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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믿음의 큰 용사

조혜진 | 2016.02.07 13:23 | 조회 9462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지금 이 시간부터 아무 걱정 염려 근심하지 않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끝’했으면 실제로 염려하지 말기를 축원한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인데, 영어 선생님이 실력이 있었다. 실력 있었는데 영어시간에만 들어오면 늘 하는 말씀이 ‘교회가지마라 교회는 싸우는 곳이다.’ 늘 얘기한다. 그분 어머니가 대구에 유명한 교회 권사님이었다. 이분이 자라면서 교회가 싸우는 것을 보았다. 이분 마음에 ‘교회는 싸우는 곳이다.’ 들어가서 학교 와서 영어만 가르치면 좋겠는데 아이들에게 ‘교회를 싸우는 곳이다.’ 자꾸 말하는데 믿는 저로써는 듣는 것이 괴로웠다. 지금 생각하니 그분이 어릴 때부터 교회 다녔는데 복음을 알지 못했다.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 교회 가서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은혜 받지 못하고 교회 와서 한 시간 예배드리고 가는데 자기는 그것이 죽을 지경이다. 오늘도 이 일들이 반복된다. 우리가 복음알지 못하고 성경을 계속 보면 율법주의자가 된다. 바리새인이다. 사람들에게 ‘내가 잘 믿는다.’ 보여 지기 위해서 경문을 차고 다니고 사람들 보는데 가서 서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남을 정죄하게 되고 정죄하다가 보니 자기는 정죄당하기 싫어서, 자기가 옳게 보이기 위해서 살아가는데 경건으로 나타나야 하니 외식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회칠한 무덤이다.’ 경고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복음을 모르고 신학공부를 했다? 박사학위는 받을 수 있다. 신학교 교수는 될 수 있다. 교회에서 목회 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 모르고 그렇게 했을 때 자기가 쌓아온 바벨탑이 되어 한순간 무너진다. 이번에도 뉴스에 나오는 신학박사라는 분이 그런 분이다. 오늘날 교회는 사사기처럼 어제 있는 거 오늘 또 일어나고, 반복되는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 한국교회이고 세계교회다. 무엇을 말하는가. 은혜의 복음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한다. 복음은 그냥 복음이 아니라 은혜의 복음이고 우리가 무엇해서가 아니다. 인생 문제는, 영세 전부터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복음을 예비하셨고 오래된 문제로 가문과 내 개인에게 문제가 닥치는데 끊을 수가 없다. 교회에 왔는데 원죄 문제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자 범죄가 그 뿌리인 것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 그 한분이 모든 문제 해결했다는 것을 듣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했다. 교회 와서 은혜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문제된다. 이것을 봐도 문제되고 저것을 봐도 문제가 된다. 이 시람 바도 문제되고 저사람 봐도 문제가 되어 내게 상처가 된다. 심지어 그날따라 싸우고 했던 사람이 파마를 예쁘게 해오면 ‘왜 저래 예쁘게 해왔는가.’ 한다. 교회 와서 은혜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문제 된다. 성도가 은혜 받으면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은혜 받으면 그분이 긍휼히 여겨지고 그분을 도와주겠다한다. 기도 속에서 그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는 왜 교회 다니는 사람이 실패하는지를 알았다. 복음에 기준을 두지 않아서 이다. 복음은 어느 날 체험 했는데, 기준이 복음에 두지 않아 사사기 시대가 계속 온다. 이 문제, 저 문제가 온다. 알아도 대충 알면 또 문제 속에 휩쓸리게 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왜 불신자보다 힘이 없는가. 말씀성취를 체험하지 못했다. 교회 왔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하셔서 나실인처럼 ‘목사 되어야 하는구나.’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목사님의 설교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적어도 저는 적기 시작했다. 왜 그런가. 써먹기 위해서다. ‘이렇게 설교를 하는구나.’ 참고로 써 먹기 위해서, 다음에 설교하기 위해서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 말씀이 성취되고 답이 되어야 하고 나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써먹기 위해서 제가 적었다.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말씀으로 체험되기를 축원한다. 그래야 현장 가서 이긴다. 뭐 가지고 가서 현장을 이기겠는가. 행13장 역술인 행16장 귀신들린 사람 행19장 우상의 전각이 있는데, 흑암이 있다. 사람이 그것을 이길 수 없어서 모든 세상 사람이 종이 되어있다. 불신자가 왜 점치러 가는가. 국회의원이 왜 점치러 가는가. 별 4개 단 사람이 왜 점치러 가는가. 자기들 문제를 자기가 해결할 수 없어서 종이 된다. 성도가 왜 힘이 없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지 모른다. 기도하면 응답이 오는지 모른다. 우리의 만남이 축복된 만남으로 주시는지를 알지 못했다. 교회 와서 인간관계나 그 모든 것에 갈등이 온다. 성도가 예배를 놓친다? 모든 축복을 놓친다. 기드온이 오늘도 예배를 드린다. 예배에 응답 받는다. 기드온은 너무 약한 사람인데 예배에 응답받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대로 큰 용사가 되었다. 오늘 성도는 큰 용사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하나님이 성도를 큰 용사라 하신다.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염려, 근심 걱정하지마라.’ 늘 그렇게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때부터 군사라 하셨다. 은혜교회 모든 성도 분들, 영저 군사가 되기를 축원한다. 경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농부, 씨를 뿌리고 응답받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복음을 알아도 예배축복을 놓치면 다 놓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끝내셨는데, 선포되는 말씀이 이루어지고 그거 붙잡고 기도해서 힘과 능력 받아야 하는데 왜 반복문제가 계속 일어나는가. 예배축복을 놓쳐서 그렇다. 당연히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 힘이 없으니 신앙생활이 어떤가. 죽을 맛이다. 우리가 복음 중심이 아니면 돈 있어도 어느 날 근심, 걱정이 된다. 내가 복음중심이 안되면 많이 배웠는데, 많이 배운 것이 내게 문제를 가져온다. 오늘 한국교회에 신학박사의 문제가 교수나 목회하면서 다른 것이 중심되어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다. 그것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갈수록 중직인데 무거운 중직이 된다. 돈을 벌어도 내 것이 아니다. 애굽에서 일한 거처럼 노예생활이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이지 않고, 어느 날 근심 걱정이 되는 물질로 바뀐다. 대부분 복음 없이 성경 읽고 복음 없이 예배드리고 복음 없이 교제하고,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의 신앙생활이다. 신앙생활 할 때 한 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하나님의 소명을 듣지 못했고 한 번도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다.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축원한다. 한번만이라도 음성을 들으면 내 신앙생활이 바뀐다.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셨다? 기도자리에 분명히 나온다. 기도자리와 예배자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사람들 말에 절대 속지 않기를 축원한다. 사람들 말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믿음의 말과 불신앙의 말을 똑같이 들으면 뭐가 믿어지겠는가. 불신앙의 말이 믿어진다. 논리적, 이성적이고 상황에 맞는 말이고 그게 더 맞는 말로 들린다. 믿음의 말은 황당해 보인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참고로 하시기를 바란다. 불신자, 전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전부 거짓말을 한다. 종교인들, 전부 고통당한다. 저는 봤다. 절을 세우신 분을 봤다. 성철이란 분 밑에서 3개월 동안 훈련받은 분을 봤다. 나중에는 거짓말인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제가 기도배경 속에 대만을 갔다 왔다. 대만 선교사님은 잘되든 못되는 상관이 없다. 제가 보니 뚝심 있게 지속했는데 하나님이 증거를 주신다. 처음에 잘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복음으로 잘된다? 나중에는 안 되고 선교사님은 떠나가게 된다. 숫자가 적어도 복음으로 바로하면 시간표대로 하나님이 증거를 주신다. 어느 절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절 주지가 들어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 버렸다. 그래서 절에다가 한쪽 공간을 예배당으로 만들어놓고 ‘일주일에 한번 와서 복음을 전해 달라.’한다. ‘내 만 들어서는 안 된다.’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중들도 들어야 한다.’하고 3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다. 할렐루야. 종교인들, 갈수록 고통당한다. 교인들, 복음모르고 신앙 생활한다? 90프로 이상 어려움을 당하고 힘들다. 사사기, 뭐를 얘기하는가. 은혜로 구원받아 가나안땅에 들어왔다. 예배의 축복을 누리고 천명 사명 소명을 붙들고 자기 지파에게 주신 언약을 붙잡고 그 지역을 정복해야 하는데 정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문화에 휩쓸려 들어간 게 사사기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키셔서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울 때마다 사사를 일으켜 문제를 해결하셨다. 교회도 보면 어려울 때마다 믿음의 사람을 일으키셔서 문제를 해결하셨다. 천명 사명 소명을 가진 중직자와 모든 성도님들 되기를 축원한다. 누구를 쓰셨는가. 용감한 자인가? 아니다. 때로는 약하고 ‘나는 못하겠다.’고 하고, 때로는 장애다 하는데 들어 쓰셨다. 강한 자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서다. 오늘도 기드온, ‘므낫세 지파 중에 나는 약한 자입니다.’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약한 자에게 ‘큰 용사여 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쓰시는데 3만 2천명 중에 2만 2천을 돌려보내시고 만 명이 있으니 ‘만 명도 많다. 다 돌려보내라. 강에 가서 물을 먹여 보라.’하셨다. 9천 700명은 그냥 입을 강에 대고 벌컥 마신다. 300명은 물을 손으로 움켜잡고 적을 바라보면서 먹는다. 누가 용감한가? 그냥 물먹는 사람이다. 손에 움켜잡고 먹었다는 것은 겁쟁이다. 하나님이 겁쟁이 가지고 미디안을 처벌하셨다. 성경을 못 보면 300명이 군인답다 하는데, 아니다. 하나님이 겁쟁이인 그들을 가지고 미디안을 격파한다. 세상 적으로 건강하고 똑똑하다? 그분이 쓰이는 거 아니다. 그분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사사, 모세를 쓰실 때마다 약한 사람이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세상기준을 가지고 일 하지 마시고 사사기, 반복되는 실패 속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사람들 말에 속지 말고, 지금도 불안 초조 두려움 원망하는 것은 사단이 주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이래서 되겠는가?’ ‘우리 교회는 부자가 없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부자는 없지만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감당하도록 하신다. 집중신학원에 포럼하시는 분들, 저는 가만히 보면서 ‘그렇구나. 믿음이 있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돈이 있는 게 아니라 믿음이 있으면 큰 용사가 되는구나.’ 했다. 우리교회를 불 때 사람의 눈, 지식의 눈으로 보지 마시고 믿음의 눈으로 보시기를 축원한다.

첫째. 교회 와서 꼭 체험 할 것이 있다.

복음 체험, 그리스도 체험, 말씀 기도, 전도 체험이다. 은혜교회 와서 복음 체험하기를 축원한다. 그게 안 되면 시간 갈수록 내게 문제가 오고 갈등이 된다. 복음 체험해도 복음 기준 아닌 분 있다. 하나님 방법 아니라 내 방법으로 하고, 내 중심의 신앙생활 하고 반복되는 꾀를 쓰고 인본 쓴다. 그것이 반복되는 실패의 삶이 된다. 은혜교회 왔다면 꼭 한번은 복음체험 해야 한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인생 모든 문제 끝이다. 이것이 체험되어야 한다. 말씀성취, 기도응답, 전도축복,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심이 체험되어야 한다. 차를 타고 가도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 전도 현장가도 ‘성령이 인도하신다.’ 사업하러 누구 만나러 가도 ‘이 분을 나에게 맡기셨는가, 안 맡기셨나.’하고 만남의 축복 체험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전도가 어떤 것인가 체험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체험하지 못해서 힘이 없다. 예배드릴 때, 그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의무를 다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신자도 귀신 체험 하는 사람은 다르다. 진짜 귀신 들린 사람은 영발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한다. 초대교회가 왜 힘이 있는가? 사도행전의 베드로는 무엇이 다른가?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는데 그것이, 욜2:28 예언된 것이, 베드로에게 체험된 것이다. 교회 와서 다른 것 체험하지 말고 복음과 성령의 능력 체험하기 바란다. “목사님 그런데 저는 왜 이 문제에 이렇게 힘이 듭니까?” 아브라함에게 그 때가 바로 하나님 음성 들을 때다. 모세에게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 체험할 시간표다. 기드온이 “우리를 인도한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홍해와 광야길 역사가 어디 있습니까?”하는 이때가 하나님 음성들을 시간표다.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천명 소명 체험하지 못하고 힘이 없다. 성경을 보면 가장 힘들 때, 가장 약할 때, 가장 낙심 될 때가 하나님을 체험할 때라고 말씀한다. 아브라함이 75세가 됐는데 아무 낙이 없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너는 복의 근원이다. 한 민족을 이룰 것이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고 천명과 소명과 사명을 주신다. 그 때부터 아브라함의 인생은 기쁨과 즐거움과 소망의 인생이 된다. 오늘도 낙심되는가?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축원한다. 모세가 80세가 되었다. 이제 아무 소망이 없다. 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떨기나무 불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고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라.”하셨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베드로가 며칠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그 밤에도 한 마리를 못 잡았다. ‘이상하다. 내 경험에서 이런 일은 없었는데.’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힘을 얻는다. “너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 때부터 인생이 바뀐다. 한 번은 꼭 내 인생에 하나님 음성 듣기를 축원한다. 천명, 소명, 사명을 들어야 한다. 저는 오랜 신앙생활에 한 번도 하나님 음성을 못 들었었다. 목사 되려고 필기했지 하나님의 말씀 성취되는 것을 한 번도 못 느꼈었다. 은혜 못 받았다는 건 아니다. 이런 신앙생활로 기드온처럼, 사사기의 모든 히브리인들처럼, 힘이 없는 백성이 된 것이다. 이 때 나타나셔서 “큰 용사여” 하셨다. 가만히 생각하니, 기드온은 큰 용사는 고사하고 겁쟁이 중의 겁쟁이다. 미디안이 올라오고 추수할 곡식 타작하면 뺏어가니까 소문 안 내려고 포도주 틀에서 타작 한다. 겁쟁이 중의 겁쟁이다. 이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큰 용사여 이 백성을 구하라.”하시니 “내가 어떻게 합니까?”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하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비밀 누리는 것이 큰 용사다. 누가 용사며, 큰일을 하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사실을 알면 큰 용사가 된다.

교회 일 하는 것은 믿음 있는 자가 한다.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불신앙 할 때 왜 하는가? 교회 다니는 자가 하나님 존재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약속이 안 믿어진다. ‘글쎄, 무슨 세계복음화를 하겠는가? 내가 무슨 중직자가 되겠는가?’ 아브라함도 불신앙 했다. 모세도 불신앙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간다. 창12:1-3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을 하셨고, 모세를 보내 구원해 내시고, 그 약속 이루려고 여호수아 세워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고, 12지파에게 땅을 줬는데 불신앙했다. 가나안 땅 정복해야 하는데 문화에 휩쓸린다. 설은 좋은 날이지만 그 영적 문화에는 휩쓸리지 않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 왜 가나안 땅에 가면 전부 몰아내라고 하셨는가? 영육간의 간음이다. 가나안 우상 섬기는 것은 영적 간음이고 그 제사는 육신적으로도 혼음과 관계있다. 성도의 정체성은 거룩이다. 성도가 거룩을 잃으면 불신자와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이기는 비결은, 불신자와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영육간의 간음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그들의 문화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약속에 대해 신실해야 한다. 약속을 놓치면 상황은 엄청 커 보인다. 약속 놓치면 미디안 숫자가 커 보인다. “우리 가문은 왜 안 믿는 사람 수가 많은가?” 하는데, 한 사람만 믿어도 그 가문의 오래된 것이 무너진다. 여러분 때문에 그 가문 구원하려 하는데, 하나님 한 분이시면 세계를 뒤집고도 남는다. 아브라함을 불러서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 받게 한다.” 하신다. 나를 통해 이 가문 복 받게 하려고 불렀는데 내가 불신앙 하면 문제다. 그래서 “기드온, 네가 이 문제 해결해라.” 한다. 항상 주님의 말씀 기억하기 바란다. 요16:32-33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한다. 예수님은 혼자 있는 법이 없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고 가도 내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하신다.” 한다. 저와 여러분은 혼자 있는 법이 없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으로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언약이 불변하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은 예배 때 은혜의 징표를 받아야 한다. 예배 전에 하나님과 대화하기 바란다. 기드온은 불신앙 한 것 같지만 어쩌면 승리하고, 확신하고, 체험하려고 한 것이다. “그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하고 하나님과 대화한다. “내 문제,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대화하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 내게 징표를 주십시오.”가 된다. 제가 목사라고 염려가 없겠는가. 우리 잘 믿는 장로님은 염려 없겠는가. 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이 문제에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예배 전에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하고,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께 징표를 구한다. 성경의 인물들은 그냥 광신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미신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언약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불신앙도 때로는 믿음이다. 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철저하게 안 믿는 것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계시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기독교인의 믿음이다. 기드온은 은혜의 징표를 구했다. 제물을 가지고 간다. 거기에 하나님이 불로 응답하셨다. 기드온은 확신 갖기 위해 또 기도한다.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양털 주위에는 이슬 내리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 날 밤에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밖에는 안 내린다. 다시 한 번 확인 한다. “내일 아침에는 양털 주위에만 이슬이 내리게 하옵소서.” 또 그렇게 확신 가진다. 기도 속에서 예배 속에서 하나님이 구하시는 징표를 구하기 바란다. 그래야 불신자 이기고, 가문을 복음화 시키고, 힘 있는 성도가 된다. 확신 올 때 까지 응답 받아야 한다. 모세, 징표를 구한다. “저 못가겠습니다.” “손을 품속에 넣어봐라.” 멀쩡한 손이 문둥병 나온다. 그리고 또 문둥병 걸린 손이 깨끗함을 입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는가? “여기에 하나님이 은혜와 징표를 주십시오.” 엘리야가 징표를 구했다. “너희는 너희 신 섬겨라 나는 나의 신을 부르겠다.” 이 때 제물에 불이 내려 태운 것을 볼 수 있다. 행 2장, 우리가 늘 듣는 말씀이다. 응답 받아야 한다. 주님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는데 똑같이 성령의 불이 임한다. 모세에게 임한 성령의 불, 이사야가 기도하다가 입술이 부정하다 하니 숯불로 임한 불. 엘리야가 예배드릴 때 불이 임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게 전부 징표를 주셨다. 기드온은 자기 사명이 너무 크기에 맹신적으로가 아니라 불신앙 없애는 징표를 구했다. 예배드릴 때 정말로 은혜 받는 예배가 되고 응답받는 예배가 되기 바란다. 그래야 성도가 힘이 있다. 믿음 없어 약한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용사가 되어야 한다.

셋 째. 영적흐름을 바꾸는 자가 되어라.

그 지역에 영적 흐름을 바꿔야 한다. 기드온은 그 지역의 영적 흐름을 바꿨다. 기드온의 아버지가 그 지역 제주였다. 그래서 그 밤에 기드온이 바울 신상을 완전히 찍었을 때 동리가 난리가 났다. “누가 했느냐?” “기드온 잡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을 여룹바알 이라 한다. 영적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나 때문에 우리 가문에 영적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 이 지역에 영적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 지역에 우상을 없애고 지역의 영적 흐름을 바꾼다. 삿6:33에 보면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역사하며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는데, 300명을 통해서 하신다. 물 움켜잡고 먹는 겁쟁이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적 싸움 싸울 때 숫자로 하지 않는다. “3만 2천 다 돌려보내라.”하셨다. 숫자가 꼭 적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만 모이면 세계를 뒤집는다. 거기에 우리를 부르셨다. 나는 부족한데 하나님이 부르셨다. 모세가 부족한데 하나님이 부르시고, 75세 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가장 약한 기드온 부르신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법, 횃불과 나팔을 준비해라. 횃불, 어둠을 물리치는 것은 빛이다. 복음만 준비되면 된다. 나팔, 승리의 나팔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언약 아닌 것 오늘부터 전부 끊어버리시고, 언약으로 우리 자신을 갱신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려고 부르신 사실에 의심 없기를 축원한다.

결 론

교회 오면 꼭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신앙생활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생의 답을 내야 한다. 그것이 안 되면 신앙생활 할수록 힘들다. 예배 드리러 와서는 다 내려놓고 꼭 은혜 받으시기 바란다. 은혜의 복음에 뿌리 내려야 한다. 올 한해는 정말로 은혜의 복음에 뿌리내려서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괜찮기를 바란다. 은혜의 복음 놔두고 다른 것으로 시작하면 신앙에는 갈등 온다. 말씀 성취, 기도 응답, 전도 축복 누리는 것이 교회다. 교회 와서 꼭 예배에 승리하시고, 예배에 징표를 받아서 현장 나가서 기드온처럼, 시대마다 하나님 쓰시는 사사들처럼, ‘반복되는 실패는 나실인 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믿음가지고, 내가 나실인 롬16장의 별명 있는 모든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별명을 가져야 한다. “저 중직자는 생명 건 자이다. 식주인이다. 사랑받는 자이다.”처럼. 여룹 바알이다. 바알을 대적하고 끊고 이 지역의 영적 흐름 바꾸는 여룹바알이다. 본명 놔두고 복음 때문에 별명 있는 우리 은혜교회 성도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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