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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자를 전도자로 바꾼 그리스도!

조혜진 | 2017.10.08 14:30 | 조회 6272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초대교회를 보면 굉장히 문제가 많은 교회로 보여 질 수 있다. 안 밖으로 사실상 문제 있는 교회가 초대교회이다. 유대인들이 볼 때는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이다.’ 생각을 했지만 사실상 복음의 당연성, 복음의 필연성, 복음의 절대성을 아는 그들을 능히 당할 수가 없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영적인 신앙생활을 잊어버리면 육신적인 거 가지고 갈등한다. 실제로 복음의 진정한 맛을 못 보면 교회 다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대충 신앙생활을 한다. 진짜로 신앙생활을 하면 영적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교회가 진짜 복음전하는 교회가 된다? 평온하겠는가. 영적으로 사단의 방해가 많다. 그것을 모든 성도들이 잘 모른다. 모세가 태어날 때 분명히 굉장한 일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때 사내아이를 전부 죽이는 일이 난다. 예수님은 복음 되시는데, 예수님이 태어날 때 두 살 난 아이를 전부 죽이는 일이 난다. 사단은 진짜 이 사람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여러 가지로 방해한다. 우리 단체가 오직 복음 하니 온 곳에서 들고 일어나 막는 일들을 한다. 초대교회가 없어지면 전 세상은 깜깜하게 되고 온천지는 어둠에 잡히게 된다. 실제적으로 사단은 온 갗 것으로 초대교회를 교권과 헬라 우상철학의 교리를 가지고 섞고, 로마는 조직적으로 핍박하는 일이 난다. 그런데 외부 핍박보다 무서운 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단사상이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똘똘 뭉치게 하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단사상은 교회를 굉장히 어렵게 한다. 초대교회에 영지주의와 신비주의가 일어나고 초대교회에 율법주의라는 바리새인 사상이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게 교회를 어렵게 한다. 초대교회에 굉장히 어려운 게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니골라 당과 같은 영지주의로 초대교회가 완전 흔들릴 만큼 힘든 때가 있었다. 영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단체와 우리 교회가 오직 복음 할 때 영적으로는 굉장히 큰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환란과 핍박을 가지고 교회를 흔들려고 한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오직 그리스도 하심으로 승리한줄 믿으시길 바란다. 승리의 비결이 뭔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승리의 비결은 내가 말 잘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모으는 게 아니고 승리의 비결은 핍박 속에서 여러 가지 이단 사상 속에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 120명 모였는데 승리했다. 우리 단체와 우리 교회에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직 복음 하는 영안이 밝은 사람이 하나 되어야 실제적으로 세계복음화해도 남는 교회가 될 줄 믿으시길 바란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복음과 종교를 여러분들이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도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 이후에 영향 끼치는 분이 누군가. 두말할 것 없이 사도바울이다. 오늘 그분에 대해서 나오는 말씀인데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따라 싸우지 않고 군대를 조직하지도 않았는데 복음의 능력으로 세계 역사를 바꾼다. 원래 사울이라는 청년은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긴다 하는데 복음을 모르니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한다. 다소출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헬라 철학에 대해서 정통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최고 일류 대학을 나왔다.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미국시민권보다 영향 있고 배경 있는 게 로마시민권이다. 예루살렘에 유학 와서 당대 최고 율법 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재라고 말할 정도로 앞서가는 청년이었다. 이방에 살아서 헬라 말에 능통하고 히브리말에 능통한 사람이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 한다. 실제적으로 유대교육을 받고 유대의 말을 하는 사람이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신임을 얻어서 중심인물로 서 있고 어느 날 예수 믿는 사람은 핍박을 하는데 공문을 가지고 스데반 죽이는 일에 앞장 선 사람이 사울이라는 청년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가다가 누구를 만났는가. 이단이라 말하고 부활은 없다 말하고 거짓말 단체라고 얘기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빛으로 나타나셨고 음성으로 말씀하셨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셨다. 사울이 ‘주여 누구십니까.’ 하니 예수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라는 말을 듣고 거꾸러진다. 이후에 그는 실제 회심을 하고 근처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이제까지 율법으로 배운 성경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복음으로 정리하고 전도자로 쓰임 받는 것을 본다. 이제까지 성경을 알았는데 그리스도 되시는 복음을 알지 못하고 율법으로만 알고 신앙생활을 했다. 복음 되신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보이지 않았다. 예루살렘에 가서 몇몇 사도를 만나고 그 다음에는 고향 다소에 가서 십 몇 년 동안 전도자의 삶으로 조용하게 지내고 있는데, 안디옥 교회가 생기고 거기서 바나바가 누구를 생각하게 했는가. 다소에 사울을 생각하게 하셔서 일 년 동안 사역하다가 세계복음화에 선교사 파송을 받아 나가면서 세계복음화에 역사를 바꾸는 인물이 된다. 오늘도 사울이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 얼마나 지독하게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는가. 예수 믿고 전도하니 다른 사람이 ‘위장술이다. 예수 믿는 사람을 색출해서 전부 죽이려 한다.’ 할 정도로 예전에 예수를 핍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진짜 예수 믿으면 사람이 완전 바뀌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대충 예수를 믿지 말고 듣는 예수 말고 ‘저 사람이 변했다.’ 그렇게 믿지 말고, 내가 성경에서 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길 축원한다. 그러면 사람이 진짜 바뀐다.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도 예수님 만나면 바뀐다. 아무리 못난 인간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분이 쓰임 받는다. 기독교 역사에서 계속 나온다. 우리 신앙생화에 잘못된 게 뭔가. 대충 예수 만나고 대충 예수 들어서 그렇지, 진짜 예수 만나면 사람이 바뀐다. 우리 많이 들었지만 김익두 목사님은 깡패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목사가 되었다. 야인시대 시라소니를 아는가. 김두한 같은 주먹인데 영락교회 장로가 되었다. 어거스틴은 탕자였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자라 할 정도로 사람이 바뀐다. 사울이 정말로 바뀌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듣고 선교사로 쓰임 받았다.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복음 막는 신앙생활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게 청년 사울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복음 막는 신앙생활이 있다. 앞장서서 일하고 ‘나는 현장 가서 사역한다.’하는데 복음 막는 신앙생활을 많이 한다. 사도바울이 만난 그리스도를 보면서 우리가 정말로 속기 쉬운 신앙생활이 뭔가.

첫 째. 복음과 비슷한 종교생활이다.

종교생활을 진짜로 하면 복음가진 신앙생활과 비슷하다. 그런데 아셔야 한다. 비슷한 거랑 정확한 것은 다르다. 비슷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타락한 게 아담과 하와이다.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한다. ‘정녕 죽는다.’와 ‘죽을까 하노라.’는 비슷하다. 그런데 근본이 틀린다. 무화과 옷을 입힌 거랑 가죽옷은 보기에는 비슷하다. 그런데 무화과 옷은 피언약이 없고 가죽옷은 피언약이 있다. 무화과 옷은 자기가 만들어서 입은 것인데 오늘도, 내일도 만들어 입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종교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에 속는다. 사람들 보기에는 대단한 신앙생활이 종교생활이다. 바리새인 종교생활은 세계 어디가도 대단하다는 신앙생활을 한다. 율법주의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우리로 말하면 주일을 꼬박 지킨다. 십일조를 꼬박 드리고 일주일 두 번은 금식기도하고 성경은 줄줄이 외우고 구제하고 다한다. 그런데 비슷하지만 뭐가 없는가. 복음이 없는 신앙생활을 한다. 그것을 율법주의라 한다. 잘하는 거 같은데 어딘가 틀린 신앙생활이 뭔가. 유대인 율법주의이다. 초대교회는 그것을 이단이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주의 생활이다. 복음과 비슷한 신앙생활이다. 경건이 나쁜 게 아니라 경건해 보인다. 말씀 위주의 신앙생활을 하지만 복음이 없어서 남을 정죄하고 ‘죄다. 아니다. 틀리다.’하는 것 가지고 사람은 살리지 못한다. 복음을 모르니 율법 행위를 강조하고 나의 의를 나타내니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복음과 종교를 구분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지 못하니 그 율법에 자기도 걸린다.

신비주의 생활은 다른 분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저 사람은 능력 있다.’하는 게 보여 지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체험된 것이 있는데 복음은 없고 말씀 없이 신비체험으로 간다. 말씀 중심이 아니라 불건전 신비이다. 신비한 체험이 다 인 줄 알고 빠진다. 기적을 강조하고 자기 예언을 강조하고 내가 했는 말이 맞다하고 병 나음을 강조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언약은 강조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한다. 신비주의 하는 사람을 대단한 줄 알고 따라간다. 주님은 표적을 자꾸 구할 때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그거 신비를 구하는 것이다. ‘요나의 표적 밖에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하셨다. 요나의 표적이 뭔가. 사흘 동안 물고기 배속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십자가 지셔서 장사 지내 것과 삼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이 표적 외에 더 큰 표적이 없다고 하신다. 그 표적가지고 구원받은 게 가장 신비한 일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거보다 더 큰 신비가 어디 있는가. 이 큰 복음의 신비를 두고 내 육신적인 것 가지고 ‘맞다. 아니다.’ 알려주고 병 낫고 안 낫고 말한다. 예수 믿고 병 나으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머리 나쁜 사람은 꼭 그렇게 듣는다. 신비 중 신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이다. 기독교의 신비 중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게 가장 신비한 사건이다. 그러면 그 신비 이외에 우리에게 더 큰 신비가 없다. 그런데 이 복음을 두고 다른 거 따라가고 그렇게 끌려가는 게 신비주의이다. 신비주의하면 어느 날 말씀을 놓치고 그쪽으로 따라가기 때문에 틀린데 가는지도 모르고 사단이 속이는지도 모른다. 본인도 어려움 당하고 후손들도 걸려서 어려움을 당한다. 제가 잘 아는 한 분이 있는데 정통적 신학보다는 그냥 하다가 신비주의 하는 목사가 되었는데 어느 날 이렇게 얘기한다. 친구 집에 가서 할머니가 계시고 부부가 있는데 ‘야 너 할머니가 일찍 얼마 있으면 돌아가신다.’ 얘기하다. 신비하니까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몇 개월 있다가 할머니가 안 돌아가시고 남편이 돌아가셨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이게 뭔가 한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다락방 하시는 분이 답을 주었다. ‘신비는 그런 것이다. 빨리 거기서 빠져나오라.’ 했다. 그것을 알아듣고 신비하다가 큰일이 나겠다고 하면서 빠져나온 것을 본다. 오늘도 신비주의가 뭔가. 복음을 모르면 대단해 보인다.

인본주의 신앙생활이다. 자기 내부는 썩으면서 잘 포장하는 신앙생활을 한다. 머리를 돌리면서 신앙생활을 한다. 내 생각으로 신앙생활하고 한 번도 말씀 성취, 기도 응답, 전도 축복을 체험하지 못해서 내 생각으로,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래서 바벨탑처럼 무너져야 한다. 지식적인 신앙생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울질하고 계산하고 얼마나 잘 포장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완전 포장된 신앙생활에 깊숙하게 들어가면 자기가 주인 된 신앙생활이다. 종교생활하면 나중에 피곤해진다. 율법주의는 자신이 율법에 매인다. 신비주의 신앙생활을 하면 마귀 손에 붙들린 지도 모르고 붙들려 자기 고생하고 후대까지 고생시킨다. 인본주의 신앙생활을 하면 바벨탑 무너지듯 무너진다. 빨리 아셔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정신 돈 사람이 있는가. 없다. 예수 믿고 정신 돈 사람은 예수 믿는 게 아니라 교회 다닌 사람이다. 예수 믿고 정신 이상한 사람은 복음을 안게 아니라 신비주의에 빠져서 그렇다. 교회 다닌 사람 중에 특징이 아주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를 쓰다가 정신이 돈다. 굉장히 두려움이 많고 염려가 많고 혼자서 온 갗 생각을 다한다. 복음 깨달은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지 회개한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하는 게 사도바울이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사도바울이 엄청난 사역을 했다. 자랑할게 있었는가. 절대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죄인 중 죄인이다. 사도 중 가장 작은 자다. 내가 자랑할 것은 연약한 거 밖에 없다.’ 한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공식으로 아니고 달달 외우는 지식적으로 아니고 인격적으로 만나시길 축원한다.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사도바울은 어마어마한 사역을 했지만 그 사역에 대한 자랑은 하지 않았다.

둘 째. 성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를 만난 신앙생활이다.

그것이 오늘 사도바울이다. 주님 만난 다메섹 도상에서 그동안 자기가 배운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로 정리가 되었다. 전에는 율법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는 율법으로 정리된 것이 복음 되신 그리스도로 정리되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시길 축원한다. 왜 신앙생활이 하면 할수록 힘드는가. 율법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신앙생활을 해서 그렇다. 사도바울은 초대교회에 쓰임 받는 사도로 육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데 한 번도 육신적으로 어렵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적으로는 충만하면서 감옥에서도 기쁘다 얘기하고 ‘다시 말하니 기뻐하라.’ 말하며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했다. 오늘 우리 신앙생활이 복음과 종교를 알아야 하고 복음과 율법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순간에 첫 번째 답이 그리스도로 답이 나며 구약에 모든 말씀이 복음으로 정리되었다.

오늘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생에 답이 나기를 축원한다. 여기에 답이 안 나면 전부 쓸데없는 짓을 한다. 내 인생의 답이 그리스도로 나야한다. 성경에 율법과 기적이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이 되어야 한다. 내 인생이 복음으로 재해석된 삶이다. 그래서 증인되고 빌립보서에 기도의 비밀을 누리는데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오늘 우리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어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가 말씀한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신앙생활이 뭔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빼놓을 수가 없는 게 자기에 대한 재해석이다. 성경이 해석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내 인생에 대한 재해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다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진전이 없다. 늘 걸리는 인생을 산다. 내 문제에 걸린다. 그 다음에 남의 문제에 걸린다. 넘어서지 못하고 앞으로 가지 못하는 신앙생활이 된다. 바울을 크게 쓰신 이유는 예수님만 발견한 게 아니라 복음으로 자기 인생이 발견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 발견되었다. 하나님이 ‘뭐 때문에 나를 이렇게 살게 하셨는가.’ 발견되었다. 바울로 말하면 학문이 뛰어났다. 가말리엘의 수재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 받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고 베냐민 지파이다. 베냐민 지파는 초대 사울 왕을 탄생시킨 지파이다. 다윗 왕이 나온 지파이다. 베냐민 지파이면 알아주는 지파이다. 실제적으로 율법으로는 흠이 없을 만큼 그러한 삶을 살았다. 바울은 많은 경험을 했는데 사울에게 남모른 고민이 있었다. 그게 질병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 믿기 전에 질병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어느 날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이 주신 질병이라 말한다. 어쨌든 예수 믿기 전에 질병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울을 피곤하게 만들고 어렵게 만들었는데 예수 믿고 나서 질병은 새로운 해석이 되었는데 내 약한 곳에 주님의 능력이 머물고자 함이라 말했다.

예수 믿기 전에 모든 학문이 그것은 사실상 예수 믿고 나니 배설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진정 예수 믿고 나니 다 버렸으니 하나님이 다시 쓰신 것을 본다. 중요한 것은 이 병이 사울에게 은혜 받는 통로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였다. 우리가 주님 만나기전에 질병은 우리를 망하게 한다. 불신자들은 주님을 모르니 자기 있는 거, 가진 거 때문에 교만하게 되어 지고 불신자들은 질병과 가난으로 낙망과 포기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여러분 중에 혹시 가정환경이 안 좋다? 그렇게 자랐다? 영적문제가 있다? 진정 말하는데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우울증, 정신이상의 사유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가정환경이 안 좋고 내 몸에 질병이 있어도 예수만나면 축복의 통로가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사울이 예수님 만나고 나니 자기 인생에 대해서 완전히 해석이 달라졌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택하셨고 그것을 아나니아에게 들었다. [행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래서 율법주의 신앙생활 한 거에 한을 가지고 회당으로 들어가는 귀한 사역이 된다. 오늘도 우리가 빨리 알아야 한다. 예수님 만나고 나니 구약만 해석되는 게 아니라 성경 말씀만 해석되는 게 아니라 자기 인생에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 예수 만나기 전에 개인, 가정, 가문은 여러분과 관계가 있다. 여러분을 굉장히 교만하게 하거나 좌절시키게 하거나 하는데 예수 만나기 전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배경이다. 만약에 예수만나기 전에 굉장한 돈이 있으면 교만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요익이 된다. 돈이 없으면 없는 거 때문에 여러분이 우울해지고 낙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있고 없고 차이 없이 예수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이 그것을 전부 전문성 있는 사역으로 쓰임 받게 하신다. 얼마나 복음이 좋은지 모르는데 우리는 이 복음 모르고 이상하게 복음보다 신비주의가 더 좋고 율법주의가 더 좋고 복음 두고 말씀성취, 기도응답, 전도축복을 모르니 내 머리 쓰는 게 빠르고 쉽다한다. 은혜교회 모든 성도 분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시길 축원한다. 그래서 완전 변해야 한다. 늘 그것을 각인, 뿌리, 체질로 말씀하신다. 예수님 만나고 나니 가문과 배경이 좋으면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이 된다. 예수님 만나고 나니 안 좋은 배경은 그 길로 살아가는 사람을 살리는 전문성이 된다. 예수님 만나고 신비주의를 버리면 영적 문제 있는 사람을 가장 살리게 된다. 복음 받고 좋은지를 모르면 그 신비주의를 또 한다. 무속인 이였다가 오는 사람이 그런 체질을 계속 가지고 있다. 율법주의 하는 사람이 복음 받고도 각인, 뿌리, 체질을 안 바꾸면 율법주의로 또 돌아간다. 저는 율법주의 신앙생활을 했는데 복음 듣고 인생이 변했다. 내가 사도바울처럼 ‘전에 했던 율법주의에 축이 있었구나.’ 한다. 그래서 깨달은 게 뭔가. 왜 그렇게 되는가. 체질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훈련 속에서 말씀을 들으니 체질이 바뀌게 되는구나 한다. 그래서 나오는 게 오직인데 깊은 동기가 우리를 흔들어 댄다. 메시지를 오늘도 들으면서 복음만 붙들기를 축원한다. 그래서 복음을 계속 듣는다. 이 부분을 깨닫지 못하면 복음에 대한 영향을 못 받고 있다. 이것이 안 되면 늘 내 문제에 걸려서 더 이상 나가지를 못한다. 남의 문제에 또 걸려서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신앙생활을 한다. 복음 받고 나면 우리의 소속과 배경과 신분이 완전히 바뀌어지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그것을 누리셔야 한다. 눈만 뜨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교회 오면 강단의 말씀을 포럼하고 기도응답을 포럼하고 전도 축복을 포럼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 역사를 보면 안다. 역사 속에서 영적으로 보면 얼마나 많은 방해가 있었는가 봐야한다. 이것을 모르면 ‘이 교회는 또 문제가 많네. 교회가 이렇네. 저렇네.’ 한다. 영적으로 깨인 사람은 우리 교회가 세계복음화 할 교회이기 때문에 안 밖으로 흔들어 댄다고 본다. 핍박이 꺾이고 안에서 이상한 것도 꺾여야 한다. 못 깨달으면 아직도 육신적인 눈을 가지고 교회가 이렇다, 저렇다 한다.

셋 째. 복음하고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생명인 줄 믿으시길 바란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다. 복음의 기능은 생명의 기능, 살리는 기능이다. 율법의 기능은 정죄의 기능이다.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다. 율법이 선한 것은 우리를 정죄하고 죄인이라 하지만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으로 선한 줄 믿으시길 바란다. 복음과 종교는 무엇인가 깨달아야 한다.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고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부활하셔서 성령을 보내셔서 지금도 함께하심을 알고 세계복음화에 담대히 쓰임 받고, 그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는 옥문도 터지는 역사가 난다. 그래서 행28장에 보면 아무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늘 동행하심을 본다. 복음과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복음을 깨달으면 완전 바뀐다. 그게 바울이고 존 뉴턴이다. 자기가 얼마나 죄인이지를 알고 두 가지를 말한다. 내가 죄인인줄 말하고 예수님이 구세주인줄 알고 지은 찬송가가 405장이다. 크리스비 같은 여성은 주님 만나기 전에는 눈 수술을 할 때가 있는가 불 켜고 다녔고 의사를 만나면 ‘눈 열어줄 수 있는가.’ 얘기를 했는데 주 예수를 만나고 나서는 ‘내 눈을 열어주지 않아도 감사합니다. 내 눈을 뜰 때 사람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한다. ‘나의 생명 되신 주님 앞에 내가 나아갑니다.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한다. 우리 입술에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고백되어지기를 축원한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했다. 그러면서 구원받은 그가 한 고백이 뭔가.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오라 하실 때 나를 부르소서.’했다. 자랑할 거 있는가. 없다. 그래서 은혜로운 찬송은 은혜 받은 사람, 크로스비에게 집중되어있다. 링컨은 주님께 은혜받기 전에는 새엄마가 원수이다. 자기 마누라도 원수고 정치적도 원수이고 전부 자기 원수이다. 링컨이 주님 만나고 나니 새엄마가 자기를 기도하게 한 장본이이고 악처가 기도하게 만드는 선생님이고 정치적 적은 그를 보면서 겸손하게 된 선생님을 만났다고 한다. 예수만나면 완전 변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내 인생에 답이 나고 내 인생에 재해석되기를 축원한다. 바울은 자기 인생에 질병이 있던지, 스데반을 순교 시켰던지 간에 복음 안에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다. 오늘도 핍박 자를 변화시켜 전도자로 만드는 게 그리스도이다. 성경가지고 제대로 봐야한다. 오늘 제목이 ‘핍박자 사울을 전도자로 만든 그리스도.’이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성령을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천국에서 친히 전도를 이끌어 가시는 그리스도이다. 사울이 환자보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자기가 아팠기 때문이다. 사울은 전도하면서 제일 잘 피했을 것이다. 자기가 전도하는 사람을 죽이러 갔기 때문이다. 복음 안에 들어오면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결 론

내가 중직자다? 내 지역에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그게 오늘 아나니야이다. 아니니야는 깊은 기도 속에서 ‘주님. 여기 있습니다.’한다. 주님과 영적교제가 얼마나 긴밀한지 모른다. ‘박목사야.’ 하시면 저는 기절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중심과 중심의 대화를 하는 중직가이다. 그 지역에서 사울을 꺾고 아나니야에게 붙이셨다. 은혜교회의 모든 중직자는 현장에서 이제부터 강단말씀과 훈련 메시지를 가지고 말씀성취, 기도응답, 전도축복을 누리면서 아나니야 같은 중직자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다른 소리를 하지 마시길 바란다. 지금도 말씀이 안 들린다? 말씀 듣고 다른 데로 해석한다? 큰일 난다.

두 가지 기억하시길 바란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고민할 거 없고 그것 때문에 기도원 산에 갈 필요도 없다. 저는 복음 알고 나서 기도원에 안 간다. 저는 본당에 와서 기도하고 교육관에서 기도하고 우리 집에서 기도한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면 모르지만 내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내가 다락방에서 임마누엘을 누리고 만남 속에서 임마누엘을 누리고 우리 집에서 임마누엘을 누리고 내 직장에서 임마누엘을 누리고 내 사는 지역에서 임마누엘을 누리시길 바란다. 얼마나 복음 누릴 말씀들을 쏟아 붓는지 모른다. 고민할 필요 없고 두 가지로 정확하게 나타난다. (1)자꾸 그 방향으로 메시지가 나온다. 우리 같으면 계속 메시지가 제2의 RUTC 운동으로, 전도와 선교로 나온다. 특히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하면 설교할 줄 모르는 본문이었다. 그런데 성경66권을 가지고 전부 말씀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사도행전으로 하신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우리 교회에 그대로 일어나는 일이 나와야 한다. 현장에서 문을 여시고 받을 복이 뭔지 알기를 축원한다. (2) 내 인생을 보고 발견한다. 혹시 이 자리에 ‘나는 가정환경이 안 좋다?’ 명심하시길 바란다. ‘내 인생이 왜 이런가.’ 명심하시길 바란다. 주님이 사무를 보다가 잠깐 놓쳐서 여러분을 여기 보낸 거 아니다. 그 가정으로 보낸 거 아니다. 오늘 은혜교회에 온 거 분명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창세전이다. 바울은 자기 인생을 그렇게 해석했다. 나를 창세전에 선택하셨다고 한다. 이게 안 되고 내 인생이 해석 안 되면 한치 앞으로 갈 수도 없다. 늘 내 문제와 남의 문제에 걸린다. 하나님이 언제 예비하셨는가. 창세전이다. 은혜교회에 앉아있는 거 창세전에 예비하셨다. 정말로 부활하셔서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주님으로 우리 속에 계시는 것을 인격적으로 믿고 진정 답이 나고 내만 사는 게 아니라 오직 복음으로 다른 사람까지 살리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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