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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언약을 주신 하나님

조혜진 | 2015.10.11 14:33 | 조회 8961
<!--StartFragment--><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14%;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8pt;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span></p><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14%;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8pt;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br></span></p><span style="font-family: 굴림; font-size: 8pt;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StartFragment--><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8.4pt;"> </span><span style="font-size: 7.4pt;">훈련과 실전은 다른 상황이다. 훈련은 실전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여유가 있을 수 있다. 실전에 들어가면, 상황이 훈련하고 다르다. 그렇다고 훈련이 의미가 없는가. 훈련은 실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 훈련은 늘 반복한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보면 하신 말씀을 계속하신다. 군 얘기를 자주한다. 군대는 늘 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전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중요한 훈련을 계속한다. 총 쏘는 훈련, 수류탄을 던지는 훈련, 전투하는 훈련을 계속하는 곳이 군대다. 왜? 실전 가서 적용되도록 이다. 계산하고 머리 쓰지 않게 적용하기 위함이다. 훈련은 실전과 매우 관련이 깊다. 어제께도 청년대학부에서 팔공산을 올라갔다. 팔공산 동봉의 고지가 1160m이다. 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저도 같이 따라갔다. 팔공산에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그날 따라갔다. 저는 무등산은 늘 다니는데, 팔공산에 올라가보니 돌계단인데 가파르다. 저도 힘이 많이 들었다. 산에 자주 올라가는 사람은 잘 올라간다. 훈련된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헉헉거린다. 저도 조금 헉헉거렸다. 그런데 다음날 다리가 하나도 안 아팠다. 10년 전에는 앞산에 올라갈 때, 중간에 쉬다가 올라가고 갔다 오면 퍼지는데 이번에 갔다 와도 아무렇지 않았다. 훈련이다. 평소 신앙생활이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오늘 제목이 완전한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모자라는 언약을 주지 않으시고 인생에 완전한 언약을 주셨다. 더 보탤 것이 없다. 요19:30에 ‘다 이루었다.’ 하셨는데, 그 말씀은 구약에 예언되고 약속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주시는데 완전한 언약을 주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속는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속을 때가 많은데, ‘속는다.’할 때에 어디에 속는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놓치는 것이다. 다른 것에 속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 속기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놓쳤다. 환경에 속기 전에 약속을 놓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 놓치고 나를 주목할 때 속는다. 나를 봐가지고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가 없다. 절대 내보고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나도 내 자신보고는 믿어질 수가 없다. 그런데 누구를 믿는가. 그래서 속는다할 때 언제 속는가. 나 자신을 보고 속는다. 하나님의 약속을 놓치고 내 자신을 볼 때이다. 내 약함을 보게 되고 내 한계를 바라보고 내 환경, 내 무능을 바라볼 때 의욕이 떨어진다. 비전을 놓친다. 반대로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없이 ‘나는 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 더 무서운 사람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상관없이 ‘나는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강하다. 나는 한계가 없다. 내가 하면 된다.’에 속는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약속 놓치고 또 속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붙잡되 하나님의 약속은 작게 보이고 어려움은 엄청 크게 보인다. 그게 속는 거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있는데 작게 보인다. 현장은 너무 어렵게 보인다. 거기에 속는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되 완전한 언약을 주신 줄 믿으셔야 한다. 부족한 약속이 아닌 완벽한 약속을 주셨다.</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우리가 빨리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좋은 신앙이 뭔가. ‘저분 신앙이 좋다. 저분 신앙이 휼륭 다.’의 기준은, 하나님의 약속잡고 신앙생활을 하는가, 아님 자기 믿음과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가이다. 좋은 신앙과 나쁜 신앙의 분기점이다. 오늘 우리가 믿는 믿음은 세상 사람이 말하는 믿음과는 다르다. 석가를 믿는 것과 예수 믿는 것은 다른 것이다. 불교와 유교를 믿는 것, 다른 종교를 믿는 믿음과는 다르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다. 세상종교의 믿음은 ‘열심히 하면 된다.’이다. 내가 열심히 하면 되니까 어디 가서든 빈다. 방법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빌고 양심적으로 빈다. 그 믿음과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는 틀리다. 성경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 믿음까지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 신앙은 약속을 붙잡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환경보지 말고 약속을 봐야 한다. 올바른 신앙의 시작은 약속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없는 열심이 엘리야의 믿음이다. 엘리야는 열심히 했다. 불이 나고 창이 나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야에게 한계가 왔다. 이세벨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내가 너를 죽이겠다. 네가 죽기 전에는 먹지도 않겠다.’했는데, 엘리야에게 이제까지 하던 믿음이 떨어졌다. 이세벨의 한마디에 낙담이 되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내 영혼을 취해가십시오. 나는 못하겠습니다. 내 열심이 특심이었습니다.’ 하는데 주님이 떡을 먹이시며 ‘호렙산으로 가라.’ 바람과 지진, 모든 것 다 지나가고 나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다. 오늘 우리 신앙생활에, 능력이 나타나기 이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붙들고 약속잡고 시작하는 출발이 되기를 축원한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이다. 내 열심 말고 여호와의 열심을 믿어야 한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span><span style="font-size: 7.4pt;">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이 열심을 내셨다. 내가 열심 낸 것은 늘 한계가 온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보내시겠다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요한 믿음이고 그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그 약속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하시는 일이 있다. 선지자, 제사장, 왕의 일을 하셨다. 인생들이 하나님을 못 만나 이 길 저 길을 찾는다. 그래서 절에도 가보고 천주교, 유교도 가보고, 그것도 안 되서 여러 가지로 온데 간데 간다. 길 찾는 것이다. 그런데 길이 어디 있는가.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온 천지를 다녀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면 절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성철’이라는 분이 8년 동안 눕지도 않고, 수도를 닦고 했지만 길을 못 찾았다. 그 분이 ‘내가 진리를 알면 절을 떠나겠다.’ 했는데 8년 동안 찾지 못했다. 하나님의 만나는 길, </span><span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요14:6</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딴 데 없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주님이 ‘빌립아. 내가 이처럼 함께 있었는데 아버지를 보여 달라하는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하셨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가면서도 하나님 못 만났다하고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못 만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속는 게 어디 있는가. 기도는 하나님께 하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린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span><span style="font-size: 7.4pt;">신분이 벌써 바뀌었다. 종의 신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성령께서 너희 속에 거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span><span style="font-size: 7.4pt;">내속에 주님이 와 계시는데도 주님이 어디계신지 모르고, 현장 나가서 속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굳게 믿으시길 바란다. 왜 시달리는가. 사단문제가 해결이 안 되서 그렇다. 그리스도는 왕 직이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왕적권세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무속인분들, 왜 거기서 못나오나. 예수님이 왕이신지 모른다. 그 분만이 길인지를 모르고 시달림을 받는다. 내 양심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양심가지고 하니 이것저것 걸리는데, 그 죄 문제를 그리스도가 해결하실 수 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피와 물을 쏟으시면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래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span><span style="font-size: 7.4pt;">』</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우리는 질 그릇 같고 연약하다. 우리 속에 뭐가 담기는가.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내 속에 계신다. 그릇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무그릇도 보석이 담겨지면 보석그릇이다. 금 그릇도 오줌을 담으면 오줌통이다.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 완벽한 언약을 주셨는데 하나님은 이 언약을 가지고 우리를 완성시켜 나가시는 줄 믿는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성경66권속에 있는 모든 축복이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본론을 놓치고 서론을 잡으면 신앙생활을 틀리게 된다. 약속 놓치고 환경과 문제를 보니 내게 근심, 염려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우리 부르실 때 완벽한 약속을 가지고 부르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런데 왜 안 맞는가? 현장이라 그렇다. 그 현장에 하나님이 답을 주시고 응답하신다. 요셉에게 비전을 주셨다. 그런데 현장은 그 비전과는 다르다. 형들도 다르고 어머니가 다르다. 애굽 가서도 다르고 보디발 집에 여자도 다르다. 감옥에 가니 장관이 다르고 세상과는 다르다. 그런데 현장이 아무리 달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뤄지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게 하나님의 언약이다. 다윗이 언약을 받았다. ‘너는 왕이 될 것이라.’ 하셨다. 골리앗을 이기고 했는데, 현장은 또 다르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는데 하루, 이틀이 아니라 1,2년이 된다. 비전과는 현장이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핍박이 하나님의 언약을 빼앗을 수 없다. 시23편에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너무나도 귀한 말씀이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시 46: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시 46: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시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span><span style="font-size: 7.4pt;">그렇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가만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길 바란다. 만군의 하나님은 뭔가. 대신 싸워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다. 전투하시는 하나님이고 승리하신 하나님이시다. 대신 싸워 이겨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래서 우리가 낙심하고 실수하게 되어 진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다. 완전한 언약의 흐름, 복음의 흐름 속에 들어왔다. 언약이라 할 때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구약에는 언약의 흐름과 복음의 흐름이 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완전한 언약의 흐름 속으로 불러주셨다. 갈대아 우르, 그 당시의 최고 문명이다. 세상의 문명과 문화에 도취되기 쉽다. 세상 문화가 대단해 보이는데 네피림이다. 데라 후손, 최고의 지극정성으로 하는 기능공인데 우상 만드는 장사가 되었다. 데라 후손은 셈의 후손이다.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했던 셈의 후손인데, 우상 장사가 된 분이 아브라함의 아버지다. 지극정성인 기능공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떠나라.’ 이다. 어디로? 가나안땅이다. 그리스도가 오실 땅이다. 생명의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여정에 이 언약을 붙잡고 가는데 하나님이 불신앙을 하나하나 없애신다. 우리 인생 걸음걸음에 불신앙이 많다. 아브라함처럼 이런저런 불신앙, 인본,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 하나님이 완전한 언약을 주셨기 때문에 완전한 언약 속에서 불신앙이 치료된다</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첫째. 하나님은 완전한 언약을 우리에게 주셨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1. 언약을 이룰 수 있는 분이 주시는 언약이 완전한 언약이다. 주시는 분이 힘이 없으면 완전한 언약이 아니다. 사회 계약을 맺을 때, 갑과 을이 맺는다. 그 계약이 파기되어 소송하고 문제 터진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주실 때, 언약을 이룰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다. 그래서 완전한 언약이 된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2. 그래서 언약의 주체가 하나님이다. 오늘 본문은 흔들리지 않는 언약을 주신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창 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span><span style="font-size: 7.4pt;">아브라함이 세운 언약이 아니다. 하나님이 갑과 을로 세우신 언약이 아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언약을 가지고 세우시고, 그 주체가 하나님이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창 17: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span><span style="font-size: 7.4pt;">하나님이 하나님의</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언약을 세우는 것이다. 갑과 을이 언약 아니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창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 </span><span style="font-size: 7.4pt;">아브라함만이 아니라 그 속에 우리도 포함되어있다. 후손까지 포함되어있다. 창15:12-21에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언약 세우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제물을 쪼개어 두라 하셨다. </span><span style="font-size: 7.4pt;">고대 근동</span><span style="font-size: 7.4pt;">당시에 계약을 맺을 때 짐승을 잡아 쪼갠다. 그리고 쪼갠 짐승을 양쪽에 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쪼갠 짐승 사이로 걸어가면서 ‘계약을 파괴하면 이처럼 쪼개진다. 죽는다.’ 하고 지나간다. 창15장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드린 제물에 계약을 맺으신다. 하나님이 제물 사이로 혼자 걸어가신다. 아브라함과 계약 맺으실 때 하나님이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은, 행위의 언약을 우리가 파괴하니 하나님이 은혜의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생애에 이런 일, 저런 일로 얼마나 계약을 파괴한지 모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신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3.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이루셨다. 창3장에 아담에게 언약을 주실 때 아담과 상의를 하신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주셨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일방적으로 주셨다. 저는 칼빈 목사님께서 5대 강령을 얘기하실 때, 은혜를 깨달으니 ‘그렇구나.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도 없고 조건을 두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구나. 인생은 전적 타락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조건 선택하시고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베푸시는구나.’했다. 완전한 언약으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언약의 주체되시는 그리스도, 언약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 주셨다.</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4. 영원 불변한 언약이다. 사40:7-8 인생은 그렇지 못하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 </span><span style="font-size: 7.4pt;">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인생이 두려운가. 불신자가 두려운가. ‘풀과 같이 베이리라.’ 어느 날 보면, 그 사람은 없고 무너진다. 불신자도 안다. </span><span style="color: rgb(147, 48, 48); font-size: 7.4pt; font-weight: bold;">불 십? </span><span style="font-size: 7.4pt;">아무리 봐도 꽃은 십일밖에 안 된다. 인생 두려워 말기를 바란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사 40:7-8]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후대도 그 약속 속에 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나님이 약속은 이뤄진다. 마 5:17-18이다. 구약의 성도들은 실체를 보지 못했다. 예언된 말씀만 붙들고 그림자만 붙들고도 승리했다. 구약의 예언은 오실 그리스도다. 그림자, 예표를 보고 승리했다. 주님은 이미 오셨다. 이 말씀을 이미 이루셨다. 우리는 다 이루어진 것을 보고 믿는 것이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5. 차별이 없는 언약이다. 완전한 언약은 차별이 없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span><span style="font-size: 7.4pt;">자꾸 주님의 이름을 부르셔야 한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span><span style="font-size: 7.4pt;">』</span><span style="font-size: 7.4pt;">주님 앞에는 전혀 차별이 없다. 링컨은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span><span style="font-size: 7.4pt;">깨닫고 흑인노예 해방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중요한 일을 한다.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된다.</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둘째. 그러면 회복해야 할 것이 뭔가.</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여호와 이레의 믿음이다. 완전한 언약에는 완전한 믿음만 필요하다. 다른 것이 필요 없다. 그게 뭔가. 여호와 이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부르셔서 창12장부터 창22장에 아브라함이 승리할 때, 마지막에 한 말이 ‘여호와이레’다. ‘아 하나님이 준비 하셨구나. 하나님이 하나님의 산에 준비하셨구나.’ 그것이 완전한 믿음이다. 우리는 우리가 했는 거 가지고 우쭐하고 하는데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 그게 여호와이레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여호와이레의 신앙까지 가야 한다. 그전까지는 아브라함도 인본을 썼다. 하갈을 취해 아들을 낳고 환경을 보며 애굽으로 갔다. 애굽으로 왜 갔는가. 먹을 거 때문에 갔다. 그런데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왔다. 여러분, 먹는 것과 입는 거 때문에 흔들리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부유를 놓치고 육신적인 거 가지고 가면 어렵게 된다. 가나안 땅을 놓쳤을 때 늘 어려움이 왔다. 그게 엘리</span><span style="font-size: 7.4pt;">멜렉 가정과</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아브라함 가정이다. 언약의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회복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야곱에게도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땅가라.’하셨고, 요셉은 그 언약을 알기 때문에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는데 그때 내 해골을 가지고 가라.’했다. 방향을 늘 가나안땅으로 맞춰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믿음이 ‘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준비하셨구나.’이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성경에서 주시는 믿음이 뭔가. 1.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span><span style="font-size: 7.4pt;">종교 믿음과는 틀리다. 우리 믿음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온다.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셨고 이처럼 문제와 사건 가운데서도 이곳으로 오게 하셨다. 하나님이 앞으로도 준비하실 줄 믿으시길 바란다. 여호와 이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다. 하나님이 75세에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하셨는데, 큰 민족은 고사하고 아들도 없다.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드온처럼 70명이라도 낳아야 하는데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 해라. 열국의 아버지라 해라.’하셨다. 나는 성도가 아닌데 밖에 나가면 성도라 하고, 나는 세계복음화를 할 수 없는데 모든 사람들이 세계복음화의 일꾼이라 한다. 믿으시길 바란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뤄진다. 저는 저의 수준을 보면 세계복음화는 고사하고 ‘가정복음화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지역복음화라도 했으면 좋겠다.’하는데, 하나님은 갈릴리 출신, 아들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놓으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하신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2. 하나님이 세워나가시는 믿음이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3. 문제사건 가운데서 세워나가시기 때문에 문제 당한 사람보고 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실전가면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때마다 상황과 문제를 보지 마시고, 그때마다 나를 보지 말고 약속을 붙잡고 속지 않기를 축원한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4. 하나님은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부르셨다. 아브라함을 볼 때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부르셨다.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부족할 줄 이미 아시고 우리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따라다니시면서 복을 주신다. 그렇지 않으면 아브라함이 설 수가 없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오히려 하나님은 바로 왕으로 혼내셔서, 바로 왕이 사라를 다시 보내어 재물을 붙혀서 가나안땅으로 가라 하셨다. 자세히 보면 앞과 뒤에 하나님이 다니시면서 우리에게 ‘너는 복의근원이다.’ 축복하신다. ‘너는 복이다. 너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너로 세계복음화하고, 많은 사람이 너로 인해 복을 받게 하겠다.’하신다. 우리는 이런 저런 사람을 손해내고 하는데, 우리 수준이 그렇다. 그러나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복을 받을 줄 믿으시길 바란다. 예전에는 제수준보고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여호와 이레’를 알고 나서 ‘나를 만나면 너는 반드시 복을 받는다.’ 당당하게 얘기한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5. 오늘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셨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우리가 어떻게 완전한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다. 그러면 한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독자 이삭을 바치라 하시는데,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얻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줄 알았다. 하나님이 부활시키실 줄 알고 바치러 간다. 히11장에 답이 나와 있다. 부활신앙을 가지시길 바란다. 부활신앙에서 나온 게 성령충만이다. 갈보리 산의 약속과 감람산의 약속, 마가다락방의 언약을 붙잡으셔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완전한 믿음이 ‘하나님이 다 준비하셨구나.’ ‘여호와이레’이다. 그러니 이삭을 드리러 올라갈 수 있다. 약속잡고 가보면 하나님이 준비하셨고 인본만 버려도 역사하신다. 환경보지 말고 약속을 잡을 때 환경을 넘는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셋째. 하나님이 그래서 각인하신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오늘도, 내일도 각인하신다. 성경에 보면 중요한 얘기는 계속 반복하신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1.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다.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너로 인해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하겠다.’하셨다. 아브라함이 실수할 때마다 이 말씀하신다. 이삭과 야곱에게도 늘 이 말씀하셨다. ‘너는 복의 근원이다.’ 오늘 내가 복의 근원이라 각인되기를 바란다. 다른 거 전부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완전한 언약을 주셨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시다. 각인되셔야 한다. 오늘 본문이후, 9절부터 하나님은 진짜 각인을 하신다. ‘할례를 행하라.’하셨는데, 할례는 살에 각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놓치니 하나님이 ‘마음에 각인하라.’하셨고, 모세시대에 가니 살에 각인하는 것도 모자라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신 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span><span style="font-size: 7.4pt;">라 하셨다. </span><span style="font-size: 7.4pt;">안 들은척, 못 들은척하지 말고, 하나님이 없다 생각하지 말고 잊지 말라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이름까지 바꿔 각인하신다. ‘너 아브람이지. 존귀하다는 것이지? 존귀는 무슨 존귀냐. 이제는 열국의 아버지다.’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 아랍족속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이란, 이라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유대이이 아브라함 후손이다. 하나님의 각인 방법이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 하라.’의 방법이 불신앙을 없애는 것이다. 이삭을 자주 말씀드린다. 이삭 왜 이삭인가. 하나님이 아들을 주겠다하시니 사라가 웃었다. ‘내년에 무슨 아들을 낳겠는가. 경수도 끊어졌는데.’했다. 아브라함은 ‘내 몸이 고목인데 무슨 아들입니까.’했다. 그러니 하나님이 ‘너 웃었지? 아들을 낳으면 이삭이라 하라.’하셨다. 이삭의 뜻이 웃음이다. 이삭 낳고는, 불신앙을 없애는 웃음이고 기쁜 웃음이다. 날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성도다.’라는 것이다. 내가 성도라는 것을 잊으면 딴 짓한다. 내안의 그리스도를 잊으면 딴 짓한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바꾸셨다. 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기도가지고 이겼다. 기도의 사람이다. 이스라엘이다. 주님은 시몬 가지고 안 된다. 베드로다. 베드로가 원래 이름이 아니다. 별명이다. 이제 너는 베드로라 해라 하셨다. 오늘 성도님들은 베드로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나는 흔들리는데 이 신앙고백은 안 흔들린다. 나는 베드로가 된 줄 믿으시길 바란다.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여러분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견고히 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견고해야 한다. 먼저 복음 받은 사람이 흔들리니 전부 흔들린다.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다른 사람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완전한 언약을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완전한 믿음이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3. 내게 언약을 각인하자.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 </span><span style="font-size: 7.4pt;">어디까지 각인해야 되는가. 귀에까지 각인하라는 것이다. 어디까지? 귀에까지 할례를 받아야 한다. 말씀이 안 들리는가? 귀에 할례받기를 축원한다. 떠나가지 않아 야 한다. 주의 말씀이 마음에, 몸에 각인되어야 한다. 오늘의 할례, 3오늘이다. 오늘도 말씀묵상하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원히 각인하는 것이 후대에게 전하는 것이다. 영원한 기업에 언약이 각인되게 하겠다고 하신다.</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size: 7.4pt;">결론) 하나님은 완벽한 언약을 주셨는데 행1:1이다. </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font-weight: bold;">[행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span><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 갈보리 산의 언약이다.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 행1:3 하나님의 나라, 우리의 사명이다. 갈보리 산 언약은 복음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사명이다. 우리에게 주셨다. 구원받고 사명 놓치면 어떻게 하는가. 40일 동안 설명하셨다. 반대로 생각하면 세상 나라인데 공중권세 잡은 자이다. 모르겠으면 점집에 가보라. 불신자 보라. 공중권세 잡은 자이다. 주님의 설교 주제와 메시지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다. 내 모든 삶에 사명이 뭔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다. 나 때문에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다. 나 때문에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 확장되고 더 굳게 세워지기를 축원한다. 감람산에서 미션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나라다. 구원받은 자의 미션은 하나님의 나라다. 그거 이루기 위해서 마가다락방에 성령 충만을 주셨다. 내 힘으로 안되니 그렇다. 행1:1, 3,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에게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다. ‘되리라.’ 하셨기 때문에 ‘되리라’로 믿어야 한다. 우리가 하려하니 힘들다.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약속을 잡고 있으면 성령 충만하게 된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1. 기도응답에 응답의 근거를 잡아야 한다. 메시지다. 말씀 정리해서 언약으로 잡고 내 직분에 대한 기도응답의 기도제목을 잡고, 내 직업에 대해서 기도응답의 근거를 잡으셔야 한다. 막연하게 신앙생활하지 말고 말씀을 정리하여 언약으로 잡고, 직분 주신 것 가지고 기도제목으로 기도응답을 받게 되고, 내 직업에 대해 기도제목이 잡아져야 한다. </span></p><p class="본문" style="line-height: 116%; -ms-layout-grid-mode: char;"><span lang="EN-US" style="font-size: 7.4pt;">2. 치유 중 치유가 뭔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다. 시간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기를 축원한다. ‘아 맞구나.’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면 완전히 행하라. 아브라함보고 ‘완전히 행하라.’하셨는데, 아브라함이 완전히 행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생기니 그렇게 되었다. 지갑에 돈이 있어야 헌금을 하는가, 믿음이 있을 때 헌금을 하는가. 저를 보니 믿음이 있을 때 헌금을 했다. 건강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하는가,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하는가. 건강하면 온데 다 돌아다닌다. 주의 일을 안한다. 그런데 병 들어도 믿음이 있을 때 주의 일한다. 교회가 크다고 큰일을 하는가. 믿음가진 교회가 큰일을 하는가. 큰 교회인데 싸우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비자금을 만들고 싸우는 교회 얼마나 많은가. 작은 교회지만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한다. 완전한 언약, 그러면 완전한 믿음이 필요한데 ‘여호와이레’ 이것이 각인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일이 각인시키는 일이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라 하라.’ 후대에게는 마음에 할례를 하라 하시고, 행7장에는 귀에 할례를 하라하셨다. 말씀을 이루는 믿음 있는 성도님 되기를 축원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그것만 있으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줄 믿으시길 바란다. 종교적 믿음이 아니다. ‘내가 믿자.’ 거기서 실패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믿음으로 모든 성도님들 승리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span></p></span><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14%; -ms-layout-grid-mode: char;"><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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