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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으로 인생을 해석한 요셉

조혜진 | 2015.11.01 16:04 | 조회 8897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우리 은혜교회 와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담임목사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담임목사를 만나서는 안 된다.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가서 예수님을 못 만난다. ‘오늘 목사님 설교를 잘 했다. 교회가 수준 있더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개척 교회에 있다가 우리교회에 예배드리는 사람은 ‘와 은혜교회 크네.’ 생각하고, 되게 가난한 교회에 있다가 우리교회에 오면 ‘이 교회는 부자들이 많네.’ 하는데, 우리교회에는 부자들이 없다. 큰데 있다가 오시는 분들은 ‘왜 이렇게 교회가 우중충하고 현대화되지 못했냐.’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보기는 봤지만 분명히 속고 있다. 교회 와서 담임목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고 장로님과 그 교회에 실세 있는 분들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분명히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예수님을 못 만나고 갔다? 40년, 50년 평생 신앙생활해도 내게는 늘 갈급함이 있다. 교회가 크고 적고는 상관없다. 큰 것에 상관이 있는 거 같으면 성령께는 마가다락방이 아닌 예루살렘 성전에 임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마가다락방에 임하셨다. 큰 교회와 수준 있는 것에 상관이 있는 거 같으면 베드로성당에 임하셔야 하는데, 어디에 역사하셨는가. 루터 한사람에게 역사하셨다. 우리는 빨리 알아야 한다. 초대교회는 큰 성전이 없었다.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에서 예배드렸는데,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기뻐 받으셨다. 수준 있는 유대인이 아닌, 카타콤에서 눈 피해서 예배드리는 초대교회 성도를 통해 로마복음화하셨다. 신앙생활 하는데 서론을 놓고 본질을 붙잡고, 교회 와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저는 신앙생활을 오래했다. 4대째하고 있다. 예수는 믿었는데 내 맘에 진정한 답이 없었다. 신앙생활을 안했다고는 할 수 없다. 예배드려서 은혜 받고 기도응답을 받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받기도 했다. 그런데 제 마음속에 답이 없었다. 그래서 전도를 하지 못하고 누구 앞에서 구원의 확신을 얘기하지 못 했다. 구원받지 않았다고 하면 저는 강하게 부정하고 싶었지만, 제 자신이 구원 받은 것에 확신 있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게 제 신앙생활이었다. 십일조를 안 드리는가. 아니다. 주일을 빠졌는가. 저는 성수주일은 빠지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다. 새벽기도도 하고 교회에서 시키는 거 다하는데, 마음한구석에는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분이 그리스도라는 답이 생겼다. 구호로 하지 말고 ‘예수님은 그리스도. 내 모든 문제해결 자.’로 믿으시길 바란다. 예수님을 제가 만나니 인생에 답이 났다. 인생에 답이 안 난 사람이 많이 있다. 존경하는 사람, 존경하지는 않지만 대단한 사람이 많다. 석가, 성철, 공자는 대단한데 그들이 산 것처럼 따라가려고 하면 저는 못 따라간다. 그분이 내 인생에 답이 되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볼품없이 십자가 지셨는데, 볼품없는 그분이 사망권세를 깨트려 부활하셔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셨다. 그분을 만나니 내 인생에 답이 났다. 우리의 인생이 답이 나는데 그리스도 통해서 답이 나야 한다. 그런데 저는 이 복음을, 답 난 인생에서 계속 듣다보니 제 문제가 발견되었다. 그러면 이때까지 믿고 신앙생활한건 뭔가. 저는 그리스도로 답이 나 세상에 그처럼 행복한 게 없었다. 내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로 답이 나니 그처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게 없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고 돈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이고 했다. 그런데 계속 복음을 들으면서 저의 문제가 발견되었는데, 그러면 내가 이제까지 신앙생활한건 무엇인가. 율법주의의 신앙생활이었다. 복음이 아니고 율법을 들으면서 자랐다. 교회 와서 이사람, 저 사람을 보면서 시험 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판단했다. 나는 은혜 받지 못하고 부분적인 은혜를 받고 울고불고 했다. 내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은 또 다르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신비주의로 한다. 복음은 없는데 기도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여 뭐가 일어나고, 병 고침을 받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신비주의 신앙생활이다. 그거 성경에는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리스도로 답이 나야 하는데, 기도하면 역사하고 응답받아 따라가는 교회와 성도가 있다. 가만히 보니 신비주의는 복음을 놔두고 뭔가 자꾸 체험하려고 하는데 복음과는 상관없다. 이것저것도 아닌 사람은 앉아가지고 머리를 굴린다. 은혜 못 받으니 교회는 안 떠나는데 자기가 주인이 되어 내 맘대로 교회를 움직이려고 하는 인본주의가 된다. 신앙생활이 아닌 인본주의가 된다. 저는 복음 속에서 훈련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으니 내 신앙생활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복음이 아닌 율법에 축을 두고 했구나. 이사람 저사람 잘못되었다.’했다. 그러니 내 인생에서 전도를 한 사람도 못했다. 서리집사, 안수집사를 하고 심지어 장로도 되었는데 전도하고는 상관이 없는 신앙생활을 했다. 내문제가 뭔가. 복음에 축을 두지 않고 율법주의 신앙에 축을 두고 살았다. 왜 그런가. 어느 날 보니 그게 체질이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체질이다. 유대인은 율법체질이다. 사람들이 복음 놓치고 신비주의, 인본주의의 체질을 가지고 있다. 내 문제가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들으니 체질 때문이었다. 복음에 축을 두어야 하는 것을 아는데, 어느 날 또 율법주의로 간다. 그게 체질이다. 우리가 체질이 있어서 자꾸 돌아간다. 왜 부부싸움을 자꾸 하는가. 체질이다. 잘 지내다가 집사람하고 또 싸운다. 내 율법주의 체질가지고 교회를 생각한다. 그런데 제게 말씀을 계속 듣는 가운데 ‘오직’이라는 단어가 들었다. 전에도 ‘오직’을 들었다. 개혁을 할 때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오직 은혜로 산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 개혁교단이 이 다섯 가지의 ‘오직’을 가지고 승리했다. 그런데 그게 지식으로 들렸다. 왜 오직인가. 우리체질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오직’이란 말이 뭔가. 다른 게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주님과 복음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오직’을 붙들 때 체질이 바뀌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오직’이 안 되면 어느 날 내 동기가 나온다. 창3장속에 ‘자 왕국’을 이룬다. 내가 왕이 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이고 왕이 되신다. 그런데 창3장에서는 교회, 집에나 어디에나 자 왕국이다. 내가 왕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 자신 보면 내 스스로 허무하고 내가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나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이 보인다.

오늘 창45:1-8.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성경을 안 읽는다. 그래서 잠시 설명을 드린다. 야곱은 언약의 사람이다. 4주 동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아브라함, 야곱, 이삭의 얘기를 한 게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말씀한다. 아브라함을 얘기할 때 아브라함 견해와 사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구원주신 그리스도를 말씀한다. 이삭 통해 구원주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야곱을 통해 구원주신 그리스도를 말씀한다.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다.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태어났는데, 이 아들은 언약이 확실하니 하나님께서 비전을 보여주셨다. 자기가 묶은 단이 일어나니 어머니와 아버지의 단과 열 한명 형제의 단이 일어나 절을 했다. 요셉이 그 꿈을 형님들에게 말하니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그 자식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했다. 그리고 하늘의 달과 해, 별이 있는데 요셉의 별이 일어나니 아버지 어머니의 해와 달, 그리고 열한별이 절을 했다. 아래에 꿈 얘기를 해서 형들이 기분나빠하는 것을 보고 머리가 좋으면 얘기하지 않을 텐데, 또 요셉이 꿈 얘기를 했다. 그래서 요셉은 ‘또 꿈 얘기를 한다.’하고 형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리고 야곱이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켜 요셉이 도시락을 가지고 간다. 심부름 하는 요셉을 보고 형들은 ‘꿈쟁이가 온다. 잡아서 죽여 버리자.’한다. 야곱에게는 부인이 네 사람이 있었는데 라헬에게 난 아들이 요셉과 베냐민이다. 그러니 가정에 다툼도 있고 여러 가지로 복잡했다. 그러니 형들이 요셉을 당장 잡아 우물 속에 넣었는데 우물에 물이 없다. 르우벤이나 유다같은 사람이 ‘죽여서 뭐하는가. 팔자.’ 하고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요셉이 노예로 갔는데 보디발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요셉이 노예생활을 얼마나 잘하는지 하나님 앞에서 노예생활을 했다. 보디발이 ‘너 우리 집에 총무해라. 노예로는 아깝다. 총무해라.’ 하는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보니 너무 준수해서 요셉을 유혹했다. 요셉이 거절을 하니 자기가 덮어쓸까싶어 요셉에게 덮었다. 고함치면서 ‘이 노예가 나를 겁탈하려 한다.’ 하여 요셉이 도망가고, 꼼짝없이 덮어쓰게 되어 감옥에 간다. 시위대 감옥이다. 장관 2명이 들어왔는데 장관이 꿈을 꾸게 된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고, 한사람이 죽고 한사람은 다시 나가 왕을 섬기게 된다. 나가면 ‘나를 알아줬으면 한다.’하는데 장관이 요셉을 잊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왕이 꿈을 꿨다. 나일 강에 살찐 암소 일곱 마리가 있는데 삐쭉한 암소 일곱 마리가 살찐 암소를 잡아먹었다. 또 꿈을 꿨는데 한줄기에 무성한 이삭이 나오고 다음에 아주 마른 쭉 정이 일곱 이삭이 올라와 충실한 이삭을 잡아 죽였다. 바로 왕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뭔가 싶어 박수와 술객에게 물어도 하나도 못 푼다. 장관이 그때 요셉이 생각났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내 꿈을 해석한 사람이 있는데 그게 요셉이다’하니 바로가 ‘요셉을 데려오라.’ 한다. 요셉이 바로 앞에서 꿈을 해석한다. ‘애굽에 큰 풍년이 칠년, 큰 흉년이 칠년 난다. 풍년이 날 때 곡식을 비축했다가 흉년 때에 백성들을 살려야 합니다.’했다. 바로가 요셉을 보고 ‘여호와의 신에 이처럼 감동된 사람을 어떻게 얻겠는가.’하면서 총리가 되게 하고 인장반지까지 준다.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자리밖에 없다.’했다. 애굽만 흉년이 든 게 아니라 야곱의 가족이 있는 가나안까지 흉년이 들었다. 형들이 양식을 사러 왔는데, 총리 요셉 앞에 왔다. 그게 오늘 본문이다. 요셉을 알다보지 못한다. 총리가 된 지를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요셉을 팔 때 ‘네 꿈이 어떻게 되는가 보자.’ 하고 팔았다. ‘꿈이 없어진다.’ 하는데 하나님이 이루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굳게 잡아야한다. 요셉이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냈는데 얼마나 감격적인가. 형들은 얼마나 놀랬는가. 그러면서 요셉이 ‘당신들이 나를 판 게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구원을 위해, 또 우리 가족 생명구원을 위해 나를 먼저 보내었다.’고 고백하는 게 오늘 본무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와서 바로에게 축복하는데 지난주처럼 야곱이 축복전달자로 쓰임 받는다. 오늘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답은 뭔가. 언약가진 자는 실패해도 실패한 게 아니다. 언약가진 자가 성공했을 때는 성공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을 주시는데, 하나님이 고통을 주시겠냐만은 시련과 시험주실 때 빨리 아셔야 한다. 거기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성공시켰을 때는 불신자 같은 성공이 아니라 성공의 이유를 알아야 한다. 복음가진 자는 인생의 답을 내시고 환경과 문제, 사건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한다.

첫째. 성도의 삶은 언약의 여정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의 전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결론이 나야 할 것은 뭔가. 그냥 예배당을 왔다 갔다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는데 ‘오직 예수’를 믿는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 믿는데 어떻게 믿는가. ‘오직 예수’를 안 믿고 ‘그냥 예수’ 믿는다. 그래서 WCC를 한다. 혼합주의, 다원주의의 신앙생활을 하고 결국 가서는 ‘너희도 구원 있다. 우리도 구원 있다. 우리랑 손잡고 하자.’하는데 WCC의 사상이다. 성도의 삶은 언약의 여정이다. 이 말이 뭔가.

1. 언약을 전달받고 언약을 전달하는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서 지금 말씀을 듣는데 이게 뭔가. 언약을 전달받고 전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답이 나면 언약을 전달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언약을 전달하는 조상이 되어야 한다. 구약에 네 족장. 언약의 전달자다. 복음명문 가정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언약을 확실히 전달했다. 모리아 산에서 ‘우리대신 죽을 분이 그리스도다.’라고 전달했다. 완전히 각인 되었다. 이삭은 리브가와 함께 야곱이 어떤 사람인가를 분명히 얘기해줬다. 야곱은 12명의 아들에게 분명히 얘기했는데, 거기서 제일 잘 깨달은 사람이 요셉이다. 복음가진 자는 노예로 보내놔도 거기서 성공하고, 감옥에 가니 감옥이 변한다. 구덩이 넣었는데 물이 없고 애굽에 보내니 애굽을 살리고 나중에 가문복음화의 주역이 된다. 성도의 삶은 언약의 여정이다.

모세와 그 부모. 모세에게 언약을 확실히 심었다.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가 된다.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얼마나 출세했는가. 애굽의 왕자가 되었다. 애굽의 학문과 무술을 다 익혔다. 그런데 그것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더 기뻐했다고 한다.

2. 오늘 성도는 언약의 여정으로 살아가면 반드시 승리의 여정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언약을 전달받고 언약을 전달하는 일에 실패한다. 천주교와 오늘 한국교회 장로회 200개를 보면서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가 없는가. 성경책을 안 들고 다니는가. 십일조를 안 드리는가. 성수주일을 안 지키는가. 예수 믿으라고 안 하는가. 그런데 WCC한다. 희미한 장로교들을 넘어트리려고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님들 되기를 축원한다. 언약의 전달자이다. 언약의 전달자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내가 부족하고 언약해 보여도 언약의 전달자가 되면 내 인생의 가치가 달라진다. 요셉은 환경이 문제가 안 되었다. 모세, 나이가 문제가 안 되었다. 사무엘은 어리지만 외로움이 문제가 안 되었고, 다윗은 세상 나가자마자 시험 드는 일이 있었지만 문제되지 않았다. 엘리야와 엘리사, 이세벨의 중상모략이 문제가 안 되었고, 이사야는 절망 같은 시간에도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비전을 잡았다. 바울을 수많은 위기가 무너트리지 못했다. 언약의 전달자가 되면 승리하는 삶을 산다.

3. 사람 보는 눈도 틀려지고 사건 보는 눈도 틀려진다.

4. 그래서 언약의 전달자는 누가 봐도 멋있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와서 시험 든다. 멋있는 기독교인을 찾지 못해 그렇다. 오늘 은혜교회에 멋있는 기독교인이 있는데 증인이다. 감옥처럼 앞뒤 좌우 막힌 거 같은데 그 분을 자세히 보니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다. 총리가 되었는데 총리된 이유를 붙잡고 제대로 해석한 사람이 요셉, 한사람이다. 하나님이 성공하게 해준 이유를 알고, 고난 받게 하시면 고난 받게 하신 이유도 알고 성공한 사람이다.

둘째. 하나님은 우링 인생 전체를 두고 부르셨다. 어느 한 부분 보고 좌절하지 않기를 축원한다. 인생 전체를 보고 부르셨다. 때에 따라서 하나님은 내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가문전체를 놓고 부리신줄 믿으시길 바란다. 한 가문을 복음화하기 위해서, 가문을 담당할 인물이 나와야 한다. 그냥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창12장에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 한 사람이 아닌 ‘너로 인해서 한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많은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하시며 세대와 영원을 놓고 부르셨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부르실 때 예레미야 한명을 두고 부르신 게 아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복중에 짓기 전에 알았다. 복중에 선별했다. 태어날 때부터 선지자로 불렀다.’하셨다. 시대를 놓고 부르셨다. 하나님이 베드로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시며 부르셨다. 베드로의 한 부분을 보면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사람이었다.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그것까지 알고 하나님이 부르셨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은혜교회 모든 성도 분들, 옆 분을 보기나, 가정을 보기나 하나님이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부리신줄 믿으시길 바란다. 은혜교회에는 하나님이 증인을 부르셨다.

1. 하나님은 요셉인생전체를 놓고 부렸다. 우리가 모를 뿐이다. 그러면 우리인생전체를 언약으로 해석해야 한다. 요셉이 그것을 알았다. 인생전체를 언약으로 해석하는데 오늘 본문이다. 아브라함부터 자기까지 언약을 해석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한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다. 지금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을 것 같지만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죽으면 되는가. 번성해야 하는데 ‘나를 먼저 보내서 큰 구원을 이루시는구나.’했다. 세상 수준가지고 우리 인생을 해석하면 맨 날 원수지간이다. 야곱처럼 속이고 속는 인생밖에 안 된다. 그것 가지고 가정과 교회가 해석이 안 된다. 언약으로 해석해야 한다. 요셉이 형들에게 속았을 때 인생으로 보면 원한이 맺힌다. 그런데 언약으로 해석했다.

2.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모든 관계 속에 언약으로 해석해야 한다. 한 부분 놓고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은 나의 인생 전체를 놓고 부르셨다. 요셉이 형들 왔을 때 심심해가지고 형들이 몇인가 묻고 쌀자루에 돈 넣어 보내고, 또다시 불러 은잔 넣어 붙들어 놓고 ‘베냐민 데려와야 한다.’하겠는가. 뭐 때문에 그랬는가. 베냐민이 왔을 때 베냐민을 잡아가지고 있는데 형들이 ‘베냐민을 보내주십시오. 차라리 내가 죽겠습니다.’하는데 왜 그랬을까. 요셉이 ‘아직도 싸우는지. 날 팔듯이 하나 되지 못하고 있는가.’알기 위해서 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요셉이 희생되고 애굽에 팔리고 나서 야곱이 아파하는 거 보고 형제들이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한다.’하고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이다. 요셉이 ‘우리형님들이 이제 하나가 되었구나.’하고 보았다. 베냐민 보고 요셉을 팔듯이 팔면 되는데, 베냐민 보고 유다가 ‘베냐민을 보내주십시오. 내가 있겠습니다.’하고 죽을 자리에 서는 것이다. 요셉이 그때에 ‘여러분들이 내 형님입니다.’하고 자기 자신을 나타냈다. 그게 안 되면 형들이 얼마나 어려워졌겠는가. 요셉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자녀 된 줄 믿으시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며 모든 교회가 하나 되고 모든 교단이 하나 되어야 한다. 요셉이 그 것을 보았다. 하나 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유월절 어린양 피에 하나 되니 하나님이 애굽에 기적을 보이셨다. 요셉의 형들이 하나된 것처럼 우리는 복음으로 한 교회, 한 가정이 되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 되었다. 그것을 알 때에 요셉이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푼지 모른다. 우리 인생전체를 놓고 하나님이 부르셨다.

3. 하나님은 실수하시는 법이 없다. 요셉인생에 절대 실수하시지 않았다. 오늘도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4.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고 실수한거 가지고 후회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 실수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그만큼 전능하시다.

5. 지금 고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줄 믿으셔야 한다. 요셉의 어려움, 야곱의 어려움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우리가 고난 받고 힘들다? 하나님 아는 지름길이다.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지름길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있는 고난과 어려움, 하나님을 아는 지름길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지름길,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지름길이다. 저는 어떤 얘기를 듣다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천국에서 기도응답을 포장하는데 포장지에 보니 ‘고난’이라는 포장지다. ‘왜 이런가.’ 하니 ‘다른 사람이 뺏을까 싶어 그렇다.’한다. ‘그런데 성도들이 그 고난 안에, 고난 너머에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는 줄을 모르고 어디 간다.’한다. 천사들이 곳간에 들고 가서는 ‘천사생활을 못 한다.’한다, 여러분,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일시적이다. 그 고난 안에는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넣으셨다.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지름길, 하나님의 계획이루는 지름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지름길이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되는 지름길이 뭔가. 가만히 보면 노예로 팔리고 억울한 누명쓰고 그게 지름길이다. 세계복음화한 사도바울이 로마가는데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된다. 로마를 보아야 되겠다하는데 당당하게 가면 좋은가. 죄수의 몸으로 간다. 사람이 막지 못했다. 사도바울을 죽이려 하는 사람, 40명의 결사대가 있는데 초대교회에 막아 줄 사람이 없다. 죄수로 가면 로마 군인이 다 막아준다. 우리에게 오는 고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성공의 지름길이다 믿으시길 바란다.

셋째. 그러면 성도는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1. 기도로 해결해야 한다. 혈과 육의 씨름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싸움이라.

2.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염려체질을 버려야 한다. 문제보고 문제다 하면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다. 맨날 문제다. 그런데 이거 축복이다 봐야 한다. 답이 있다고 봐야 한다. 사도바울은 [빌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이 우리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셔야 평안하다. 문제보고 싸 매이지 말라. 복 줄려고 하신다. 지름길이다. 그래서 맨 날 우리 입술에 감사가 나와야 한다. 절대 감사 나오고 문제 오면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감사해야 한다. 앵무새 얘기 들어보았는가. 권사님 두 분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분이다. 새를 좋아해서 새를 사러 가자했다. 새집에 가서 똑같은 앵무새를 샀다. A라는 권사님과 B라는 권사님이 앵무새를 샀다. A라는 권사님은 늘 믿음이 충만해서 ‘믿음으로 될지라.’ 했다. 그러니 앵무새가 ‘믿음대로 될지어다.’한다. 따라 하기 시작한다. 권사님이 맨 날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시니 앵무새가 입에 익었다. B라는 권사님은 교회 와서 믿기는 믿는데 문제가 생기면 ‘아이고. 죽겠다.’한다. 어느 날 앵무새가 ‘아이고 죽겠다.’했다. 권사님이 앵무새 보고 희한하다했다. B라는 권사님이 A라는 권사님 집에 갔는데 A권사님 앵무새가 ‘믿음대로 될지어다.’한다. B라는 권사님도 자기 앵무새를 고쳐야겠다 해서 A라는 권시님 집에 두고 가뒀다. B권사님 앵무새도 배워서 오겠지 했는데 B권사님 앵무새가 죽어버렸다. 이유가 뭘까. B권사님 앵무새가 ‘아이고 죽겠다.’하니 옆에서 A권사님 앵무새가 ‘믿음대로 될지어다.’해서 그렇다. 하루 종일 ‘아이고 죽겠다.’하는데 옆에서 ‘믿음대로 될지어다.’해서 그렇다. 생활방식을 바꾸시길 바란다. 왜 말씀을 자꾸 들어야 되는가. 믿음생기라고 그렇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저도 하나님의 말씀 자꾸 들으니 그대로 되는 것을 보았다. 저는 원래 기도체질이 아니다. 머리 굴리는 체질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된다. 그래서 믿음이 생겼다. 체질 바꾸어야 한다.

3. 말씀에서 답과 비전 찾기를 축원한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붙들었다. 증조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언약을 주시지 않았는가. ‘한 민족이루시겠다.’ 하지 않으셨는가. 할아버지 이삭에게 늘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아버지 야곱은 고생을 많이 했지만 언약의 전달자가 되지 않았는가. 요셉은 사건보고 언약으로 해석했다. 한 순간을 보고 나와 교회를, 옆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

4. 세계 담을 그릇을 키워야 한다.

결론) 내 인생과 삶에 어두움을 이기는 길이 있다. 요셉이 가지고 있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복음의 비밀가지고 있었다. 족장의 장막에는 피가 흘렸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조금 있으면 수능을 친다. 대학 가려고 치면 안 된다. 수능을 안 쳐도 대학갈 수 있는 시간이 온다. 들어 가려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다. 내 삶의 내용이 임마누엘이 되어야 한다. ‘저 분 보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네.’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없어서 인본을 쓰는 구나.’해야 한다. 오늘도 왜 말씀을 듣고 붙잡고 기도하고 응답받아야 하는가. 전도자의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알면 지식으로 머문다. 내 삶에 임마누엘을 누릴 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오늘도 진정 전도자로써 임마누엘을 누리면서, 노예가 문제가 아니라, 감옥이 문제가 아니라 임마누엘을 누려야 한다. 총리가 되었다 해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들고 한 시대와 한 세대를 놓고 언약을 전달받고 언약을 전달하는 족장 같은 복음명문 가정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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