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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그리스도

조혜진 | 2016.03.20 14:09 | 조회 8085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러시아의 대문호가 두 사람 있다. 한 사람은 도스트예프스키, 한 사람은 톨스토이다. 제가 어릴 때 그 분들의 소설을 읽을 때 참 감명을 받은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죄와 벌이라는 소설이었다. 러시아는 정교가 들어가서 기독교의 사상과 정신이 모든 소설을 바탕에 조금 깔려있다. 저는 죄와 벌을 읽으며 죄가 얼마나 사람을 무섭게 하고 죄의 심각성이 어떤 것인가를 어릴 때부터 체험이 될 만큼 가슴에 와 닿았다. 시골의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청년이 대학에 공부하러 왔다가 공부는 못하고 하숙집에 있다가 시계도 외투도 전당포에 맡겼다. 전당포에서 얼마나 이자를 꼬박꼬박 받는지 고리대를 해서 깍지도 않는다. 청년이 가만히 보니 전당포 노파가 돈 밖에 모른다. 세상 지식과 학문밖에 없는 이 청년이 ‘나는 지식층인데, 노파는 별로 하는 것도 없고 고리대만 하니까 쓸모없는 존재다.’ 이런 이론이 생긴다. 그래서 어느 날 전당포에 기회를 봐서 돈을 뺏기 위해 노파를 살해한다. 마침 여동생이 그것을 봐서 여동생도 살해하고 돈을 가지고 도망쳤다. 돈을 숨겨놓고 마음은 두근두근하고 누가 봤지 않을까 한다. 그러다 경찰이 부른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덜컥한다. 경찰서 갔는데 다른 사건 때문에 부른 것을 알게 되었다. 길 가다 형사가 따라오면 자기를 따라오는 것이 아닌데도 가슴이 덜컥한다. 그러다 누구를 만났다.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 믿음의 여성 소냐를 만난다. 이 분과 얘기를 하다가 연민의 정이 있었는지 몰라도 털어놓는다. 소냐가 자수를 하라고 권한다. 이제 경찰에 가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수를 했더니 8년 동안 형무소에 노역을 하도록 멀리 보낸다. 가서 복역을 하는데 누가 면회를 온다. 소냐라는 처녀가 면회를 매일 온다. 그런데 자기 생각에는 ‘하찮은 여자 이게. 나는 배웠는데 이 여자는 배우지도 못했다.’ 해서 무시한다. 이 처녀가 한 3일 간 면회를 안 온다. 무시했는데 매일 오다가 안 오니까 기다려진다. 그래서 나중에 자기 마음에 이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확인되고, 기독교 신앙가진 소냐 때문에 자기 교만함과 지식이나 차별이 무너지면서 결혼하게 되고, 그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함 받고 한 가정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죄가 인간을 얼마나 두렵게 하는가. 죄의 문제를 해결되지 않고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형무소에 가뒀다 해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 있는 여성이 그 사람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감동을 줘서 형무소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 변화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고난 주간이다. 우리 주님이 골고다에 올라가며 쓰러지시고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 흘린 사건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하고 이제는 대신 사람에게 지웠는데 그것이 구레네 시몬이다. 억지로 졌는데 그게 축복이다. 구레네 시몬이 그 때는 ‘왜 나에게 이것을 억지로 지게 하나’ 불평했을지 모르나, 나중에 그 분이 그리스도인 줄 알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볼 수 있다. 역사가 요세푸스라는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올라가다가 그 자리마다 피를 토했다고 한다. 원체 많이 맞고 채찍질 당해서 넘어진 곳 마다 피를 토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처형당하실 때에는 좌우에 강도 두 사람을 같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 강도죄를 덮어씌우기 위해서다. 로마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강도 취급하기 위해서 양쪽에 강도 둘을 같이 처형했다.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일인데 반응은 두 가지다.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이 왕이 되려고 모반을 꾸몄다가 박혔다.”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다 저 분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저 분이 더 커질까봐 유대인들이 시기해서 로마에 고소하고 십자가 지게 만들었다.” 한다. 어떤 종교인들은 “자기가 메시아라고 떠들어서 우리가 메시아인줄 알았다. 오병이어를 일으키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그래서 우리가 메시아인줄 알고 따라다녔는데, 알고 보니 아무 힘이 없었다. 우리를 로마에서 해방시킬 메시아가 아니어서 반감에 의해서 잘못 없는 저 사람을 십자가에 내 주었다.”고도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성경에 예언된 십자가라는 것이다. 사 53장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 질 것을 미리 예언 했다. 창3:15에, 사7:14에 미리 예언되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미리 예언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700년 전에, 채찍 맞고 징계 받고 버림당하고 십자가 지실 것을 보고 말한 것처럼 예언된 이 사실 하나만 봐도 그가 그리스도인 것이다. 성경에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이 성경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신학과 역사, 과학 조금 배운 거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 그냥 “사랑하는 자다. 사랑 이야기하는 자다.” 말한다. 그러나 진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곳곳에 나타난다. 어디에, 누구 후손으로 나타나,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고난당할 것이고, 누구의 무덤에 묻히고, 언제 부활하는 것이 전부 나타난다. 이 본문을 통해 놀라운 답을 얻기를 축원한다. 내 인생에 그냥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전도자가 아니고, 들은 예수가 아니라 정말 믿어지고 체험되고 증인 되어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축원한다.

첫째. 원래의 십자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기 이전에 그 십자가는 로마 죄수의 사형 틀이었다. 그 십자가 진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고, 십자가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가장 흉악범을 사형시키는 사형 틀이었다. 로마는 세계를 제패했다. 그래서 많은 반란이 일어난다. 로마 황제는 절대 권력을 가졌기에 그것을 탐하는 자들이 있어 반역 한다. 다시는 반역하지 못하도록 가장 흉악한 방법으로 사람을 처형하는 것이 십자가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가장 고통이 심하고 또 가문이나 가족들이 봐도 치가 떨리고 부끄럽게 사형하는 것이 십자가다. 성화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아랫도리를 가렸지만 실제 십자가 처형 시는 모든 옷을 다 벗긴다. 그처럼 치욕적인 방법의 사형이다. 3-5일 간다. 양 손에 못을, 양 발에 못을 박아서 체중에 의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오늘 피 떨어지고 내일 피 떨어지고 새벽에는 얼마나 춥고, 낮에는 땡볕에 얼마나 덥겠는가. 새들이 눈도 쪼고. 하루 이틀이 아니라 심지어는 7일도 고통당한다. 그래서 로마 시민은 어떤 죄를 범해도 십자가에 처형하지 않는다. 수 없는 십자가 사건이 있었다. 세상의 가장 흉악한 방법이 십자가 처형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원래의 십자가로는 원한만 커지고,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만 갈리지 인생의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 사형 폐지하자.”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말한다. “모든 나라의 사형 제도를 폐지하자.” 하는데 그거 폐지해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십자가 제도, 감옥제도, 여러 가지 악형 제도, 그것으로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론에 말씀드렸지만 죄 지으면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우리 영혼과 양심이 괴롭힘 당한다. 그것이 감옥으로 가둬서 해결되지 않는다. 정말로 사람이 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한다. 원래의 십자가로는 포악한 마음이 녹아지지 않는다.

둘 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넘어가는 법이 없다. 공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 앞에서, 죄는 반드시 징벌하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그래야 하나님이다. 그래야 공의의 하나님이다. 공의가 없으면 세상이 움직이지 못한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하나님이 공의로 움직인다. 예언서에 보면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같이, 물같이 흐르게 해달라.’한다. 역사가 움직일 때 하나님의 공의 속에서 움직이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럼 악한 자는 왜 저렇게 악하게 있는가.’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떤 십자가인가.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는 십자가이고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보여주시는 십자가이다. 아들이라도 죄가 관련되어 있으면 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마 27:46, 개정)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하나님이 왜 예수님을 버리셨는가. 왜 자기아들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버리셨는가.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십자가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들을 왜 버리셨나.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 덮혀 씌었기 때문이다. 빨리 아셔야 한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를 전가시켰다.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실 때 예수님이 누구신줄 알았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누구 죄인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지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창3장부터 계시록 20장까지 인류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시키셨다. 원래 죄가 없으시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데, 그 말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죄 없는 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벌하셔야 하는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시키셨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당신이 어떻게 세례를 받으러 옵니까.’물으니, 예수님께서 ‘하나님 의를 위해서 이제 허락한다.’ 하신다. 하나님의 의가 뭔가. 예수님이 죄를 짊어지신 것이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인줄 믿으시길 바란다. 믿을 때 내가 의롭게 되고, 하나님이 칭의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신분, 어마어마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면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진짜 믿으시길 바란다. 진짜 믿는 자는 의의 흉배가 붙어 있게 된다. 누구도 나를 정죄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내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슨 십자가 인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십자가이다. 공의만 따지면 두려운 하나님이다. 제가 고등학교 때 그 소설을 봤는데 우리 렘넌트들도 조금 쉽게 된 것을 읽어야 되지 않겠는가 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별명이 뭔가. 사랑의 하나님이다. 사랑이 뭔가. 어떤 학자는 사랑은 분석하고 사랑의 요소를 말했는데 사랑은 관심이다. 미움이 사랑의 반대말인가? 무관심이 사랑의 반대말이다. 밉다는 것은 뭔가. 사랑하는 끈이 있기 때문에 부부지간에 미운 것이다. 사랑이 바탕이 아니면 밉지도 않다. 무관심해지지. 옛날에 영화에 보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것이 있다. 그거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미운가? 사랑이 있어 미운 것이다. 아내가 뭘 자꾸 긁으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믿으시면 된다. 진짜로 사랑하지 않으면 무관심해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관심이다. 저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으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사랑은 이해다. 'Understand' 한 칸 아래에 서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임하셨는데, 우리 땅에 오셨다. 사랑은 이해다. 사랑은 책임지신다.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게 된다. 왜냐면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격적 관계고 존중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존중하신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빼앗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그래서 무조건 선택하셨다. 아가페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자리다. (요 3:16, 개정)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이 뭔가. 십자가가 내어주기까지이다. 이처럼 사랑했는데 알고 보니 독생자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셨다. (요 3:17, 개정)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하고 공의 앞에서 정죄하고 지옥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재림 주로 오실 때 심판의 목적이 아니라 초림주로 오셔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요일 4:9, 개정)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이렇게’가 뭔가. 십자가 지심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다. (요일 4:11, 개정)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의 형제 사랑이 마땅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형제와의 소통과 사랑이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뭔가. 하나님 관계의 사랑, 그리고 형제관계의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번제물의 자리였고, 그 자리가 화목제물의 자리, 속건제물의 자리, 속죄제의 자리였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께 있다. 타락한 본성, 죄 성을 가진 인생 속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발목을 잡는 인생이다. 그리스도 사랑을 입을 때, 긍휼을 입게 되고 범죄자들도 복음 있는 자들을 만날 때 사람이 변한다. 고난 주간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떤 고난인가. 공의 앞에서 자기 자신 내어준 사랑의 고난이다

셋 째. 십자가의 그리스도

선지자를 통해 예언 된 그리스도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선지자 통해 예언된 그리스도이다. 석가가 성경대로 태어났고 성경대로 죽었고 성경대로 십자가를 지고 부활했다? 석가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 선지자 통해 예언된 그리스도는 석가, 소크라테스, 공자도 아니고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마 1:22, 개정)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대로 오셨고 예언된 대로 십자가를 지시는 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구약을 통해 예언된 그리스도, 약속된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창3:15 ‘뱀은 그의 발꿈치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것이 뭔가. 십자가 사건이다. 뱀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 십자가 사건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히셨다. 어린양이 희생되어 대속의 피로 십자가 사건을 미리 예언하셨다. 출3:18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라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너희 마음의 문에 발라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언약, 십자가를 말한다. 오늘 십자가의 그리스도,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인지 벌써 예언되었다. (사 11:10, 개정)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새의 뿌리에서 난다했다. 이새가 누군가. 다윗의 아버지다. 다윗은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다. ‘벌써 유대의 한 혼이 나오겠다. 임금이 나오겠다.’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53:4에 십자가를 지실 것을 보고 그린 듯 하게 말했다. (신 21:23, 개정)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밤새도록 놔두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인가. 원래 4-5일 가는데, 보통 되게 당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9시에 달리셨는데 3시에 운명하셨다. (밤새도록 두지 말라는)이 예언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은 자다. 신명기에 나온다. 원래 유대인은 돌에 맞아 죽는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모욕하면 돌로 죽인다. 아간, 돌에 맞았다. 스데반, 돌에 맞아 죽었다. 유대인의 처형방법은 돌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인데 십자가 못 박혀 죽으셨다. 왜?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저주 받은 자로 달려가셨다. 광야의 놋뱀 사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오늘 우리는 (시 16:10, 개정)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부활하실 것은 미리 예언하셨다. 그러면서 (미 5:2, 개정)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그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이만큼 확실하게 예언 되었으면 믿으셔야 한다. 인간의 지식, 인간의 과학은 얄팍하다. 어떻게 이렇게 예언되었고 이렇게 수 천년동안 이루어져서 일어난 사건이 있는데, 과학으로 안 믿어진다? 과학으로 믿어질 하나님 같으면 나는 안 믿는다. 과학은 창조 속에 과학이 있다. 창조 때 과학이 있는 것이지. 과학을 가지고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려 하니까 그게 죄이다. 그러니까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오늘도 성경에서 수 천년동안 이처럼 예언하고, 확실하게 예언했으면 이제는 믿으시길 바란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요 14:6,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하나님을 만난 줄 믿으시길 바란다. 인간의 죄 문제, 어떤 것으로 해결이 안 된다. 감옥에 가두고 매로 맞아도 사람들의 마음이 악해지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그리스도를 주신 은혜 앞에 우리 마음이 녹아지시기를 바란다. ‘주님이 나 같은 죄인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지 않습니까.’ 이 은혜를 감당할 수가 없다. 여러분의 죄는 소리치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어디가도 해결할 길이 없다. 사람이 목사님보고는 ‘목사. 목사.’하면서, ‘성철 스’는 스님이라 높인다. 그분은 바른말했다. ‘저는 진리를 깨달으면 절을 떠나겠다. 절은 진리가 없다.’ 마지막에 죽을 때 ‘석가는 사탄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속였다. 내 딸 아무개도 속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불구덩이로 떨어진다.’ 말하셨다. 동아이보에 찾아보라. 실제로 얘기했다. 오늘 그리스도 외에는 인간의 죄 문제 해결할 길이 없다.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없다. 또 전부 지금 속이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좋은 것이라 하는데 생명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생명을 주러 오셨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 생명의 떡이다. 생명의 빛이다. 내가 생명인데 부활생명이다.’ (고전 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는 이겨놓고 사는 삶이다. 그래서 이제는 믿어야 한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게 없다. 점쟁이가 과거를 맞혔다고 ‘용하다.’한다. 수천년 전부터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 예언되었는데 그것은 믿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뭘 믿어야 하는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믿으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속에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내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믿어야 한다. 이거 안 믿어서 실수한다. 내가 주인이 된다. 예수 안 믿어서 구원을 안 얻었다는 게 아니라, 믿고 나서도 내가 주인이 되어서 주인이 선택하시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내 것을 선택한다. 일곱 가지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 성령이 내속에 계신다.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내 기도에 그분이 역사하신다. 권세, 성령의 권세에 흑암이 꺾이고 천사가 동원된다. 성령의 보호하심이 하나님의 나라고 성령의 증인이 된다. 다른 것으로 증인되려 하지 말고. 요셉처럼 ‘여호와의 신에 이처럼 충만한 자를 어떻게 얻겠는가.’해야 한다. 다윗처럼, ‘그날 이후로 여호와의 신에 충만했다.’ 베드로처럼,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고난주간에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일곱 가지 묵상하면서 각인해야 한다. 새벽에 묵상하면서 정말로 십자가의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성령을 보내신 그리스도를 깊이 누리는 고난주간 되기를 축원한다. 고난주간, 필리핀에 대못가지고 자기가 십자가에 실제로 재연하면서 아픔을 감당하겠다한다. 주님이 기뻐하시겠는가. 그거 한다고 구원받는가. 어떤 분은 다섯 번- 여섯 번 십자가에 박혔다하는데 복음을 모르는 자들의 얘기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에 각인되어, 말씀되시는 그리스도를 누리기를 축원한다. ‘다 이루었다.’하는 거, 그 복음을 이루시기를 바란다. 갈보리 산의 언약, 감람산의 언약, 마가다락방의 언약. 갈보리 산, 오늘 십자가 못 박히면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는 그 언약이 나의 언약이 되어야 한다

결 론

한주 간 십자가의 7말씀 가상 7언이다. (1) (눅 23:34, 개정)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끝까지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데 끝까지 용서하시고 ‘너희들이 구원받아라.’하신다. 끝까지 용서하시고 끝까지 참으신다. (2) (눅 23:43,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한편의 강도다. 구원의 즉각성이다. 예수 믿는 즉시 구원받는다. 이 강도 뭘 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교회를 가겠는가. 헌금을 내겠는가. 전도를 할 수도 없다. 구원받을 조건이 하나도 없는 게 우편 강도다. 구원의 즉각성이다. (요 1:12, 개정)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는 즉시 구원받게 된다. (3) (요 19:26-27, 개정)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뭐를 말씀하는가. 복음 안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 제자가 요한이다. ‘어머니 저 아들입니다.’하는데 그 어머니가 마리아다. ‘네 어머니다.’하신다. 새로운 가족관계다. 육신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그 안에서 우리는 모든 형제와 자매이다. (4) (마 27:46, 개정)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죄의 심각성이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징벌되어야 한다. 우리 죄를 대신하신 그리스도. (5) (요 19:28, 개정)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시69:21의 말씀이 이루어 졌는데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아픔과 질병을 친히 체험하셨다. 우리 아픔을 주님이 아시는 줄 믿어야 한다. 우리 형편과 마음에 고민 있는 거, 주님이 소상하게 알고 계신다고 믿어야 한다. 내가 기도하면, 때로는 기도할 수도 없는데 성령께서 기도 할 수없는 것을 대신해 줄만큼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체율하신 그리스도이다. (6) (요 19:30, 개정)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구속사역의 완성이다. 율법이 요한 거 다 이루셨다. ‘테텔레스타이.’ 헬라말로 다 갚았다는 것이다. 우리 죄 값을 하나님의 공의 앞에 다 갚으셨다. 얼마나 감사한가. (7) (눅 23:46, 개정)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참된 평화와 안식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영혼이 주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 나라에 준비된 곳에 있다는 것이다. 미래 걱정하지 마시고 참된 안식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시기를 바란다. 스데반도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합니다.’ 했다.

이 시대에 붙잡은 것, 갈보리 산의 언약이다. 갈보리 산의 언약이 없이 감람산의 언약으로 가지 못한다. 내가 은혜 받고 죄 사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실제적으로 체험할 때, 주님이 제자들에게 40일 집중하셨다. 우리의 생각과 삶, 우리 숨쉬는 것이 갈보리 산에서 부터 출발하시기를 축원한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예수 너를 위하여’하는 사람은 은혜를 못 받는 사람이다. ‘예수 나를 위해.’ 갈보리 산의 언약이다. 감람산의 언약, 사명을 주신 것이다. 마가다락방의 언약, 사명을 감당할 기도응답인 성령 충만을 주셨다. 고난주간에 정말로, 옛날처럼의 고난을 보내지 마시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처럼 사랑하신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고난주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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