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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실상을 붙잡아라

조혜진 | 2015.09.20 14:04 | 조회 8835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내게 있는 가장 큰 자산이 뭔가 물었을 때, ‘저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다.’ 그렇게 고백하고 싶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제가 예전에 신학을 해야 되겠지만 제게 믿음이 없으니까 신학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믿음이 생기니까, 전 보다 환경이나 문제는 더 안 좋은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응답받고 걸어온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산이라 때에 주변에 있는 경제라 던지, 아니면 식구들이라 던지,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것을 자산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성도에게 있어서 자산은 믿음 밖에 없다. 믿음이 빠지면 고무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성도에게 힘이 없어지고 성도가 무력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 그래서 기도하고 전도현장에서 응답받는 것이다. 그게 렘넌트 7명이라 했는데, 렘넌트 7명이 무엇으로 승리했는가. 믿음이다. 렘넌트가 실력이 좋거나 배경이 좋아 승리한 게 아니다. 렘넌트 7명보면 아무 배경이 없다. 누구 의지할 데가 없고 결국은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렘넌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중직자는, 하나님 의지하는 사람이 중직자가 된다. 성경에 보면 ‘믿음’이라 했을 때 믿음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사건, 문제와 내 삶속에서,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서 ‘내가 여기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져야 한다. 그거 알수록 담대해지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믿음자체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고 말씀 붙들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가신다.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고백했다. 믿음이 생기면 믿음이 더 생긴다. 불신앙생기면 자꾸 불신앙이 더 많아진다. 그래서 말씀체험해보고 기도 체험해보면, ‘내가 믿음 떨어지면 큰 일이 나겠구나.’ 알게 된다. 믿음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머리에 신학지식이 가득 들어도 믿음 떨어지면 일을 못한다. 그게 루터였다. 한순간에 믿음이 떨어지니 루터가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 누워 이불을 덮어쓰고 꼼짝달싹을 못한다. 루터가 눈이 빠졌는가. 발이 삐었는가. 똑같은 루터인데 믿음이 빠져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데 루터 부인이 상복을 입고 대성통곡을 했다. 루터가 ‘누가 죽었는가’ 하니 루터 부인이 ‘하나님이 죽었다.’한다. 루터가 부인에게 ‘하나님이 죽었다니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가.’하니 부인이 ‘하나님이 안 죽었으면 왜 그렇게 낙심하는가?’말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렘넌트 7명의 믿음이 무슨 믿음인가.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무작정 믿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 하나님이 나와 약속하신 메시지가 있다.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믿는 것이다. 그게 믿음이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메시지를 주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계속 메시지를 주셨다. 복음 안에서 여자의 후손의 메시지를 계속 주셨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고 한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것을 위해서 제사장 나라가 되어 많은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하셨다. 아브라함이 안 믿으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하시며 실물교육을 시키신다. ‘믿음’이라 했을 때 믿음은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믿기를 축원한다. 약속에 대한 믿음을 붙잡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왜 불신앙 들어오는가. 약속 놓치고 나를 보니 그렇다. 나는 약하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힘이 없다. 그런데 세상가보니 나보다 힘이 세고 똑똑하다. 나보다 더 돈이 많다. 약속 놓치니 하나님 아니고 세상이 보인다. 그러니 불신앙이 들어온다. 약속을 놓치고 환경을 보니 불신앙이 들어온다. 그게 사울임금이고 다윗의 형들이다. 사울과 다윗의 형들은 다윗보다 키가 크고 힘도 좋다. 그런데 약속을 놓치고 블레셋보고, 약속 놓치고 골리앗 같은 환경을 보니 떨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언제 불신앙이 드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놓치고 나를 보고, 옆 사람을 보니 불신앙이 들어온다. 약속을 놓치니 마귀가 얼마나 공격하기 좋은가. 똑같은 루터였고 똑같은 제자인데 약속을 놓치니 제자와 루터도, 그 어떤 사람도 현장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약하고 인물도 잘난 게 없었다. 질병을 몸에 가지고 있었는데, 그거가지고 주님 앞에서 기도할 때 주님은 사도바울에게 답을 주셨다. ‘네 약한 데 내 능력이 머물고자 함이라.’ 우리 약한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면 약한 게 아니다. 전화위복되고 능력이 된다. 그게 렘넌트 7명이다. 렘넌트 7명이 환경이나 배경, 그 모든 것에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외롭고 힘들고, 왕따 같은 인생을 산 것이 렘넌트 7명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서 응답받았다. 요셉은 가정환겸이 매우 안 좋았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현장에서 승리했다. 노예생활이 얼마나 힘든가. 억울한 거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겨냈다. 모세는 배경이 없었다. 애굽에서는 왕자였지만 어느 날 완전히 광야에 쫓겨 아무런 배경이 없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외롭게 자랐다. 성전에서 자랐는데 거기서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다. 엘리야는 중상과 모략 속에서 어디 몸을 피할 곳도 없는데,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시대를 살리고 제자를 일으켰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다윗은 응답받았다고 하는데, 응답은 고사하고 몸을 피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줄을 알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이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했다. 현장은 우리가 은밀히 말하면 응답받고 승리해야 할 자리로 믿으시길 바란다.

히11장은 구약성경을 하나로 요약한 책이다. 히11장은 구약전체를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다. 무엇으로? ‘그들은 믿음으로 승리했다.’이다. 믿음으로 살았다. 무슨 믿음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믿음이다. 히브리서에 보면, 구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전부 열거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환경이 좋거나 배경이 좋아서 승리한 게 아니라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승리했다. 저들이 약하기도 했고 부족하기도 했지만 세상이 감당치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은혜교회 성도님들, 여러분의 자산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인줄 믿으시길 바란다. 어떤 것도 도움이 안 된다. 여러분에게 오히려 짐이 되고 근심, 걱정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고 약속에 대한 믿음을 더하시길 축원한다. [히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믿음 있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아무리 방해하고 태클을 걸어도, 오히려 그들이 실패하고 올무에 빠진다. 우리는 시편, 잠언서를 읽어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복음을 방해하고, 믿는 사람을 해방하고 궤계를 쓰는데 그들 자신이 거기에 빠진다고 되어있다. 믿음은 언제 생기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이다. 세상 말을 들어 생기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사도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했다. 그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겨난다 한다. 히11장보면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는 믿음의 실상과 증거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성도는 지식이나 삶에서 깨닫는 세상지혜를 붙잡고 사는 게 아니다. 솔로몬은 ‘그것이 헛되다.’했다. 말세가 되면, 학자가 나오고 정치를 아무리 잘해도 딤후3장에 고통 하는 때가 온다했는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게 믿음이 있는가. 믿음이 없는가. 없으면 염려가 들어오고 무기력하다. 믿음이 있으면 어떤 환경도, 골리앗 같은 문제도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다. 이것을 깨달으면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사람이 어떻게 성공하는가도 보여 지고 사람이 왜 실패하는가도 보여 진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내게 진정한 평안이 온다. 문제에 휩싸이지 않고 그 너머에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고, 문제나 환경 속에서 오히려 복음의 한을 가지고 ‘내가 모델로 서야겠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서야겠다.’는 복음의 한을 품게 된다.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한국교회를 보면서 복음의 한을 품는다. 세상 보니 어지럽고 악하다? 복음의 한 가지고, 세상 바꾸는 주역으로 한을 품게 된다. 세상보고, 문제보고 낙심하지 마시고 히11장을 보면서 믿음 회복하고 ‘나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렘넌트다.’ ‘나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중직자다.’ 믿으시길 축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자는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 교회에서 ‘세상지식’, ‘첨단기기’, ‘전문성’을 아무리 갖춰도 믿음이 없어지면, 교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서 그렇다. 믿음이 있으면 사도바울이 [빌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래서 오히려 그거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시편의 기자처럼 하나님 앞에 토해내시고 응답받는 성도님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빌1:29’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히11장보면서 우리는 결론 잡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게 뭔가.

첫째.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다.

믿음이 있다? 누구도 그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 히11장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 제자들이다.

1.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미리 바라보고 응답 받아가는 사람이다. (1)아벨, 지금도 말한다.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이다. 믿음으로 예배드렸는데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다.’하신다. 여러분 이런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란다. 믿음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흑암이 꺾이는 예배드려야 한다. 한번 드려도 내 생이 바꿔지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한번 드렸는데 교회사에 남을 예배드리기를 바란다. 그게 우리의 예배라 봐야 한다.

(2)에녹,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누가 무너뜨리나. 우리의 신분을 보면 안다. 성령내주, 성령인도, 성령역사. 하나님이 주인 되어있는데 사단이 공격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인도해 가시는데 응답받는 길로 간다. 누가 넘어트리는가.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누가 넘어트리나. 에녹, 300년 동안 증거 있는 삶을 사는데 하나님과 동행했다.

(3)노아,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데 얼마나 비방이 많았는가.

‘배를 바닷가 가서 짓지, 산꼭대기 가서 왜 짓는가. 노망이 났는가. 비 안 왔지 않는가. 10년이 지났는데도 비가 안 왓지 않는가.’ 많은 사람이 비방했다. 우리보고도 그렇다. 저보고 ‘세계복음화는 다 되어가나’ 했다. 이래저래 비방한다. 그런데 노아는 120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배를 짓는다. 결국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된다. 오늘 우리가 하는 일, 믿음으로 하시길 바란다. 노아는 120년 동안 비방해도 끄덕하지 않고 식구들과 방주를 지었다. 우리주변에는 명절이 되면 또 비방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조상도 없는가.’ 하는데 무엇을 말하던 간에 가족끼리 방주 짓기를 축원한다. 그들이 ‘필요 없다.’하여 끊어내는 게 아니라 믿음의 방주를 짓는 것이다.

(4)아브라함과 4 족장, 얼마나 방해 많이 했는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갈 때 아비멜렉 왕이 얼마나 방해했는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인물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이다. 아비멜렉 왕이 나중에는 ‘내가 너를 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도다.’했다. 아비멜렉 왕이 아브라함을 감당치 못한다. 이삭도 마찬가지다. 이삭을 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네가 우리를 오히려 정복할 것이니, 건너오지마라’ 맹세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2.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은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노아에게 현실화 되었다. 요셉에게 현실화가 되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어느 날 나타나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어느 날 중국복음화와 브라질복음화, 다민족복음화가 되어 지고 요셉, 모세, 다윗과 같은 인물이 나올 줄 믿으시길 바란다. 지금은 안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현실로 다가온다. 그 시간표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요셉이 30대가 되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시간표이다. 30세 이전에 감옥에서 나와도 총리가 될 수 없다. 애굽은 30세가 되어야 공직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확한 시간표를 가지고 계신다.

3. 하나님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인물 만들기 위해서 약속이 허물어지면 안 된다.’ 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하셨다. 이유가 뭔가. 언약이 이루어져야 되기 때문이다. 불신자에게는 저주하면 무서운 것인데, 성도는 언약 안에 있으면 불신자가 어떤 말을 해도 넘어가게 되어있다. 문설주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니 넘어간다. 전신갑주. 의의 흉배, 진리의 허리띠, 믿음의 방패, 말씀의 검을 들고 구원의 투구를 썼다.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어디가도 상관없다.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 보장하겠다는 말씀이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가는데 발람 선지자를 불러 ‘돈을 줄 테니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 했다. 발람 선지자가 저주하려고 보니 겁나서 못했다. 뒤꽁무니를 대고 했는데 오히려 발람 선지자에게서 축복이 나왔다. ‘저들에게서 한 별이 나온다. 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축복했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라.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묵상하면서 승리해야 한다. 말씀 붙들면 염려가 없어진다. 믿음 안에서 실현되어지는데 그것이 실상이다. 그리스도가 실체 중 실체, 실상 중 실상으로 오셨다. 그러면 우리가 그 복음의 흐름 속에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으로 세워질 줄 믿으시길 바란다. 바로 왕이 히브리인이 얼마나 괴롭히고 망하게 하려고 했는가. 그런데 히브리인이 망하지 않았다. 유월절 어린양 피 안에 있으니 바로가 망했지, 히브리인이 망하지 않았다.

둘째. 현실화된 미래를 준비하자.

우리의 삶이다. 믿고 살아간다. 믿는 사람은 다르다. 안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하고는 다르다.

1.노아의 방주, 120년 준비했다.

2.아브라함, 약속잡고 25년 동안 불신앙 없애면서 준비했다. 25년 지나니 이삭이 태어났다.

3. 요셉의 꿈, 형들과는 달랐다. 13년이 지나 이루어졌다. 그러면 우리는 미래를 보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 나를 보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보며 준비하기를 원하신다. 저는 세계를 보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준비했어야 하는데.’ 한을 되어 렘넌트에게 ‘영어하라. 중국어 하라.’한다. 렘넌트, 중직자를 데리고 세계로 나갔더니 하는 얘기가 ‘공부를 더 했어야 했는데. 영어를 했어야 했는데.’ 한다. 세계에 나가 영어를 못하면 신문 가져다줬는데 못 읽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아브라함, 이삭, 렘넌트 보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할 줄로 믿는다.

4. 모세와 출애굽, 모세의 부모가 믿음으로 준비했다. 100일을 키우고 나일 강에 믿음으로 띄우고, 믿음가지고 유모로 들어가 키웠는데 지도자가 되었다.

5.현실화될 미래를 보는 사람과 세상 바라보는 사람과는 분명히 다르다. 현실화될 미래를 보면서 준비하는 사람과 세상 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다르다. 모세, 하나님이 하나 하나 준비하셨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가정과 정욕대로 살고자 하는 가정은 10년 20년 지나면 다르다. 날마다 노는 사람과 열심히 일하고 아껴 헌금 드리는 사람은 다르다. 날마다 취미 생활하는 사람하고 힘 드려 헌신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사람과는 미래가 다르다. 놀기 바쁘고 취미생활하기 바쁜 사람과 오늘의 말씀, 기도, 전도의 스케줄 속에서 매일 인도받는 삶은 다르다. 매일 불신앙하는 사람과 말씀 읽고 기도하는사람은 다르다. 히11장, 믿음의 영웅들이다. 히11장을 읽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어떻게 하면 믿음의 뜻대로 살까 몸부림을 치는 사람과 대충 신앙생활하자 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3년이 다르고, 5년이 다르다. 10년이 다르고, 길어도 30년 안에 완전 결판난다. 뿌리, 각인, 체질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체질이 바뀌고, 뿌리가 복음에 내리기를 축원한다. 왜 안 바뀌나. 체질 때문이다. 현실화될 미래 두고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으로 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날마다 복음의 흐름 속에서 사는 것과는 다르다.

6.미래의 실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데 정시기도 속에서 평생기도제목잡고 준비하기를 축원한다. 내 신앙생활에 정시기도 있어야 한다. 가정복음화의 실상을 잡고, 실현될 것을 잡고 정시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왕들 상대하는 렘넌트를 잡고 중국복음화, 다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잡고 정시기도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24시 기도 속에서 선교경제 실상을 잡고 24시 기도, 무시기도 속으로 가야 한다. 만나는 사람을 두고 내가 하는 공부를 두고 무시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언제, 어디든지 기도할 수 있는 게 무시기다. 25시 기도 속에서 3오늘로 능력 있는 성도되기를 축원한다. 10년, 20년 지나면 달라진다. 30년 지나면 완전히 바뀐다. 링컨은 40살 돼서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3년, 5년, 10년이 지나, 40년이 지나면 달라진다. 은혜교회가 시간 갈수록 준비되어지고 현실화되어지는 축복 속에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셋째. 말씀 통해 증거를 잡아야 한다.

다른 증거로는 안 된다. 3절에 ‘모든 세계가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창조주 하나님이다. 말씀의 능력으로 온 우주가 말씀 한마디에 지어졌다. 우주 얼마나 큰가. 우주를 돌아볼수록 인간이 허무해 질만큼 크다. 하나님의 창조 물질인 우주가 얼마나 큰가. 인간이 허무해 질만큼 크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세포를 보고, 유전인자보고, DNA를 보는데 하나님의 섭리가 너무나도 오묘하고 무궁무진하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그 말씀이 아니면 우주를 보고 너무나 허무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 우주를 주고도 너희 생명과는 바꾸지 않는다.’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내가 얼마나 귀한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 원래 우리인간에게 그 큰 우주를 다스릴 능력을 주셨다. 오늘도 말씀을 가지고 증거를 잡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데 붙잡으면 나의 수준과 한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아벨, 에녹, 아브라함이 그 말씀 붙들고 승리했다. 오늘 이 시간에 아직 보지 못한 일에 언약 붙잡고 방주를 짓듯이, 가나안땅에 가듯이, 또 세계복음화하는 제자들처럼 말씀을 증거로 잡기를 축원한다.

[히 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아브라함이 말씀 잡고 아직 성이 없는데 그 성을 보고 갔다. 그런데 아브라함 후대 중에서 성을 짓고 가나안땅을 차지하는 사람이 나온다. 오늘 신앙생활을 하는데 무턱대고 하지 말고, 맹목적으로, 내 믿음가지고 하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나는데 그 말씀으로 증거를 잡고 신앙생활 하기를 축원한다.

결론) 1.믿음으로 반드시 실현되고 현실화된다. ‘내가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많다.’라고 할 만큼, 히11장에 말한다. 33절에[히 11: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히 11: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믿음가지고 있다? 세상이 감당치 못 한다.

2. 미래보며 믿음으로 축복하는 일만 남았다. 믿음의 말, 축복의 말만 해야 한다. 요셉과 아브라함, 축복했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 ‘너같이 구원 얻은 자가 어디 있느냐.’하셨다. 믿음으로 축복할 일만 남았다. 믿음의 말만 하시고 실현화, 현실화되는 축복 속에 이기를 축원한다. 야곱이 축복을 뺏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는데 바로나 12지파를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다.

3. 중요하다. 사람의 말 듣고 흔들릴 것 없다. 언약을 받은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면 물이 갈라진다. 홍해다. 이유가 뭔가. 물이 언약보다 강하지 않다. 언약의 백성이 불속에 들어가면 불이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하지 못한다. 이유는 불이 언약보다 강하지 않다. 언약 받은 사람이 감옥에 가면 감옥이 변화된다. 감옥이 언약보다 강하지 않다. 요셉이 감옥에 가니 변하고 바울이 감옥 가니 간수가 변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가니 옥문이 착고가 터졌다. 내 자산은 믿음밖에 없다. 믿음하나를 가지고 산다. 언약 받는 사람은, 보디발 집에 가면 보디발 집이 복을 받고 감옥에 가면 감옥이 복을 받는다. 언약 받은 사람이 애굽에 가니 애굽이 복을 받는다. 내 재산은 믿음밖에 없다. 믿음은,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어느 날 실현되고 현실화되어지는데, 미래를 바라보며 준비하는 모든 성도님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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