, 어떤 미친놈이 1등을 밀어서 군중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니 다른 선수들이 먼저 달려간다. 이 분이 얼마나 속이 상하고 억울하겠는가? 그러면 자기를 밀친 놈을 잡고 싸우고, 왜 그러냐 해야 하는데 아무 상관없이 자기가 달려가는 지점으로 달려간다. 그러니까 이것이 전 세계에 다 생중계되었다. 그런데 그가 1등은 못했는데 마라톤에서 그 사람을 모든 세계가 다 기억한다. 비록 금메달은 못 탔을지 모르나, 그는 마라톤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다. 2016년에 브라질에서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그 올림픽에서 최고 영광스러운 것이 최종 주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성화를 마지막으로 누가 붙이느냐?’ 하는데 모든 사람이 펠레가 할 것이라 했다. 펠레가 브라질의 우상이다. 그런데 펠레가 아니고 2004년 아테네에서 금메달 못 딴 선수가 마지막 성화 주자가 되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엉뚱한 것을 붙들고 싸워서는 안 된다. 정말로 진정한 영광은 하나님 나라, 신앙의 본질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주어진다. 대부분 본질 아닌 것, 서론을 잡고 살아간다. 일반 은총은 불신자와 우리가 다 가진 것이다.

요엘서의 특징은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본문에 보면, “여호와의 날이 임한다.” 한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기전에’ 라고 말씀한다. 불신자에게는 심판의 날, 재앙의 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다. 똑같은 사건인데 보는 것이 다르다. 초대교회에 일어나는 핍박은 똑같은 사건인데 어떤 분은 믿음이 떨어진다. 똑같은 사건인데 ‘예루살렘 뿐 아니라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 전해야 되는구나.’ 보는 눈이 다른 것이다. 보는 눈이 성도의 내용 임마누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지고 보시기 바란다. 이것이 안 되면 신앙생활 하는데 날마다 어쩌면 불신자 보다 더 어려운 신앙생활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엘서의 특징,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다. 모든 소선지서 보면 계속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다. [겔 30:3](개역한글) 『그 날이 가까웠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열국의 때이리로다』 [습 1:14](개역한글)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애굽의 용사, 바벨론의 용사, 메데 파사의 용사도 전부 애곡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여호와의 날이다. [슥 14:1](개역한글)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불신자가 믿고 있는 경제, 그들에게 아무 힘이 안 된다. [욜 1:15](개역한글)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우리 성도들은 빨리 알아야 한다. 한 문제, 사건, 일이 불신자에게는 멸망과 재앙의 날이나,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그것이 전부 축복으로 변한다. [욜 2: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오늘 2:31-32에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했다. 똑같은 문제인데 어떤 분은 그것으로 재앙과 멸망을 당하고, 어떤 분은 “산아 바다야 가리워라.”하고 울부짖게 되고, 어떤 분에게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령이 충만한 날로 변한다. 그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이다. 현재의 재난은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다. 세계에 이상한 재앙이 계속 일어난다. 이것은 여호와의 날의 징조다. 성도는 은혜 속으로 들어가기 바란다. 볼 때마다 성령충만하기 바란다. 구원의 완성의 날로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요 믿는 자에게는 성령을 부어주셔서 능히 이기게 하신다. 구약 성경 중에 성령 하나님이 오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것이 요엘서이다. 하나님이 그 때는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모든 백성이 승리하게 세밀하게 주신 것이 요엘서이다. 지난주에 말씀한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주 진지하게 세밀하게 표현한 것이고, 요엘서는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신다는 것을 구약성경에서 가장 세밀하게 나타낸다. 성령 오심이 실제 성취되는데 주님 말씀하신 그 종말에 실제 성령 하나님이 오신다. 이 시대를 종말시대, 말세라 한다. 어떤 분은 “옛날부터 말세라고 했는데?” 하시는데, 앞으로도 말세다. 주님이 승천하신 그 시점부터 재림 사이가 말세다. 그런데 말세에, 종말에 성령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주님이 성령 오실 것을 예언했다. 그것이 행1:8 인데, 주님이 승천하는 그 시점에 그 때부터 성령을 보내셔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초대교회가 핍박 속에서 승리한다.

성도는 돈으로 살지 않는다. 몸 건강한 것으로 살지 않는다. 출세한 자리로 살지 않는다. 있으면 있는 것으로 영광 돌리고,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아간다. 여호와의 날은 성령충만한 날이다.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완성의 날이다. 그러면 Remnant’s day는, 우리 렘넌트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왕들에게 보여주고, 이방나라에 보여주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승리하는 것이 렘넌트 데이다. 요셉의 Remnant’s day에 애굽 왕이 “내가 너를 보니 하나님의 신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 했다. 다윗에게는 그 날 이후로 여호와의 신이 충만했다 한다. Remnant’s day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여호와의 날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믿지 않는 자에게 임하는 재앙의 시대가, 성도에게는 다가올 여호와의 날, 성령충만이요 구원의 완성이다.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했다. 그 800년 후에 주님이 오시고, 주님이 가시며 성령을 보내셨는데 교회는 성령이 교통하는 곳이다. 그래서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다. 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성령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욜2:31에 구원의 근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이다. 이 사실 가지고 바울은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배에 구멍이 뚫리면 배는 물 때문에 망한다. 배에 구멍이 없으면 배는 물 때문에 움직이고 누린다. 그래서 성도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증거 되고 성령충만하게 되어 승리해서, 모든 불신자들이 볼 때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는구나.”가 되는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요엘서를 통해서 메시지를 잡아야 한다.

첫 째.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게 기준이다. 세상기준으로 살지 않는다. 세상일을 붙들고 목매어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인 게 성도이다. [욜 1:1]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요엘에 대해서는 다른 배경이 없다. 브두엘의 아들이라는 것 밖에는 없다. 명성 있는 집안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니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 요엘은 제사장직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안다. 예루살렘 근방에 산 것 같다. 그러면 우리가 빨리 알아야 할 것이 뭔가. 내가 아는 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그대로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게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은 요엘에게 “내말을 들으라.” 하신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렘 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하는 축복을 누렸다. 사6:6-7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낼꼬”하시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 말을 듣지 말라는 게 아니라 사람 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면 참고만 해야 한다. 참고해야 할 것을 참고하지 않고 목매면, 상처받고 시험에 들어 진짜 서론 인생을 사는데 본론을 놓치게 된다. 오늘도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 사람 말을 전하지 않았다. [욜 1: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시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잡길 바란다. 시대적인 말씀을 잡을 때 시대적인 축복을 받는다. 류목사님이 말씀하실 때 처음에는 몰랐는데, 시대적인 말씀을 잡으니 렘넌트의 축복을 받는다. 사람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기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선포하게 하신다. 이사야 선지자의 그 입술을 써야 하시기 때문에 숯불을 가지고 정하게 하셨다. 예레미야에게는 그 입술에 하나님의 손을 대신 것을 볼 수 있다.

깨닫지 못하면 거기에 네 가지 해충이 온다. 재앙이 임한다. 오늘 새벽에 해충이라 하니 녹취록에 회충이라고 적었는데, 해충이다. 메뚜기 떼가 네 번이나 온다.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이 떼가 온다. 전부 해충이다. 깨닫지 못하면 이런 게 닥치는데 역사적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앗수르, 바벨론, 메대파사가 닥치고 헬라가 닥친다. 그러면서 로마가 들이닥치는데 깨닫지 못하면 계속 어려움을 당한다. 여호와의 날이 뭔가. 불신자에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날, 재앙의 날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날, 성령충만의 날이다. 하나님이 시대적 메시지를 주시는데 “너희 자녀에게 고해라. 자녀의 자녀에게 고해라. 시대, 시대마다 고해라.” 말씀하신다. 가뭄재앙의 시대이다. 경고의 시대이다.

그러나 선지자 요엘의 간원과 처방이 나온다. 욜2:12-27 ‘복음의 한의 눈물, 회개의 눈물을 가지고 기도해라.’ 지금 요엘서에서 주는 선지자의 말이다. [욜 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선지자는 늘 하나님 만나는 길을 말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선지자로써 길이 되셨다. ‘내가 길이다.’하시는데 무슨 길인가. 아버지를 만나는 길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를 믿는데 “하나님을 만났나?” 물으니 “못 만났다.” 하는 사람이 많다. 말씀대로 안 믿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비상 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되어있다. “하나님이 어디 게신가?”물으면 “하늘나라에 계신다.” 한다. 반은 맞는데 반은 틀렸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이 성령으로 내속에 와 계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데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물으면 “하늘나라에만 계신다.”한다. 그래서 속고 있다. 어마어마하게 속고 있고 진짜 중요한 것을 속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도 계시지만 내마음속에 임재하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이게 안 되어지면 모든 신앙생활에 실패한다. 저는 기도 속에서 제일 많이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진다. 이게 안 되서 신천지를 쫓아가고 한다. 그 속에 하나님이 주인이 안 되어있다. 그래서 안상홍을 쫓아가고 한다. 빨리 아셔야 할 것은 복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의식적으로,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선지자들이 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신다. [욜 2: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욜 1:2-3]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오늘도 시대적인인 말씀을 붙잡길 축원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그대로 말해야 한다. 부모가 모르면 렘넌트가 부모에게 고해야 한다. 렘넌트가 깨달았다? 울고불고 하지 말고 복음의 한을 잡고 부모를 살리길 축원한다.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이다. 주님의 마지막 메시지가 뭔가. 진정한 눈물을 흘리라는 것이다. 욜1:5에 ‘세상에 취한 자들아. 곡할지어다.’ 욜 1:8에 ‘처녀가 약혼자를 잃은 것 같은 눈물로 애곡할지라.’ 욜 1:13 ‘제사장들아. 굵은 베를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오늘 한국교회와 지도자를 보고 진짜 우리가 굵은 베를 동이고 제사장이 슬피 울어야 할 일들이 일어난다.

둘 째. 시대를 보면 복음은 최고의 능력이다.

요엘서의 시대나 스가랴의 시대이나 모든 시대를 보면 복음은 최고의 능력이다. 인간의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근본문제가 있다. 창3장이다. 전부 내가 주인이 되어있다. 사단이 “너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하는 말에 속아서 교회에서도 주인이 되어있고 가정에서도 내가 주인이 되어있고 모임에도 주인이 되어있다. 전부 자기가 주인이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전부 감추고 있다. 영적문제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땅은 엉겅퀴를 내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본인도 모르게 오는 영적 시달림이 있다. 세상문화이다. 창6장 네피림 시대가 되어서 유행에 휩쓸린다. 안 휩쓸리면 못사는 게 지금 렘넌트들의 시대이다. 그 배경이 뭔지 알고 서 있어야 한다. 유행이 불면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네피림 시대이다.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전부 휩쓸려간다.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했는데 어느 날 무너진다. 바벨탑 사건이다. 근본문제 속에 답을 주는 게 복음이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그 문제를 해결하신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진정한 행복이 회복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네가 복이 있도다!” 하셨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여러분 때문에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베드로와 사도들을 통해서 주님이 하신 일이 뭔가. 교회를 세운 것이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진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러 가지 불신앙, 지옥 권세, 마귀 권세가 우리를 이기지 못한 줄 믿으시길 바란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겠다.”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받을 복을 받고 흑암을 묶는 성도님 되기를 축원한다. 이 시대를 보면 복음의 최고의 능역이다.

그리스도인이 깨달아야 할게 뭔가. 말씀을 받으면 말씀실현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 시작되면 전 세계에 증거 해야 한다. 이 복음을 자기 민족 종교라 착각한 이스라엘의 결과는, 포로가 되고 하나님의 방향과 안 맞아서 억지로 끌려 다니며 복음전하는 삶이 된다. 오늘 은혜교회는 주시는 대로 세계복음화에 쓰임받기를 축원한다. 저는 이 속에 들어와서 내가 계산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린다. ‘중국 복음화’했는데, 어느 날 브라질과 필리핀을 맡으라 하신다. 저는 그 때마다 하나님이 은혜교회에 선교경제를 쏟을 것이라고 본다. 선교경제를 회복하는 중직자와 성도님들을 본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저런 축복을 못 받구나.’ 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라 맡기셨으면 반드시 준비하고 주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누가 붙잡고 기도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참 복음을 가진 자는 참 복음을 누리는 자가 된다. 기도제목을 바르게 잡아야 한다. 복음을 바르게 누리고 기도제목을 바르게 잡아야 한다. 모든 민족을 복음의 축복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주셨다. 모든 민족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 모든 날이 구원의 날이 된다. 모든 문제의 답이 그리스도이고 모든 사람의 해답이 복음인줄 보여 져야 한다. 복음은 최고의 능력인데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능력 중에 능력이라 말씀하신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 외에 더 능력이 어디 있는가. 성령충만이 아니고는 행13장을 못 이긴다. 성령충만이 아니면, 하나님 자녀가 아니고는 행16장에 귀신들린 여종을 못 이긴다. 거기에 모든 세상 사람들이 쏠려있다. 성령충만이 아니고는 행19장에 큰 우상의 결박이 안 된다. 그래서 그 문화와 흑암현장에 나가기 전에 행1:8이라 하셨다. 오늘도 여러분 때문에 행13장에 박수 엘루마가 결박되기를 축원한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동네에 행16장 귀신들이 떠나가고, 행19장에 큰 아데미 신전이 결박되듯이 대구 지역에 불교와 우상들이 완전히 꺾이기를 축원한다. 그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고 복음의 능력이다. 다른 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셨다. [슥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그러면은, 성령내주 성령인도 성령역사 성령의 권능 성령의 권세 성령의 배경과 보호 성령이 주시는 증거가지고 세계복음화에 증인이 된다. 다른 거 가지고 되는가. 안 된다고 하셨다. 세상에는 힘 있는 자가 많으나 다 사라졌다. 영웅이 많으나 영웅이 비참한 인생을 살았다. 하나님과 복음은 최고의 힘과 능력이다. “목사님. 증거 있습니까?”하는데 증거가 있다. 요셉이다.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지위에 만족한 것도 아니다. 성령충만으로 노예 속에서도 왕이 보고 “내가 너를 보니 여호와의 신에 충만하다.”한다. 증거 있는가? 출3:18-19 도망자 모세이다. 처갓집에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임하시고 성령의 불이 떨기나무에 임하니 ‘그래. 하나님이 나를 태우시면 하루 종일 타고도 40평생 탈 수 있다.’한다. 성령충만을 알게 되었다. 사무엘, 교회에서 불을 끄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의 말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을 지은 크로스비가 그랬다. ‘눈을 안 떠도 좋습니다. 오히려 눈을 뜨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눈 뜨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마음으로 주님을 보는 그게 행복입니다.’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했다. 다른 게 소원이 안 되어진다. 능력 중에 능력이 성령충만이다. 요엘서에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미래를 알게 된다. 그게 능력 있는 사람이다.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은혜교회에 하나님이 비전을 주셨다. 은혜교회에 하나님이 응답받는 기도제목을 주셨다. 그 것을 붙들고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셋 째. 전도는 최고의 사명이다.

지상 명령이다. 주님이 최고 관심이 있는 것에 내가 관심이 없다? 그러면 주님과의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뭐 때문에 과학이 발달하는데 정신병원은 더욱 많아지고 정신병동은 차고 넘치는가. ‘잘살아보자’하는데 우리만큼 잘사는 데가 없다. 제가 세계를 많이 다녀봤지만 대한민국처럼 잘사는 나라는 몇몇 뿐이다. 그런데 잘사는데 왜 칼로 찌르고, 왜 정신병동은 옛날 못살 때 보다 많아지고 문제와 이상한 끔찍한 사건들이 많아지는가. 존속 살인, 비속 살인은 왜 그렇게 많아지는가. 인생문제이다. 물질과 과학, 지식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이다. 전도는 최고의 사명이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그리스도만 전하려고 하는가.”하는데 다른 거 가지고는 안 되서 그렇다. “너희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다. 왜 예수만 얘기하는가.” 하는데 이 것 아니면 안 되서 예수만 얘기한다. 그거 모르니까 WCC를 시작하고, 지식으로는 많이 배웠는데 혼합주의, 통합주의, 다원주의의 신학을 만든다. 학문 쪽으로 빠지니 그렇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말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회복하는 은혜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갈릴리 어부출신들이 성령충만하니 세계를 변화시킨다. 요엘서에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시는 그리스도이다. 요엘서에 그리스도는 열방을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이다. 욜3:16에 피난처 되시는 그리스도이다.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이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영화롭게 하리라.’하셨다. 오늘도 여호와의 날에, 곤고한 재앙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충만한 날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의 완성의 날이 있는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억지로라도 전하게 하신다. 도망가는 요나를 잡아서라도, 우상 섬기면서 욕되게 하는 저 이방인들에게 흩어서라도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전도자의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의 사용하셨고 그것이 성경의 전부라고 말씀하신다.

결 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여호와의 날. 문제와 사건 보며 불신자처럼 생각하지 마시고, 그 속에서 성령충만하고 그 속에서 내 구원이 완성되고 그러면서 모든 믿지 않는 자에게 증인되시기를 원한다. 주님 주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800년 900년 이후에 행 1:8 말씀 주시고 마가다락방 120명 아무 배경 없는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그 역사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 속에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내가 뭐가 없다.” 할 필요 없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된다. 하나님이 내 속에서 성령충만으로 역사하시면 초대교회처럼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욜 2:13-14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라고 하셨다. 오늘도 복음의 한을, 눈물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 바란다. 은혜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히 주시겠다고 했다. 정확한 시간표에 하나님이 응답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애굽처럼 물이 넘쳐 세상 것으로 살지 않고, 이른 비와 늦은 비, 하나님의 것으로 하님의 시간표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 하셨다. 오늘도 성령충만한 날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직 복음, 오직 전도, 오직 기도, 오직 헌신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옆에서 누가 밀치거나 뭐하거나 할 것 없다. 바울처럼 나의 달려갈 길을 가는데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 푯대를 향해 늘 정진하는 은혜교회 성도들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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