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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미가 선지자가 본 그리스도

조혜진 | 2016.10.23 14:07 | 조회 7770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오늘은 은혜교회에 설립 20주년 되는 주일이다. 은혜교회가 설립예배를 드린 것이 이제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다. 원래 설립은 10월 20일이고 오늘은 23일인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10년 전에 이 예배당을 계약한 날이 바로 10월 23일이다. 오늘은 의미가 아주 많은 날이다. 20주년의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게 실제 이 예배당을 준비하셔서 10년 전에, 오늘 이날에 계약하게 하셨다. 이제는 20주는 맞이해서 우리가 기도제목가지고 있는 게, 임직자를 세우는데 의미가 있다. 성전 수리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는데 필리핀 까잉인 지교회 설립을 놓고 계약금고 보내게 하시고 그러면서 지역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의미 있는 복음문화행사를 하자하고, 하나님이 브라질이라는 나라를 우리에게 맡기셨는데 거기에 2번째 선교여행을 하고 왔다. 이번에는 많은 사역자들이 선교대회를 들어와서 배나 더 많이 올 것 같다. 그들을 섬기면서 브라질에 복음운동을 하는 것들을 기도응답으로 받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 의미 있는 성전수리 헌금하려고 하는데, 혹시 또 오늘 마침 교회에 처음 왔는데 ‘헌금얘기하나.’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면 아무 걱정하지마시고 은혜만 받기를 축원한다. 어떤 분이 방황하다가 마음속에 ‘교회를 가고 싶다.’ 해서 교회를 왔는데, 하필 성전건축을 한다고 헌금얘기를 해서 돌아갔다 한다. 저희 교회는 은혜 받고 하라는 것이지, 억지로 하라 하지 않는다. 헌금을 하라 하니까 제가 들은 가운데 렘넌트들이 몇몇 모여서 저들끼리 헌금을 한다 하는데 적은 금액이 아니다. 1인당이 많은 금액 작정한다하고, 또 와서 얘기를 한다. 그런데 제가 Stop시켰다. 저는 신앙생활 오래 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면 부담이 된다. 그래서 제가 불러서 “절대 그렇게 한몫에 하지 마라.’ 했다. ‘기도 중에 마음에 나오는 대로 하지, 렘넌트가 어디 돈이 있어서 내는가. 하지 말라.”했다. 다음날이 되었는데 부모님이 전화가 왔다. “목사님. 쫌 만납시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따지려고 오는 구나.”해서 만났다. “목사님. 섭섭합니다.”한다. “섭섭하겠지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했다. “그게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 너무 실망해서 있다.” 한다. “이유가 뭔가.”하니 “아이들이 하나님과 통하여 말씀을 붙들고, 집을 사도 빚을 내고 집수리해도 때로는 빌려서 잘 하려고 하는데. 지역에 대표적인 교회를 하나님이 주시고 지역의 문화를 바꿔야 하는데 불신자가 봐도 교회가 수준이 떨어져서 어떻게 하느냐. 모든 교회에서 성전수리, 성전건축의 얘기가 나오면서 그것을 잡고 20주년에 내가 한 게 아니라 애들이 우리 가정에서 천을 드리자 하는데 목사님이 중지시키셔서 너무 실망하고 좌절해 있다.” 한다. 그래서 제가 그랬다. “그렇게 말씀을 따라 은혜로 드리는 것은 드리는데, 똑같이 ‘너 천만원. 너 천만원.’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억지로 하는 거 없다. 임직자를 세울 때도 많은 성도 중에 교회의 직분을 돈 받고 판다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 은혜교회는 그렇지 않다. 은혜로 내고 못내도 직분을 받아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받고 나중에 드리고 하는 것이지. 마음이 그러면 그렇게 하시라.” 하고 돌려보냈다. 얼마 전에도 많은 금액을 십일조로 드린 분이 있다. 그 분을 알기 때문에 아무 말을 안 했다. 십일조를 드리는데 계산을 못해서 착오해서 드리는 분이 있다. “혹시 눌려서 한 것이 아닌가. 다시 가져가서 해라.”했다. 계산을 잘못해서 율법으로 하면 돌려드려서 그렇게 한다. 마침 ‘교회를 마음정하고 왔는데 헌금얘기냐.’ 생각하지 말고 은혜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오직 은혜에 복음으로 자라나는 제자의 삶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래서 오늘은 미가 선지자가 본 그리스도이다. ‘선지자’했을 때, “나는 선지자 직분을 가지고 계시를 받고, 나는 하나님께 직통으로 받고 보는 사람이다.”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하시라. 선지자는 누구인가. 선지자는 ‘네가 얼마만큼의 복을 받는다.’ 그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선지자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게 선지자이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게 선지자이다. 뭘 보고 얘기하고 ‘앞날이 어떻게 된다.’하는 건 점쟁이가 하는 것이다. 선지자가 뭔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분이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자기 의견이 배제되어야 한다. 자기 경험이 배제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그리스도로 오시는데 참선지자로 더할 수도 덜 할 수도 없다. 모든 선지자는 가감 없이 전한다. 가감 없이 전하다 보니 ‘너희는 망한다.’하고 ‘포로로 간다.’하고 가감 없이 한다. 그 소리가 싫으니 돌을 던지고 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하면 불신자는 싫어하고 오해한다. ‘예배당에 맨날 회개하라.’한다. 선지자는 돌에 맞으면서도, 톱에 켜이면서도 얘기를 해야 한다. 우리가 전도하러 가는데 물바가지를 써도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해야 한다. 선지자적 사명이다. 선지자는 뭘 보는 자인가. 하나님의 계시를 본다. 귀신의 계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를 본다. 영의 눈이다. 선지자는 말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구약에 선지자를 ‘나비’라 한다. 하나님 말을 대언하는 자이다. [신 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입에 두고 전해야 한다. 렘1:9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시고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 하신다. 선지자는 다른 말을 하면 안 된다. 본문을 읽고 본문을 따라 전해야 한다. 내 감정을 개입하고 내 경험을 개입시키고 내 주장을 개입시킨다? 선지자가 아니다. 오늘 교회가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고 다른 것을 강조해서 그렇다. 하나님은 복음을 강조하라 하시고 율법을 얘기하되 반드시 복음으로 풀어주고 답을 줘야 한다. 미가서도 ‘너희가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구원하겠다.’한다, 다른 선지서 보다 ‘심판 얘기하고 구원을 얘기하고. 심판을 얘기하고 회복을 얘기하고. 심판을 얘기하고 내가 너희를 열방가운데 열방을 다스리는 자로 만들겠다.’ 하신다. 선지자는 누군가. 하나님의 사람이다. 사람의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말을 듣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이다. 주의 종들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 안 된다. 하나님이 뭐라 하시는가를 들어야 한다.

오늘 미가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어느 시대의 사람이가. 주전 9세기에는 오바댜와 요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오바야도 심판에 대해서 말했고 ‘에돔의 가치관을 가지고는 망한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살리신다.’했다. 요엘 선지자는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에게 말세에 능력을 주신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말세에 그리스도가 오시면 능력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러면서 여호와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한다. 주전 8세기는 미가서 선지자 시대이다. 주전 8세기 동시대는 이사야 선지자이다. 우리가 아는 호세아 선지자, 요나 선지자, 아모스 선지자가 있었다. 앞에 선지자는 8세기 동시대 사람들이다. 7세기는 포로로 붙들려 가는데 예레미야, 나훔, 하박국, 스바냐가 있었다. 6.5세기는 에스겔, 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 같은 이런 선지자가 있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선지자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서 신약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구약에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신다했고, 신약에는 보내셨다. 구약의 말씀은 신약에서 어떤 선지자와 같다. 이사야 선지자는 구약에 복음서라 한다. 그런데 오늘 미가 선지자는 신약의 로마서와 같다 보시면 된다. 이사야는 그리스도, 복음 중심으로 강조한다. 예수님의 모습, 십자가의 모습, 희생제물이 되시는 모습을 강조한다. 미가 선지자는 어떠한가. 신약에서는 로마서와 같은 말씀이다. 심판과 구원에 대해 번갈아 말씀한다. 죄와 구원에 대해서 번갈아 말씀한다. 로마서에 대해서, 죄를 대해서 신랄하게 말한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방법은 4장에 믿음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면서 죄와 구원에 대해 말씀한다. 미가선지자도 마찬가지다. 죄에 대해서 인간이 절망할 수밖에 없다한다. 로마서에도 말한다. 로마서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다.’ 도저히 소망이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미가서 7:1-7 보면 ‘아 슬프다. 사람들 가운데 정직한 자가 하나도 없다.’한다. 로마서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한다. 미7:9 ‘나도 죄인이다.’ 말한다. 사도바울은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미가서는 신약에서의 로마서와 닮았다. 죄와 심판에 대해 말하고 방법은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한다. 미7:18 ‘주님과 같으신 분이 누구냐? 내가 그분의 의를 바라본다.’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전체에 하나님의 의를 말한다.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다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의가 되신 그리스도. 미가서는 하나님의 의를 바란다 한다.

오늘도 미가서의 두 주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 아들이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심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그 공의 앞에 죽어라.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아라.’ 하는 게 아니다. 공의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배경이 된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게 어디 있는가. 히12장. 우리가 사생자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때릴 필요가 없다. 사생자는 버려둔다. 그러나 자녀이기 때문에 간섭하시고 하나님이 징계도 하시면서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키겠다 하시는데 미가서의 주제이다. 그래서 남은 자들이 있다. 언약을 사랑하는 자이다. 포로로 끌려가고 심판 속에 있지만 언약을 사랑하는 자, 남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통치아래 하나님 나라를 만드신다. 하나님 나라라고 했을 때 가장 중용한 개념이 하나님의 다스림, 통치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열방을 압도할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교회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뭔가. 강한 나라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강한가. 반석위에 세워져 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천국열쇠를 주었다고 하신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교회는 이 땅에서 가장 강한 기관인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가 현장에 나가면 다 속고 있다. 오늘도 회복된 공동체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인도받고 기도응답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가지고 권능, 능력 속에서 세계복음화하라 한다. 생각이 안 바뀌면 예수 믿고도 늘 종살이를 한다. 생각이 바뀌기를 축원한다.

첫 째.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실수

하나님이 심판하고 구원받으라 하고, 심판하고 또 회복시키고, 심판하고 열국에 강국을 만든다. 왜 이런가?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일반적 실수 때문이다. 원죄 해결되면 하나님 자녀다. 이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이요 절대 주권이기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사단 마귀는 성도가 실패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지 못하게 한다. ‘예수 믿어서 꼬라지 저렇지 않느냐.’ 하고 자꾸 실패시켜 전도 막고 교회 부흥 막고 이상한 짓해서 교회 못 오게 한다. 그러니 사단이 하는 짓은 절대 교회 부흥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직자 가정에 문제 줘서 절대 선교 못하게 한다.

첫째로 알 것은 하나님 백성의 일반적 실수는 일상생활 속에 무뎌진 심령이다. 세상 현장 나가서 무뎌진 심령이다. 불신앙하는 분위기다. 거기에는 영적 배경이 있는데, 그 분위기에서 일상생활에서 불신앙 하는 것이다. 말씀의 실제성을 상실한다. 우리가 늘 말하지만 3오늘, 강단에서 주신 말씀잡고 내 가정에서 응답받고 교회 와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것을 까맣게 잊는다. ‘오늘 주일이네.’하고 간다. 와보니까 성전 헌금한다. 그러다가 시험 든다. 우리의 삶이 일상생활에서 무뎌진 심령이 되면 안 된다. 말씀 잡고 현장에서 기도응답 받고 그걸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포럼 할 때 옆 사람의 불신앙이 무너져야한다. 우리가 아플 때 기도하고, 문제 오면 기도하는데 그건 벌써 일상에서 우리 심령이 무뎌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훈련 받는 것은 3오늘을 훈련받는 것이다. 한 주간에도 이 분 저분 만나보는데 문제 때문에 안 흔들리는 사람이 있다. 문제 때문에 영적 사실을 알고, 문제 때문에 ‘그 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문제 때문에 시험 들어 교회 안 오는 사람이 있다. 사역자 때문에 시험 들어 교회 안 오는 사람이 있다. 사역자가 잘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 사역자 때문에 오히려 더 건강하게 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은혜교회 모든 성도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 교회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주일날 습관적인 예배를 드리러 가기 때문에 놓치기 쉽다. 그것이 무딘 심령이다. ‘오늘 주일이네.’하고 한 시간 예배드리고 나가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한 주간 있다가 또 예배만 드리러 온다. 그것이 종교생활로 자꾸 바꿔진다. 하나님이 지난주에는 요나에 대해 말씀 주셨다. 요나가 받은 미션은 너무나 크다. 강대국 살리는 미션이다. 우리 은혜교회에 주신 미션은 중국 살릴 미션이다. 브라질 살리는 미션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만도 주시고 스페인도 주시고 스위스도 주시고 필리핀 까잉인도 주시는구나. 이 교회가 이처럼 큰 일 하겠느냐. 내가 언약 속에서 이런 축복을 받았구나. 오늘 미가서를 통해 무엇을 주실까?’ 하는 것과. 육신적인 것으로 불평하고 3오늘 놓치고 하다가 와서 ‘예수 믿어도 별거 없네. 더 힘드네.’ 더 힘들 것이다. 사단은 그런 사람은 넘어뜨려 진짜 믿을 사람 차단한다. ‘예수 믿어서 저런 것이 아니냐.’ 하고 그런 사람을 통해 차단한다. 일상 생활에서 무뎌진 심령. 내가 받은 말씀을 여러분과 자녀와 나눌 때 자녀들의 불신앙이 녹아 사라지고 자녀들이 믿음이 자라며 일어난다.

하나님 자녀의 일반적인 실수가 복음에 대한 무지다. 듣기는 듣는데 복음에 대해 정리가 안 된다. 율법으로 신비로 정리되고 인본으로 정리된다. 종교와 우상화. 유럽교회와 성당을 가보라. 저는 거기 가보고 대단하다 싶다가 깜짝 놀랐다. 성당 대단하다. 교회 대단하다. 그런데 세월 지나며 성당과 교회 안에 우상이 덕지덕지하다. 영안이 없으면 ‘야, 베드로 성당 크다.’ 하게 된다.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했는가?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마가다락방에 임하셨다. 베드로 성당이 아니라 카타콤의 지하 토굴에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로마를 복음화 했다.

하나님 백성이 가지는 일반 실수가 있다. 복음 끊어진 시대의 렘넌트. ‘다 베임을 당하는구나. 복음 없으면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이는 구나. 그루터기, 거룩한 씨가 남는데 그것을 붙들자.’ 렘넌트 살리자는 것이다.

우상 섬기는 이스라엘에게 호세아를 세워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힘 써 여호와를 알자.’ 했는데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역사책 배워 머리에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히브리말에, 하나님 안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하나님과의 윤리적 인격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의 ‘안다’는 말과 다르다. 그러니 순종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믿음과 행함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한다. 우리의 행함이 믿음에서 나오기를 축원한다. 믿음과 행함은 하나다.

둘 째. 많은 불신 현장에 속지 말라.

불신 현장은 너무나 많은데 속지마라. 악인이 금방 망하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인데, 그렇지 않다고 거기에 속지 마라. 핍박자가 금방 망하면 좋겠는데, 불의로 재물을 모으는 자는 금방 안 망하고 잘 산다. 그것이 성공인가? 기독교인은 빨리 알아야한다. 그것은 성공이 아니다. “하나님 없다.”고 하면서 망하지 않고 대학자가 된 니체가 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한 니체는 대학자이고 학문에 한 획을 그었는데, 죽을 때 정신병원에 갇혀 죽었다. “어둡다. 내게 빛을.” 하며 발버둥 치며 죽었다. 불신 현장에 속으면 안 된다. 지금 돈 많이 번다고, 출세한다고, 그게 성공인가? 아니다. 속지 말아야 한다. “잘 믿는데 왜 저렇게 고난 받느냐?” 사단이 우리를 속이는 말이다. “잘 믿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어려움 당하느냐?” 그렇게 소수로 살아간다고 실패했는가? 아니다. 한국 초대교회 때에 예수 믿는다고 집에서 쫓겨났다. 그것이 실패가 아니다. 많은 불신현장에서 속지 말아야한다. 무디에 대해 많이 들었다. 먹을 것도 없고 어머니 밑에 9명의 자녀가 있었다. 실패인가? 전 미국을 살리는 인물들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선지자를 통해 또 말씀하고 또 말씀한다. 듣기 싫지만 또 말한다. 경고를 외면한 이스라엘처럼 속지 말아야한다. 한국교회처럼 경고를 외면하는 것, 물질주의, 외형주의로 하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가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단단히 무장시키고 각인 뿌리 체질까지 바꿔야 한다. 학교는 영적 지식은 안 가르쳐 주기 때문에, 그래야 진화론에 안 속고 다른 사상에 물들지 않는다. 진화론, 그것은 영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무지, 하나님 백성에게 임하는 상처에 속지 말아야한다. 상처에 속지 말고 그것이 복음으로 치유되어 복음의 한이 되어야한다. ‘이 부분은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데 복음으로 나를 치유하셨다.’ 그것이 그러며 한이 되어야 한다. 그 부분에 전문성 갖고 그 문제 가진 사람 살려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또 속고 또 속고 한다. 악을 행하며 언약을 놓친 지도자, 종교인, 선지자에게 속지 말라 말씀한다.

셋 째. 오직의 언약 가진 소수가 있다.

미 4:1-5 ‘끝날에 이르러는’ 끝 날은 지금이다. 미가 선지자가 지금을 이야기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시고 재림하신 사이, 지금이 끝 날이다.[미 4:1-2] 『[1]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이방인들이 몰려와서 시온 산으로 간다. 복음 있는 교회로 간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말고 복음 있는 교회로 가서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의 말씀을 잡자는 것이다. 어려울 때 마다, 말세 때에, “하나님 어딨느냐.” 하는 때에 오직의 언약가진 소수가, 오직 복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3절에 보면 다툼이 그친다. 그 모임은 세상 모임과 다르다. [미 4: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회복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유엔에 가보면 이 말씀이 입구에 적혀있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영향 미치고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는 교회의 모습이요 천국의 모습이다.

[미 4: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한다. 오직의 언약 가진 소수가 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 하는데 어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는가? 오직의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오직’이라 한다. 알아듣든지 말든지 21가지 삶은 오직이다. ‘오직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만민은 각자의 신을 부르는데.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언약 가진 소수를 통해 모든 일을 하신다. 20주년 살펴보라. 하나님은 오직이라는 언약가진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 그래서 시대마다 오직의 언약가진 소수가 잇는데 남은자다. 오늘 본문이 짧은 본문이나, ‘남은 자’가 3번 나오고 미가서에는 ‘남은 자를’이 전체에서 5번이나 나온다. 다니엘 세 친구를 모으고, 에스더 모르드개를 모으고, 500명이 예수님의 승천을 보았으나 120명을 모아 오직의 사람으로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이 배경이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배경이 되어 그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다스리는 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성탄절에 외우는 말씀이 아니라 날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어디서 나느냐? 베들레헴에서 난다. 그 분이 우리를 다스릴 분이다. 평화를 주실 분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서 이방나라 전부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키는데 우리를 강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사 60:1-22 그것이 빛을 발하는 것이고 강국을 이루고 큰 나라를 이루 것이라는 것이다. 베들레헴에 오신 그리스도. 기도할 때 찬양을 회복하고 결국 소수의 언약가진 자 통해 모든 것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언약 가진 전도자는 낙심 말기를 축원한다. 문제에 낙심하지 않는다. 그 문제 해결해달라가 아니라 복음을 누린다. ‘주님이 내 주인이십니다. 나를 인도하시고 내 기도에 역사하십니다. 그의 권능으로 흑암권세를 꺾으시고, 천사도 동원되고, 내 배경이 되고 내가 전도자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환경이 상관없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환경을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다. 못 고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누리느냐가 중요하다. 불신자 잘 되는 것에 속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의 백성이 조금 어려움 당하는 것에, 숫자 적은 것에,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우리는 1000명의 목회자가 모여 이룬 소수 교단이지만 하나님 나라 이룰 강대국이다. 오직 복음 전하는 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결 론

미가 선지자가 본 그리스도 미 5:1-4 구약성경에서 미가는 가장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봤다. 다방면 종합적으로 본 선지자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확실하게 체험하면 그리스도를 다방면으로 누린다. 구체적으로 누린다. 그래서 늘 하는 말씀이 ‘복음이면 충분하다. 복음은 완전하다. 복음이 모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종합적으로 다방면으로 누려야한다. ‘열방을 다스리는 자가 베들레헴에 나타난다.’ 역사 이전에 계신 분이다. 얼마나 그리스도를 잘 알았는가. 악을 이기는 의로운 통치자가 참된 평화를 주신다. 범죄 한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주신다. 구약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고 이 축복을 누렸다. 그림자를 보고 누렸다. 그러면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 아직 오지도 않으셨는데 오실 그리스도를 보고도 세상이 감당치 못한 것이 구약의 성도들이다.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누린 것이 마가다락방 사람들이다. 저와 여러분은 ‘내 속에 보내신 성령’을 통해, 주인 되시고 인도하시고 내 속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 때문에,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축원 한다. ‘오직’에 살아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 속는가? 자기 올무에 속는다. 뭔가 우리를 불신앙하게 하고 잡고 있는 올무가 있다. 뭔가 하지 못하게 하는 틀과 함정이 있다.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복음이면 다 된다. 이 시대에 뭐 때문에 지역 전도 집회로 또 훈련 받게 하고 중직자 훈련받게 하는가? 지금도 사라져 가는 그리스도에 대한 오직의 신앙 회복하는 미션을 주셨다.

  옳은 복음이 아닌 것을 빨리 버려야 한다. 대충 복음이다. 신앙생활 대충대충 한다. 대충하는 사람을 통해 사단이 틈탄다. 섞인 복음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게 WCC 사상이다. 그게 율법주의다. 이용하는 복음이 있다. 복음이라고 하면서, 오직이라 하면서, 자기 동기에 이용하는 것이다. 율법적인, 기복적인, 박애적인, 다원론적 복음이다. 오늘도 ‘오직 복음’ 일 때만이 우리가 세계복음화하고, 하나님의 일에 하나하나 인도받아 가는데 그 때 흑암이 무너진다. 모든 가정, 내 삶 현장에 오직의 복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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