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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문제를 끊어라

조혜진 | 2016.01.31 13:47 | 조회 8586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 그냥 구호로 외치지 마시고 내 삶에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고 모든 문제 해결자로 고백되셔야 한다. 구호는 사상 밖에 안 된다. 신앙고백은 은혜로 되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한다. 은혜로 신앙생활하면 한계가 없는 신앙생활하게 된다. 은혜가 떨어지면 내가 해야 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매우 힘들다.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은혜를 잊어버리면 실제로 돌아야하는 삶이 광야 40년이다. 광야에서 40년을 왜 돌았는가. 사실 은혜는 받았지만 그 가운데 불신앙 체질들이 끊어지지 않아서 그렇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 전 인원을 점검해라. 20세 이상을 전부 헤아려보라.’ 하셨다. 헤아리니 60만이었다. 하나님은 40년 지나서 여호수아에게 다시 한 번 ‘20세 이상은 계수해봐라.’하셨다. 계수해보니 60만이었다. 40년 전 60만 하고 여호수아 때 60만하고의 차이가 무엇인가. 60만중에 모세 때는, 분명히 유월절 어린양의 피 바르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로 나와 가나안땅 앞에 섰는데 60만 중에는 불신앙이 있었다. 애굽 근성, 노예근성, 광야근성을 가지고 있는 60만이었다. 그래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38년 동안 다시 광야길 돌면서 불신앙을 전부 치유하셨다. 똑같은 60만인데 뭐가 다른가. 언약에 하나 되지 못하고 광야체질 가지고 따라가면서 모세를 원망한다. 돌 가지고 치려하고, 따라가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 두지. 왜 구원시켜 이처럼 고생하게 하느냐.’ 따라간다. 그런데 여리고 성 앞에서 선 60만은 어떤 60만인가. 완전 복음으로 무장되고 한사람도 불평하지 않는 60만이었다. 은혜교회 모든 성도님들 이러한 성도되기를 축원한다. 여리고성 와서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 성을 돌 때 들리지 말고 말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라.’ 한다. 일주일동안 여리고성을 도는데 한명도 불평하지 않는다. 우리 같으면 ‘이렇게 돈다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가.’ 한사람이라도 얘기할 건데 하지 않았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 바르라.’ 전부 피바를 때 역사가 일어났다. 여리고성을 돌 때 아무 말 하지 않고, 벱궤를 내세우고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불었다? 승리의 나팔이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는구나. 외치라.’ 할 때 일제히 외쳤는데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60만이 불평하지 않았다? 그게 기적이었다. 여리고 성 무너지기 전에, 원네스 되는 것이 기적이었다. 마가다락방에 120명이 모였는데 120명 전체가 성령 충만 받았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오늘 교회는, 복음에 원네스 되는 것이다. 교회는, 다른 것은 다 그냥 둬도 복음에 원네스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빨리 알아야 할 것은 복음의 흐름, 말씀의 흐름이 뭔가를 알아야 한다. 교회에서 한해에 주시는 메시지, 시대에 주시는 메시지, 더 올라가서 영원한 언약이 뭔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언약을 주셨다. 창3:15이다. 그때부터 계20장까지 이 언약이 아니면 살수가 없다. (창 3:15, 개정)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교회가 이것 말하지 않아서 큰 교회들이 분란 일어난다. 이거 말하지 않아서 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사단이 틈타는 교회가 되어서 한국 교회를 걱정해야하는 일이 일어난다. 오늘도 우리가 무슨 흐름을 타야 하는가. 복음의 흐름 속에 있기를 축원한다. ‘교회는 세상하고 다른 곳이구나. 방주구나. 세상에 떠 있지만 물이 들어오면 안 되는구나. 방주 속에 있으면 사는구나.’ 시대언약이다. 광야가면서 ‘성막을 만들어라.’ 시대언약이다. 가나안땅 들어가서는 다윗을 통해서 ‘성전을 지어라.’ 시대의 언약을 주시는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그 성전이 아니고, 이제는 성전 되시는 실체가 오셨는데 ‘내가 곧 성전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랴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오늘 이 시대에는 교회를 살려야 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이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사명인줄 믿으시길 바란다. 성도가 사명이 뭔지 알아야 한다. 주님은 주님이 가시고 나서 복음을 교회에 부탁했다. 그래서 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는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이것은 대단한 말이다. 아무리 배우고 지위, 학벌이 있고 출세를 해도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카이스트, 회장님도 자살하고 대통령도 운명이다 하고 자살한다. 그리스도를 알면 사주팔자가 완전히 바뀐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지옥, 죽음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 생명의 떡, 생명의 빛이다.’ 사망권세가 이미 완전히 박살난 줄 믿으시길 바란다. (고전 15:56-57, 개정)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근본문제가 해결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날 메시지 듣기 전에 늘 고백하는 것이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이다. 돈 버는 문제 건강문제가 아니고. 그렇다고 건강이 없어라는 게 아니고. 아들이 잘 되는 문제가 아니고 그리스도 때문에 내가 답 얻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내가 건강하고 경제를 가져야 한다. 내가 경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 상관없는 경제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 내가 60년 70년 80년 사는데, 그 사는 인생이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상관이 없으면 내 건강이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한절이지만 매우 중요한 말이다. 창3:15, 한 절이지만 그것은 창3장부터 계20장까지 영원한 언약이 된다.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14명의 사사를 초등학교 때 외우라 해서 외웠다. 우리 교육이 중요한거를 외우라 해야 하는데 14사사 안 외워도 상관없다. 렘넌트들에게 말한다. 목사님 자라날 때는 안 외워도 될 걸 외워라 했다. 한절만 제대로 알면 된다. (삿 21:25, 개정)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거 제대로 가르쳐줘야 하는데. 그리스도, 제사장 선지자 왕이다. 오늘 이 말씀이 뭔가. 왕 대신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으니 반복되는 실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말씀의 흐름을 잘 타라 했을 때, 영원한 언약되신 그리스도를 시대적으로 설명하는 언약을 주셨는데 바로 이것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다 끝나고 역사서에 들어왔다. 역사서를 한마디로 얘기하라하면 ‘역사의 주인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역사의 왕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왜 시종인데 그렇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는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알았다. 모세는 나이가 많았는데 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는가. 역사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시고 왕 되시는 하나님인줄 알았기 때문에 쓰임 받았다. 우리는 자꾸 복음하고 상관없는 얘기를 한다. 나이가 많다? 그러면 젊은 사람만 쓰임 받는가. 나이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쓰임 받는다. ‘나는 못 배웠는데?’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데, 그러면 많이 배운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가. 많이 배운 거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니체 목사 아들이지만 인간의 학문을 가지고 많이 배우니까 ‘신은 죽었다.’한다. 볼테르, 많이 배웠지만 성경을 알지 못하니 ‘백년 안에 성경을 없애겠다.’한다. 하나님은 볼테르가 죽고 나서 볼테르 집을 성경창고로 만들어서 수천 권을 저장시키셨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 보라고. 유리 가가린, 처음 우주인이다. 처음 공중에 날고 나서 ‘하늘에 하나님이 없다.’한다. 하나님이 그 것을 들으셨다. 그래서 최초 우주인이 비행기 사고로 죽게 된다. ‘나는 없습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나는 못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늘 말씀드리지만 헌금을 돈 많은 사람이 하는가. 헌금은 믿음 있는 사람이 한다. 건강한 사람이 예배에 꼭꼭 잘 드리는가. 건강한 사람은 ‘오늘 날씨 좋다.’하고 가고 결혼식이라 하고 간다. 아픈 사람이 더 예배를 잘 드린다. 오늘 잘 아셔야 한다. 한마디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가. 성경에서 중요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시기를 축원한다. 역사의 주인공, 다스리는 분이 왕이다. 하나님이 왕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부터 시작해서 에스더 에스라까지 전부 역사서이다. 역사서는 한마디로 ‘이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사실 놓칠 때 성도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사기의 특징이 뭔가. 반복되는 실패다. 우리 신앙생활에 반복되는 실패가 있다. ‘왜 나는 자꾸 이런가.’ 답을 내셔야 한다.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면 어느 날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나와 ‘살려주십시오.’하고 기도하고 ‘경제를 주십시오.’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다. 경제를 주신다. 경제 받고 대부분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그다음에는 안일해진다. 그 다음에는 나태해진다. 안일하고 나태에 빠진다. 죄의 유혹을 받는다. 그래서 또 죄를 짓는다. 구원받은 사람이 죄를 지면 괜찮은가. 구원받은 사람이 죄지으면 분명히 고통이 온다. 죄는 지었는데 내가 아무런 감각이 없고 고통이 없다? 마비된 것이다. 더 큰 무서운 질병이고 더 큰 영적인 병이다. 내가 죄를 지었다? 아픔, 고통이 와야 정상이고 하나님의 자녀다. 내가 죄짓고 돈 벌고 마음대로 하는데도 잘된다? 히12장 사생자다. 신학적으로 유기, 하나님이 버린 상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늘 간섭하신다. 고통이 오니 ‘하나님 살려주세요. 응답해주십시오. 문을 열어주십시오.’하고 하나님이 구원시키시고 응답하신다. 응답받고 또 나태하고 죄짓고 또 고통오고 또 부르짖고 하는데 사사기에 7번 일어난다. 사사는 14번 일어났지만 사사기의 문제는 7번 계속 일어난다. 7번 계속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고 간구하고 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니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그런데 또 가나안땅에 우상을 섬기고 따라하고, 가나안 족속의 음란을 따라하고 제사 지내는데도 참석하고 해서 고통 받으면 또 부르짖고 한다. 순환적으로 7번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이니까 그들의 음성을 듣고 그들을 구원해주신다. 마지막 결론이 뭔가. ‘그때에’ 언제인가? 7번 동안 악순환이 되어 지고 계속적으로 실패한 ‘그때에’이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이스라엘에 없었을 때이다. 왕이 있을 때는 다윗 왕 시대이다. 하나님이 왕이라는 것을 제대로 안 왕이 누군가. 다윗 왕이다. 하나님이 왕이라는 지도자가 없었다. 모세,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가 없어서 이런 일이 났다. 사사들은 임시로 그 지역에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한분, 한분 세워서 지나왔다.

첫 째. 반복적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가?

한국과 세계 교회사를 보며 반복적 실패의 원인의 답이 나온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이다. 창3장 그게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창3장은 무슨 문제인가? 나 중심의 신앙생활이다. 교회 와서 말씀의 흐름은 나와 상관없다. 나 중심의 신앙생활 한다. 내가 잘 돼야 하고, 내 중심의 지교회가 돼야 하고, 내 중심의 교육기관이 돼야 하고, 내가 장로인데 장로 중심의 무언가가 되어야 하고. 그것이 나중심의 신앙생활이다. 가나안 땅 왔으면 정복에 Oneness가 되어야 하는데 12지파에게 전 지역을 주셨다. 그러면 그 지역을 미션으로 점령해야 하는데, 전체 하나로 점령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내 지파 중심, 나 개인 중심이다. 반복적인 실패의 원인은 창3장, 6장, 11장. 내가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끌어들이는 것, 그게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이다. 다락방 단체가 힘 있는 것은 복음의 Oneness다. 자기 교회 뿐 아니라 세계 선교한다하면 거기 Oneness 된다. 다민족에 Oneness 된다. 우리 은혜교회가 힘 있는 것은 복음에 하나, 방향에 하나 되기 때문이다. 1 차 전도 집중 신학원을 하면서 강사들이 한 결 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다. 저도 인사치례와 진짜는 구분할 줄 아는데, “은혜교회에 집중 신학원 해보면 정말 좀 다른 것이 있다.”고 한다. “영적인 안정감의 파워가 있다”는 이야기를 오시는 강사들마다 한다. 잘 못했다는 말 보다는 듣기 좋았다. 오늘도 우리는 이 일에 꼭 Oneness 되기를 축원한다. 복음의 Oneness 되고, 교회 전체에 Oneness 되고, 세계복음화에 Oneness 된다.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끌어들이는 것, “탐심이 곧 우상숭배니라” 한다. 나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 내 이익과 탐심을 채우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가? 내 탐심 채우기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우상이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앙이 변질되는 것이 반복되는 실패다. 사사기 17 - 20장 보면 신문에 나오는 추악한 일이 벌써 그 당시에 일어난다. 지금 교권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 미가라는 집에 레위 청년이 있는데 레위인은 제사장 계열이다. 미가가 레위 청년에게 “너 우리 집에 와서 제사장 해라. 내 말 듣는 제사장 해라. 우리 집에 복주는 제사장 해라.”한다. 그래서 그 레위인을 제사장 삼고, 에봇을 짓고, “우리 집을 위해 뭐 해라.” 이것이 바로 탐심에 의한 신앙생활이다. 그런데 단지파가 지역 정복 못하고 다니다가 미가의 집에 가니, 제사장이 하나 있다. 그래서 “너 그 한 집의 제사장 하는 것보다, 우리 지파의 제사장 하라.”한다. 이익이 되니까 이 레위인이 또 간다. 그다음에 또 사건 터지는 곳마다 제사장 레위인이 있다. 레위인이 첩을 데리고 다니다가 첩이 강간당해서 시체를 토막 내어 전 이스라엘에 보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해서 보니 베냐민 지파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를 싹쓸이 죽여 버린다. 그러다 나중에 베냐민 지파가 없어지면 안 되겠다 하고 보호한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에서 나온 사울이 “나는 가장 작은 지파인데 어떡하겠느냐.”한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 왕이 되겠느냐.”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사기 마지막에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을 아는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

신앙의 변질이 뭔가. 신앙과 주술이 혼동했다. 미신적인 요소가지고 신앙인 줄 안다. 올바른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붙들고 살아가는 것인데, 그들의 신앙은 ‘저주 아니면 축복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한다. 변질된 신앙이 뭔가. 하나님과 우상을 혼동한다. 미가처럼 ‘우리 집에 와서 해라.’ 한다. 부패한 본성을 유전 받은 인간은 가시적인 것은 쉽게 믿고 하나님도 보이는 것으로 믿는다. 예배를 형식적인 것, 의식적인 것을 참석하는 것만으로 생각한다. (요 4:24, 개정)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진짜 예배가 뭔가. 언약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 부활하신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영이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줄 믿으셔야 한다. 그게 교회다. 믿은 사람들에게 주의 성령이 역사하는 게 교회다. 구원받은 자는 성령이 역사하시는데, 성령 내주하시는 것이 구원받은 자다. 우리가 반복적인 실패의 원인이 뭔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생활을 한다. 오늘, 내일 실패하고 어느 날 하나님이 응답을 주셨는데 응답을 붙들고 안일하다가 또 실패한다. 우상과 하나님은 다르다. 예배의 의식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다르다.

복음이 아니면 외형적인거 보고 겁을 낸다. 복음 있을 때는 여리고성을 돈다. 복음 놓치고, 하나님이 주인이고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으니 가나안 땅에 철병거가 보이기 시작한다. 광야에서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기를 다루는 문화가 없다. 사사기에 이스라엘백성이 농사를 지으려하면 곡괭이 낫을 하나 벼르는 것도 블레셋에 내려가야 한다. 철이 없다. 칼도 없다. 요나단, 사울이나 칼을 가지고 있을까 몰라도. 다른 사람은 칼도 없을 정도로 철기문화를 다룰 수가 없었다. 복음가지고 있으며 승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하는데 하나님을 놓치니 철기문화가 보이고 ‘우리는 약하다.’한다. 이게 기드온이다.

둘 째. 하나님이 왕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돈이 아니고, 세상 지위가 아니고, 출세가 아니고, 하나님이 왕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이 한 절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서 전체에서 가장 우리에게 짚어 주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왕이 될 때에 너희는 승리한다.”는 것이다. 사사시대의 문제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한다. 그래서 사무엘상 1 - 5장 가면 그 때도 사사시대다. 왕을 세우기 전까지는 사사시대다. 사무엘도 사사로서 활동을 했다. 그 대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말했다. “ 이방인 같이 우리도 왕을 세워 주십시오.” 그래서 사무엘이 섭섭해 한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네가 왜 섭섭해 하느냐. 저들이 내가 왕 되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다.” 하셨다. 성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않고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해서 신앙생활이 자꾸 실패한다. 신약 말로 성령인도를 안 받는 것이다. 이방인과 같은 왕을 세우면 그들이 너희 자녀를 종으로 삼고 너희에게 군림하고 너희가 애굽 같은 생활을 한다고 말씀한다. 그래도 이방인 같은 왕을 세워달라고 한다. 골리앗같이, 저 아비멜렉같이 키가 크고 장대하고 폼 나는 그런 왕을 세워 달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을 세운 것이다. 사울보다 더 큰 골리앗이 나타나니까, 육신적인 기준이 된 사울이 골리앗이 나타나니 꼼짝을 못한다. 하나님이 누구를 세웠는가? 기름 부은 다윗을 세웠다. 다윗은 육신적 기준의 사람이 아니라 언약의 사람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인 것을 아는 사람이다. 단번에 골리앗을 꺾었다. 불신자의 기준 말고 하나님이 왕 되시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한다. 왜 자꾸 반복되는 실패 하는가? 하나님이 왕이 아니고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면 내 부족함이 문제가 안 된다. 그게 사사다. 옷니엘, 모세와 여호수아에 이어서 자기 삼촌이 갈렙인데 그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런데 옷니엘 자기는 너무 작다. 그런데 여호와의 신이 옷니엘에게 임하니 현장의 문제를 해결한다. 오늘 우리는 어떤 분이 위대하고 커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문제를 해결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삼갈, 사3장 31절이다. 이름이 술 따르는 자이다. 얼마나 부족하겠는가. 그런데 여호와의신이 그에게 임하니까 소모는 막대기로 600명을 해치우는 삶을 산다. 블레셋 사람 600 명을 이긴다. 술 따르는 자, 얼마나 부족한가. 그런데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시니 이긴다. 드보라, 여자이지만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한다. 얼마나 남자가 못했으면 하나님이 여자를 사사로 세워 문제를 해결했겠는가. 기드온, 나무 자르는 사람이다. 기드온은 처음부터 용사가 아니었다.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큰 용사여” 하니 “내가 무슨 용사입니까.” 한다. 미디안이 곡식을 훔쳐 갈까봐 포도주 틀에서 숨어서 타작한다. “하나님, 우리가 무슨. 조상들은 그랬는데 우리는 왜 이렇습니까?” 불평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하셔서 미디안 군대를 물리친다. 이름의 뜻이 나무 베는 자다. 오늘 사사시대를 보면 사사들은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전부 연약한데 여호와의 신이 임하니까 소모는 막대로 블레셋 600명을 해치우고,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겁쟁이가 3만2천명은 보내고 300명으로 미디안을 해치운다. 에훗은 왼손잡이인데 이 부분은 장애인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가 엄청나게 큰일을 한다. 모든 대적을 물리친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삶을 살기를 축원한다. 내가 뭘 놓쳤는가? 내가 왜 반복되는 실패를 계속하는가? 하나님이 왕 되시는 삶을 살지 않는다.

셋 째. 나실인을 키워라.

반복되는 일곱 번의 재앙, 악순환 끝내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게 나실인이다. 반복적인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나실인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사사가 사무엘이다. 사무엘이 나실인으로 자라니 사사시대의 반복되는 문제를 끊고, 미스바 운동을 하고, 다윗을 세우고, 가나안 모든 땅을 정복하는 축복에 들어온다. 복음에 한을 가진 한나. 오늘 내게 한이 오는 일들이 있는가? 반복되는 실패가 있는가? 복음에 한을 가지고 가정의 나실인, 교회의 나실인 키우기 바란다. 하나님이 그저 미워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다. 일곱 번의 반복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나실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응답받고, 잊고, 나태하고 그것을 계속하며 400년 역사에 하나님이 주신 답이 나실인이었다.

삼손 나실인이었다. 사무엘도 나실인이었다. 삼손은 나실인이면서도 반복적 실패를 계속한다. 사무엘의 다른 점은 성전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법궤 옆에서 자라고 불을 끄지 않았다. 렘넌트라는 말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이다. 오늘 우리 은혜교회에 나실인 언약 잡기를 축원한다. 오늘 이 시대에 교육에 대해 얼마나 중요한 말이 많은가? 그런데 교회가 잠자고 있다. 렘넌트가 교회가 익숙해야 한다. 법궤 옆에서 자고 성전 생활이 익숙해야 하고 불 끄지 않는 것이 익숙해야 한다. 삼손과 사무엘. 똑같은 사사이고 나실인인데 사무엘은 법궤 옆에서 잔다. 말씀 옆에서 자고, 기도 할 줄 아는 것, 교회가 익숙한 것이 다르다. 모든 교육기관 언약 잡기를 축원한다. 그래서 유아 선교해야한다. 어릴 때부터 불신자에게 맡기지 말고, 교회에 와서 복음으로 무장하고, 사무엘이 나와야 한다.

세상 현장에서는 다윗이 만들어져야 한다. 믿음 있고 실력 있는 자들이 일어나야 한다. 훌륭한 목사도 나와야 되지만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성막에서 자란 사무엘, 이 사실을 안 다윗, 나실인. 나 때문에 우리 가정도 교회도 살려야 하는 것이 나실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간다. 하나님의 사람인 나실인이 나올 때 민족까지 바뀐다. 오늘도 우리가 누구를 키워야 하는가? 나실인을 키워야 한다.

결 론

나 중심의 신앙생활. 되는 것 같지만 어느 날 또 무너진다. 복음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잡는데 절대 목표다. 멸망 받지 말고 구원 받으라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역사의 왕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 만나는 길이다. 죄 저주 속에서 이 문제 해결 하는 것이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왕으로 아는 왕이 일어나는가에 따라 역사가 바뀐다. 내 생애 속에 주님이 주인 되시고 주님의 다스림 속에 있기를 축원한다. 그것을 우리말로 하면 성령인도다. 복음을 정확하게 알면 영적 DNA가 바뀌다. 그러면 참 성공한다. 교회에 대한 목표가 참 헌신이다. 롬 16장 같은 인물 난다. 그게 나실인이다. 온 교회의 식주인은 나실인이다. 보호자, 동역자, 식주인은 나실인이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가지고, 이제는 더 반복되는 실패를 끊고, 승리하는 증인의 삶 살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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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삼하 7 : 8 - 17] 다윗의 관심과 승리비결 첨부파일 2016-04-03 문서 - mp3
35 [눅 24 : 44 - 49]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첨부파일 2016-03-27 문서 - mp3
34 [요 19 : 28 - 30] 십자가의 그리스도 첨부파일 2016-03-20 문서 - mp3
33 [삼상 1 : 9 - 18] 위기시대와 하나님의 방법(나실인) 첨부파일 2016-03-13 문서 - mp3
32 [룻 1 : 1 - 5, 15 - 18] 우리의 기업 무를 자 되신 그리스도 첨부파일 2016-03-06 문서 - mp3
31 [행 2 : 37 - 47] 회복해야 할 참 교회 모습 첨부파일 2016-02-28 문서 - mp3
30 [빌 1 : 12 - 26] 믿음의 진보를 이루는 삶 첨부파일 2016-2-21 문서 - mp3
29 [행 1 : 1 - 11] 하나님이 여시는 선교시대 첨부파일 문서 - mp3
28 [삿 6 : 11 - 24] 믿음의 큰 용사 첨부파일 2016-2-7 문서 - mp3
>> [삿 21 : 25] 반복되는 문제를 끊어라 첨부파일 2016-01-31 문서 - -
26 [수 6 : 1 - 11] 여리고를 무너뜨린 기도 첨부파일 2016-01-24 문서 - mp3
25 [수 2 : 8 - 21]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결단 첨부파일 2016-01-17 문서 - mp3
24 [수 1 : 1 - 9] 오직 강하고 담대한 제자 첨부파일 2016-01-10 문서 - mp3
23 [딤후 2: 1 - 13] 은혜 속에서 강하라! 첨부파일 2016-01-03 문서 - mp3
22 [창 37 : 1 - 11]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다. 첨부파일 2015.12.27 문서 - mp3
21 [신 33 : 26 - 29] 너는 행복한 자(이스라엘) 첨부파일 2015-12-20 문서 - mp3
20 [민 14 : 4 - 10]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 받은 성도 첨부파일 2015-12-13 문서 - mp3
19 [레 1:1-9] 예배의 축복과 원리 첨부파일 2015-12-06 문서 - mp3
18 [요 15 : 1 - 12] 참 포도나무 되신 그리스도 첨부파일 문서 - -
17 [롬16;1-5] 복음 가진 모델 산업인 2015-11-29 - -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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