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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조혜진 | 2016.04.24 13:54 | 조회 7968

[스 1:1-4]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제가 부 교역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단말씀 가지고 전하더라도 그것이 내 것이 되어 소화 되서 나가는 것과, 그렇지 않고 내 것이 안되어 크게 얘기해도 그것은 상대방 마음에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오늘도 인사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모든문제 해결자'시다. 이 인사를 하는데 그것이 실제로 내게 체험이 되고 믿어져서 인사하는 것과, '오늘도 담임목사가 인사하라고 하는구나.' 하고 그냥 인사하는 것과는 전달되는 것이 틀리다. 오늘도 말씀을 들을 때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축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와서 뭐만 보이는가. 사람만 보인다. 시설만 보이고 '왜 뒤에는 아이들이 떠들고 난리냐.'이렇게 되어 은혜를 못 받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보고 먼저 배운다. 보통 사람들은 경험하고 나서 배운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경험하고 나서도 잊어버린다. 오늘 우리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자꾸 블레셋에 당하고 왜 자꾸 미디안에게 침략당하고 왜 자꾸 앗수르한테 포로로 끌려가고 왜 자꾸 바벨론에 끌려가는가. 잊어버려 그렇다. 한번당한 거, 그것을 생각하고 가슴에 안고 복음에 한을 가져야 하는데 선지자들이 하는 말을 잊는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말씀가지고 현장을 봐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과 시대를 봐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한주간도 사시기를 축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사건 쪽으로 휩쓸리고 또 문제속에, 환경에 휩쓸린다. 그런데 사건과 문제가 일어나든, 노예로 끌려가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비전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언약의 사람이다. 역사를 볼때,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역사는, 세상에 보면 지도자중심으로 기록한 게 있다. 그것을 '영웅사관'이라 한다. 인물중심으로 기록한 역사가 있다. 그것은 영웅사관이다. 인물중심으로 기록된 역사이다. 또 다른면으로 역사를 본 게 있다. 그게 백성들 중심으로 역사를 적은 것이다. '민중사관'이다. 그래서 늘 그것가지고 싸운다. "아 어느 대통령이 결단을 잘해서 잘했다.'하기도 하고, "아니다. 그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했는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 것을 민중사관으로 본다. 그래서 늘 싸운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어떻게 역사를 봐야 하는가. 언약중심으로 역사를 보시기를 바란다. 그 역사 속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길로 하나하나 인도해가시는 게 있다. 그 것을 볼 줄 아는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언약의 백성이다. 언약으로 본다. 그 것을 교회사라한다. '역사는 복음, 전도 중심으로 하나님이 나라를 일으키시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또 교회는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게 교회사다. 교회사는 교회 뿐아니라 교회사를 보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셨는가.'까지 볼 줄 아는 것이, 세상을 바로 보는것이다. 세상사람은 볼 줄 모른다. 세상사람은 인물중심으로 본다. 민중중심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이사실 모르면 "교회에서 왜 민주주의로 안하는가. 성도들이 다 원하는데 왜 그것을 안하는가." 한다. 어떤 분은 "교회에서 왜 목사 전제적 정치를 하는가." 한다. 그것은 무엇을 얘기하는가. 바로 세상눈으로 보고 교회를 바라본다. 민주주의로 할때 일어나는 일이 뭔가. 민수기에 터진 사건이다. 목사 전제정치로 해서 터진 사건이 중세교회에 사제중심으로 교회를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제정치 민주 정치가 아니고, 신본정치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그래서 사사기에 "이방인과 같이 왕을 세워 달라."할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이방처럼 그렇게 왕을 구하는구나." 하셨다. 뭐를 얘기하는가. 신본정치를 버렸다는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민주주의, 전제주의가 아니고 신본주의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 교회를 이끌어가시는가. 어떻게 이 시대에 교회를 이끌어가시는가 봐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내생각을 그냥 얘기하면 안 된다. 인간적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말해서도 안 된다. 교회에서는 시비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뭔가해야 한다. 내가 복음에 바로 서면,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생활을 아는 분은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지, 사건 문제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뭐라하시는가를 알고 광야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피 언약을 설명하시고 바로에게 갈 때, "장로들을 데리고 가서 이 말을 전해라." 하셨다. 모세가 장로에게 말하고, 바로에게 "희생을 드러야 되겠다." 말하는데 바로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말하라 하시니 말한다."한다. 종들은 하나님이 "말씀하라." 하시면 해야 한다. 돌을 맞아도 말씀하라 하니까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내가 다시는 이 말을 안해야 되겠다.'고 다짐하는데, 마음속에서 그 말이 안하면 안될 것 같다고 한다. 두드려 맞아서 말해야 되는게 선지자이고 목회자이다. 그래서 오늘도 모세가 장로들을 데리고 바로앞에 가서 희생제사를 말하는데 모른다. ㅁ로라도 해야 한다. 나와서 전 장로에게 "오늘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라."해서 다 바르니,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일어난다. 안 발랐다? 그 것은 본인 책임이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다. 광야길을 간다. 이제는 열 두정탐꾼 보냈는데 언약으로 본 사람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한다. "저들에게 신은 떠났다."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니 "저들은 네피림이요. 우리는 메뚜기 같다. 큰일났다."말한다. 10명이 그렇게 말하니, 전체 모든 백성이 10명의 말을 듣고 통곡한다. 그래서 38년을 광야에서 빙글빙글 돈다. 헛수고는 아니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치유하시는 것이다.믿음을 가지고 40년을 지나 가나안 앞에 서니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들여보내신다. 그리고 "여리고성을 돌라."하신다. 사건이다. 문제다. 우리가 가야 하는데 상황은 엄청나게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가장 견고한 성이 여리고성이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가 "너희는 입을 다물어라. 들리지 말라. 불신앙하지 말라."하고 7일 동안 법궤를 따라 쭉 돈다. 쭉 도는데 마지막날 큰 소리로 외치니 여러고성이 무너졌다. 사건, 문제, 상황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언약잡고 말씀따라 순종했는데, 여리고성 무너지고 가나안 정복의 길이 열린다. 요단도 그렇게 열린다. 그런데 만약에 여리고성을 돌 때, "이렇게 돈다고 되냐. 더워 죽겠네. 오늘은 왜 일곱바퀴나 도느냐." 이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오늘 교회와 성도는 역사를 볼 때, 언약 중심으로 봐야지. 세상 중심, 민중사관중심, 인물 중심으로 보면 안 된다. 그 역사가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그 역사를 보면서 그 뒤에 '하나님이 어떻게 복음, 전도, 선교를 위해서 이 시대를 움직이고 이끌어가시는가.'하는 것을 보는 영안이 열리기를 축원한다. 아이성 전투도 마찬가지다. 아이성은 여리고성보다 작다. 그래서 군을 적게 보냈다. '아이성은 식은 죽먹기다.'하고 갔는데 대 패를 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죽었다. 여리고성을 무너트릴때는 피해가 없었고 오히려 라합이라는 제자를 찾았는데, 아이성은 '적은 인원으로 정복하겠다.'했지만 수 많은 사람이 죽었다. 무슨 일인가.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무너졌다. 그리고 거기 양이나 여러가지 보배를 취하지 말라했는데, 그러면 아무도 안 취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간이 취했다. 어떤 일이 났는가. 아이성 정복을 실패하 게 하신다. 제비를 뽑아 다른사람이 죽고 자기도 죽고 하는 일이 난다. 교회는, 세상기준으로 판단하고 문제, 사건에 휩쓸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음성듣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시를 축원한다.

본문의 내용이다. 열왕기상하, 역대상하를 말씀드렸다. 열왕기상하는 남쪽 유대왕, 북쪽 유대왕의 얘기가 나온다. 역대상하는 남쪽유대만 나온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서 그 후손 중에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좁게 복음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조명하는 것이 역대상하다.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시는데 광범위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압축시키신다. 세상이 갈수록 점진성있게 복음을 드러내신다. 이사야서에 와서는 그 여자가 처녀라는 것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온다는 것이다. 역사가 지나갈수록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계속 선표하신다. 신약에 오니 그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고 베들레헴에서 나고, 성결의 영으로는 성경대로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아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구나.'하고 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했는데 바벨론에 끌려갔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오겠다."하셨다.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60장에 [사 60:1-5]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하셨다. 결론은 그리스도지만 그 그리스도를 이루기 위해서 70년 만에 이 백성이 돌아와야 한다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레스 왕을 세우신다. 바벨론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나라이다. 여리고성보다 견고하고, 바벨론은 어느 나라도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다. 그런데 어느 날, 고레스 왕이 일어나 바벨론 왕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의 백성인 너희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라." 한다. 그게 오늘 본문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적같은 일을 이루신다. 고레스 왕이 일어나 [스 1: 1-2]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너희들이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라." 한다. 금 그릇, 은 그릇을 주면서 "너희는 가서 성전을 건축하라. 하나님이 이 모든 나라를 네게 주셨다." 말한다. 그래서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간다. 1차 고국으로 돌아가는데 그 주역이 스룹바벨이다. 마1장에나오는 그 스룹바벨이다. 2차 귀환의 주역이 오늘 본문의 에스라이다. 3차 주역이 느헤미야이다. 그래서 3번을 거쳐 돌아간다. 한국역사에서도 똑같은 일이 난다. 일본에 우리가 속국이 되었다. 우리 힘으로는 일본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 양반들이 간이 크게도 미국을 건드려 연합국나서 원자폭탄 2발에 손 들었다. 그래서 해방되었는데 생명걸고 기도한 주의 종이 있다. 그래서 기도는 나라보다 강한 줄 믿으시길 바란다. 많은 주의 종들이 신사참배를 했다. 많은 장로님들이 신사참배했다. 그런데 몇몇이 반대하고 승리했는데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줄 믿는다. 일본역사와 한국역사를 보면서 그것만 봐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방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백성과 종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패색이 짙어져 감옥에 있는 목사 장로를 가두었다. 누가 가 있는가.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목사들이 감옥에 가 있다. 18일, 19일에, 감옥에 있는 목회자, 장로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하나님이 3-4일 전에 원자폭탄을 맛보게 하셔서 일본이 두 손 들게 되었고, 주의 종들을 살리셨다. 우리가 교회사를 가지고 역사보는 눈이,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서 봐야 한다. 오늘도 에스라서를 보면서 몇 가지 언약으로 잡기를 축원한다.그러면 역대 상하에서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저들을 보며 잡을 것이 있다.

첫째. ‘나의 신앙생활이 말씀 실현의 주역이 되어야겠다.’는 것을 언약으로 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된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시키는데 스1:1-4 1절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때가 된 것이다. 고레스 왕이 일어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라 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70년만 되면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겠다고 예언했다. 많은 성도가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대로 고레스 왕을 일으켜서 돌아가게 한다.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지어라.”했다. 예레미야는 고난당한 언약의 사람이다. 렘 33장에 말씀을 전하다가 시위대 뜰에 갇혔다. 예레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해서 소망 없는 예레미야가 기도했다. 그래서 70년 만에 회복할 것을 들었는데, ‘내가 너희 죄를 사하고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레스 왕을 보내 돌아오게 하신다.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성전의 기물까지 주며 돌아오게 하신다. 백성이 돌아오는데 금 육만 일천 다릭, 은 오천 마네, 1백 벌의 제사장 옷을 예물로 즐거이 드렸다 할 만큼 줘서 돌려보낸다. 이 때 보낸 숫자가 5만 명이다.

나의 신앙생활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예배드리고 현장 가서 말씀과 상관없는 삶 살지 말고, 예배 때 주신 말씀 하나라도 가슴에 담기기 바란다. 그거 붙들고 기도하면서 그 말씀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고 응답받아야 한다. 예레미야나 스가랴처럼, 기도의 사람에게는 말씀으로 반드시 미리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도하는 사람에게 먼저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지금 소돔 고모라에게 행할 일을, 내 친구 아브라함에게 애기하지 않겠냐.” 하신다. 하나님은 “너는 복의 근원이다. 내가 너를 창대하게 하고, 모든 민족이 너로 복 받게 하겠다.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 하겠다.” 미리 말씀하셨다. 그래서 기도하는 분들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말씀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레미야나 에스라에게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미리 응답하셨다. 렘넌트 운동을 미리 말씀하셨다. 잡고 계속 받은 말씀 말하니 작은 교단이지만 1만 명 모이는 렘넌트 운동 일어난다. 하나님의 말씀 강단 말씀을 소중히 생각하고, 문제 사건에 흔들리지 않고, 말씀 붙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분은 여호와시다. 불신자 왕들을 통해서도 움직이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안하면 돌들을 통해서도 하신다. 눅19:40이다. 예수님이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가지 흔들고 옷을 길에 깔면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이여” 하니 바리새인들이 시기 나서 “시끄럽다.” 한다. 듣기 싫으니까. 그래서 “예수님, 제자들이 말하지 말게 하십시오.” 했다. 예수님은 “저들이 말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라.” 하신다. 우리가 선교 안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 통해서 하신다. 우리가 렘넌트 안 키우면 다른 사람 통해서 하신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일들은 내가 쓰임받기를 원하고, 내가 말씀 실현의 주역되기를 원한다. “너희가 말하지 않으며 내가 돌들을 통해서라도 하겠다.”하신다. 하나님은 불신자를 통해서도 저들을 해방시키는 일을 하신다.

그러면 포로와 고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말씀 실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 환경이 어렵습니다.” 환경에 속지 말라. 사건에 속지 말라. 내게 오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성경의 많은 성공한 인물들이 고난에 대해 말한다. “고난은 잠시다. 영적 삶에 유익이 된다. 고난을 기도로 바꿔라. 복음의 한으로 바꿔라. 축복의 발판으로 바꿔라.” [시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잠깐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우리에게 고난은 유익이 된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난이 내게 유익이다. [약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난을 기도로 바꾸시기 바란다.[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찬송도 기도이다. 즐겁다면 기도하고 고난이 힘들다면 그것도 기도해야 한다. 축복의 발판으로 삼으라 했다. [시 81:7]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고난 중에 시험받고 그것이 축복의 발판이 되었다.

둘 째. 성전 중심 예배의 중요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왜 포로로 끌려가는가? 내 신앙생활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가. 열왕기상하 죽 봤지만 언약중심 예배, 성전 예배 놓치고 산당 중심 혼합 예배로 흘러간 것이다. 신6:4에 보면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를 가르치라했는데 앗수르 영향 받아 성전에 우상세우고 성전 중심 예배는 멀리하고 산당예배를 드리게 된다. 산당 예배는 혼합 신 예배다. 성전 중심 예배를 제대로 누린 지도자가 누구인가? 그게 다윗이다. 다윗은 늘 성전에 마음이 있었다. 솔로몬은 그 성전을 지었다. 히스기야는 혼합 신을 없애고 요시야도 혼합 신을 없앴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1년에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은 무조건 성전에 와서 예배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은 공인된 계시와 임재의 통로다. 하나님이 거기서 말씀하시고, 전 이스라엘의 죄악을 사하신다. 예배의 공인된 통로가 바로 성전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회막에서 불렀다 민1:1 거기서 모든 예배가 이루어졌다. 역사서를 보면 솔로몬 성전 이후에 산당 제사를 없앴다고 한다. 우리 신앙생활에 제일 무서운 것이 섞은 신앙. 대충 복음, 대강 복음, 오직 그리스도 아닌 것이다. ‘왜 너희 교회는 오직 예수인가?’ 그것이 바른 신앙이다. 개혁교단의 출발은 오직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 5가지가 모토이고 출발이다. 오직 100퍼센트 되시기 바란다. 99퍼센트는 없다. 21가지 삶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오직이다. 비슷하며 그것이 죄다.

우리 신앙생활의 최우선은 성전 중심의 예배다. 교회 중심, 강단 중심이다. 강단에서 멀어지면 거기서 은혜 받지 못하고, 그 틈에 사단이 역사한다. 생각부터 벌써 노예가 된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예배한다. [학 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했다. 성전 예배를 회복하면 주의 성령이 우리 속에,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것이 성전 예배에 가장 중요하다. 공적 예배에 가장 중요한 것이 그것이다. 이 예배의 본문이 행2:1에 이루어진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오순절 날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한다. 오늘도 공 예배, 성전 예배, 교회 중심의 예배드릴 때 주의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실 줄 믿는다. 다른 것으로 현장 나가면 불신자 못 이긴다. 성전 예배 회복하면 [학 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전 백성이 알 만큼 성령 충만한 일이 일어났다. 오늘 우리 은혜교회가 기도 속에서 언약 잡고, 말씀 잡고 예배드리면 은혜교회 통해서 하늘과 땅과 바다가 진동하는 일이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란다. 언약 잡아야 한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만국이 진동한다고 했다.

성전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 주신 경제가 회복된다. 저들이 예루살렘에 올 때 은과 금을 전부 줘서 보냈다. 이 가운데 그것을 확인하고 체험한 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응답 받고, 응답 받아서 하나님의 일 하시기를 축원한다. 여러분이 혀가 빠지게 일해서 천만 원 벌었다고 치자. ‘교회당 수리한다.’ 해서 내려면 아깝다. 그런데 ‘아하, 이거 하나님이 역사해서 내가 천만 원 벌었구나. 이 시대에 이것을 내게 주셨구나.’ 하나님이 주신 줄 알면 천만 원에 보태서 내도 안 아깝다. 그래서 은혜의 복음에 뿌리 내리라는 것이다. 있다고 헌금하나? 아니다. 없어도 믿음 있는 분이 헌금을 한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을 지금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시는 분에게 하나님이 쏟아 부으신다. 은혜 없이 신앙생활하니 그래서 힘들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어딨는가? [학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했다. 재대로 믿으면 지나간 것 보다 더 큰 응답이 온다. 구약 교회보다 신약의 교회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된다. 진짜로 하면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는 120 명이 모였으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자들이 2만 3만 보인다. 이전 영광이 더 크리라. 하나님이 역사하는 교회다. 은혜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션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지체 된 성전 운동 재개하는 것이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다. 동시대 인물들이다. 스룹바벨 성전 짓는데 방해세력 때문에 주춤대니 에스라를 보내서 말씀으로, 학개 선지자 일으켜 회개하게 하면서 성전을 짓게 했다. 그렇게 세워진 것이 스룹바벨 성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교회당, RUTC, 복지센터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큰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해야 하는가? 후대 살리기 위해서.

셋 째. 내 삶을 개혁하는 마음의 성전 운동.

신약에 와서 성전이 우리가 되었다. 구약은 상징으로서의 성전이다. 예수님이 오셔서는 "내가 성전이다."하셨다. 사도바울은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이것보다 더 큰 축복의 말씀이 어디 있는가. 성령내주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는가. 사도바울은 "그래. 성전이 구약에서는 모형이고, 상징으로 보여줬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는냐."라 했다. 그러면 내 삶을 개혁하는 마음에 새 성전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이스라엘에 문제가 뭔가. 성전을 안 짓고, 물질에 관심이 더 많다. 학개서, 느헤미야서이다. 육신적인 쾌락에 빠졌다. 이방여자를 취해가지고 불신 결혼을 했다. 불신자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이상하게 되고 성전을 짓다가 엉뚱한 짓을 한다. 쾌락에 빠지고 이방여자을 취하고, 죄악을 저지르고 에스라에 와서 회개운동시키면서 새롭게 성전운동 시킨다. 포로시절의 고난을 잊었다. 뭐 때문에 포로로 간 줄 모른다.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고 했다. 지혜로운 자는 역사를 보고 배우는데 미련한자는 당하고도 잊는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기가 막혀서 에스라가 말씀으로 부흥운동 회개운동을 일으켜 다시 성전을 지었다. 상실한 신아의 순수성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 잔소리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 일 독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 들어도, 마음이 옥토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삐딱하고 편견 동기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말씀 이야기해도 안 들어간다. 어느 날 깨달으면, “아, 내가 동기가 있었구나. 아, 내가 유신에 눈이 멀어서 늘 잘못보고 있었구나.” 한다. 그것 가지고 사단은 전부 속인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순수한 신앙 회복하라고 한다. 그래서 금식기도 깊은 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천국 들어갈 때까지 죄성이 우리를 실패시킨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여서 누구도 막을 수 없으니 불가항력 적이다. 그러나 성도들을 실패시키고 무너뜨리고, 전도문을 막기 위해 장로님 목사님 실패시키고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데 영적 사실 모르면 판판히 당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왜 금식기도 깊은 기도 24시 25시 하는가? 우리에게 있는 죄성 때문에. 그래서 내 삶을 개혁하는 마음의 새 성전 운동을 우리가 일으켜야 한다.

결 론

무엇으로 개혁하는가? 하나님 말씀뿐이다. 스 7:6에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랬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으로 개혁이 되는가? 하나님 말씀이 꽂혀야 개혁이 된다. 두 번째로, 미래를 보며 교회에 인물을 길러내야 한다. 이것이 한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에 인물이 없다. 에스라 같은, 다윗 같은 인물이 나야한다. 예원교회에 보니 국회의원이 이제 한 분이 당선 된 것 가다. 그래서 정은주 목사님이 불러 차 한 잔 하면서 “차별법 그거 반드시 막아야 한다.” 하니 “내가 꼭 막겠습니다.”했다고 한다. 정치에 영향 줄 수 있는 인물이 나와야한다. 학사 에스라는 말씀에 익숙한 학사이고 제사장이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이다. 대를 놓고 기도해야 한다. 내 대에 인물 없다면 내가 기도하고 우리 후대에 학사 에스라 같은 인물이 나와야 한다. 내 후대에 다윗 같은 인물이 나와야한다. 우리 은혜교회에, 우리 가문에 나와야한다. 당대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가문 중에서 복음에 뿌리 내리고 태에서부터 그렇게 되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에스라는 말씀에 익숙했다. 영적 규모가 반듯한 것이다. 바벨론 궁, 세상에 영향 주는 인물이다. 왕들 상대하는 렘넌트다. 제사장이기도 했다. 스7:12 복음 체질이 된 것이다. 에스라는 제사장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셋째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 실현 속으로 들어가기 바란다. ‘말씀이 여기서 실현되는구나.’ 그 실현 속으로. 그리고 ‘말씀 실현에 내가 주역이 되자.’ 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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