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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내게주신 비젼을 붙잡으라

이성봉 | 2015.08.11 07:32 | 조회 9180

본 문 : 창37:1-11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서 론 :
하나님께서 우리 은혜교회에 선교의 축복을 주시는 줄로 믿는다. 렘넌트 대회 통해서 선교사님들이 많이 오게 되어 지고 앞으로도 오실 것이고, 우리가 중국복음화를 기도제목으로 잡았는데 선교사님을 파송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이제는 다민족복음화의 기도제목 주셨는데 할 수 있는 사명자와 제자들이 왔다. 먼저 중국의 파송된 김복상 선교사님의 가족과 이제까지 사역하면서 함께 동역하는 제자들이 왔다. 일어서시길 바란다. 첫 산업인으로 의미있는 분들이 왔다. 지난번에 장로님과 함께 오세아니아 중화 전도학교를 순회했는데 뉴질랜드에 하나님이 최이삭 선교사님을 우리교회 방문하게 하셨다. 일어서시길 바란다. 얼마 전에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더 큰 곳에 가서 훈련받는 세르히오 장로님 가정이 왔고 스페인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 왔다. 오직 그리스도교회에 피토 장로님 가정이 왔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성취하시는 것을 본다. 하나님이 일을 하실 때는 가만히 있다가 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시고 하나님이 일하신다. 복음의 흐름 속에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확인한다. 중국복음화에 이어서 다민족복음화로 기도제목을 넓게 잡고 세계복음화를 잡았는데 다민족 복음화를 할 수 있는 사역자를 보며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은, ‘내게 주신 비젼을 잡아라’ 이다. 다른 사람의 비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는다. 다른 사람의 역사를 보고 감동받는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내게 주신 비젼을 잡아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시기가 나고 어느 날 갈등이 생긴다. 성도들이 ‘정말 성경에 있는 대로 응답이 됩니까’ 한다. ‘성경에 보니 응답이 오는데 지금도 그 응답이 내게 옵니까? 성경대로 기도응답이 옵니까?’라고 묻는 성도님들이 계신다. ‘그런데 나는 왜 성경대로 응답이 안됩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저는 ‘응답이전에, 당신이 얘기하는 응답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합니까?’ 질문한다. 응답보다 중요한 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다. 기도응답은 어디서부터 오는 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로부터 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사실이 흔들리면 응답이 다 흔들린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역사 일어나는 거 보고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갑니다.’라 떠드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그걸로 기뻐하지 마라. 내가 벌써 안다. 너희 이름이 하나님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셨다.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거, 임마누엘 누리는 것을 못 누리게 되면 응답이 문제가 아니다. 왜 응답에 대해서 흔들리게 되는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확인 안 되어지고 확신이 없으니 응답이 오는지에 왜 흔들리나. 응답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란 게 확실히 맞는지가 중요하다. 분명히 맞으면 응답이 오고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자녀면 기도했다? 응답오고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게 되어있다. 아브라함은 많이 흔들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많이 흔들렸다. 아브라함은 25년 흔들렸다. ‘너로 한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네 씨로 대적의 문을 열게 하겠다.’의 응답을 받기까지 많이 흔들렸다. 아브라함은 25년 만에 제대로 된 응답을 받는다. 야곱은 21년 만에 제대로 응답받았다. 밧단아람 외갓집에 가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요셉은 17살에 애굽에 노예로 끌려가고 13년 되서 총리대신이 된다. 이 꿈을 하나님이 주셨지만 이 꿈이 응답되는 데는 13년이 걸렸다. 요셉에게 있어서 총리가 응답인가? 아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기도, 내가 바라는 것이 응답이 아니라 진짜 응답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어디에 가있어도 증인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응답이다. 요셉은 총리가 되어 애굽 복음화를 하는 증인자리에 있었다. 모세가 갈등하는데 제대로 응답받는 데 40년이 걸렸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맞다면 응답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응답의 기준을 응답에 두는데, 바꿔야 한다. 내 시간표가지고 응답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응답을 봐야 한다. 내 시간표, 내 기준을 가지고 응답을 찾는데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기준에서 하나님 시간표를 가지고 응답받아야 한다. 또 어떤 성도님들은 ‘성경을 많이 안다. 메시지도 많이 들었다.’하는데 왜 나는 흔들리나? 더 중요한 것은, 많이 알지 말고 중요한 것을 알기를 축원한다. 중요한 것은 알지 못하고 그저 많이 알기를 원한다. 만약에 택시 기사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용서하시길 바란다. 택시기사 분들은 많은 사람들이 택시에 타니 이것 저것 너무 많이 안다. 많이 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 어려움을 당한다. 박사 아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러 나가는데 조부모께서 ‘차조심해라.’하셨다. 박사의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게 차 조심일 수 있다. 성경에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을 실제로 안 믿는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틀리다. 아는 것은 아이큐가 좋으면 빨리 안다. 중요한 것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빨리 짚어낼 수 있는데 신앙생활은 그것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머리좋은 사람은 빨리 알고 중요한 것을 짚어내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믿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얼마나 성경을 많이 알았는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리스도, 그것을 몰랐다. 베들레헴에 나실 것을 알았는데 그렇지 올 줄은 몰랐다. 감동을 많이 받았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감동은 시기가 지나면 떨어진다. 지,정,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지, 깨달아야 한다. 정, 가슴에 담고 의,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너무 고통이 많다하는데 참 복음을 소유하면 복음 때문에 오는 고통, 어려움, 핍박은 문제없다. 선교사님과도 얘기했는데 같이 신앙 생활했던 분들이 핍박할 때가 더 어렵다. 불신자의 핍박보다 더 어렵다. 한국교회가 우리는 오직 복음을 하는데 시비를 거니 더 어렵다. 그런데 그것은 더 감사해야 할 것이다. [롬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환란이 줄거운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바울은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 말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소망을 붙잡고 복음을 붙잡게 되었다? 더 좋은 것이다. 성경대로 안 믿고 안 기다리면서 응답이 오니, 안오니한다. 내 생각과 기준 내려놓고 하나님의 기준에서 응답받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저는 렘넌트들이 연극하는 것을 보았다. 천사 하나가 나타나 ‘아 요새 천사 더러워서 못하겠다.’했다. 그러니 옆 천사가 ‘왜 그러는가’물으니 ‘인간들이 기도해놓고 응답보따리를 들고 가면 어디 가고 없어서 응답을 줄려고 돌아다니다보니 더워서 못하겠다.’했다. 가브리엘 천사에게 말하고 창고에 가 열어보니 응답보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기도해놓고 안 믿는다. 전부 자기 기준가지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답을 내었는지 알아야 한다. 바울은 기도응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께 초점 맞춰 있었다. 응답의 기준이 달랐다. 감옥에 가고 태장을 맞고 파선을 당했지만 기쁘다고 했다. 그리스도께 초점 맞추니 그렇다. 빌립보서 3장에 그리스도가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 하고, 그리스도께 발견되기를 원한다고 했다.또 그리스도 손에 있는 그것을 잡으려고 쫒아간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몇 가지 착각을 버려야 한다. 제대로 기도응답을 받는 사람은 응답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기준이다. 거기에 참 행복이 있고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


본 론 :
첫째.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요셉이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너로 한민족을 이루겠다.’하셨다. 분명히 목적을 알아야 한다. 그 얘기가 이삭에게 내려가고 야곱, 요셉에게 흘러간다.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 나를 통해 가정복음화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1) 가정복음화 뿐 아니라 지역복음화, 민족복음화, 다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 때문에 우리를 부르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내 한 영혼도 귀한데 옆에 영혼, 가족영혼도 귀하지 않는가. 요셉의 꿈을 통해 하나님이 개인구원, 가정구원, 민족구원, 세계복음화의 비젼을 보여주셨다. 개인, 가정복음화, 지역복음화,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의 비젼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셨다. 이걸 알아야 하나남과 방향이 맞다. 이걸 놔두고 응답이 없다하니 방향이 안 맞다. 돈을 벌어도, 렘넌트를 키워도 세계복음화를 위함이다. 이걸 놓치면 불신자 기준에서 불신자를 보고 내 자녀도 저렇게 키우자한다. 성경에 보면 중요한 흐름이 있다. 복음의 흐름이다. 율법을 얘기하는 거 같지만, 율법도 율법을 통해 복음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율법은 정죄의 기능이 있는데 정죄의 기능 속에서 우리 살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피 언약을 설명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그분이 오셨는데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복음의 흐름이다. 그거 놓칠 때 전부 멸망당한다. 그거 잡은 사람이 맞추는 방향이 있다. 구약은 가나안땅으로 맞추고 신약은 재림하실 땅에 맞춘다. 구약에 어느 성도, 어느 가정이든 간에 가나안에 방향을 안 맞추면 고생한다. 아브라함, 가나안땅에 들어갔다. 그거 유해야 하는데 흉년이 들었다고 애굽에 내려갔다가 가정에 환란을 당한다. 이삭, 애굽 내려가지 말라하니 그랄에 머물렀는데 하나님이 백배의 축복을 하셨다. 사사기에 엘리멜렉 가정이 육신적 흉년이 들어 모압땅으로 갔다가 어려움을 당했는데 다시 돌아오니 하나님이 회복하게 하셔서 그리스도가 오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은혜교회 성도님들, 선교대회와 렘넌트대회, 산업인 대회, 이런 큼직한 대회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추어있다. 사실적으로 알아야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한다. 내 마시는 것, 자녀들 기르는 거, 경제활동이 전부 다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에 맞추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몇 대째 하는데 이 사실 놓치고 하니 종교생활로 빠진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내 혼자 잘 먹고 부자 되고, 자녀들 잘 기르고 하면 복음공동체와는 상관없다. 복음공동체는 모여 전도, 선교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분명히 알 때 사실적으로 기도 응답을 하신다.
(2)대부분이 내가 복음화할 수 있는 능력과 수준, 인품이 안 된다. 그런데 그거 들고 나온다. 내 수준 들고 나온다. 우리 교회 수준과 능력을 들고 나간다. 그리고 다른 소리를 한다. 거꾸로 우리 수준가지고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인가? 우리 노력, 인품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인가? 지난 주일에도 말했지만 상대적인 의로 하나님앞에 갈 수가 없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으 보좌 앞 영광을 보니 ‘화로다’ 했다. 우리 것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창3장인데, 하나님이 절대적 의로 말씀해주는데 핀 숯불로 네 죄가 사하여 졌다고 하셨다. 우리는 신분을 가지고 응답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니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맞추고 근본적 방향이 맞을 때 응답 주신다. 사도바울은 그렇게 살았다. 자기의 의 가지고 노력하고 율법을 지키고, 육신적으로 내려오는 가문부분을 자랑하고 다 했지만 응답 없다는 것을 알고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속에, 은혜 속에 사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응답이 안 올 수가 없다. 응답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의 목적을 알면 하나님이 안주실 수 없다. 거꾸로 우리는 내 수준, 우리 교회 가지고 응답을 받는 게 아니다.
(3) 올바른 인품, 행위도 중요하다. 이전에 먼저 복음의 능력 속에 들어가야 한다. 왜 신앙생활이 힘든가. 내 인품, 능력, 지식가지고 복음을 끌고 다니니 힘이 든다. 우리의 수준, 인품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다.
(4) 휼륭한 인품이 복음의 능력 속에서 나와야 한다. 내 생각이 복음 속에서 나와야 한다. 인격이 복음 속에서 나와야한다. 내 수준이 복음 속에서 나와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는데 복음가지고 하신다. 그게 성화이다. 그게 아니면 수도하는 거나 똑같다. 모든 것이 복음 안에서 나와야 한다.
(5) 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는가. 내 구원부터 시작해서 가정복음화,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리신 목적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부르실 때 아브라함 한명 때문이 아니라 민족 구원하시고 제사장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유대인들이 ‘우리는 선민이다. 너희는 아니다.’하는데 그러니 화가 미친다.

둘째. 전도자의 삶의 내용은 임마누엘이다.
전도자가 가지고 있는 비밀은 그리스도다. 전도자의 삶의 내용은 임마누엘이다. 착하고 올바르게, 부지런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조건, 어떤 환경, 어떤 일, 사는 지역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게 영적비밀, 그리스도시고 삶의 내용이 임마누엘이다. 요셉은 임마누엘의 삶을 살았다. 노예로 팔려갔는데 노예생활하면서 임마누엘의 삶을 산다.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자 했는데 요셉은 임마누엘의 삶을 살았다. 창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육신적인 것, 내게 좋은 거, 내 이익가지고 전부 결정하고 판단하는데 요셉은 내 유익이 아니라 ‘어찌 하나님 앞에서’라 했다. 루터, 한마디만 하면 끝인데 하나님 앞에서 그 얘기를 못한다. 루터가 재판장 앞에 서서 ‘하나님 앞에 섰다.’했다. 하나님 앞에 서니 중세교회 절대 아니다했다. 하나님 앞에 사는 게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이라 말하면서 선택은 육신적으로 하고 판단은 육신적이다. 전도자의 삶의 내용은 임마누엘이다. 어느 날,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내가 너를 보니 하나님이 함께하신다.’했다. 바로 왕이 요셉을 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다.’했다. 오늘 성도님들 불신자가 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게 보여지기를 축원한다. 그게 증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황, 그거 기도하라 안하신다. 마지막으로 승천하실 때 미션을 주시는데,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이고 가진 거 없는데 상황 놓고 기도하라고 한번도 하지 않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다. 내 상황은 이렇지만 그전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내 능력이 너희 안에 머물면 모든 것이 끝이다.’ 하신다. 중요한 것을 우리는 놓치고 서론적인 거, 주변 것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니 응답이 안 오는 거 같고 힘들다.
아브라함은 땅도 없고 애굽에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 그런데 갈수록 아브라함이 체험한 게 있다. (1)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는 것이다. 아비멜렉 왕이 보고 ‘내가 너를 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다.’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게, 내 삶의 내용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 염려, 근심이 없다. 함께하시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통하면 된다.
(2) 이삭도 마찬가지다. 아비멜렉 왕이 이삭을 보니 자꾸 증거가 나타난다. 그 증거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보여 졌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 한번만 체험하면 사람 의지하지 않는다. 특히 사역자와 주의 종에게 하나님이 『사40: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말씀하셨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네 생각을 얘기하라’ 하는가? 아니다. [렘 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내말을 네 입술에 두었다. 내말을 전하라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의지하려하고 지위, 권력, 돈을 의지하려한다. 특히 여자들은 남편의지를 많이 한다. 사모님들은 목사님을 의지하려하는데 오직 주님만 의지하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 말씀만 붙들기를 축원한다. 저도 들은 얘기인데 어떤 사모님이 목사님보고 ‘목사님은 나의 로또야’ 하는데 목사님이 기분이 좋아서 ‘내가 로또인가’ ‘내하고 결혼 잘 했지?’했는데 사모님이 ‘평생 한번도 맞은 적이 없어.’했다. 그러니까 사모님이 ‘이불가지고 강단에 올라가서 살자.’한다. 왜? 강단에 서면 거룩하고 말씀도 줄줄 말하는데 집에 오니 다르니까 ‘집에서 같이 못 살겠다. 강단에서 살자.’한다. 누구를 의지하는가. 돈? 지위? 지위 올라간 사람이 왜 무너지고 자살하는가. 우리인생이 하나님의 목적에 방향 맞추기를 축원한다. 내 진짜 행복은 임마누엘이다. 기도응답을 받는 데도 행복하지 않는가? 영원한 행복은 임마누엘이다. (3)요셉, (4)초대교회도 마찬가지다. 초대교회도 성령이 임하시니 그때부터 사도들의 삶이 달라지고 자세, 말이 달라진다. 사도바울, 달라졌다.

셋째.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비젼을 붙잡아라.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의 응답보고 비젼을 본다. 다른 사람 사역증거를 보는데 다른 사람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 붙잡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이 있다. 형이 왜 그런가? 응답 못 받아 시기한다. 응답을 못 받으면 질투난다. 임마누엘 누리며 응답을 못 받으면 요셉 형, 사울임금처럼 된다. 바리새인이 그렇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젼을 붙잡아야 한다.
(1) 하나님이 어느 날 요셉에게 비젼을 주셨다. 우리 신앙생활에 내게 주신 비젼을 찾아야 한다. 비젼을 발견 못했다?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해야 한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주신 비젼이 무엇인가 발견하고 은혜교회의 비젼이 뭔가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비젼을 주셨는데 아브라함, 이삭 할아버지, 야곱 아버지가 말한 비젼이었고 오늘 요셉에게 주셨다. 자칫 잘못하면 내게 주신 비젼을 놓치고 다른 사람의 사역을 본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갈릴리에 가셨다. 베드로가 6명의 제자들 데리고 7명이 갔는데 고기 잡는 거 허탕치고 있었다. 주님이 도와주셔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주님이 떡과 고기를 굽고 먹게 하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니 습관적으로 ‘주님 그러하나이다’ 대답했다. 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님이 ‘이 모든 것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니 베드로가 진짜로 대답했다. ‘다 아시지 않습니까. 세 번 부인한거, 물고기 잡으러 온 거, 다 아시지 않습니까.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했다. 그러니 주님이 ‘내 어린양을 치라.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베드로를 부르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사랑하는 요한이 있는 것을 보고 ‘요한은 어떻게 합니까?’ 물으니 주님이 ‘내가 올 때까지 요한을 둘지언정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하셨다. 우리는 ‘헌신하라’하면 ‘옆에 얘는요?’하고 ‘헌금하라’ 하면 ‘저 사람한테 말 안하고 왜 내한테 그럽니까?’하는데 주님은 ‘너는 나를 따르라’하셨다. 중요한거 놓치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요한은 오래오래 산다더라.’ 소문내는 사람도 있다. 어느 사람은 장로로, 어느 사람은 안수집사로, 어느 분은 교사로, 하나님이 각자의 비젼이 있다. 하나님은 능력대로 주신다. 한 달란트가진 사람, 두 달란트가진 사람, 다섯 달란트가진 사람, 능력대로 주신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저 사람은 다섯 달란트 줍니까?’ 얘기할 필요가 없다. 한 달란트만 남기면 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젼을 잡으시길 축원한다. 형들은 그 부분 놓쳤다. 요셉처럼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세계복음화를 할 사람에게 비젼를 주셨다.
(2) 다윗에게 주셨다. 목동치는데 선지자 사무엘이 와서 비젼을 주셨다. 기름부으면서 ‘너는 왕이 될 것이다.’하셨다. 다윗은 그비젼잡고 준비했다.
(3) 베드로에게 비젼을 주셨다. 베드로가 놓쳐서 흔들거렸지, 하나님은 비젼을 주셨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 내가 이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비젼을 주셨다. 오늘 그리스도 신앙 고백하는 여러분에게 여러분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기를 축원한다. 베드로는 이 비젼을 잡았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천국열쇠를 주신다는 비젼을 잡았다.
(4) 제자들에게 비젼주셨다. [마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비젼을 주셨다. 그러면서 마가다락방 모인 500명에게 감람산에서 비젼을 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세계복음화의 비젼을 주셨다.
(5) 하나님은 핍박자 사울에게 비젼 주셨다. 어느 날 다메섹에서 꺾으시고 아나니아를 만났는데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글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하셨다. 사울은 하나님이 주신 비젼잡고 바울로 계속 쓰임받는다. 나중에 ‘내가 로마에 가야하리라.’ 풍랑가운데서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했다. 우리 은혜교회에게 주신 비젼은 중국복음화, 중화복음화 그러면서 다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이다.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하시면서 한명 한명 만남의 축복을 주신다.
(6) 교사, 부모님들은 렘넌트 보면서 은혜교회 미래다 생각하시고 비젼을 가르쳐줘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비젼, 달란트 가지고 우리는 미래가 나를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미래가 이제 우리를 따라와야한다. 사람이 시간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역사의 주역으로 우리를 부르셨으니 준비하고 있으면 미래의 시간이 우리를 따라오게 하실줄 믿으시길 발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시간과 이삭, 그리스도 준비하시고 부르신다. 복음의 흐름 속에 있으니 미래가 따라온다. 과거 따라갈 필요 없다. 현재는 믿고 준비하면 된다. 미래가 어느 날 따라오고 말씀이 성취된다.

결론 :

내 삶 가운데서 부르심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먹는 거, 입는 거, 마시는 거 때문에 급급하게 하시지 않으셨다. 훈련받기위해서 그럴 수 있는데 평생 돈, 병 때문에 고생하고 실패하도록 하나님은 절대 하시지 않는다. 과정이다. 내 괴로움 큰 공사다. ‘나는 왜 이런가?’하는데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 공사하셨다. 아브라함을 25년 동안 공사하셨다. 공사기간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확신만 있으면 된다. 부르의 목적, 가정복음화, 가문복음화 기도해야한다. 은혜교회 통해 세계복음화 할 렘넌트 일으시키줄 믿으시길 바란다. 10년후 청년대학부, 20년 이후 중고등부가, 30년 이후 유초등부, 태영아부가 이런 일을 일으키는데 미래가 따라온다. 언약의 전달자, 복음명문가정, 멋있는 전도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저 목사님 때문에 교회안가고 장로님 때문에 교회 안 간다고 교회왔다가 간 사람은 그 말 하는데 교회 와서 복음을 못 들었다. 사람을 봤다. 복음 듣고 답을 내야 하는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사람을 봤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보고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는 게 누구인가? 노아의 아들들 중에 샘과 야벳이다. 함은 사실을 말했다. 맞는 말을 했다. 노아의 식구는 교회인데 샘과 야벳은 함께 덮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덮어주신다. ’샘의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한다. 샘의 후손 통해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샘의 족속이고 다윗이 샘의 족속이다. 그 후에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게 초대교회와 기독교를 이룬다. 또 멋있는 사람, 다윗이다. 시므이가 얘기하는 거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자, 사울은 귀신들린 사람이다‘하며 불쌍히 여겼다. 브리스가 부부, 아볼로를 보니 마가다락방이 복음을 모른다. 성령충만을 모른다. 조용히 주의 종을 불러 도와주고 팀 사역하면서 아볼로가 휼륭한 목회자가 되었다. 오늘 요셉 복음의 사람, 복음의 체질이다. 형들이 왔을 때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한 게 아니라 언약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20) ’나를 먼저보냈다.’했다. 모든 성도님들 보면서 불신자들이, 낙심한 사람들이 ‘내가 너를 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다.’ 하기를 축원한다. 그게 성도다. 오늘도 내게 주신 비젼, 가정에 주신 비젼, 교회에 주신 비젼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말씀을 붙잡고 미래 준비해가지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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