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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순교

조혜진 | 2017.09.24 14:20 | 조회 7433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복음서는 예수님이 지상에 오셔서 구속사역을 이루신 것이 전부다 기록 되어있다. 그러면 사도행전은 뭔가.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전도, 선교 사역을 친히 지위 하시고 그 말씀하신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사도행전 이후에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통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성취되는 삶을 살아야할 줄 믿어야 된다. 이 사도행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은 살아있는 신앙생활이 아니고 관념적인 신앙생활 속에서 요한계시록에 그 많은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지금 누리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한다. 그래서 무력하고 무기력하고 신앙생활해도 큰 기쁨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 말씀하는 신앙을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등뼈에 해당하는 힘 있는 신앙생활이다. 이게 안 되면 힘이 없고 몸이 허물어진다. 우리 제자들을 봤을 때 사복음서의 제자들은 분명히 주님이 부르셨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면서 부르셨다. 현장에도 보내시고 주님의 역사와 기적을 다 봤는데 제자들은 늘 보면 엉뚱한 짓을 하게 되고 힘이 없고 주님의 걱정 대상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을 본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와서는 그 제자들이 완전히 변화되어 버렸는데 전 현장을 정복하고 전 현장에 복음이 증거하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본다.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실 한 증거를 주시는 게 사도행전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사도행전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살아계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함께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초대교회에만 역가하신 게 아니라 은혜교회도 동일하게 함께하시면서 선교사역을 이루어 가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게 체험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현장 가서 성도가 힘이 없고 ‘하나님이 살아계신가.’한다. 성령을 보내셔서 저와 여러분의 중심에 계신다. 주님이 성령을 보내시겠다 하셨는데 예수 믿으면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에 내속에 계시는데 그것을 잊는다. 그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면 성령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내 생각으로 간다.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시는데 나는 그 성령역사를 모른다. 주님의 약속과, 방향이 다르게 살기 때문에 주님이 기도응답을 주시는데도 모른다. 하나님 자녀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하나님 말씀과 상관이 없다. 예수는 믿는다하는데 하나님의 말씀, 방향과 상관이 없으면 때로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이유가 없다.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계신 확신을 주는 게 사도행전이고, 그래서 사도행전은 읽고 또 읽고 기도하고 사실적으로 내게 확인되어야 하는 게 신앙생활이다. 사도행전과 맞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은혜로 구원받고도 전혀 무감각하다. 구원은 은혜로 주시기 때문에 노력과 상관이 없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삶이 안타나난다? 교회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삼천제자가 일어나고 그날에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일이 없다? 죽은 교회이다. 그래서 유럽교회 문을 닫고 문을 닫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증거 되지 않고 후대가 이 문화가 무슨 문화인지 모른다. 사단문화인지, 흑암문화인지 모른다. 번듯한 성당은 곳곳에 잇는데 성당에 복음이 없다. 사도행전에 부활하신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렘넌트들이 바로 성당 옆에서 논다. 기타치고 노는데 복음을 전하니 안 듣는다. ‘우리는 사단을 믿는다.’ 애기한다. 그 후손들에게 끔직한 일들이 난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맞지 않는 신앙생활은 교회를 다니는데 죽은 신앙이다. 사도행전에 맞지 않는 교회는 틀린 교회이다. 구약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하겠다. 베들레헴에 오시겠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모든 것을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셔서 다 이루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구약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거의 다 이루어졌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말씀대로 오순절 날에 성령이 오셨다. 이루어졌다. 그러면 그 말씀 그대로 성령이 역사하시고 그 말씀대로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 언약의 말씀이 사도행전에 그대로 성취되면서 그 미션이 저와 여러분에게 전달된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거 안 되서 오백년 전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면서 믿음을 강조하고, 믿음대로 횃불을 들고 일어나서 종교개혁하고 그 믿음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뿌렸는가. 토마스 선교사님이 오고 그 믿음대로 언더우드 선교사님,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해주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 그대로 성취되는 현장 속에서 보고 살아야한다. 그게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신앙이고 그게 개혁교회이다. 그게 안 돼서 ‘오직 복음 전하자.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하면서 이거 가지고 전도운동을 하는데 20년-30년이 되었다. 그러면 지금도 변함없이 살아계셔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그게 사도행전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고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복음 운동을 주도하고 계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 일은 누가하는가.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일을 하신다. 사도행전의 신앙과 나와 안 맞으면 틀림없이 잘못된 신앙이다. 오늘로 스데반이 순교했는데 순교의 삶을 사는 게 최고의 영광스러운 삶이다 한다. 아무나 순교하는 게 아니다. 아무 때나 순교되는 것도 아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 강점기에 순교 못한 것을 친구들하고 얘기하면서 ‘내가 순교를 못했다.’ 하신다. 그러면서 아들이 순교한 것을 유학 보내는 것보다 더 기뻐하는 삶을 사신다. 한국교단이 잘못한 게 많지만 한국교회의 목사님 중에 대표적으로 순교하시면서 한국 신앙을 지키시는 것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란다. 교단들은 전부 신사참배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중에서 언약 잡은 종들을 통해서 굴복하지 않고 순교 제물이 되시면서 한국교회가 번성하고 신앙을 지키게 하신 것에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가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은 목회에 성공하신 분이다. 정말로 목회에 성공했기 때문에 상을 주려고 불렀다. 한경직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저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신사참배 결의할 때 결의에 찬성한 목사인데 부끄럽습니다.’ 했다. 말을 안 해도 될 일인데 허물을 나타내면서 하셨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제일 칭찬받은 사람이 순교자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우리는 말하고 실제로 생활하고 같아야 하는 게 사도행전이다. 말하고 우리 삶하고 틀리면 실제적으로 사도행전 속으로 가야한다.

첫 째. 부활하신 주님이 역사하고 계시는데 오늘날 교인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뭔가.

왜 교회가 문 닫고 하는가. 우리 문제이고 목회자, 중직자, 교단의 문제이고 평신도의 문제이다. 믿는다 하면서도 지금 살아계신 주님과 상관이 없고 주님의 관심과 상관없고 현장에서 사도행전과 상관이 없어서 그렇다. 오직 그리스도로 끝내길 축원한다. 누가가 기록한 대로 [행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예수님은 그리스도 모든 문제 끝이라 하셨다. 주님은 뭐라 하셨는가. 누가는 40일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기록했다. 40일 동안 집중할게 하나님의 나라이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해야한다. 현장가면 하나님 나라의 배경가지고 왔다고 믿어야 한다. 보좌의 축복 속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제한다는 사실을 누려야 한다. 방법이 뭔가. 성령충만이다. 세계복음화를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방법이 ‘3년 동안 너희 따라다녔으니 똑똑해졌지? 세계복음화해라.’ 안하셨다. 방법은 성령충만뿐이다. 행13장 역술인을 이기는 것, 성령충만뿐이다. 행16장 귀신이 떠나가는데 성령충만뿐이다. 행19장에 큰 우상이 결박되는 건 성령충만한 그리스도 복음뿐이다. 특히 대구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누구의 책임인가. 저는 어릴 때부터 시골에 살았는데 대구에 큰어머니께서 오시면 ‘얘들아. 대구는 동양의 예루살렘이다.’ 하셨다. 제가 대구에서 공부하고 신학하면서 자라나 보니 전국에 기독교 교육이 가장 떨어지고 기독교가 10프로도 안되는데 이게 누구의 책임인가. 저와 여러분의 책임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실제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역사하시는데 교인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뭔가. 사도행전의 삶이 없다.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이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친히 사역하고 계시는데 누구 통해서인가.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사역을 하신다. 분명히 성령을 보내시고 교회 통해서 역사하고 계신다. 이게 사도행전의 내용이고 교회시대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승천하는 주님이 성령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성도를 통해서, 제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현장에서 확인해야한다. 말씀을 듣고 현장에서 확인해야한다. 주님의 관심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거기에 맞지 않는 신앙은 틀린 신앙이다. 거기에 맞지 않게 신앙사상을 주장하면 그것은 자기 학문을 위한 사상과 학문 위주로 신학하시는 분이다. 신학하시는 분들 중에 정말로 신학박사이고 하는데 어느 날 그리스도를 위한 신학이 아니라 현장에 복음을 전달하기 위한 신학이 아니고 자기 학문 위한 신학이다. 자기 학문을 변호하기 위한 신학으로 변한다. 신학교에 나온 학생이 현장을 못 살린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 장작불로 타서 들어가는데 2학년 숯불이 되고 3학년 되면 연기 나는 불이 되고 4학년이 되서 졸업할 때는 숯검정이 되어온다. 왜 그런가? 그 신학이 자기를 위한 학문이다. 자기주장을 위한 학문이다. 주님의 관심에 맞지 않는 사역은 사역이 아니라 사술이 된다. 우리가 정말로 훈련받으면서 내가 복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각인, 뿌리, 체질이 되어야 한다. 교회를 우습게 본다? 그 사람을 하나님이 우습게 보신다.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귀중한지, 중직자가 교회의 귀중한지를 모른다? 복음의 귀중한지를 모른다? 성경에 맞지 않는 신앙생활을 한다. 저는 복음을 깨달은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렘넌트 하나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 복음을 깨닫고 보니 성도 한사람이 얼마나 귀중해 보이는지 모른다. 그런데 갈수록 뭐를 깨달았는가. ‘세밀하게 지도해야겠다.’한다. ‘하나하나 지적해서 지도해야겠다.’ 했다. ‘그것을 싫어하지만 안 되겠다.’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오늘도 성경에 맞아야 신앙생활에 성공한다. 그렇게 안 되면 내 문제뿐만 아니라 후대까지 문제가 온다. 저는 걱정스러울 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목회자가 어떤 분인지, 중지가가 어떤 것인지, 내가 맡은 지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시는 분들이 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이 역사하고 계시는데 오늘날 교인들이 왜 실패하는가. 사도행전적인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충만이 뭔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교회 시대에 우리와 매우 밀접하다고 말씀하고, 그것을 읽어야 될 책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해야할 내용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게 내 삶 속에 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 믿고 나갔는데 ‘하나님 만났나.’ 하면 ‘하나님을 못 만났다.’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정말로 그리스도가 뭔지 모르고 성령이 뭔지 모른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모른다. 왜 그렇게 되는가. 교회 왔지만 누가 방해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하는 자가 듣지 못하게 한다.

둘 째. 제자는 반드시 스데반 죽음과 설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뭐 때문에 주님이 스데반이 죽도록 두셨는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뭐 때문에 주님이 스데반이 돌 맞는데 주님이 일어섰고 뭐 때문에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어 메시지를 전하는가 봐야한다. 왜 스데반의 죽음과 설교가 중요한가. 행6:8에서 7:1 사이에 보면 스데반이 법정에 섰다. 그리스도께서 서신 법정에 사람들 앞에 스데반이 섰다. 바리새인, 레위인, 서기관들이 그 자리에 있다.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다. 자기 기준으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자기 기준으로 메시야를 바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육신적 메시야를 바라는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가 법정에 서셨다. 그리고 스데반이 똑같이 서 있다. 오늘도 현장가면 똑같은 현장에 설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복음 가지고 현장 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런데 내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내가 받은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저는 해외 나가서 스페인, 아프리카, 특히 중남미에 가서 복음을 전해보면 내가 누리는 복음을 모르고 앉아있다. 그래서 오늘도 스데반의 죽음과 설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스데반이 어디에 섰는가. 주님이 서신 법정에 그대로 섰다. 우리가 서서 전해야할 현장이 바로 그러한 자리이다. 건물과 성당은 엄청 크고 교회는 엄청 큰데 교회가 혼합주의 복음 속으로 빠졌다. 다원주의로 빠졌다. 심지어 스님이 와서 설법하게 되고 심지어 신학교에서 그렇다. ‘그러니 너희 종교도 구원이 있다.’하는 그런 지경가지 간다. 스데반 죽음과 설교가 중요한 이유, 주님이 서신 그 현장에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섰다. 전 구약 통틀어 지금까지의 것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

아브라함을 들어서 말씀한다. 아브라함은 너희 같은 신앙생활을 안 했다고 한다. 모세얘기하면서 모세도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여호수아를 들면서 장막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갔고 그것이 다윗까지 있었는데 헐어서 성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그 후손들이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는가. 이제 회개하라 말씀했다. 이 성막과 성전이 뭔가. 그분이 그리스도이다. 성전을 들어 말씀한다. 구약성경의 전체를 들고 말한다. 저보고 설교가 길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저보다 더 긴 게 오늘 스데반이다. 성경에서 설교를 제일 길게 기록된 게 사도행전 7장이다. 행7장이 전체가 설교이다. 아브라함부터 들어서 설교하기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모세는 이렇게, 여호수아는 이렇게’ 했다. ‘다윗은 그래서 그리스도의 모형인 성전을 지었다. 너희 조상들은 누구 죽였는가. 그리스도를 죽였다. 하나님은 그를 부활하게 하셨고 승천하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셨다. 그런데 너희가 뭐를 하는가. 너희가 목이 곧고 마음에 할례를 안 받아 내말을 듣지 않는다.’ 한다. 오늘도 교회가 하시는 말씀을 귀있는 자는 들으시기를 바란다.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한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방향에 안 맞춘다? 열심히 한 것 같지만 틀린 신앙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구약 전체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설명한 스데반의 설교가 중요하다. 행7:48-50에 보면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주님께서 오셔서 완전한 성막으로 오셨다.’하신다. 행49-51절에 보면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를 내려다보시거니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슬러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다.’ 하신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구원받는다 말씀하신다. 오늘도 복음 전하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마음이 찔리는데 많은 찔림 속에서 회개하러 오는 분이 있지만 이를 가는 사람이 있다. 이를 갈면서 돌을 들고 스데반을 쳐 죽였다. 오늘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는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하자 하는데 이상하게 돌을 들고 우리를 치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말세 되면 똑같은 일들이 난다. 딤후4:4-5에 보니까 말세가 되면 귀가 가려워져서 사사로운 자기 입장에 맞는 말만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분이 사역할 때 강단 메시지에 자기가 좋은 것만 듣지 마시고 사사로이 듣지 마시고 귀에 거슬려도 그대로 받으시고 개혁하시길 바란다. 어떤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가. 메시지 중에 내게 맞는 것만 따라가는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다. 주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에게 맞는 말만 했는가. 심지어 ‘화 있을 진저’라고 하셨다. 교회에서 제대로 안 들으면 화 있을 줄 믿으시길 바란다. 왜 아멘소리 적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안 들으면 그게 화이다.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을 보고 ‘화 있을 진저.’라고 요한복음에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다. 메시지를 제대로 안 들으면 화가 있어야 한다. 메시지를 제대로 안 들었는데 화가 없으면 버린 자식이 된다. 오늘도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 내게 은혜 되고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구원하셨구나.’하는 믿음이 생기기를 축원한다. 말씀 들으면 ‘내가 그 말씀에 왜 못 따라가는가. 여기까지인가.’ 해야 한다. ‘내가 부족하구나.’ 되셔야 한다. 그래서 은혜라는 말씀을 꼭 기억하기를 축원한다. ‘내가 은혜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구나.’ 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3장에도 마지막 때에 고난당하는 때가 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듣지 않는다 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왜 그런가. 계12:9-12에 보니까 천사가 타락하여 사단이 되어서 인간을 넘어트리고 고후11:14에 보니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서 인간을 유혹한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다. 이단이 어디에서 나오는 줄 아는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서 나온다. 광명의 천사로 종종 그런 일들이 나온다. 그래서 엡6:11에 귀계를 서서 우리를 넘어뜨린다. 13절에 보니 다 행한 후에 하나만 없으면 우리를 꺾어 넘어뜨린다. 성공하고도 넘어트리는 게 사단의 역사이다. 신앙생활을 잘하시는 분들. 복음 누리면서도 영적싸움을 싸운다. 복음 누리면서도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시는 분이다.

셋 째. 스데반의 설교는 모든 신자는 일깨우는 메시지였다.

돌에 맞고 하는 이 메시지는 초대교회 현장의 문을 여는 메시지였다. 스데반은 이 설교하고 순교했지만 죽은 것이 아니다. 성경은 늘 잔다라고 표현한다. 계시록에 가면 최고의 상급에 자리에 있는 분들이 순교하신 분들이다 한다. 그래서 오늘도 현장이다. 스데반이 순교한 이후에 전 현장으로, 이방 땅으로 전도와 선교 문이 열리는데 순교현장이다. 오늘도 은혜 받은 3천명의 성도와 5천명의 성도에게 불을 붙이는 설교가 스데반 설교이다. 15개 나라에서 디아스포라로 와서 성령충만을 받았는데 복음의 불을 붙여 전 세계로 복음이 전달된다. 우리가 핍박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쓰실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시길 바란다. 기존 신자를 건드리지 말고 믿음 있는 사람을 건들지 말고 정말로 불신자! 행11:19 보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했다. 주의 은혜가 보였다. 제자가 일어났다.’ 하는데 오늘 우리는 이러한 시간표 속에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알고 현장가시길 바란다. 우리 교회는 그런 분들이 자주 난다. 이제는 매일 일어나시길 바란다. 어제도 우리 사역자 중에 한분이 여름성경학교에 렘넌트 하나가 왔었는데 길이 멀어서 자주 못 오지만 여름성경학교 때 와서 달란트를 잡았는데 뭐를 잡았는가. ‘목사님 축복기도를 받아라’하는 달란트를 받았다. 이제는 이 렘넌트가 경기도로 이사가야한다. 그런데 와서는 ‘나는 목사님 축복기도 받고 가야한다.’ 한다. 그런데 가는 현장에 렘넌트가 가있는 곳이 교회와 얼마나 가까운지 모른다. 생명운동을 일으키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세밀하게 간섭하시는지 확인해야한다. 지도하는 교사나, 렘넌트나 보면 사도행전적인 일들을 하고 계신다. 사단이 핍박한다? 그 핍박 속에는 엄청난 갈 수 없는 현장 속으로 가게 하는 일들을 본다. 복음 제대로 깨달으면 우리가 볼 때 마귀가 건드렸다? 큰 축복이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큰 응답이 거기 있다. 건드리면 우리는 축복받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복음을 깨닫고 마귀를 보면 제일 머리가 나쁜 존재이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고 성도는 계속 시험가운데 축복을 받고 있다. 스데반을 없애면 없어질 줄 생각했다. 그런데 흩어진 자들이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의 역사이다. 안디옥을 통해 로마복음화가 되고 그 복음이 우리에게 오고 우리 통해서 중국, 브라질, 스위스, 필리핀, 대만 전 현장에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시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이 부분을 붙잡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하시겠는가. 이거 두고 육신적으로 생각하니 응답을 안 주신다. 내가 이 일을 위해서 물질과 시간을 드리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역사 안 하시는가. 오늘도 우리가 깨달으면 누구만 붙잡는가. 예수만 붙잡을 수밖에 없다. 교회와 성도를 건드리러 오는 마귀는 완전히 실패한다. 진짜 복음가진 교회를 건드리면 마귀는 실패하고 성도는 축복받을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산업체에 가서도 예수, 공부하러 가서도 예수, 직장 가서도 예수, 가정 가서도 예수, 길가다가도 예수 부르시길 바란다. 그게 오직이다. 주님께서 재림오시는 그 시간까지 복음을 막는 마귀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길 바란다. 조용히 따라다니며 광명의 천사로 넘어트린다. 그것을 모른다? 그래서 싸울 줄 모르고 힘 빠져서 있다. 그래서 오늘도 교회가 좋은 일하고 구제하고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구제를 해야 한다. 때로는 새마을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교회가 새마을 운동을 얘기 안 하는가. 틀린 게 아니라 새마을 운동 얘기하다가 그 길을 가르쳐주지 못한다. 너무 구제 강조하다가 말씀, 기도에 전무하는 것을 놓쳐서 그렇다. 구제와 봉사가 어디서 나와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 속에서 나와야 할 줄 믿으시길 바란다. 다른거 우리가 하다가 중요한 거 놓칠까 싶어서 안하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 하나만 막는다. 강단에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말이 안 나오도록 막는다. 세상 체질되면 안 들린다. 다른 사람은 틀린 게 보이는데 본인만 안 보인다. 영적 귀를 가지고 잘 들으시길 바란다. 그게 안 들려진다? 목이 곧은 자이고 마음에 할례를 안 받은 자이다. 교회가 하나 되지 않게 한다? 절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저는 그런 부분을 보면서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한다.

결 론

복음 때문에 당하는 핍박과 환란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 온다. 토마스 선교사님도 그렇고, 전라도에서 배타고 가다가 돌아가신 것도 그렇다. 지금 모슬렘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신 분도 그렇다. 스데반이 죽도록 하나님이 왜 두셨는가. 아무나 순교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복 받은 사람은 순교를 한다. 스데반 환란을 통해서 전 성도가 복음에 불이 붙어 세계복음화 해야 하는 일 때문이다. 그 일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보좌 우편에 서신 줄 믿으시길 바란다. 핍박받으면서도 전도, 선교한다. 결과가 뭔가. 바울이 다메섹에서 회개할 때 스데반을 생각했을 것이다. 회개하고 나서 전도, 선교할 때 늘 스데반이 생각났을 것이다. 자기가 대표로 순교시켰으니 그렇다. 그러니 바울이 돌을 맞고 나서도 루스드라에 들어가서 디모데 같은 제자를 일으킨다. 나중에 바울은 스데반처럼 또 순교하는 일들로 세계복음화하는 일에 쓰임 받는다. 오늘도 스데반이 복음을 전할 때 하늘 문이 열렸다 하는데 모든 성도님들 전도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배경인 것을 체험하시길 바란다. 복음을 전할 때, 핍박을 당할 때 하늘 문이 열리며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부활하신 주님이 전도, 선교를 지위하고 계시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교회에, 내 속에, 우리에게 증거를 주셔서 세계복음화하시는 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사도행전의 삶을 사는 모든 중직자와 성도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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