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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인정한 욥

조혜진 | 2016.06.05 14:22 | 조회 8252

[욥 1:1-12] 『[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4]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멋있는 성도가 있다. 멋있다할 적에는, 그 모습이 세상기준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준이다. 교회에 멋있는 성도가 어떤 분인가. 진짜로 그런 분이 있다. 그게 누군가. 오직 복음으로 답을 낸 자이다. 이런 분은,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없어도 비굴하지 않는다. 배웠다 해서 교만하지 않고 못 배웠다 해서 주눅 들지 않는 사람 바로 복음으로 인생의 답을 낸 자이다. 성경에 정말로 그런 분이 있는가? 있다. 오늘 바로 욥이다. 그게 바로 렘넌트 7명이다. 우리 은혜교회도 렘넌트 중에, 중직자 중에서 저는 본다. 어떤 분이 멋있는가. 오직 복음으로 답을 낸 자가 멋있는 성도라는 것을 오늘 말씀한다. 그래서 교회 와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완전 결론내기를 축원한다. 예수 외에 다른 분이 여러분에게 답을 줄 수 있는가. 절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생의 답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머지 모든 답은 말씀을 통해 답을 얻어야 한다. 나머지 답은 주님을 바라보면서 나온다. 지난주에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 했고,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소망이 있고,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교회를 왔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교회에 왔다? 뭐를 해야 하는가. 이리 저리 소리가 많다. 자칫하면 맞는 말 같은데 그 말 듣고 근심, 의심, 불신앙하고 은혜 다 떨어지고 한다. 어느 날, 목사님과 장로님을 보니 그렇고 전부 다 그렇다.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만 바라봐야 하는가. 그리스도만 봐야 한다. 누구 말씀만 들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만 봐야 한다. 강단 그대로를 듣고 살아가야 한다. 그 말씀을 듣고 소망과 힘을 얻고, 치유되고 응답받는 것이다. 그것이 멋있는 성도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저는 실제적으로 그런 성도님들을 본다. 실제적으로 하면서 응답받는 성도님을 저는 보는데, 목사인 나도 ‘저런 믿음이 부럽다.’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 와서 복음으로 답을 내셔야 한다. 그리스도가 완전, 충분하고 모든 것이다 답이 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적으로 성취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실제적으로 응답을 받는 것을 본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계속 묵상하는데, 성경이 뭔가.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 있다. 구약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기록된 것인데, 전체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겠다.’는 것이다. 많은 분량이 있는데 다 안 읽어봐도 괜찮다. 모든 분량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보내겠다.’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겠다.’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겠다.’ ‘처녀의 몸에서 나게 하겠다.’ ‘유대 땅에, 베들레헴에 나게 하겠다.’고 전부 예언이 되었다. 그런데 사기꾼 말은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듣는다. 그래서 인생이 실패한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700년 전에 예언되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에, 400년 – 500년 전에 예언되고 그대로 됐는데도 안 믿고 사단과 사기꾼, 이단의 말을 듣고 그래서 실패한다. 과학적으로 봐도 너무나도 정확한 메시지가 선포되었는데도 안 믿는다. 왜 그런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다. 죄의 부패성이 들어와 본질상 하나님을 거부한다. 육신적인 것을 가지고 사람 말을 듣고 거부한다. 왜 그런가. 교회 와서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은혜는 두고 다른 거 봐서 은혜를 못 받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의 역사가 있다. 우리가 모세오경을 봤는데 피 언약을 늘 얘기한다. 모세오경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말한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이처럼 우리를 대신하여 유월절 어린 양처럼 희생제물이 되신다는 피 언약을 말한다. 지난번에 들었지만 역사서에는 세상 역사와 세상 임금이 나오고 유대 임금, 이스라엘의 임금도 나오지만 누가 세우고 폐하는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낮추신다고 말씀하신다. 역사의 주관자는 왕 대신 그리스도라 하신다. 역사는 누가 주관하는가. 하나님이 하신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그러면 내 인생의 주관도 하나님이 하시는 구나 아셔야 한다. 예언서는 뭔가. 예언서는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게 돌아오라.’ 하신다. ‘우상을 버리고 내게로 오라.’하신다. 포로로 끌려갔는데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겠다. 가나안땅으로 가게 하겠다.’하신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내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 하신다. 오늘도 과학과 지식,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이 하는 짓은 완전 마귀 들린 짓을 한다. 인간이 하는 짓은 사단의 종노릇을 하고 산다. 못 배운 것도 아니다. 귀에 ‘저 사람을 죽이라.’ 하고, 맨날 ‘저 사람이 너를 해하려고 한다.’한다. 영어 수학 과학을 안 배운 게 아닌데, 그것과는 상관없는 얘기들이 들린다. 마귀의 장난이다. 그래서 사람을 찌르고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을 살해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누려야 하는데 하나님을 떠나니 모른다. 창3장, 내가 주인이다. 내게 조금만 해가 돼도 가차 없다. 해가 없는데도 사단이 “너를 해하려 한다.”는 말을 듣게 해서 이 세상을 고통 속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다. 그래서 선지서는 뭔가. 예수님이 오시면 선지자로서 “내가 길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하신다. 속지 마시기를 바란다. 속으면 안 된다. 그분이 누군가. 그리스도다. 그래서 오늘 이제 시가서로 들어간다. 시가서는 성경에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까지다. 아가서는 뭔가. 노래, 찬양이다. 기도고 고백이다. 시가서를 쓴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선지자, 왕, 제사장이신 사실을 체험한 것이다. 들은 게 아니라 체험한 자가 기도와 고백으로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것이다. 시가서를 들어보면, 시편을 읽어보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내가 기도해야 할 내용을 적어놓았다. 세상을 살다가, 억울하고 ‘도대체 왜 하나님의 백성이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체험하고, 적은 것이 시가서이다. 힘들고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거 같고, 어렵다? 나보다 더 기가 막힌 일들을 체험하고 적은 것이 시가서이다. 오늘 욥기, 성경을 잘 읽지 않지요? 마태복음도 다 안 읽었는데 어떻게 욥까지 읽었겠는가.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린다. 우스 땅에 욥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 시대에 최고 부자였다. 부자이기만 했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다. 양 칠천 마리, 소 오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 봤는데, 양 치는 목동이 양을 15마리 끌고 다니면 한 가족을 먹일 수 있는 최소 경제단위가 된다. 양 15마리다. 양 15마리 기른다? 한 가정을 먹이고, 입히는 기준이다. 오늘 보니 양이 칠천 마리, 소가 오천 마리라 한다. 당시의 최고 부자이다. 그런데 물질로만 부자인가? 아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잘 경외하는가. 딸과 아들들이 잔치하다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죄가 사하게 해달라고 번제를 드리는 사람이, 우스 땅에 사는 욥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쁜가. ‘이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삶은 사는 게 욥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욥에게 재난이 닥쳐왔다. 욥에게 어려움이 왔다. 그 배경이 뭔가. 하나님 앞에 사단이 욥에 대해 고소하고 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일이 난다. 그래서 이방 사람이 와서 욥의 재물을 뺏고, 어느 날 잔치를 했는데 아들들과 딸이 집이 무너져 열 남매가 다 죽는 일이 터진다. 그렇게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때에 욥이 무슨 고백을 했는가. 정말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인정할만한 고백을 한다. 욥은 무슨 일 때문에 난지를 모른다. 이때에 욥의 네 친구가 온다. 네 친구가 욥을 위로하러 온다. 세 친구가 말을 하다가 보니 자기문제하고는 상관없는 사역을 한다. 욥이 “아니다.” 변론을 하는데, 세 친구는 “네가 이런 일을 당하고도 뭔가를 변명하고 하는가.”하면서 변론한다. 한번 들어볼까요? 욥의 세 친구가 와서 엘리바스는 ‘죄를 회개하라.’한다.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 - “네 입술이 너를 쳐서 말만 많이 하는구나.”라는 것이다. 소발은 ‘하나님의 벌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 “네가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하나님이 벌을 더 내리셔야겠다.” 한다. “너를 보니 아직 하나님이 벌을 덜 내린 거 같다.”는 것이다. 빌닷은 ‘어느 때까지 말을 찾겠느냐. 깨달아라.’ - “네가 자꾸 변명할 것을 찾는데 어느 때까지 하겠는가.”는 것이다. 세친구의 신앙은 벌주는 하나님으로만 아는 신앙생활을 되어있다. 욥의 어려움은 세친구가 말하는 그런 정도의 어려움이 아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그런 경우가 있다. 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어려움이 아닌데 사람들은 그렇게만 생각한다. 엘리후는, 때로 고난은 의인을 각성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 한다. 맞는 말인 거 같은데 그것도 욥에게는 위로가 안 된다. 욥의 네 친구하고 욥은 계속적으로 변론을 한참 한다. 마지막에는 변론 후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을 하신다. 욥38:1- 40:2이다. 하나님이 첫 질문을 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지식과 섭리를 다 아는가? 답해보라.”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욥의 친구와 욥을 말한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하신다. “네가 알거든 대답해보라. 너희들이 그렇게 변론을 잘하는데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다 알고 얘기하느냐.” 그렇게 말씀하신다. 욥이 침묵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두 번째 질문을 하신다.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설명하신다. (욥40:6 – 41:34)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아까도 ‘폭풍가운데’이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을 통해서도 들을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가운데서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 바람 천둥소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루터는 길을 가다가 벼락이 떨어졌는데 옆에 친구가 죽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다. 오늘 폭풍가운데서, 강풍가운데서이다. 오늘 자연가운데서, 또 예배와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네가 내 심판을 피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욥은 자기를 자꾸 의롭다한다. “그러면 네가 의로운데 그 문제가 생길 거 같으면 하나님이 불의하냐. 네가 대답해보라.” 하신다. “친구들이 말한 그 죄는 아닌데 신앙생활에서 내가 의롭다하면서 그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불의하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시면서 욥에게 두 번째 질문을 하신다. 그리고 욥이 회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욥42:1-4 [욥 42:1-4]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말한다. 욥이 나중에 “아 하나님은 알고 계시는데 내가 모르는 것을 말했고,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좁은 소견을 가지고 변론하고 있었구나.” 한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했다. 어려움과 역경을 통해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신앙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도 우리는 역경과 어려움 가운데 좌절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축원한다. 늘 설교를 지식으로만 가지는 신앙생활을 하지 마시고,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기를 축원한다. 그게 멋있는 신아생활이다.

욥의 고난, 결론적 교훈이 뭔가. 하나님은 욥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이 있고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결론부터 애기하면 의로운 사람이라도 엄청난 고난을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롭게 사는 사람이라도 엄청난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욥의 인생에서, 고난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 전체를 놓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시대를 놓고 한 인물을 나일 강에 띄우기도 하고, 한 인물을 광야에서 40년 살게 하셔서 고난을 이기고 지도자로 쓰임 받게 하신다. 우리 인생을 한순간만 보지 말고 인생 전체를 놓고 보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고난은 특정한 죄의 징벌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다. 우리는 뭔가.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뭔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경륜이 어디 있는지를 찾다가, 욥이 ‘그렇구나. 나는 스스로 알지 못하는 일을 자꾸 말했고 스스로 헤아릴 수없는 것을 말했구나. 하나님의 경륜이 있고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본다.’고 말했다. 말씀이 내게 성취되기를 바란다. 정말로 신앙생활의 주권은 그리스도가 바탕이 되어 내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 인생 되기를 축원한다. 이 문제, 저 문제를 만나 흔들리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애기하는 것을 듣고 대변하다가 시험 들지 마시고 오직 여호와만 앙망하시기를 축원한다. 때로는, 남의 말을 옮기다가 시험 들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놓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난은 깊은 섭리가 있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때로는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시기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이 어디 있습니까.’한다. 저번 주에도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부르심의 응답이 없다 하고 불평하는가.’말씀했다. 결론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갈등이다. “왜 납니까?”하는 갈등이다. 갈등은 사람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세상 지식을 가지고는 안 된다. 어디로 들어가야 응답받는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진정한 응답이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갈등이 없어진다. 하나님의 주권을 알 고 순종할 때 거기에서 없어진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고 “너 독자 이삭을 바쳐라.”하실 때, 얼마나 갈등이 오겠는가. 그 갈등은 아들을 안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계속적으로 “안 됩니다.” 해서는 답이 안 난다. 순종으로 갔는데, 답이 나오고 은혜가 임한다. 오직 그리스도, 여호와 이레라 답이 나오고,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얻으리라.”라는 답이 나온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앞에 갈등이 있는가. 순종으로 들어가시길 축원한다. 거기서 모든 해답이 나온다. 욥은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았다. “왜 나입니까? 왜 이런 문제가 옵니까.”라는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지 말고 신앙고백을 하는데, 이후에 하나님이 욥을 인정하는 신앙생활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목적이 뭔가. 욥, 자신의 공의에 대한 자만심을 없애는 것이다. 죄 때문이 아니다. 내 의가 드러나는 것을 하나님이 없애시고 다시 축복하시는데 갑절의 축복을 하신다. [엡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신앙생활을 할수록 공의의 넓이와 깊이, 길이가 어떠한지를 욥의 삶 속에서 알게 된다.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고 이런 일들을 하시고, 신앙생활을 할수록 ‘복음은 완전하구나. 나는 복음으로 충만하다. 복음이 모든 것이다.’하는 멋있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한다.

첫째. 성도는 영적 세계를 알아야 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그리고 천사가 있고, 하나님이 하나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천사는 인간을 돕기도 하고 그렇게 지어졌다. 그런데 천사 중 하나가 타락을 했다. 사 14:12-14 [사 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천사 한 명이 부하 천사를 데리고 ‘내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한 것이다. 하님이 찬양 받으시는 영광을 자기가 받으려고 하나님 보좌에 앉겠다고 했다. [사 14: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겔28:13-16, [겔 28: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6]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쫓겨났다. 그래서 공중권세 잡은 자가 되었다. 하나님 찬양하는 인간 보니 시기 나서 ‘인간을 타락시키자’ 해서 타락시킨 것이 사단이라는 것이다. 그 정체가 [계 12:7-9]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거짓말로 사람을 꾄다. 아담을 꾀고 성도를 꼬여서 타락하게 만들고 신앙생활 못하게 만든다. 옛 뱀, 창세기 3장의 그 뱀이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복 달라고 하고 길흉을 말하는 용, 곧 사단이다. 용이 사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복음 안 들어간 나라 보면 이상하게 뱀 섬긴다. 캄보디아 가보면 앙코르 와트라는 곳이 있는데 가보면 전부 뱀이다. 중국에도 용을 그려놓았다. 목적이 무엇인가? 인간이 하나님 떠나게 한다. 오늘도 복 받는 하나님 백성을 이상하게 고소해서 어려움 주고 하는 것이 전부 사단이 하는 일이다. 성도 간에 이간하고 교회를 분란 시키고 네피림 시대를 만든다. 창 6장 네피림, 온 동네를 귀신동네 만든다. 창 11장 바벨탑 사건이다. 저 바벨론 이라크 그 쪽에 가면 바벨탑이 있다. 하나님 대적하기 위해, 과학으로 하나님 없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바벨탑이다. 사단의 가장 궁극적 목적이 성도를 고발하여 어려움 당하게 해서, 하나님 원망하고 신앙생활 못하게 하고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것이다. 사단은 믿는 자가 잘 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앞서서 일하면 헐뜯는 그것이 사단이 하는 짓이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오늘 우리 모든 성도님들 영적 세계 알기를 축원한다. 영안이 열려야 한다. ‘이것은 육신적으로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말 할 문제가 아니구나.’ 사단이 개입되어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다. 이 사실 모르면 기독교는 윤리 종교로 한다. 기독교인이 불신자보다 영적 사실 더 모른다. 불신자는 육신적으로 좀 누리기도 하는데 성도는 그거 모르면 하나님께 터지고 마귀에게 터지고, 은혜로 구원은 받는데 세상 살면서 전도와 아예 상관없다. 불신자 보기에 “네가 무슨 예수 믿냐.”하고 터지고, 하나님께 “너 바로 안 살래?” 하고 터지고, 이상한 증인 된다. 오늘도 영적 생활하시기 바란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승리하기를 축원한다.

둘 째. 하나님이 인정한 욥의 신앙이다.

욥의 조건 없는 신앙관이다. 마귀가 말한다. “하나님, 욥이란 인간이 까닭 없이 하나님 섬기겠습니까? 물질과 건강으로 축복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빼앗아도 까닭이 없다. 이유 없이, 동기 없이, 계산 없이 하나님 섬긴다. 복음 깨달으면 계산이 없어진다.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하는데, 진짜 신앙생활 하는 분은 계산이 없다. 저번에 오신 장로님을 보니 정말 계산 없이 신앙생활 하신다. 사단은 계산 가지고 신앙생활하게 한다. 욥은 사단이 시험했는데 계산 없이 신앙생활 한다. 조건도 이유도 없고 오직이라는 것으로 신앙 생활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 계산 없었다. “우리가 우상 안 섬기겠습니다. 풀무불 들어가면 하나님이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이 까지만 하면 그것도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절 할 수 없습니다.”했다. 진리가 맞으니까 진리 자체로 만족한다. 복음은 충분하다, 거기에 다른 조건을 붙일 수 없다. 조건 안 달아야 된다는 것이다. 복음이 모든 것이다.

욥의 물질관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청난 부자인데 하나님이 내게 맡기고 가져가셨다는 것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한다. 받아도, 가져가도 찬양한다. 이러한 물질관이 될 때 교회나 사회나 대한민국이 잘된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팍스 아메리카다. 그들은 청교도 신앙으로 이 물질관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업이라는 것이다. 목사님이 성직이면, 나는 대장장이 하는 것이 내 성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보면 ‘스미스’라는 성이 있다. 대장장이라는 것이다. 종교개혁 전에는 대장장이 하는 것은 아주 천한 것이었다. 옛날 우리로 치면 백정 같은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하고 제대로 말씀 전달되고 나니, 각자에게 달란트를 주셨다. 그것으로 영광 돌리는 것이다. 교사는 교사의 일로, 세탁소는 세탁소로, 그것으로 성직을 삼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들은 사람이 “그래 이것이 하나님이 성직으로 내게 주신 것으로 call이다. 그럼 성을 대장장이로 바꾸자.” 그래서 스미스가 된 것이다. 오늘도 내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깨닫기 바란다. 교사는 교사대로,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일하는 대로. 그것이 미국 경제를 세계 경제로 만든 복음 위의 경제관이다.

욥의 내세관이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불신자도 이것을 안다. 성도가 이것을 몰라서 되겠는가? 성도들 중에 정말로 그렇게 살아가시는 분을 보고 있다. 나보다도 더 그러해서 때로는 부러워진다. 성도님 중에 예수 믿기 전에 비상금으로 5년 동안 적금을 들었는데, 예수 믿고 나니 너무 좋은 것이다. ‘은혜교회 20주년인데 5년 동안 모은 것을 의미 있게 하나님께 드려야겠다.’ 하는 성도가 있다. 보니 큰 금액이다. 우리의 물질과 내세관, ‘적신으로 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갈지라.’ 갈 때 가져가는가? 내 경제가, 달란트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때 가장 귀중한 것이다. 한국경제가 세계 경제 11위 인데 하나님 모르면 그 경제로 가정 파괴되고, 마약, 노름하고, 여자 얻고, 흑암 역사하는 경제가 되어 세계에 창피한 일이 일어난다. 욥이 고백한 경제관, 내세관 갖기를 축원한다. 사단이 두 손 들 수밖에 없다.

욥의 구원관은 분명했다. [욥 19:23-24]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돌에, 마음에 새겨졌으면 좋겠다.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얼마나 몸이 아팠는지, “내가 생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는 원망하지 않는데 내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인이 “영감, 네가 하나님 믿는다더니 꼴좋다.”한다. 욥의 몸에 진물이 나서 재를 바르면 재가 진물을 먹을 만큼 되어 집에 못 있고 잿간에 있었다. 부인이 “꼴좋네. 하나님 믿는다고 유별나더니 하나님 원망하고 죽어라.”한다. 헌 데는 그 여자 주둥이에 나야하는데. 그러니까 욥이 뭐라고 하는가? 말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나의 구속주가 살아계신다. 후일에 그 분이 땅 위에 서실 것이다. 내가 그 얼굴을 볼 때 낯설지 않을 것이다.”했다. 예수님 오시기 2천 년 전이었다. 욥과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오시기 2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럼 무슨 언약인가? 아직 보지도 못한 예수 그리스도. 2천년 후에,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그리스도. 그런데 예수님이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이 가죽이 썩은 후에 내가 그를 보겠다는 것이다. 2천 년 전이었지만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욥에 대해 말씀했다.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그 2천 년 전에 나의 구속주가 살아계신다. 이것의 욥의 구원관이다. “내 가죽, 육신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그를 보는데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겠다.” 했다. 2천년 후 예수님이 오셨는데, 문제는 안 믿는 것이다. 육신의 몸을 입고 성경 그대로 왔는데 믿지 않는다. 욥기 때는 성경도 없었는데, 예수님 오실 때는 구약 성경이라도 있었는데 안 믿는다. 정통 신앙을 한다는 바리새인들이 안 믿는다. 성전에 십일조 하고 금식기도 구제도 하고 예배도 드리는데 그 예수님을 안 믿는다. 사두개인, 대제사장 계열도 안 믿는다. 헬라 철학이 들어와서, “부활이 어디 있어”한다. 지금도 신신학자들은 그런다. 2천년 후 지금, 우리도 그럴 수 있다. 내 속에 성령 하나님이 주인 되어있는 것을 안 믿는다. 오늘 우리 다락방에서 말하는 7가지 축복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식적으로 성령 내주, 인도, 역사, 배경, 증거 그것이 지식적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2천 년 전 예수님이 와도 안 믿는 것처럼. 가시면 분명히 보혜사 성령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내 속에 성령이 계시는 줄 믿기 바란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 교회, 지금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데 너희가 뭘 하는냐.” 는 것이다. 내 속에 계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줄 사실적으로 믿기 바란다.

욥의 인생관이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어려움 속에서 실망하고 좌절하지 않고. ‘내 믿음이 오히려 정금같이 나오겠다.’ 한다. [욥 23:11-12]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욥 23: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욥의 인생관이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신다.’ 그것이 인생관이다. 여러분 개인의 인생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 내가 지금은 이렇지만, 주님은 절대 주권으로 나를 인도해 가신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내가 주님 얼굴을 뵙겠다는 것이다. 하나미의 경륜 주권이다.

욥의 성도관이다. 42:10 친구들과 격론을 벌였다. 섭섭해서 고함도 치고, 친구들은 신학적으로 이야기하고 “네 말하는 것을 보니 아직도 멀었구나.” 한다. 친구들 말이 옳은가? 욥의 말도 책망했는데. 하나님이 욥의 친구들을 엄청 책망할 시간표가 왔다. 그런데 욥이 친구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그들도 성도다. 그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용서해달라고 한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욥처럼 용서를 구하고, 용서 받고, 화목해가는 것이 성도다. 욥의 성도관이다. 성도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용서 받지 않으면 절대 하나 되지 못한다. 이후에 하나님이 욥에게 쏟아 붓는데 우리말로 대박을 터뜨린다. 하나님이 배로 축복한다. 아들 딸 10명 다시 주고, 7천 마리는 1만 4천 마리가 되고. 성도는 하나님 앞에 용서 받고 성도 서로 간에 용서하며 하나 되어야 한다.

셋 째.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단 문제 해결했다.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십자가 부활로 사단 머리가 깨졌다. 이제는 더 고소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단번에 영원히 완전한 제물이 되었다. 더 제사 지낼 필요가 없다. 믿기만 하면 된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사망권세가 깨졌고 음부권세 깨졌고 뱀의 머리가 박살났다. 신약 이후 성도는 속으면 안 된다. 속으면 그대로 당한다. 그 공포 염려 그대로 들어온다. 헛것이 보여서 그렇다. 우리가 문제없는데도 염려 들어오면 그대로 당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잘 모르겠으면 무속인 집 가봐라. 예수 그리스도 오심으로 사단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 하셨다.

결 론

롬8:30-39,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사단이 송사할 수 없게 그리스도가 완전 해결하셨다. 오늘 성도가 당하는 어려움, 고통. 그것과 상관없는데 이것가지고 변론하고 저것으로 변론 하는 것 다 내려놓고, 친구들 말만 듣지 말고 하나님 음성 듣기 바란다. ‘내가 듣기만 했는데 이제 주님을 눈으로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에 영향 받지 말기 바란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사람의 말보다 주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란다. 욥42:4, 이 문제에 대해 주의 지혜를 구합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의 주권이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내가 그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르면서 자꾸 떠든 것을 회개한다. 듣기만 하지 말고 체험하고 확신하기를 축원한다. 전에는 주의 말씀을 귀로 들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주를 본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남다른 고통이 있는가?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준비하신 것이다. 그래서 남다른 은혜와 어려움이 있다. 남다른 사명을 주신 것이다. 시119:71에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했다. 율례를 배웠다. ‘나의 가는 길을 주가 아시는데 시련 속에 내 믿음이 정금같이 나오겠구나.’했다. [사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고 큰 복을 준비하셨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며 하필 왜 이 시간에 이 본문이 나왔는가? 요즘 우리 교회에 이상한 고난이 자꾸 있다. 팔 부러지고, 발목 삐고.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실 모양이다. 지금 보며 이상하게 그런 일들이 많다. 오늘도 보니, 렘넌트 하나가 붕대 감아서 왔는데, 흔들리지 않기를 축원한다. 이거 너머에 엄청나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 허락지 않으신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하나님이 다 아신다. 욥이 그것을 다 이길 믿음이 있는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시는 것이다. 내게 주신 사명으로 알고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경륜, 축복, 섭리 속에 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욥처럼 말로 하나님 앞에 불신앙 하지 마시고, 물질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나의 구속주가 살아계신다. 욥의 5가지 신앙처럼 든든하게 승리하시고 은혜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데 쓰임 받는 중직자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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