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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조혜진 | 2016.05.29 13:31 | 조회 7723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했는데 벌써 5월 달 마지막 주일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많은 행사가 있는데, 행사 속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에 행복 찾기를 축원한다. “행복하십니까?” 저는 누가 저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 생각과 마음이 한 시라도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으면 단번에 공격당한다. 생각의 주인이 주님이 아니고 내가 주인되어있고 공격의 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5월이 가정의 달이고 계절의 여왕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면 행복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뉴스나 주변 사람을 보거나 사회를 보고 안다. 여러분 때문에 가정의 행복이 회복되기 축원한다. 누구 때문에 행복이 회복되는가? 복음 가진 나 때문에 행복이 회복된다. 그거 아니고 다른 말 한다면 핑계가 계속 되는 것이다. 복음이 완전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복음이 충분하다는 사실에 결론이 나지 않고, 복음이 모든 것이라는데 뿌리가 안 내려져서 주변의 것으로 원망 불평한다. 주변이 아무리 어둡고 환경이 어려워도 복음가진 나 때문에 이 가정을 회복시키신다. 그것이 복음 가진 자의 5월의 메시지다.

그래서 마지막 주일에 서론으로, 한 주간 주신 말씀을 가지고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성막 중심으로 성벽 건축해야 한다. 복음 가지고 있는데 내가 영적사움을 싸우지 않는다. 내 삶에 사단의 통로를 열어 놓았다. 성벽을 왜 건축하는가? 내 삶에 영적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 깨어서 경계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놓쳤다. 성전을 회복했는데 성벽이 무너져 있으니 사단의 통로가 되어 빼앗기고 상처 나는 것을 본다. 5월 첫째 주에 주신 말씀처럼 내 영적 삶의 경계선, 영적 방어선을 구축하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 가정이 행복하게 되어야 한다.

어버이 주일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부모 공경은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 법칙이다. 그러나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참 효도와 생명 있는 효도는 하나님 사랑하는 것, 주안에서의 부모 공경이 참 효도라 말씀드렸다. 히브리 사상 가운데서, 진짜 세상 헬라사상 정복하는 자들이 되어야한다. 죽은 효도와 생명 있는 효도. 어느 것인가? 기본과 근본 알 때에 진정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 오늘 교회는 이러한 렘넌트들 길러내기 바란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가 제대로 된 렘넌트, 그 안에서 참 효도 하는 것이 어버이 주일에 주신 말씀이다. 스승의 주일에 주신 말씀은 갑절의 영감을 구한 제자이다. 엘리야는 스승이고, 엘리사는 제자였다. 스승의 영적 감각이 얼마나 탁월한가? 역사 일어나는데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역사를 많이 일으켜도 내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듣지 못하면 어느 날 낙심하고 좌절한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의 영적 감각,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을 보면서 시대적인 감각을 회복한다.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로 갖고 있어야겠다.’ 이 시대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끝까지 따라간다. 우리 신앙생활에 영적 축복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에서도 주의 종과 렘넌트들 영적 축복관계,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렘넌트가 영적 축복관계,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자녀의 영적 축복 배경되기 바란다. 자녀들의 이런 저런 문제는 다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신 달란트를 키워서 유일성 있는 렘넌트도 키워야 한다. 이 땅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였으매’ 복음 안에서 사람에게 주신 장점이 모인 것이 교회다. 1%의 장점 가진 사람, 5% 장점 가진 사람 있다. 다윗은 장점이 많았다. 찬양도 시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나라도 잘 다스리고 군인, 목동, 왕으로서도 잘했다. 그러나 1%도 5%도 모여야 하고 다 모였을 때에, 내가 다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교회의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지어 가신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셨고 ‘교회를 지어간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렘넌트들이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축복관계를 가져야 한다.

지난주에는 에스더의 사명과 결단이다. 복음공동체다. 거기 위기 왔을 때 성도는 세상이 무엇인가 알아야 하고 현장에서 언약 가진 자는 참 예배의 대상이 누군가 알고 참 예배를 드려야 한다. 공동체가 위기일 때에 언약가진 자는 사명 잡는데 날과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에, 결정하고 사명을 감당하고 결단을 내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결단을 할 수 있어야한다. 실컷 신앙생활 하는데 중요한 선택을 놓친다. 120명이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곳에 모여서 중요한 응답을 받았다. 500명이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봤다. 그러나 “너희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했는데 거기서 기다리지 못했다. 120명만 기다렸는데 약속하신 성령이 120명 전부에게 임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린 120명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도행전 3장 예루살렘에 복음이 증거 되고, 4장 유대 교권에 복음이 증거 되고, 8장에 사마리아에, 11장에 이방에 복음 증거 되며 행1:8을 하나하나 성취시키신다. 내가 하려 말고 하나님 말씀 붙들고 성취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에스더의 사명과 결단, 그날과 그 시가 있는데 그 때, “오늘 네가 왕후가 된 것은 이날을 위함이 아닌가.”했다. 모르드개는 “네가 그것을 안 하면 하나님은 다른 데를 통해서 구원역사를 일으키신다.”고 한 것이다. 우리 중직자와 사명자가 은교회에 주신 사명을 놓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줘서라도 그것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 붙들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중직자와 성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현장에서 모르드개의 작은 헌신이 나라를 바꾸고 민족을 살린다. 이 말씀이 증거 되면 우리 성도들 중에는 “내가 저 말씀 붙들고 내가 쓰임받자.”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분은 “오늘 예배 드렸다.” 하고 지나간다. 오늘도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고 기도 응답이 있고 그것이 간증거리가 되는 전도자의 삶 되기 축원한다. 에스더 서로 역사서가 끝났다. 5월에 가정과 역사로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총 결론은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로 나야한다. 내 인생의 주관자도 하나님으로 결론나기 바란다.

그러면 오늘 제목으로, 이제 5월 달 가정의 달이라든지 역사를 배우면서 무엇으로 결론 나야 하는가? ‘내가 하나님만 바라보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우리 가정이 왜 행복하지 않는가? 구원받고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는다. 은혜로 구원 받았기에 내 행위와 헌신은 상관없다. 내가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받고 하나님 안 쳐다본다. 이유가 무엇인가? 체질, 각인된 것 ,뿌리가 다른데 있어서 또 다른 것을 쳐다본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가고 속국된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위기 세 가지다. 어느 날 종이 되었다. 후대는 이유도 모르고 태어나니 종이다. 어느 날 속국이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자기들은 모른다. 태어나니 벌써 포로로 끌려와 있는 상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한 베드로도 태어나니 로마의 속국이다. 조상들 때문이다. 아셔야 할 것은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데 다른 것을 바라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기도응답 못 받으니 불신앙한다. 하나님이 기도응답 안하는 것이 아니라, 섞은 그리스도 섞은 복음으로 섞은 신앙생활 해서다. [사 40: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너 왜 기도응답 못 받는다고 불평하느냐? 하나님 자녀는 기도응답 받는 것 아니냐?’ 기도응답 없는 것이 아니다. [사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주무시도 졸지도 않고 너희 기도에 응답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소리를 듣기 원하시고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귀를 기울이는데 나는 기도하지 않는다. 예레미야에게 이런 저런 일 있을 것이나, “그러나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데”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셨다. “너희가 지금 포로로 잡혀가지 않느냐. 그러나 내가 죄를 사하겠다. 이 성을 내가 치료하겠다. 잡혀가면 너는 절대 돌아올 수 없으나 내가 돌아오게 하겠다. 열방에 너희 이름이 소문나게 하겠고 내가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다.” 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 고생시키는 것이 취미라서가 아니다. 당연 필연 절대라는 메시지가 나오고 일심 전심 지속이라 한다. 당연히 안 될 일을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잘 될 일을 해서 잘되는 것이다. 오직 복음은 당연히 잘 되어야 한다. 홍해는 필연적으로 갈라진다. 가나안 땅은 절대 들어가야 한다. 불평 원망하면 당연히 응답 못 받고 40년 헤매야 한다. 필연적으로 응답 못 받아서 불평하고, 필연적으로 땅 갈라져서 매몰당하고, 그런 것이 바로 반대로 하면 응답 못 받는 것이다. 실제로 복음 안에 있으면 응답받는 것은 당연하고, 홍해 갈라지고 여리고 무너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한다. 절대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복음 안네에 있으면 하나님 하시는 일이 절대 역사고 절대 응답이다. 역사서를 마지막으로 마치면서 마무리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이다. 다른 것 붙들지 마시고. 기도응답 안 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피곤치도 곤비하지도 않다.” 하신다.

첫 째. 여호와를 앙망해야하는 이유.

구원이 그에게서만 나온다. 도움이 그에게서만 나온다. 애굽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거, 그리스도 피 언약가지고만 나올 수 있다. 포로에서 회복될 수 있는가. 오직 성전 바라볼 때 회복될 수 있다. “주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땝니까.”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오직이다.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너희가 보는 것은 육신적인 것이라 하신다. 오늘 교독문에서도 봤지만 “너희가 먹는 거, 입는 거, 마시는 거 바라지 않느냐. 불신자들은 그 것에 매여 있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것은 따라와야 하는 것이지, 따라가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험해보시기를 바란다. 먹는 거, 입는 거, 마시는 거 걱정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앙망하시기를 바란다. 실험해보시라.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고 종에서 해방되는 것도,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도 주님 때문에 나온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교회가 세워지고 내가 교회가 되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하신다. 어디에 잡혀있는가. 음부의 권세, 죽음의 권세, 마귀의 권세에 잡혀있다. 그리고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만 붙들어도 행복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 하나만 붙들어도 승리하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시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침묵하라. 떠들지 말라. 불평하지 말라. 다른데 보지 말라. 네 영혼이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라.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한다. 구원받지 못하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된다. 구원받은 사람은 발버둥이 아니라 말씀 성취가 되고 기도응답이 온다. [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하셨다. 왜 불안이 오는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 그렇다. 왜 낙망이 오는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다. 하나님은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한 하나님. 피곤치 아니하고 곤비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하신다. [시 116: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조용하게 하나님께 집중해보시고 하나님만 앙망해 보시라는 것이다. 나의 구원이 체험이 되어야 한다. 듣는 거 말고. 다음 주일날 욥이 나오는데, 욥이 구원의 체험이 되고 하나님이 체험되었다. “내가 전에는 하나님을 말로만 들었는데, 이제 눈으로 봅니다.” 했다. 오늘도 삶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체험하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고 인도하시고 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줄 체험하고 확신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거 안 되서 나가니 흔들린다.

여호와를 앙망해야 할 이유. 거기서 소망이 나온다. 이 사람, 저 사람 얘기 들으면 될 것 같은가? 여기 앞에 장로님이 계시지만, 장로님이 좋은 자리에 있다가 내려왔을 때, 어떤 사람에게 소망의 말을 들었지만 거기에 소망이 없었다. ‘저 분이 나에게 덕도 보고 나와 관계도 좋으니 취직 얘기를 하면 되겠지.’ 하고 갔는데, 그분이 돌아가셨다. ‘저분은 분명히 될 거다.’ 하고 갔는데, 그 분이 없었다. 하나님이 ‘오직 나만 바라보라.’고 가르치신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서 소망이 생기던가. 저는 직장생활을 오래했다. 저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그런데 결국 소망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생명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결국 해답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사람 말을 듣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하신다. [시 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왜 흔들리는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왜 안 흔들리는가. 하나님을 바라봐서 그렇다. 다윗의 시편에 ‘내가 늘 하나님만 바라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 늘 고백한다. 초대교회는 10일 동안 집중하였다. “주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땝니까.”물으니 “그거 아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집중하여 듣고, 10일 동안 마가다락방에서 집중기도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았을 때 주님의 말씀하신대로 성령이 임하셔서 흔들리지 않게 된다. 4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얼마나 흔들리는가. 그때 주님을 몰랐는가? 오병이어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는 거 못 봤는가?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을 못 봤는가?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고 “너 복 있다.”하셨는데, 다른 것을 생각하니 넘어지고 자빠진다.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고, 10일 동안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는데, 약속하신 것을 받았다. 이 시대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가 체험되고, 약속된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한다. 지식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판단을 한다. 지식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이 것 저것 판단한다. 목사님을 판단하고 복음 운동하는 단체를 판단하고 장로님을 판단한다. 그리고 자기 의가 나타난다. 그래서 목사님과 성도사이를 이간하고 자기 것이 맞다고 하면서 드러내게 된다. 믿음은 순종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지식은 판단을 하게 한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순종해서 응답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시길 바란다. 왜 안하는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거기까지 나가지를 못한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백하며 주님만 바라보았을 때 반석이다 하셨다. 그 말씀대로 베드로의 삶이 신앙고백 위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은혜교회에 와서 반석이 되기를 바란다. 이반석 장로님은 안 흔들리실 것 같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이름을 부르면서 불신앙을 못한다. 불신앙을 하다가 ‘이삭’이라 이름을 지었다. ‘이삭’이라는 이름은 ‘웃음’이다. 이삭을 부를 때마다 자기가 불신앙한 것이 생각나니 불신앙을 할 수가 없다. 오늘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때, 믿음으로 짓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자꾸 불러줘야 한다. 성도님들의 문제, 오직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둘 째. 하나님께 집중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께 집중할 때 내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새 힘이 나온다. 사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한다. 새 힘 얻으려면 주님 앙망하기 바란다. 저 분은 한 것이 없이 계속적으로 응답받고, 한 것이 없는데 신앙생활에 힘이 있으면,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했다. 출15:2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하였다. 거기서 찬송이 나온다. 그래서 ‘내가 찬송하리로다’ 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장정이라고 쓰러진다. 육신의 힘은 한계가 잇다. 신앙생활에 내가 수고하면 어느 날 원망으로 바뀐다. 그래서 표어에 ‘은혜의 복음에 뿌리 내리자’했다. 은혜의 복음으로 하면 한계가 없다. 과학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경험에도 한계가 있다. 거기에 실수한다. 내 신앙생활에 경험한 것으로 이야기하면 실수한다. 하나님은 경험과 과학에 묶이지 않는다. 이성적 논리에도 한계가 있다. 이성, 그 논리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계가 없다. 그 사실을 체험하고 고백한 자가 사도 바울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했다. 오늘도 배고픔과 배부름과 환란과 궁핍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능력되는 하나님 안에서 내가 다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한계 없는 신앙생활 하기 바란다. 하나님께 집중할 때.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다. [사 40:28-29]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내가 무능한가? 하나님께 집중하기 바란다. 그런데 그 무능이 완전 바뀐다. ‘썬다 싱’이라는 사람은 너무나 자기가 무능해서 철길에 ‘나 자살한다.’하고 누웠는데 종이가 날아와서 붙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그 말씀 붙들고 이분이 힘을 얻고, ‘그 분이 누구인가?’하고 찾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다. 이 분이 인도의 유명한 선교사가 되어 자기와 남을 살렸다. ‘내가 왜 이렇게 무능한가?’ 하나님을 놓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했다.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새 사람 덧입기를 축원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내가 새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셋 째. 새 힘을 얻는 비결이 뭔가. 기도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비결이 뭔가. 기도다. 새 힘을 얻는 통로가 뭔가. 기도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실제적 기도를 하시길 바란다. 집중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고 말씀하셨다. 요셉이 대충기도 했겠는가. 노예로 팔려 가는데. 다윗, 광야로 쫓기는데 대충기도 했겠는가. 목숨이 위태한데. 엘리사, 왕하2장에 선생님을 따라가는데 대충기도 했겠는가. 위기시대에 아람나라가 쳐들어오는데 대충 했겠는가. 실제 기도를 했다. 한나, 핍박이 오고 속이 뒤집어지고 하는데 대충기도 했겠는가. 한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 초대교회 10일 동안 대충기도를 했겠는가. ‘오늘은 내게 시간이 있다.’하고 기도했겠는가. 10일 동안 집중기도를 한다.

오늘도 내 시간, 내 계획을 내려놓고 내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기도다. 불신자의 기도, 종교기도와는 다르다. 우리 기도는 공로를 쌓는 게 아니다. 우리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내 힘이 부족하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이루어 가시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쓰임 받는 게 기도다. 불신자의 기도하고는 전혀 다르다. 새 힘을 얻는 비밀이 기도고, 이 기도가 능력의 통로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도 기도는, 자녀의 신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다. 자녀가 아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 자녀다? 내 기도에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불의한 재판관, 과부가 억울해서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계속 얘기를 하는데 왜 얘기하는가. 그 재판관만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계속 얘기한다. 과부가 계속 얘기를 하니 재판관이 귀찮고 자기 명예에 손해를 볼까 들어준다. 그런데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들어주지 않겠는가 하신다. 우리 문제가, 하나님을 안 바라보고 오직이 아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영적세계에서는 영적작업이 일어난다. 성령이 역사하시고 주의 천사가 동원된다. 흑암이 꺾이고 불안과 염려가 없어지고 평안이 오고, 하나님이 길을 내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광야의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신다.

초대교회는 힘이 없지만 오직 기도 속에 있을 때, 그 교회를 하나님이 쓰셨다. [행 1:13-14]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복음을 받았다? 우리가 반응해야 할 것이 기도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내가 복음을 받으면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행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제 구시 기도시간은 정시기도다. 우리에게는 정시기도가 있고 현장에서는 24시 기도가 있고 더 깊은 기도 속에서는 25시 기도, 영원한 기도가 있다.

결 론

문제를 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자꾸 문제를 본다. 문제를 평가하고 문제를 해석하려 한다. 하나님이 왜 주셨는가.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고 주셨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이 하신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회복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가정 문제도 이길 수 있다. 5월에 주신 메시지를 정리하면서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통로를 열어두지 말고 영적 방어선을 정하고, 근본과 기본을 갖추셔서 정말로 복된 가정을 만드시길 바란다. 그러면서 축복관계를 회복하셔야 한다. 축복관계는 주의 종과 렘넌트, 주의 종과 중직자이다. 그리고 갑절의 영감을 받고 사명과 결단을 내려, 흑암세력이 무너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의 문제는 오직의 문제구나.’해야 한다. 저는 메시지로 정리가 되어있다. 21가지의 삶이 뭔가. 오직을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오늘도 모든 성도들과 교회는 99프로의 신앙이 아니다. 복음은 99프로가 아니다. 100프로의 오직이라는 것이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신앙이 오직인줄 알고 오늘로 역사서를 마감하면서 결론이 뭔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승리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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