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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축복과 원리

조혜진 | 2015.12.06 13:45 | 조회 8862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여러분의 신앙고백대로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신 그리스도 누려지는 신앙생활 되기를 축원한다. 교회와 그 지체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받은 복을 지키는 싸움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것은 그것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라고 주신 명령이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성도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받은 복을 지키는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복음의 비밀을 누린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하신 평강을 사단이 뺏으려고 싸움을 걸 때 성도가 영적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성도의 첫째 미션은 신령한 복을 지키기 위해 영적싸움으로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닌 영적싸움 하는 사람들이다. 마귀는 100% 혈과 육의 싸움을 즐긴다. 혈과 육의 전쟁터로 성도들을 끌고 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한다. 마귀는 선악과 사건을 통해 인간을 더 이상 영적 존재가 아닌 혈과 육의 존재로 전락시켰다. 하나님은 네피림 사건 이후 “저들이 육체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성도가 영적싸움을 싸울 줄 모르면 늘 100% 마귀에게 이끌려서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운다. 그에게 남은 것은 좌절과 불안, 고통, 생존을 위한 맹목적 노고일 뿐이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혈과 육의 인간이다. 삶의 허무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으로 참 안식을 찾아 방황하는 인간의 노력이고, 진리도 진실도 아니다. 사도바울은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말하면서 영적 싸움을 말씀했다. 사도바울이 말한 영적싸움은 어떤 싸움인가? 창과 칼로 부딪히는, 사느냐 죽느냐, 일종의 생사가 걸린 백병전이다. 그 당시 검투사가 싸우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싸움이었다. 또 이겨도 져도 그만인, 하나마나한 싸움이 아니다. 성도들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영적싸움이다. 이겨도 져도 그만이라 하는 하나마나한 싸움이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 하는 싸움이다. 혈과 육의 싸움을 내려놓고 생명을 내놓고 영적 싸움 하는 그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성도가 혈과 육의 싸움에 모든 것을 소진했다? 그래서 영적 싸움을 싸울 줄 모르고 싸우지 않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승리하지 못하는 참된 이유는 진정으로 영적싸움을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져도 괜찮고 이겨도 괜찮은 싸움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 아니라 했다. 죽느냐 사느냐이다. 진짜 영적싸움 싸울 때에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비극은 영적인 일에서 일어난다. 육신에 미혹되어 영적인 것을 놓치는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 볼 때에 육신적으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했다. 왜 이스라엘이 노예가 되었는가? 고센 땅의 육신적 축복에 완전히 빠져 복음을 놓쳤다. 가나안땅을 생각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절대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 하셨다. 왜? 애굽은 발로도 물 댈 수 있는 풍요로운 땅이다. 그래서 절대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 하셨다.

오늘도 영적 실패의 핵심은 언제나 거룩에 대한 무지, 거룩을 지우려는 사단의 허물기 작전에 걸려드는 것이다. 거룩의 본질은 구별이다. 그것은 다름이다. 하나님이 왜 거룩한가? 우리 인생과 다르다. 하나님이 왜 거룩한가? 죄와는 전혀 상관없다. 하나님이 왜 거룩한가? 다른 신들과는 다른 분이다. 거룩의 본질은 구별이요, 다름이다.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두려움과 경외심의 원천이다.

오늘 레위기서에서 예배를 말한다. 예배는 하나님과 같음을 누리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다름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같음을 가졌었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소, 돼지, 다른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의 찬양과 예배의 관계를 가질 수 없다. 하나님과 같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같음이 있는 인간은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가 뭔가? 같음을 누리며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악과 보며 같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것이다. 같음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다름을 알아야 하는데, 창조주시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같음만을 알고 다름을 잊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움에 빠졌다. 같음만 강조하고 다름을 상실한 복음은 싸구려 복음이다. 그래서 거룩을 상실한 교회는 죽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강조할 것이 갈보리 십자가 언약이고, 사명으로 잡을 것이 하나님 나라 회복이다. 그 일 감당하기 위해, 그것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하나님과의 같음을 강조하고 다름이 누락된 복음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왜 예배를 드리는가? 하나님과 다름을 우리가 찾아야 하고, 거기에서 예배가 출발된다. 오늘은 레위기의 ‘예배의 축복과 원리’다. 구원 받은 자는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는 예배다. 출애굽기가 우리에게 구원을 말한다. 유월절 어린양 피를 설명한다. 출애굽기 끝나고 레위기는 예배를 말한다. 제사장이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피 언약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레위기는 예배의 중요성을 말한다. 성도의 영적싸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예배의 영적싸움이다. 악한 사단 마귀는 성도가 예배드리지 못하게 한다. 육신적인 것으로 예배를 뺏어가고 보이는 것으로 예배를 뺏어가고 먹는 것으로 예배를 뺏어 간다. 그래서 하나님이 히브리인들에게 “너희는 애굽에 가지 말라.”고 하신다. 고센 땅이 육신적인 것이 너무 풍부하다 보니 가나안 땅, 하나님 약속을 잊었기 대무이다. 그래서 차라리 바벨론에 포로 가서 70년 있다 올지언정 애굽으로 가지 말라하신다. 예배가 무엇인가. 구원받은 자의 대표적 행위다. 신앙생활에서 대표적 행위인 예배를 대강 드리면 영적싸움을 대강하는 자들이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시간이다. 그래서 삼2:30에 보면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하셨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같음을 주신 은혜에 다름이 뭔가를 아는 예배에 모든 것이 담긴다. 예배는 하나님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귀가 여러분에게 복을 못 받게 할 때 예배를 제일 먼저 방해한다. 예배가 방해받으면 ‘마귀가 벌써 축복을 방해 하는구나’하고 아셔야 한다. 예배 드리는데 방해 되는 것에 영적싸움 싸우셔야 한다. 늘 육신적인 것으로 영적축복 뺏어가는 것이 마귀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의 존재 목적이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성도의 존재 목적이 예배이다.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첫째. 구약의 예배 내용이다.

구약의 예배는 다섯 가지가 있다. 제사를 하나하나 드리면서 예배의 내용을 담아 놓은 것이 있다. 첫째는 번제, 둘째는 속죄제, 셋째는 화목제, 넷째는 속건제, 다섯째는 소제인 것이다.

번제는 완전한 제물 되신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완전히 영원한 제물 되신 것이 번제다. 십자가 지시고 나서는 다른 번제를 드릴 수 없다. 완전한 번제이기 때문이다. 번제는 제물 전체를 다 불태워서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제물이 되시고 영원한 제물이 되시고 단번에 드린 제물이 되시는 것이 번제다. 번제는 매일 하나님께 드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매일 받아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구원의 원리요, 단번에 완전히 영원한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말한다. 예배드릴 때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에 대해 완전한 제물이 되시고 영원한 제물 되셨다는 것이 늘 고백되어야 한다.

속죄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의미다.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늘 생각해야 한다. 속죄제는 의무제이다. 안 드리면 안 된다. 우리가 죄 갖고는 절대 하나님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돈 없어서, 육신적으로 가난해서 영적싸움을 지는가? 한국교회가 건물이 없어서 힘이 없나? 근본 문제가 짚어지지 않아서다. 구약에서 근본문제는 죄 문제, 하나님 떠난 문제, 사단 문제다. 오늘 다섯 가지 이 예배의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고, 죄와 저주 해결하고 넘어가게 된다. 구약에 보면 그래서 사건마다 예배드리고 피 언약 가지고 나간다. 속죄제는 의무제이다. 반드시 드려야 할 의무제다. 예배는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드려야 한다. 죄인은 반드시 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불신앙을 회개하고, 원망을 회개하고, 우상숭배 말씀 어긴 것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 회개한다. 속죄제는 의무제다. 죄인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화목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목을 말한다. 하나님 떠남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다. 그 원수 관계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화목제다. 하나님과 예배자의 화목과 화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화목의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화목할 수 없다. 원수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너희가 원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한다. 화목제는 그리스도와 화목하고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 요일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사단이 왜 악하고 독한가? 사단마귀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없지만 우리에게는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 하신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다.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은 나오는 것이 원망 불평이다. 제가 어디 갔는데 옆에 불신자가 통화 하면서 계속 욕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서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은 그 속에서 사랑이 나온다. 다른 사람 잘못을 보면 긍휼히 여겨지고, 불쌍히 여겨진다. 요일4:10에 ‘사랑은 여기 있는데 하나님께 있다.’ 한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 화목제물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 누리는 줄 믿으시기 바란다. 로마서를 쓴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을 보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느냐?’하고 5장에 ‘우리도 믿음으로 화평을 누리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화평을 우리가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화목제물을 나눠먹는다. 화목제 드리고 그 제물 가지고 제상장과 예물 드린 자가 나눠먹는다. 하나님 화평 속에 인간관계도 회복된다. 화목의 동기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화목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도 없다. [롬 5: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진노 아래 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한다. 오늘도 이 시간 하나님이 체험되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이 체험되고 화목의 삶이 체험되시기 바란다. 화목의 방법은 믿음 외에는 없다. 롬5:1에 하나님 앞에서 사는 길, 믿음으로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한다. 엡2:3에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화목의 범위는 한이 없다. 믿음 안에서 한이 없다고 말씀한다. 오늘도 예배드리며 하나님과 화목이 되고 하나님 사랑받는 성도들 되기를 축원한다.

속건제는 배상의 의미다. 속죄제는 의무제다. 예배는 반드시 드려야 한다. 속건제는 실수한 것, 특별히 범죄한 것, 하나님의 것을 손해 냈다거나, 성도들 것을 손해내면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 계산을 안했다거나 성도 간에 손해 끼치면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속건제 드릴 때는 5분의 1을 더하라는 것이다. 10만원 손해내면 12만원의 속건제 드리라는 것이다. 제물 되신 그리스도는 100퍼센트가 복음이다. 그러나 20% 넘치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 사실 안 삭개오는 ‘나는 4배나 더 내겠다.’ 한다.

소제. 예배 안에는 소제가 있다. 곡식을 드리는 예배다. 소제는 피 언약 없는 예배다. 감사의 예배다. 그래서 반드시 피 언약 제사와 같이 드린다. 피 언약 없는 소제는 기부나 종교행위 밖에 안 된다. 네 가지 피 언약 생각하면서 소제, 감사제 넘치기를 축원한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는 감사가 끊어지지 않아야 되는 것이 소제다. 번제 드릴 때, 속죄제 드릴 때, 화목제 드릴 때, 속건제 드릴 때, 감사제로 따라가는 것이 소제다. 헌금의 종류가 많다? 많을수록 좋다. 내 삶에서 이것저것 다 감사하고 많을수록 그것이 영적으로 승리하는 자의 삶이다.

둘 째.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할 예배

그러면 지금은 왜 양 잡고 소 잡고 안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영원한, 완전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배는 복음의 그림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다. 구약의 그 모든 제물이 희생제물 되시는 그리스도가 되시는데, 제물의 실체가 오셨기 때문에 구약의 예배를 안 드려도 된다. 신약에 와서는 어떤 예배를 드리는가. 예배의 정의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영으로 드리는 예배다. 진리로 드리는 예배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진리로 드리는 예배,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예배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그것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같다고 하는 것은 종교행위고 거기서 문제가 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배,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할 예배, 영적 교제 가운데 드리는 예배,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예배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생명 있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한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부활하신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배다. 아벨의 피 언약 있는 예배와 갈보리 십자가 능력이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에 중요한 것이 아벨의 피언약이 있는 예배다. 신약에 와서는 갈보리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있는 예배이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보내신 성령의 예배이다. 성령의 예배가 뭔가. 요4:24이다. 대표적이고 모델의 예배가 마가다락방 예배다. 갈보리 십자가 피 언약을 잡고 기도 속에서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배다. [행 2: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은혜교회 오신 성도님들, 한 분도 피 언약을 놓치는 분이 없기를 축원한다. 성령 역사가 체험되는 성도님들 되기를 축원한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교회 와서 예수는 믿지만 전부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다가 전부 진이 다 빠져버리고, 진짜 싸움은 싸우지도 못하고 마귀에게 백전백패한다. 영적싸움을 안 싸우니까 ‘편하다.’ 해서 전도 선교에 손도 못 대는 것이 한국교회가 아닌가. 한국교회가 유럽교회, 미국교회를 닮아가는 게 아닌가. 하나님과의 같음이 뭔가. 닮음의 하나님이 뭔가를 알아야 하고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영적싸움인 줄 알아야 한다. 그 싸움은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은 게 아니라 사는냐, 죽는냐가 달려있는 영적싸움인 줄 알고, 생을 걸고 싸우는 싸움이 되어야 한다. 그때야 흑암이 무너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할 예배, 성령이 함께하는 예배다. 예배드릴 때 제일 처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들을 불러서 오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내발로 온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부르심 속에’이다. 이방종교는 내가 찾아가야 한다. 귀신오라고 두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도저히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다. 예수님이 실패한 베드로의 현장, 갈릴리에 가셔서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셨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곳에 온줄 믿으시길 바란다. 예배 때는 언약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구약에는 반드시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간다. 구약의 예배 속에 피 언약을 가지고 나간다. 하나님 만나는 길, 저주 재앙이 넘어가고 사단의 역사가 꺾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분이 오셨는데 그리스도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모든 문제가 끝이 난다.

오늘 예배 때 하나님과 진정으로 통하시길 축원한다. 언약을 알면 하나님과 통한다. 성령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고 통하게 된다. 진짜 노름꾼은 노름꾼이랑 눈빛만 봐도 통한다. 그리고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과 통한다. 점치는 사람은 사람이 오면 반드시 통한다. 들어오기도 전에 누가 오는지 알고 통한다. 춤추는 사람은 춤추는 사람끼리 눈빛만 봐도 안다. 충청도 사람 느리다? 춤추는 사람은 말이 느려도 얼마나 잘 통하는지. 저는 안 가봤지만 카바레에 가면 눈빛만 봐도 다안다한다. ‘출껴?’ 하니 ‘혀?’ 하고는 일어나서 같이 춤을 췄다 한다. 한판 끝나고 ‘다 춘겨?’ 하니 ‘또 혀?’했다. 그러니까 통하는 사람끼리는 얼마든지 짧은 말 가지고도 통한다. 오늘도 언약이 있으면 ‘아버지’라고 한마디만 해도 통하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자녀는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한마디만 해도 아버지가 다 듣고 계신다. 미사여구를 쓸 필요가 없다. 성령이 통하니 그렇다. 성도 간에 복음이 통한다? 말을 안 해도 저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구나 안다. 어느 날 모이면 뜻이 통한다. 은혜교회 모든 성도님들 말씀과 기도제목이 통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기를 축원한다. 언약 있는 예배드려야 한다. 구약예배의 피 언약이 있는 예배고, 신약예배에 갈보리 십자가의 보혈이 있는 예배이다. 요4:24이다. 진리가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이 보내신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배가 바로 행2장이다. 성령이 역사하시니 3장에 현장이 두렵지 않다. 4장에 교권이 두렵지 않다. 5장에 교회 안에 시끄러운 문제, 그거 그냥 덮고 넘어간다. 서론에 매이지 않는다. 6장에 일꾼을 세워서 말씀, 기도에 전무하도록 만든 게 초대교회다. 오늘도 우리 은혜교회에 신약의 예배가 회복되기를 축원한다.

셋 째.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축복

제대로 드리면 예배시간이 생명이 역사하는 시간이 된다. 겔37:1-6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예배다. ‘에스겔아. 이 뼈들이 살겠느냐.’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말씀을 대언해라.’하시고 대언하니 살과 힘줄이 붙는다. ‘너는 생기를 대언하라’하셔서 대언하니 생기가 들어가고 뼈들이 일어나 큰 군대가 된다. 예배드리면서 예수 생명이 체험되기를 축원한다. 무능한 자들이 살아나는 것이 예배다. 베드로와 갈릴리출신이 얼마나 무능했는가. 그런데 예배와 기도 속에서 성령 충만하니, 그들이 살아나서 에스겔 47장의 예언대로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언약 있는 예배를 드리고 진정한 예배드리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뭔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예배드리는데 불이 임해 능력의 예배가 되고 450명의 바알 선지자를 물리치는 능력과 승리의 예배가 된다. 제대로 예배드리면 하나님의 치유를 체험한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영혼, 육신도 치유하시고 완벽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 예배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는다? 내 영혼과 마음에 치유가 나고, 어느 날 내 육신도 치유가 된다. 예배를 제대로 드린다?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예배를 제대로 드리는 사람이다. 제대로 안 드린다? 오히려 더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출15:26에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신다.

예배들 제대로 드린다?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비전이 보이고 소망이 보인다. 사6:13 다 망한 시대다. 하나님이 ‘십 분의 일, 남은 그것도 베임을 당하는데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거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하셨다. 예배드리면서 내가 살고 렘넌트들이 살아나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은혜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내가 은혜 받으면 ‘저 놈 안 된다.’하는 그 말이 끊어진다. 마기원 선교사님이 ‘아 나 정말 안 되는 사람이었다.’하셨다. 안될 때 성도들보고 사모보고 아들보고, 가보신분을 알겠지만 빈민촌들보고 ‘아이고 저놈도 안 된다. 전부 안 된다.’하셨다. 그런데 당신이 은혜 받고 나니 그 말이 꺾여졌다. ‘그래 나는 반드시 세계복음화 할 인물이다.’하고 그거 바꿨는데 그때부터 교회가 부흥하고 아이들이 살아나 사역자가 돼서 교회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예배드리면서 비전 찾고, 불신앙이 꺾이고 ‘우리 남편도 되고 아내도 된다.’하시면서 다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이러한 예배드리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신다. 요한복음에 여기저기서 말하신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는다 하신다. 그저 왔다가 가시는 분이 한분도 없기를 축원한다. 능력과 생명의 예배, 치유의 예배, 비전의 예배가 되어야 될 줄로 믿는다.

찬송 드린다? 찬미의 제사이다. 더 이상 소 잡고 양 잡을 필요가 없다. 히브리서이다. 찬미의 제사이다. 예배드리러 오는데 피언약이 없는 예배를 드린다? 종교인이 드리는 예배다. 예배드릴 때 항상 하나님 앞에서 피 언약이 있는 예배, 피 공로를 찬양하는 찬미의 예배를 드려라 하셨다. 구원의 은혜의 감격으로 늘 예배에 임하시길 바란다. 그거 놓쳤을 때 혈과 육의 싸움을 한다. 모든 것을 혈과 육의 싸움에 소진하고 어떻게 영적싸움을 이기는가. 그거 내려놓고 영적싸움을 싸울 때 정말로 하나님은 승리를 주신다. 기도제목, 보좌의 축복을 주신다.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다. 헌금은 감사제가 된다. 광고, 응답받을 기도제목이다. 축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장으로 가져가서 응답받으라는 것이다. 온전한 예배드리기를 축원한다. 다음 주부터 온전한 예배드려야 한다. 언약 있는 예배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배, 비전과 치유, 능력이 있고 생명이 역사하시는 예배이다. 겔47장에 마가다락방에서 실현되었듯이, 은혜교회에 다시 회복되어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 세계복음화의 축복누리는 귀한 성도님과 가정, 사업장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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