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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믿음의 진보를 이루는 삶

조혜진 | 2016.02.21 13:27 | 조회 8538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잘 안 믿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이니 계속 고백하면 그렇게 될 줄 믿는다. 저도 잘 안 믿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저를 변화시키셨지, 하나님이 변화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으신다. 내가 변화했다. 예전에 학교 들어갈 때인가. 저의 누님이 책을 가져왔는데 지리부도를 가져왔다. 누님이 중학교가고 저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이다. 거기에 보니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나와 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지구가 둥글다니. 지구가 평평해야지. 어떻게 둥근가. 그러면 밑에 있는 사람은 왜 떨어지지 않고 붙어사는가.’ 이해되지 않았다. 학교 가서 공부하고 또 공부하면서, 우주보고 만물을 보니까 지구가 둥근 것이다. 안 떨어지는 이유가, 인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나는 왜 믿음이 없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과 나한고 안 맞는가.’하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지 않아서 그렇다. 믿음 없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은 반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다보면 맞아지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짓말쟁이인거 같으면 틀리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틀림없다. 내가 틀린 것이다. 제가 공부하니 지구가 둥글고 떨어질 수 없는 인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되었다. 그 증거가 오늘도 있는데,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나라가 브라질이다. 떨어지지 않고 살다가 목사님이 되어 우리교회 오신 분이 있다. 또 제가 브라질까지 갔다 왔다. 오늘 현지 목사님이 오셨는데 예배 중에 크신 은혜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다. 내가 문제다. 내가 안 믿고 세상을 보니 안 맞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안 맞추니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다 생각된다. 그래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에 집중되어지고 각인되어져 모든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여 져야 한다. 불신자를 보면 불신자 6가지 상태, ‘그렇구나. 잘사는 게 아니구나. 종살이 하고 있구나. 그래서 종이니까 물질에 종이 되고 지위에 종이 되고 눈에 보이는 것에 종이 되어 우상 만들고 복 달라 하는구나. 정신이 불안해지고 육신문제오고, 한번 죽는 게 두렵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는데 후대에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세상이 전혀 부럽지 않다. 말씀으로 보지 않으면 불신자가 커 보이고 돈 많이 가진 거 같다. 가만히 보면 불신자가 돈에 종이 되어있고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그 것은 안보이고 눈에 보이는 것에 속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께서 이제는 우리 속에 거하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기도응답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배경되어지는데 모든 축복받은 줄 믿으시길 바란다. 이게 안 되서 뭐하는가. 갈등이 온다. 세상의 눈으로 봐도 그렇다.

저는 어느 날 분재하는 사람을 봤다. 분재 보니까, 나무를 얼마나 오묘하게 키우는지 모른다. 산에 가더라도 분재하는 사람은 나무를 보는데, 우리는 그냥 나무 보고 전체를 보고 지나간다. 그런데 분재하는 사람은 거기서 가치 있는 나무를 찾아낸다. 그게 분재하는 사람이다. 눈이 다르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도 다르다. 집중 신학원을 할 때 증인으로 오시고, 증거가지고 오시는 분들을 제가 가만히 들어보면 분명히 나와 다른 게 있고 다른 사람이 못 본 것을 본 게 있는 분들이다. 우리는 문제가 보이는데 그분들은 문제로 보지 않는다. 어제 오신 분 중에, 다락방에 맡겨놨는데 눈이 안 열린 사람은 고칠라하고 ‘행실이 어떻다.’ 말하다가 닫혔다고 한다. 눈이 열린 사람은 다락방하면서 ‘이 사람은 이 문제가 있지만 이문제가지고 문을 여는데 쓰임 받는 구나.’를 본다. 모든 현장을 볼 때 세상에서 들은 걸로 보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현장보시기를 축원한다. 그래야 믿음의 진보가 온다. 사도바울은 ‘믿음의 진보를 보여준다.’한다. 저는 수석을 좋아하는 분들을 봤다. 강가에 우리는 그냥 돌인데, 그분들은 돌에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가져와서 작품을 만드는데 천만 원, 이천만원 씩 간다. 볼 줄 알아야 한다. 똑같은 세상에 살고 똑같은 시간 속에 살고 똑같은 교회에 다니고 하는데 뭐를 가지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 30번 - 40번을 읽어도 복음 되시는 그리스도를 못보고 율법만 본다. ‘해라. 하지마라.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율법만 본다. 그러나 은혜의 복음을 깨달았는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문제를 해결하셨다. 감추어진 보화인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틀리다. 교회와도 사람 때문에 시험 드는 사람이 있다. 육신적인 것을 보는 사람이 있다. 믿음의 진보가 없다. 갈수록 신앙생활 하는 게 어려워진다. 그러나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내가 응답받는다? 갈수록 믿음의 진보라 나타나는데 증인으로 하나님이 쓰신다. 70된 노인이 도둑질을 하다가 경찰에게 붙들려 파출소 끌려왔다. ‘어떻게 그 집에 올라갔느냐.’ 하니 ‘가스 파이프를 붙들고 갔다.’한다. 파이프가 사다리가 보여 져서 붙들고 올라가서 도둑질을 한다. 70된 노인이 도둑질로 붙들려오니 경찰이 얼마나 불쌍해 보이는가. 따뜻한 커피를 가져와서 ‘드십시오.’하니 할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 안 먹는다.’한다. 오늘 우리가 지금 뭘 생각하고 뭘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독교인이 제대로 응답받으려면 현실을 보는데, 내가 가졌던 경험가지고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도바울이 오늘 빌립보서를 썼는데 감옥에서 썼다. 복음전하는 바울이었다. 누구보다도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미션을 붙들고 ‘(행 9:15, 개정)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붙들고 살다가 억울한 죄수로 끌려가 가지고 이제는 감옥에 가 있다. 그런데 빌립보서를 가지고 밖에 있는 성도에게 말씀을 전하는데 주제가 뭔가. 빌립보서의 주제가 ‘기뻐하라.’이다. 빌립보서에는 다른 동기가 없다. 다른 책은 특별한거 가지고 편지를 보내는데, 빌립보서는 그게 없고 빌립보 교회에 자기가 죄수로 있고 복음전하다가 전하지 못한다고 걱정하는 교회에게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한다. 복음전하다 감옥에 갔는데 뭐가 기쁜가. 현실 보는 눈이 다르다. 복음가진 여러분들. 절대 속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장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가지고 지금 있는 일들을 보시기를 축원한다. 감옥에 들어가 있다. 많이 맞고 했다.

오늘 신앙생활을 하는데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복음으로 인생 답을 내고 말씀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복음이 희미해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다. 내가 믿는 집에서 태어났으니 예배드리고, 내가 집사니 예배드리고, 돈이 생길만하면 예배드리는 거 보다 돈이 더 좋으니 거기 간다. 사단이 가만히 놔두는가. ‘날마다 더 희미해라.’고 문제주고 ‘날마다 희미해라.’고 먹는 거 입는 거만 갖다 주고 말씀 못 깨닫게 한다. 조금만 육신적인 문제가 오면 따라가면서 불평한다. 안 따라가지는 않는다.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은혜로 구원은 시켜주시기 때문에 안 올 수는 없다. 그러니 와가지고 불평 다투고 살아간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끝내시기를 축원한다. 우리는 뭐를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응답받고, 기도 속에서 응답받는다. 내보고 하라하시지 않으셨다. (행 1:8, 개정)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다. ‘되리라.’ 하셨는데 나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되게 하신다. 저의 힘, 나의 경제가지고 제가 돈 벌어서 내 힘으로 브라질 가서 복음 전한다?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 힘 가지고 중국선교사 파송한다?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경제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생명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그런데 생명도 내 생명이고 자녀도 내 자녀이고 사업도 내 사업인거 같고 하면 거기서 모든 실수가 있다. 현실 보는 눈이 사도바울은 열려버렸다. 복음 듣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미션을 알고 따라가다가 어려움을 당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구나.’해야 한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들어왔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구나.’ 했다. 감옥에 가 있어도 하나님의 계획을 본다. 사도바울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다. 아나니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미션이 있다. ‘(행 9:15, 개정)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미션으로 잡혀졌다. 그 말씀이 성취되는가. 성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말씀성취를 위해 아시아로 갔고 하나님이 문을 막아 마게도냐로 갔고 이 말씀성취를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해서 로마로 가는데 하나님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까지 감옥으로 간다. 감옥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으로 본다. 내게 일어나는 문제를 육신 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온전히 보기를 축원한다. 그게 안 되면 목사가 되도, 장로가 되도 늘 갈등하는 신앙생활이 된다. (행 23:11, 개정)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말씀이 성취되는 자리가 뭔가. 오늘 사도바울이 감옥에 있는 현장이다. 시위대 뜰이니까 로마황제를 보살피는 군인이다. 복음이 전달되고 로마황제의 집 안에 전해진다. 벌써 확인하고 선교에 출발했다. 행13장이다. 사도바울이 선교사로 파송 되었을 때 안디옥 교회에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있었다. 벌써 왕실로 복음이 전달된다. 이제는 로마에서 황제의 시위대 뜰에 갇혀 복음이 전달되는데 말씀성취의 현장이다. (행 27:24-25, 개정)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란다.

첫 째. 믿음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육신적인 눈으로는 믿음의 진보를 이룰 수 없다. 우리 현실이 무엇인가? 일, 사람, 상황 그것이 전부 현실이다. 그런데 불신자 기준으로 보니 염려와 걱정이 들어온다. 오늘 우리는 이 현실을 볼 때에 전도와 선교의 눈으로 보시기 바란다.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 저는 오래 믿었다. 그런데 ‘왜 현장이, 왜 세상이 나와 안 맞는가?’했었다. 안 맞는 이유가 있다. 전도 선교에 방향이 안 맞는 것이다. 구약의 방향은 가나안 땅이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땅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 하셨고, 요셉도 “내 해골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했고, 포로 되었을 때도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 했다. 그리스도 오실 땅으로 계속 가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방향은 재림주 오실 땅, 세계복음화이다. 부활한 주님이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신약에서는 이제 말세에 주님 오실 때까지 전도 선교에 방향 맞춰지기 바란다. 그거 이외에는 없다. ‘나’가 방향이 아니다. 자녀 키우는 것도 전도 선교 위해, 내 사업도 복음과 전도 선교 위해, 먹고 마시고 쉬는 것까지도 복음과 전도 위해 방향 맞춰야 한다.

바울은 현실 보는 눈이 달랐다. 내가 복음의 사람이면 내 처한 현실 속에서 내 인생이 달라진다. 성도는 그런 말 하면 절대 안 되는데 “내 팔자야” 하는 분이 있다. 팔자는 끝났다. 성도는 팔자가 없다. 성경 좀 자세히 읽으시기 바란다. 출애굽기에 보면 히브리인들이 유월절 어린양 피 바르고 나왔다. 하나님은 그들이 구원받고 난 후, 종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라 하셨다. 영적 싸움 하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가다가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달력을 바꾸라.” 그동안 애굽의 달력으로 살았는데, 광야에 나와서 애굽의 신년을 지키지 말고, “니산월 14,15일 날, 이것이 너희의 첫 해가 되라.” 하고 달력을 바꾸라 하셨다. 우리 신분이 바뀌면 하나님 자녀가 된다. 예수 믿으면 단기가 아니라, 불기가 아니라, 주후가 된다. BC, AD가 된다. 교회의 모든 달력에는 ‘주후’로 되어있다. 주님 오시는 시대에 우리가 살기 때문이다. 사주팔자는 연월일시이지 않는가? 완전히 바뀌기 바란다. ‘팔자가 어떻고’ 하면, 입을 지퍼로 그냥 잠가야 한다. 현실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한다. 내 삶이 전도 선교에 분명히 방향을 맞추고 있으면 내 삶의 가치가 달려져야 한다. 내가 전도 선교를 해야 하면 내 가치가 어떤가? 마음대로 살지 않는다. ‘내가 존귀하구나.’한다.

내가 전도자의 삶의 이유를 알면, 내 환경에 하나님의 계획이 보인다. 그것이 요셉과 모세의 삶이었고, 사도바울의 삶이다.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의 실수로 바울이 감옥에 간 것이 아니다. [빌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오늘 여러분에게 어려움, 문제가 있는가? 내 환경이 이상하게 꼬여있다 해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으로 믿음의 진보가 이루어질 줄 믿는다. 사람 보는 눈도 달라져야 한다. 인간관계 달라져야 한다. [빌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사도바울이 감옥에 갔으니 ‘끝장났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믿음 있는 사람은 “그러니 우리가 이제 이 일을 해야 하지 않는가?” 한다. 그런데 삐딱한 사람은 바울이 갇히니까 “이제 우리 패거리를 많이 만들자.” 해서 열심히 전도 한다. 그 소식이 들리니 바울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그런데 바울은 인간관계에 새로운 해석을 한다. “이렇게 전하나 저렇게 전하다 그리스도가 전달되니 기뻐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광 받으시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움직이면 된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진다. 복음가진 자가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다민족이 은혜교회에 온다. 그럼 이제 사도바울이 보는 눈으로 봐야 한다. 혹시 일본사람이 올 수도 있다. 제가 52년도에 태어났는데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이 그 바로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 제가 자랐다. 또 저의 큰 할아버지,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가 신앙생활하다 일제에 감옥생활 했기 때문에 저는 일본사람이라 하면 치가 떨렸다. ‘하나님이 일본을 쥐고 흔드셨으면’하는 악한 마음이 들었었다. 일본에 지진 났다고 하면 웃음 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악한가? 그런 생각을 갔고 있다가 제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게는 축구를 져도 일본에게는 지면 안 된다고 한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 그렇다. 현대판 타이타닉 이야기 아는가? 큰 배가 침몰하는데 3 명이 희생을 해야 할 상황이다. 영국 사람이 “대영제국 여왕페하 만세!”하고 희생하려고 떨어졌다. 미국사람이 “성조기여 영원하라!” 하고 떨어졌다. 한국 사람이 일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하며 애국가를 다 부르고 일본 사람을 던진다고 한다. 바울은 사람 보는 눈이 달랐다. 자기와 악한 감정 있어도 그것을 보는 눈이 달랐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호송되었다. 하나님은 정확하시다.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 결사대 40명에게서 누가 지키는가? 로마 군인이 지켜줘야 가장 안전하게 간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다. 상황과 현장과 현실과 사람과 일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기를 축원한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은 정확하게 우리 믿음의 진보를 위해 모든 일을 끝내셨다.

둘 째. 차원이 다른 감사와 헌신이 나온다.

그럼 나오는 것이 감사와 기쁨뿐이다. 빌1:18, 그래서 기뻐한다. ‘내가 감옥에 있는 것을 내가 기뻐한다.’ 한다. [빌 2:17, 개정]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이제는 마지막 순교하더라도 나는 기뻐한다.’는 것이다. [빌 3:1, 개정]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복음 하나 깨달은 것, 은혜의 복음을 깨달은 것 하나로서 기뻐하시기 바란다. 내게 구원의 감격 떨어질까 저는 그것이 제일 걱정이다. 그런 걱정은 해도 좋은 것 같다. 내 마음에 구원 받은 것 내 평생에 가장 기쁨이고, 감사이다. 44년 동안 저는 구원의 감격이 없어서 늘 의심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그래, 이것을 은혜로 내가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 알고 나니까 그 것보다 귀한 것이 없다. 구원의 감격이 여러분들 생애에 늘 샘솟듯 하기를 축원한다. 그거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구원의 감격 속에서 기뻐한다고 한다. 다른 차원의 감사와 헌신이 나온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 앞에 “나는 종이라.” 한다. 복음의 깊이 체험 할수록 종의 자리에 서고, 은혜를 체험할수록 종의 모습으로 일하고, 믿음을 체험할수록 종의 자세로 일한다. 왜 종인가? 피로 값 주고 샀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다. 교회가 왜 귀한가? 피로 값 주고 샀기 때문이다. 성도 한사람이 왜 귀한가? 피로 값 주고 샀기 때문이다. 행 20:28.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죄의 종으로 있다가 피로 값 주고 샀으니 의의 종이 된다. 종은 이유가 없다. 시키는 대로 한다. 시키는 것을 안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미션을 잘 수행하는 모든 성도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은혜 받은 종은 주인을 떠나지 않는다. [출 21: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은혜이다. [출 21:3-6] 『[3]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이 종이 보니 주인이 너무 신실하다. 종은 6년 되면 해방해야 한다. 그런데 종이 주인을 좋아해서“한 평생 주인을 위해 섬기겠다.” 하는 종이 있다. 그러면 그것을 받아들여서 송곳으로 귀를 뚫어 그 종으로 살게 하라는 것이다. 주인의 은혜를 안 것이다. 오늘 세상 귀걸이 하지 마시고, 은혜의 귀걸이를 하시기 바란다. 이제부터는 외출하면서 귀걸이 할 때에, ‘예뻐 보여야지.’ 하지마시고,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 바꾸기 바란다. ‘그렇구나, 이제 나는 하나님의 여종이다.’ 내가 평생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쓰임 받는 것이다. 아니면 세상 풍습 따라가는 귀걸이다. 구원받은 우리는 은혜로 받고 피로 값 주고 사신 바 되었으므로, 일을 할 때는 종의 자세로 해야 한다. 구원받은 자는 신분과 권세를 누리고 영적싸움은 군사로 해야 한다. 주님과 은밀한 교제 나눌 때는 신부로 살기를 바란다.

셋 째. 은혜의 복음에 뿌리 내리자!

내 의에, 종교에 뿌리내리시지 마시고 나 같은 죄인이 주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해야 한다. 찬송을 부르면 그 은혜가 내 은혜가 되어 진다. 하나님의 말씀 들으면서 교회 와서 왜 삐그덕 하는가. 은혜 못 받아 그렇다. 그게 나타나면 계기판에 빨간 불 켜진 줄 아셔야 한다. 은혜의 복음에 뿌리내려 제자의 삶을 사기를 축원한다. 종교와 복음은 다르다. 교회 와서 종교생활하면 갈수록 내가 죽는다. 은혜 받으면 하면 할수록 힘이 난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만큼 하시기를 축원한다. 은혜 받고 일하고. (행 20:24, 개정)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자꾸 120살까지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있는데 조금 그렇다. 하나님의 사명을 다 할 때까지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 은혜 속에서 사명 다할 때까지이다. (마 18:23, 개정)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은혜로 사는 사람의 삶이 계수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으로 주셨다.

결 론

전도 선교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전부 틀린다. 왜? 세상기준이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중요한 응답을 주었는데 응답을 갖다놓아도 보지 못한다. 이성봉 전도사님이 우리 교회에 와있다. 전도 선교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베트남 사람 보면 선교사로 보인다. 여기 오신 선교사님 보면 하나님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선교사 한 분 보내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 그런데 훈련과 신학 다 하고, 오직 복음만 깨달으면 되는데, 오직 전도 선교 방향만 맞추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은혜를 주셨는가? 중국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브라질도 주셨다. 스페인은 또 얼마나 큰가? 15 16세기 전 세계를 누빈 스페인을 주셨는데 그릇 크게 하시기 바란다. 전도 선교다. 그런데 좀 부끄러운 것이 있다. 이 분들 오시면 우리가 잘 모셔야 하는데 우리보다 작은 교회, 참빛교회가 잘 모신다. 홍성일 선교사님 김복상 선교사님 숙식할 데가 없어서 참빛교회에 이야기하니까 미션홈이 한 군데 더 있다고 해서 거기서 하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전도 선교의 눈으로 교회를 살피고 모든 현장 보시기 바란다.

결론은 전도 선교의 눈이다. 사람도 나의 처한 환경도. 한나는 육신의 아들이 아니라 생각을 바꿔 나실인을 구했다. 요셉은 ‘환경 바꾸어 달라.’가 아니라 여호와의 신에 충만하게 살아갔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 말씀이 각인되어 절대 속지 않는 모든 성도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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